소설리스트

감옥에서 재능 찾기-75화 (76/151)

▣ Chapter 3-25

드래곤밸리 지하에 끌려온 순간 형우는 일이 복잡하게 흘러가리라 생각했다.

크루바에게 의뢰를 받아 온 건 사실이었으나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서 노예가 되기엔 정말 꺼림칙했다.

그러나 꼬인 실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아아, 인사니오시여!”

험악한 눈으로 바라보던 그들은 어느새 존경과 경외심을 가득 담아 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들이 저렇게 변한 이유는 간단했다.

형우가 인사니오의 존엄을 사용한 이후부터였다.

드래곤밸리 지하로 끌려가는 와중에 인사니오의 제단으로 보이는 곳을 지나갔다.

그걸 본 형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들에게 인사니오의 힘을 보여줬다.

그러자 그 힘을 알고 있던 이들이 인사니오의 이름을 외치면서 대우가 확 달라졌다.

그들에게 인사니오는 신 중에서 제일 위대한 신이었다.

이곳 차원을 만든 창조주보다 더.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인사니오는 비록 마지막 전투에서 패하긴 했으나 엑시디움의 힘을 갈라놓고 다른 차원에 보내버렸다.

덕분에 차원의 붕괴는 좀 더 유예되었고 엑시디움의 직접적인 간섭을 피했다.

그 덕분에 그나마 아르카가 바소르를 상대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런 인사니오는 당연히 그들에게 경의의 대상이자 찬양의 대상이 됐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엑시디움이 쳐들어오기 전까지 인사니오는 마신과 같은 취급을 받은 신이었다.

파괴의 신이었던 인사니오였기에 사제에게 내린 신성력도 파괴의 힘이 실렸다.

그 파괴의 힘은 치료엔 전혀 쓰이지 못하고 전장에서만 쓰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인사니오의 사제들은 마신의 사제라며 다들 기피하는 존재가 됐고 배척당하다 보니 교단의 세력이 다른 교단들에 비해 제일 작았다.

각설하고 여하튼 그렇게 인사니오의 힘을 보여주고 형우는 아르카의 리더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인사니오의 사도를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저는 아르카를 이끌고 있는 피델이라고 합니다.”

엘프인 피델은 형우를 향해 극도의 예를 표했다.

형우를 인사니오의 사도라도 믿고 있는지 바닥이 닳도록 절을 하고 있었다.

‘뭐, 사도라면 사도긴 하겠는데… 무슨 조상님도 아니고 절을 왜 이렇게 많이 해?’

“일어나십시오. 이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형우는 피델을 일으켰다.

계속 엎드려 있으려고 했기에 억지로 의자에 앉혔고 형우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사도시여.”

피델은 감동한 표정으로 형우를 바라봤다.

그 표정을 본 형우는 어색하게 눈을 피했다.

정말 별것도 아닌 것에 감동하는 그를 보며 이곳에서 인사니오의 신망이 두텁다는 걸 느꼈다.

‘낚시나 하던 양반이 뭐가 대단하다고.’

형우는 속으로 볼멘소리를 냈으나 밖으로 감히 꺼내진 못했다.

그랬다가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정말 감당을 못할 것 같았다.

“저흰 인사니오께서 마지막 전투와 함께 사라지신 줄 알았습니다.”

그들로선 마지막 전투 이후 사라진 인사니오가 당연히 소멸한 줄 알았다.

엑시디움의 힘을 조각내 다른 차원으로 보냈고 그 조각은 인사니오의 힘이 담겼으니 당연한 유추였다.

게다가 마지막 전투에서 인사니오의 사제들도 모두 죽었기에 인사니오가 살아있다고 말해줄 이도 없었다.

“아주 정정하게 계십니다. 얼마 전에 뵈었는데 낚시에 소질이 있으신지 낚시를 강태공급으로 잘하시고요.”

“예?”

“아닙니다. 그것보다… 이곳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겁니까?”

형우는 피델을 만나가 전 드래곤밸리 지하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하 깊숙한 곳에 거대한 공동이 있었고 그곳엔 아르카에 속한 이들이 살았다.

다만, 그들의 모습은 정말 피폐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굶주린 이들이 태반이었고 몇몇은 영양실조에 걸린 듯 골골대고 있었다.

