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22
“네?”
“깽판이요?”
“이번엔 또 무슨 일을 벌이시려고…….”
형우는 어리둥절해 하는 일행에게 모두 드레이크에서 내리라 말했다.
모두 어리둥절하면서도 형우의 말에 따랐다. 그리고 막사까지 철거한 이후 형우는 소정에게 드레이크를 검문소로 돌진시키라고 말했다.
“소정아, 드레이크를 검문소로 안으로 보내. 거기서 제대로 난동 피우라고도 말하고.”
“네? 네.”
소정은 형우의 말에 의아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말을 따랐다.
“봄이는 드레이크한테 계속 힐을 줘. 나머지는 봄이를 보호하면서 다 숨어 있고. 나는 그동안 정리 좀 할게.”
“헐…….”
“길드장님, 너무 사악한 거 아닙니까?”
그제야 형우의 계획이 뭔지 파악한 일행들은 질린 얼굴로 바라봤다.
형우가 하려는 일은 정말 사악한 일이었다.
만약 자신이 저 검문소에 있었다면 정말 답이 안 나올 상황이 곧 벌어질 터였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곧 검문소는 답 없는 난장판으로 변했다.
“아함… 졸리는군.”
서부 드래곤 밸리 검문소.
검문소 위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병사 하나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일이 없으니 지루하기만 하네. 아함.”
“게일 씨. 그래도 일이 없는 게 낫지 않아요? 왜 굳이 바빠 봤자 좋을 것도 없고요.”
계속 하품만 해대는 게일에게 다른 병사가 질책했다.
그러나 게일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아르카 놈들이 또 나타나면 죽어 나가는 건 우리잖아요. 그러니 차라리 지루한 게 낫…….”
“쯧쯧! 톰슨, 자넨 하나만 아는구만. 신입이라 그런지 아직 생각이 아주 온순해. 아니, 이건 신입이 문제가 아니라 원래 성격이 문젠가?”
게일은 톰슨의 말을 끊으며 혀를 찼다.
순진한 병사를 향해 게일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저럴 때가 있었으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차피 우린 다 죽어. 그것도 제 명에 못 죽을 게 뻔해.”
게일의 말에 톰슨의 눈이 커졌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다른 세계의 점령이 끝나면 우리도 넘어가는 거 아닙니까?”
“어허. 그놈들이 우릴 데려갈 거 같아? 내가 장담하는데 높으신 놈들 빼곤 다 버려질 거야. 그러니까 죽기 전에 즐겨야지. 그러고 보니 아직도 총각 딱지 못 뗐다며? 하하!”
“…….”
게일의 말에 톰슨의 얼굴이 붉어졌다.
바소르에서 남자가 여자 경험이 없다는 건 심하게 놀림 받을만한 일이었다.
10살만 넘어도 경험을 갖기 시작하는 게 이곳 오티움이었으니까.
문제는 그 경험이 일반적인 경험이 아니었다.
지구에서 과거사만 봐도 어린 나이의 성혼(成婚)이 흔하긴 했다.
그러나 그런 종류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오티움에선 현재 여자의 지위는 노예보다 더 못했다.
여자만 보이면 강제로 데려오기 일쑤에 남의 집 여자를 넘보는 건 예삿일이었다.
심지어 어린아이에게도 강간을 권유할 정도.
그만큼 사회 통념과 질서가 무너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마음만 먹으면 관계를 맺는 건 너무 쉬웠다.
그런 바소르 내에서 총각 딱지를 떼지 못했다는 건 큰 놀림거리였고.
“괜히 쓸데없는 생각으로 살다가 평생 해보지도 못하고 죽지나 말고 아르카 놈들이 오면 여자 하나 잡아다가 즐겨보기나 해.”
“…….”
이어진 게일의 말에 톰슨은 고개를 못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게일은 혀를 찼다.
“쯧쯧, 어쩌다 저런 별종이. 내가 어릴 땐…….”
쿵.
“음? 게일 씨. 무슨 울리는 소리 안 들리십니까?”
아주 미세한 진동.
그것을 느낀 톰슨이 게일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나 게일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지 짜증만 내고 있었다.
“무슨 소리가 들려. 아무것도 안 들리는구만. 너 내 얘기 안 들으려고 말 돌리는 거냐?”
“아, 아뇨. 정말로 진동이…….”
쿵. 쿵.
“어?”
“뭐야?!”
