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23
지구와 감옥엔 시체가 없다.
헌터가 죽으면 시체가 사라지고 영혼석이 생겼다. 그리고 그건 일반인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인이나 동물마저도 죽으면 영혼석만 남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상조나 납골당 같은 장례 관련 업체들이 줄줄이 망했다.
시체가 없으니 매장이나 화장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망하는 건 당연했다.
물론 나중에 납골당의 경우 뼛가루 대신 영혼석을 모셔두는 등의 아이디어로 기사회생한 이들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여하튼 시체를 볼 수 없게 됐다는 거였다.
죽음에서 제일 가까이 있는 헌터들도 정말 잠깐 보는 게 끝이었다.
그런데 이곳 오티움에선 시체가 없어지지 않았다.
영혼석을 뱉는 건 같았으나 시체가 사라지지 않았고 덕분에 잔인한 장면을 생생하게 라이브로 볼 수 있었다.
이건 사실 쿤의 마을에서 이미 봤던 거긴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좀 달랐다.
시체의 수도 많았고 드레이크가 밟아 죽인 시체 등, 잔인한 시체들이 더 많이 있었다.
덕분에 형우도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구역질은 구역질이고… 정리는 해야지.’
“내비!”
“예, 예! 가, 갑니다!”
바룬은 형우의 부름에 부리나케 달려왔다.
형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봤던 바룬이었기에 더 군기든 모습이었다.
‘도대체 인간이 맞는 거야?’
짧은 시간에 S급을 죽였고 A급 20명과 수백의 수비대를 죽였다.
게다가 드레이크를 조종해서 난동을 피운 결과, 검문소 마을은 폐허가 됐다.
엑시디움에게 오티움이 점령된 이후 단 한 번도 검문소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한 적이 없었다.
아르카가 대대적으로 공격했을 때도 말이다.
그렇기에 바룬은 형우에게 제대로 겁먹은 상태였다.
“이제 어디 방향으로 가면 돼?”
“저쪽 평야로 가면 됩니다요. 저 방향으로 대략 7~8일만 가면 드래곤밸리가 나올 겁니다.”
바론은 동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동쪽엔 그동안 봐왔던 숲이 아닌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평야의 옆에는 해안가가 보였다.
“드레이크로 달려도?”
“빨리 달려도… 쉬는 시간이 있으니 최소 5일은 걸릴 거 같습니다.”
“으흠, 그렇단 말이지.”
“…….”
형우가 생각에 빠지자 바룬은 괜히 긴장했다.
형우는 지금 시체들을 밟고 있었다.
그냥 널린 게 시체 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밟고 있는 거였지만 그것이 왠지 바룬을 겁먹게 했다.
“일단 튀어야겠네. 바룬.”
“예!”
“볏짚 좀 모아봐.”
“예?”
갑자기 볏짚을 모아오라고 하자 바룬은 얼빠진 소리를 냈다.
“볏짚 좀 많이 모아오라고.”
“아,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나온 말에 바룬은 바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정말 많은 양의 볏짚을 모아왔다.
형우는 그것을 드레이크의 뒤에 빗자루처럼 묶었다.
“음? 이건 왜 이렇게 하는 거야?”
“흔적 좀 지워야 할 거 같아서. 여기서 이렇게 깽판 친 거 마을 사람들 때문에 금방 알려질 거 아냐? 쫓아오면 좀 그러니까 흔적을 지우면서 가야지. 마침 평야라서 딱 좋네.”
“아아.”
성민은 형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너무 갑자기 일을 크게 벌인 것 같아서 뒤가 걱정됐다.
그런데 이렇게 흔적을 지우면서 가면 최소한 바로 뒤를 쫓아올 걱정은 없었다.
물론 행선지를 감출 순 없겠지만.
“그래도 이거 좀 걱정되는데. 바소르라는 놈들이 막 죽어라 쫓아오는 거 아냐? 흔적 지워도 물량빨로 찾으면 금방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어차피 가는 길에 무슨 깽판을 치든 바로 따라오지만 않으면 언제든 도망갈 수 있잖아.”
형우는 걱정하는 성민에게 지호를 가리켰다.
지호의 능력은 워프 게이트.
드래곤밸리 정도면 감옥이 있는 곳까지 바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게다가 저쪽에 연락도 안 된 상태니까 최소한 뒤쫓는 애들이랑 며칠 차이는 날 거야.”
“으흠…….”
성민은 형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가자고.”
볏짚을 달면서 어느새 막사까지 설치가 끝났다.
막사 설치가 끝나자 형우는 불을 만들어서 마을 전체에 뿌렸다.