게다가 온통 부족한 것투성이였다.

무기부터 방어구, 자재 등 생필품부터 전투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부족했다.

그런데 물어보니 그렇게 된 지 얼마 안 됐단다. 그리고 딱 이유를 물으려 할 때 피델을 만났기에 궁금증을 풀지 못했다.

“얼마 전 바소르에게 습격을 당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이곳 지하에선 작물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드래곤밸리 내 은신처에서 작물을 기르고 그 근처에 있는 광산에서 광물들을 얻었는데 그것들을 운송해오는 와중에 바소르에게 습격을 당해 모두 빼앗겼습니다. 덕분에 제대로 배식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음…….”

“그리고 어떻게 안 건지 다른 곳까지 바소르가 막으면서 계속 보급을 못 받았습니다.”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다른 건 솔직히 둘째치고 먹을 게 부족한 건 정말 큰 문제였다.

이들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던 건 드래곤 밸리 지하에 광범위하게 펼쳐놓은 땅굴이 가장 크긴 했다.

그러나 그 땅굴이 있더라도 식량이 없으면 드래곤밸리에서 버틸 수 없다.

결국, 밖으로 식량을 구하기 위해 병력을 운용해야 할 터인데 바소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였다.

“저들은 우리가 나오길 바라는 겁니다. 그래야 단번에 전부 쓸어버릴 테니 말입니다.”

지금 이 땅굴은 오면서 일부를 보긴 했으나 정말 대단했다.

‘월남전에서 베트남인이 만든 게 구찌 땅굴이었나? 딱 그 느낌이었지.’

개미굴처럼 넓게 파진 땅굴은 적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필요할 때는 과감히 통로를 폭파했다.

덕분에 바소르는 드래곤밸리 내부로 쳐들어오길 정말 꺼렸다.

병력 손실은 손실대로 있고 성과는 거의 없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드래곤 밸리 주변에 검문소를 만들어 통제했고 보급을 끊어버렸다.

그렇게 되면 식량을 얻기 위해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고 소규모가 아닌 대규모 부대가 밖으로 나올 터.

바소르를 그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리더인 피델은 딜레마에 빠졌다.

“…그래서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군요.”

내용을 듣는 와중에 형우는 아공간 주머니에 들은 식량을 가늠해봤다.

쿰의 마을에서 식량을 나눠주긴 했으나 아직 여유가 조금 있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 있는 이들을 모두 먹이기엔 정말 부족했다.

정말 조금 도움이 될 정도?

그래도 안 도와주는 것보단 나으니 형우는 최대한 꺼내줄 수 있는 만큼의 양을 꺼내줬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도시여.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이전 촌장처럼 피델도 울먹이며 식량을 받았다.

인원에 비해 작은 양이긴 했으나 이것으로 오늘 당장 죽을 이가 살 수도 있었다.

형우는 울먹이는 피델을 진정시켰고 잠시 후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사도시여. 이곳엔 어떤 일로 방문하신 겁니까?”

“아, 그게…….”

형우는 다시 한 번 피델에게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여정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말해줬고.

“역시 사도십니다. 짧은 기간 동안 한 마을을 구하시고 검문소 하나를 없애버리시다니.”

피델은 존경스럽다는 듯 바라봤다.

저렇게 바라보다가 눈에서 빛이라도 나올 것 같아서 형우는 말을 돌렸다.

“여하튼… 제가 온 이유는 드래고니안의 신물을 찾기 위함입니다. 혹시 아는 것이 있습니까?”

“드래고니안의 신물이라…….”

피델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드래곤밸리 자체가 워낙 넓어 이곳저곳 장소가 많았다.

그중에 신물이 숨겨졌을 만한 은밀한 곳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워낙 후보지가 많은 탓에 줄여야 했다.

그 많은 곳을 다 뒤질 순 없었으니까.

그 때문에 생각이 길어졌다.

그러던 중 피델의 머리에 무언가 떠올랐다.

“아, 있습니다. 딱 조건에 맞는 곳이 있습니다.”

“오! 거기가 어디입니까?”

형우는 탄성을 내뱉으며 물었다.

그러자 피델은 손가락으로 바로 위를 가리켰다.

“음?”

“바로 이곳 위입니다. 이곳 위에 있습니다.”

“아.”