처음엔 희미했지만 곧 무감각한 사람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진동이 커졌다.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은 멀리서도 크게 보이는 거대한 드레이크를 볼 수 있었다.
“드레이크다!”
땡! 땡! 땡!
게일은 크게 외치며 종을 쳤다.
그러자 검문소의 수비대 인원들이 모여들었다.
“미친. 드레이크 숲에서 나오질 않는 녀석이 왜 여기까지 나온 거야?”
“뭐 어쩌겠어. 훈련한다 생각하고 얼른 잡자고.”
다들 드레이크를 보며 태평하게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곳 검문소엔 A급 인원이 많았다.
게다가 S급 한 명도 있었다.
드레이크 A급 대형 몬스터이긴 하나 이 정도 인원으로 잡지 못하면 말이 안 됐다.
수비대 전체에 소속된 A급의 수만 20명이 넘었기에 S급이 안 오더라도 A급들로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그들은 바로 검문소 밖으로 나가 대형을 잡았다.
“캬가각!”
쿵! 쿵!
그런데 드레이크가 그걸 무시하고 검문소 안으로 돌진했다.
“마, 막아!”
“프리징!”
“플레임 스트라이크!”
촤자작! 콰아앙!
급하게 수비대원들은 드레이크를 향해 능력을 날렸다.
그러나 당황한 사이 이미 검문소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드레이크는 공격을 맞으면서 검문소 안으로 들어갔다.
“수비대 인원을 반으로 나눈다! 방어조는 드레이크에게서 시간을 끌고 대피조는 마을 주민 소개(疏開)를 도와라! 게일은 반대쪽 수비대원들도 모두 데려와!”
“예!”
수비대장은 급하게 인원을 나눴다.
검문소 안에는 큰 마을이 있었다.
원래는 그저 드레이크 숲과 드래곤 밸리 중간에서 검문소만 덩그러니 있던 곳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큰 마을로 변했다.
다만, 그 마을이 생기는 과정이 조금 비정상적이었다.
이곳에 검문소를 세운 이유는 드래곤 밸리로 들어서는 아르카들을 잡기 위해서였다.
아르카는 쉽게 말하면 레지스탕스들이었다.
대륙과 신들을 배신하고 엑시디움에게 붙은 바소르에게 대항하는 이들.
정확히는 마지막 전투 이후 살아남은 패잔병이었다.
크루바처럼 감옥으로 추방당한 이들도 있었으나 엑시디움의 눈을 피해 도망친 이들도 있었고 그들은 한데 모여 아르카라는 레지스탕스 조직을 창설했다.
그런 그들이 주 거점으로 삼은 곳은 드래곤 밸리.
드래곤 밸리는 거대한 산악지역이었다.
숨기에도 좋았고 게릴라전을 하기에도 정말 최적의 장소였다.
그러다 보니 바소르도 쉬이 그곳을 토벌하지 못했다.
총력을 다한다면 이길 수는 있었으나 그 이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만큼 피해가 클 테고 업무에도 차질이 생길 테니까.
그 때문에 드래곤 밸리 주변에 검문소를 설치해놨다.
쉬이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말이다.
게다가 검문소에 아르카가 등장하면 다른 곳에서 드래곤밸리로 공격을 들어갔다.
그 상황이 계속 이어지자 아르카는 소규모 전투밖에 벌일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검문소 주변에서 잡아 온 이들이나 검문소를 공격한 이들, 넘어가다가 걸린 이들이 잡혀 남자는 전송되고 여자는 노예가 됐다.
그 수가 차츰차츰 늘어나자 그게 마을 규모로 커졌다.
정말 아르카 입장에선 정말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캬각!!”
“오러 블레이드!”
스악! 스악!
A급 오러 블레이드 능력자인 수비대장은 검에서 넘실거리는 오러로 드레이크의 하체를 베었다.
쿵! 쿵!
“갸가각!”
드레이크는 아래서 공격하는 수비대장에게 약이 올랐는지 발을 쿵쿵 굴렀다.
그러나 이리저리 재빠르게 피하는 그를 밟진 못했다.
그러자 드레이크는 다른 방법을 썼다.
“스으읍!”
드레이크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브레스다! 피해라!”
“피해!”
화르륵!
피하라는 말이 무섭게 드레이크의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끄아악!”
“아악!”
벗어나지 못한 수비대원들이 불에 휩싸여 타버렸다.
그러는 사이 드레이크가 입었던 상처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지 못한 그들은 이를 악물며 드레이크를 막았다.