“윈드!”
휘잉! 화르륵!
거기에 윈드를 사용하자 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소정아.”
“넵! 가자, 레이야!”
어느새 드레이크에게 애칭까지 붙인 소정이는 드레이크를 움직였다.
쿵. 쿵. 스윽.
드레이크의 발자국은 거대한 빗자루 덕분에 지워졌다.
물론 완벽히 지워진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금세 바람이나 비로 지워질 만했다.
그래도 이걸 찾아온다 할지라도 거리의 격차가 있으니 걱정이 없었다.
다만, 문제는 그사이 드래곤밸리에서 드래고니안의 신물을 찾느냐 마느냐였다.
“뭐 잘 될 거라고 믿는 수밖에… 것보다 정말 잘 타네.”
화르륵. 쿵!
멀리서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염이 순식간에 마을 전체를 집어삼켰다.
게다가 불이 숲까지 번지면서 비가 오지 않는 이상 불은 멈추지 않을 듯했다. 그리고 그 불 너머로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어?”
그런데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분열이 일어났는지 서로 다투고 있었다.
“다들 움직이지 못해?!”
“창녀 새끼들이 어딜 개겨!”
수비대 일부로 보이는 이들이 여자들에게 검을 들이밀었다.
그러나 여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쌍심지를 켜며 대들었다.
“창녀?! 너희가 그렇게 만든 거잖아!”
“우린 절대 못 가! 절대 안 갈 거라고!”
“이년들이!”
수비대원들은 검으로 위협했다.
그러나 막상 검을 휘두르진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 여자들을 통제하고 있는 건 감옥에 있는 것과 똑같은 ‘노예 문서’였다.
노예 문서로 자살이나 도망을 막고 있었는데 도망치면서 노예 문서를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
그걸 모두 관리하고 있던 건 브리안이었고 하필 브리안이 형우에게 죽었다.
아마 노예 문서는 지금쯤 마을에서 불타고 있을 터였다.
그걸 서로 눈치챘고 덕분에 지금의 대치 상황이 일어났다. 그리고 여자들도 기본적으로 다 능력자들이었다.
안 그래도 S급과 A급이 전부 죽었는데 지금 전력으로 저들과 싸우다간 큰 피해가 생길 터.
그 때문에 수비대원들이 함부로 먼저 나서질 못했다.
“뭐지? 내비. 쟤내들 왜 저래?”
검문소에 관해서만 설명 들었던 형우는 마을의 생성과정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때문에 바룬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 음. 아마도…….”
바룬은 마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원래 검문소밖에 없었다.’
‘납치나 포로로 잡은 여자들이 점점 늘어나다가 마을이 됐다.’
간략한 설명이 끝나자 다들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사람이…….”
“진짜 잔인하다, 잔인해.”
“길드장님. 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냐?”
성민은 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대로 가기 찜찜했던 형우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깐 도와주고 올게. 매스 블링크.”
팟!
형우는 매스 블링크로 이동했다.
그사이 분위기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안 되겠다! 다 죽여!”
“다 죽…….”
“오러 블라스터!”
수비대원들이 달려 드려는 순간 무언가 번쩍이며 날아왔다.
슈우욱! 콰아앙!
“크아악!”
“커억!”
S급의 힘으로 만든 오러 블라스터는 수비대원들을 덮쳤다.
중심지에 있던 이들은 비명조차 못 지르고 죽었고 주변에 있던 이들도 폭발에 휘말려 바닥을 나뒹굴었다.
“누, 누가?”
“…!”
여자들은 당황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도와준 대상은 보이지 않았다.
능력을 쓴 형우는 매스 블링크로 이미 드레이크로 복귀한 뒤였으니까.
“저대로 놔둬도 괜찮을까요?”
봄이는 여자들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봤다.
지금은 형우가 도와줘서 위기를 모면했으나 이건 시작이었다.
이제부터 계속 위기가 찾아올 게 뻔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저들 모두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요.”
“…….”
형우의 말 대신 대답한 건 도영이었다.
그 말에 봄이도 입을 닫았다.
이미 이유는 알고 있었으니까.
“나머지는 운명에 맡겨야겠지. 자, 늦었지만 점심이나 먹자.”
형우는 그 말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난 뒤 형우는 홀로 막사에서 S급 브리안을 죽이고 얻은 영혼석을 꺼내봤다.
‘이거 S급 영혼석을 너무 자주 얻는 거 아냐?’
형우는 영혼석을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나 이내 곧 표정이 굳어졌다.