피델이 생각한 장소는 이 위에 있었다.

정확히는 이 위에 있는 봉우리 정상에 있는 곳.

“아무래도 거기가 제일 가능성이 클 거 같습니다. 인사니오 님과도 연관된 곳이고 드래고니안들과도 연관이 된 곳입니다. 그곳이라면 분명 무언가 있을 겁니다.”

“안내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형우는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안내를 부탁했다.

이들의 상태를 보니 이대로 가다간 오래 못 버틸 것 같았다.

주변을 통제한 부대를 없애줄 수도 있었으나 그거 이상으로 불가능했다.

형우는 여기서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검은 영혼석의 용도를 안 이상 감옥으로 복귀해서 다시 방수혁을 찾는 데 주력해야 했다.

그 이후엔 얼마든 도울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다만, 드래고니안의 신물을 찾아주어 이종족들을 감옥에서 해방해주면 분명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물론 그들이 합류한다고 바소르를 모두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더 오래 버틸 수 있게 될 터.

나중에 형우가 감옥에서의 일을 정리하고 돌아오면 그때 바소르를 모두 소탕하면 됐다.

신물은 형우와 아르카들에게 시간을 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꾸물거리지 않고 바로 움직이려 했다.

“제가 직접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피델은 자신이 직업 안내해주겠다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다른 안내인을 붙이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그곳은 제가 직접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아르카의 리더이자 머리였다.

그가 직접 움직이는 게 좀 그래서 거절하려고 했으나 피델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곳은 아르카에서 저밖에 모릅니다. 저는 오래전 인연이 있었던 드래고니안 덕분에 알고 있으나 다른 이들은 그 장소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도 모를 만큼 은밀한 곳인지라 제가 안내해드려야 합니다.”

그 말에 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안내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도께선 저에게 명령을 내리실 충분한 자격이 있으신 분입니다.”

“하하…….”

형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일어섰다.

다만, 가기 전 지호에게 워프 게이트를 설치해놓으라고 말했다.

만약 피델이 알려준 장소에 신물이 있다면 바로 감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괜히 꾸물댔다가 그사이 수혁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면 큰일이다.

“가시죠.”

“예, 사도시여.”

피델은 앞서 움직이며 길을 안내했다.

땅굴은 산 지하에만 파진 게 아니라 위로도 파여 있었다

덕분에 경사가 높은 통로로 빠르게 산 정상을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 한참을 움직인 끝에 산 내부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것도 참 절경이네.”

조금 시간이 흐른 후 형우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엄청난 절경이 펼쳐졌다.

무릉도원(武陵桃源).

딱 형우의 본 광경에 어울리는 말이었다.

산봉우리에 걸친 은은한 안개부터 조각처럼 깎여진 절벽.

산 정상에 내린 만년설(萬年雪).

그 밑으로 펼쳐진 푸르른 산.

정말 아름다웠다.

“속이 답답할 때마다 한 번씩 이곳에 옵니다. 절벽에 있어 들키진 않겠지만 혹시 바소르들에게 발각당할까 봐 자주 오진 못하지만 말입니다.”

“속이 답답할 때 올 만하군요. 정말 속이 뻥 뚫리네요. 그리고… 정말 아름답네요.”

형우는 한 번 벌어진 입을 다물기 힘들었다.

파아아앗!

그때 멀리서 빛의 기둥이 솟구치는 게 보였다.

그런데 그 기둥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꽤 멀리서도 선명히 보이는 것들까지 합하면 수가 정말 많았다.

빛의 기둥은 선명한 흰 빛을 띠고 있어 뭔가 신성해 보였다.

“…!”

형우는 빛의 기둥들을 놀란 눈을 쳐다봤다.

그러자 피델이 입을 열었다.

“전송하고 있는 겁니다.”

“전송이요?”

“다른 세계로 사람이나 몬스터를 보낼 때 저 빛의 기둥이 떠오릅니다.”

“아…….”

형우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번에도 길었는데 이번에도 꽤 긴 거 같군요. 아무래도 보내는 양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많다라…….”

그 말을 듣자 신성해 보이던 빛의 기둥이 불길하게 보였다.

전송되는 다른 세계는 당연히 지구.

형우는 지구에 있는 선우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선우는 괜찮을까…….’

근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형우는 한동안 빛의 기둥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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