“캬가각!”
드레이크는 무슨 작정을 했는지 계속 마을 안으로 계속 밀고 들어왔다.
수비대들은 그런 드레이크와 15분째 계속 대치 중이었다.
“동문 수비대 놈들! 왜 아직도 안 나타나는 거냐!”
수비대장은 분노를 가득 담아 소리쳤다.
검문소엔 서문과 동문 두 개 입구가 있었다.
당연히 병력도 반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들을 불러오기 위해 게일을 보냈다.
조금 떨어져 있긴 했으나 아무리 늦어도 지금은 와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게일과 동문 수비대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공격했는데 아직도 멀쩡하다니…!”
그와 동시에 수비대장은 아무리 공격을 해도 죽지 않는 드레이크를 보며 짜증을 냈다.
계속 공격을 날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공격해도 드레이크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몸이 풀렸는지 더 미쳐 날뛰는 중이었다.
덕분에 점점 수비대에 피해가 늘어났다.
슈우욱! 퍼억!
“크악!”
“이런…!”
A급 한 명이 드레이크의 꼬리에 맞아 날아갔다.
안 그래도 무너지는 대열에 점점 더 큰 균열이 생겼다.
“안 되겠다! 톰슨! 브리안 님을 모셔와라! 어떻게 제대로 오는 인간이 하나도 없어!”
“예, 알겠습니다!”
수비대장의 말에 톰슨을 대열을 이탈해 어디론가 빠르게 달려갔다.
브리안은 이곳을 총괄하는 검문소장이자 S급 능력자였다.
문책은 좀 당하겠지만 이대로 가다간 수비대 전원이 전멸할 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수비대장은 브리안을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좀 이상한 게 많았다.
‘이 정도 소란이면 직접 오실 때도 되지 않았나?’
브리안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방탕 그 자체였다.
하루에 종일 여자를 안고 있는 건 예삿일이고 손에는 항상 술병이 들려있었다.
덕분에 브리안이 해야 할 업무는 모두 수비대장이 처리했다.
그러나 아무리 여자와 술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드레이크가 이렇게 난리를 치는데 안 나타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브리안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썩을 새끼!”
결국, 밖으로 불만을 토해낸 수비대장은 계속 드레이크와 싸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비대가 막는 사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대피를 마쳤다.
덕분에 대피조 수비대원들이 다시 복귀했다.
그러나 복귀했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제야 수비대장은 드레이크 상처가 계속 치료되는 걸 볼 수 있었다.
“누군가 드레이크를 치료하고 있다! 찾아라!”
힐러를 찾기 위해 인원이 빠져나가니 전투가 더 힘들어졌지만 이대로 가다간 모두 전멸할 판이었다.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원을 뺐다. 그리고 곧 수비대원들은 드레이크에게 그레이트 힐을 쓰는 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 있다!”
“스나이프.”
“다들… 크악!”
쓔우욱! 콰아앙!
“무, 무슨 일이냐?!”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빛무리 하나가 뿜어져 나오더니 힐러를 찾았다던 수비대원들이 모두 죽어버렸다.
수비대장은 그 광경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서, 설마 아르카가?!”
수비대장은 형우 일행을 아르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판단을 내리자 수비대장은 바로 몸을 돌렸다.
그 이유는 하나.
다른 검문소에 연락하기 위함이었다.
‘브리안 님이 못 오는 건 분명 다른 S급이 나타났기 때문일 테지. 이 정도 병력이 왔다면 분명 드래곤밸리에 큰 구멍이 났을 거다.’
이 마을에 지원이 언제 올진 모르지만 그사이 아르카의 본진은 바소르의 군대에게 짓밟힐 터였다.
수비대장은 그 생각을 하며 복수를 위해서 달려갔다.
그러나 곧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툭.
“이걸 찾는 겁니까? 아니면 다른 일을 하러 가는 겁니까?”
“헉! 브, 브리안 님!”
달려가던 수비대장의 앞에 누군가의 머리가 굴러왔다.
머리를 본 수비대장은 경악했다.
그 머리의 주인이 바로 수비대장이 그토록 찾던 브리안이었으니까.
‘어떻게 브리안 님이…….’
아무리 주색잡기에 빠진 놈이라고 해도 S급은 S급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사이 S급이 죽어버렸다. 그리고 그걸 본 순간 수비대장은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
“썩을…….”
수비대장은 자신을 차갑게 바라보는 형우를 보며 마지막 함께 할 검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