“얻으면 뭐하냐. 쓸만한 게 아닌데.”
브리안의 능력을 별 볼 일 없었다.
능력의 이름은 플레임 스로어.
화염을 방사하는 능력이었다.
그래도 S급이라고 엄청난 고열을 내뿜었지만 형우가 보기엔 애시드보다 못했다.
차라리 수비대장에게 얻은 A급 오러 블레이드가 더 쓸모 있어 보였다.
덕분에 혁기에게 얻은 애시드와 더불어 필요 없는 영혼석이 두 개가 됐다.
“그래도 S급 영혼석을 두 개나 얻은 거에 감사해야 하나? 쩝… 어차피 S급은 얻으면 바로 흡수 가능해서 영 쓸모없는 거 같은데…….”
의뢰서엔 S급 영혼석 흡수 조건이 S급 한 명을 죽이는 거였다. 그리고 그 한 명을 죽이면 S급 영혼석이 나온다.
그러니 따로 S급 영혼석을 얻지 않는 이상 그게 그거였다.
물론 따로 얻을 기회도 거의 없었다.
이제 의뢰서마저 랜덤하게 나오지 않았고 고정됐다.
그 상태에서 유일하게 S급 능력을 얻는 방법이 A급 랭크업 보상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 보상은 사용된 상황.
결국, 쓸모없는 S급 영혼석은 계속 쌓여봤자 그게 그거였다.
“아,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형우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영혼석 하나를 꺼냈다.
꺼낸 영혼석에 담긴 능력은 B급 합성.
이 영혼석은 지난번 경매장 지하에서 얻은 영혼석이었다.
그때 혹시 몰라 챙겨두긴 했는데 생명체를 제물로 사용해서 쓰는 능력이 영 꺼림칙해서 안 배웠다.
“혹시 이거 합칠 수 있으려나?”
형우가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합성의 등급이 B급이라 될지 안 될지는 몰랐지만 일단 시도 정도는 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실패해도 손해는 없다.
기껏해야 합성 능력을 하나 배운 정도?
페널티가 없는데 굳이 안 해볼 이유가 없었다.
스르륵.
형우는 합성 능력이 담긴 영혼석을 일단 흡수했다. 그리고 두 영혼석을 대상으로 능력을 썼다.
“합성.”
“합성.”
“합성?”
그런데 아무리 능력을 써봐도 반응이 없었다.
혹시 몰라서 계속 써보긴 했다.
그러나 두 영혼석은 요지부동이었다.
“능력이 낮아서 그런가?”
형우는 아공간에 있던 영혼석을 다 꺼내봤다. 그리고 B급 이하의 영혼석으로 실험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B급부터 C급, D급 그 아래 등급까지 모두 써봤지만 합성 능력은 아예 써지질 않았다.
결국, 형우는 포기했다.
“역시 쓰레기가 맞네. 시간만 낭비했어.”
사실 지구에서 합성 능력은 쓰레기라고 불렸다.
말이 좋아 합성이지 제대로 합성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때문에 지구에서 합성 능력을 가진 헌터는 거의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쩝… 괜히 어질러놓기만 했네.”
형우는 어지럽게 놓인 영혼석을 바라보며 아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각각 영혼석에 능력을 새겨놨기에 구분은 어렵지 않았으나 많은 영혼석을 정리하려고 하니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그때 형우의 눈에 띈 영혼석이 있었다.
“아, 이게 있었지.”
우웅.
검은 영혼석 하나가 형우의 손에 집혔다.
혁기를 죽이고 얻었던 영혼석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이종족이 합쳐진 저주받은 산물이기도 했다.
형우는 불길한 빛을 띠는 영혼석을 바라보다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걸 쓰면 합성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이미 한번 합성으로 만들어진 물건이긴 해도 어쩌건 합성이 통한 물건.
또다시 안 되리란 법은 없었다.
형우는 검은 영혼석을 가운데에 두고 다시 합성을 시도해봤다.
“합성.”
스으으으.
“돼, 됐어…?!”
말을 안 듣던 합성이 드디어 사용됐다.
합성이 사용되자 S급 영혼석 두 개와 검은 영혼석은 한데 뭉쳐졌다.
그런데 뜻밖에 변화가 일어났다.
“어, 어?”
한데 합쳐진 그것은 바로 형우의 몸으로 들어왔다.
피하려고 했지만 무방비한 상태에서 워낙 순식간에 이뤄진 터라 피하질 못했다. 그리고 곧 형우의 몸에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났다.
곧 형우의 머릿속에 새로운 정보가 입력됐다.
“에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