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21
바소르 서부 지부.
대륙 남동부에 거점을 두고 있는 바소르는 넓은 대륙을 커버하기 위해 서부와 동부, 북부에 따로 지부를 설치했다.
그중 서부 지부는 가장 규모가 컸다.
대륙 중간에 흐르는 강 때문에 지역을 나누기 애매했는데 그걸 서부에 모두 몰아줬다.
그 덕분에 서부 지부는 넓은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들이 담당하는 업무는 대부분 사냥 부대 운영.
지역을 관리한다기보단 지역에 있는 인원을 쓸어오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인간과 이종족, 몬스터들을 가축으로 키우는 일도 했다.
각 지부가 나뉘어 지역에 있는 생명체를 끌어오는 이유는 그것들을 다른 세계로 전송하기 위함이었다.
그게 관리자, 엑시디움에 도와 다른 차원을 침략하기 위해 그들이 하는 주된 업무였다.
그러나 이 일을 한 지 벌써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열심히 끌어오고는 있었으나 항상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했다.
도망 다니면서 생존하는 와중에 개체 수의 증가가 가장 컸다.
다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
닥치는 대로 다잡아오는 상황에선 당연히 늘어나는 수보다 줄어드는 수가 컸다.
게다가 요즘 더 기승인 ‘방해꾼’들도 골치 아팠다.
툭!
“하아, 죽겠군.”
서부 지부의 지부장 롤랑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에 던졌다.
두 달 전 위에서 지령이 내려왔다.
한 번에 많은 양을 투입할 것이니 최대한 많은 양을 비축하라고.
그리고 며칠 전에 모두 다른 세계로 방출했다.
그러나 그사이 문제가 많이 생겼다.
모아두는 와중에 목숨 줄을 붙여두기 위해 많은 양의 식량이 소비됐다.
게다가 위에서 지령을 내려준 양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가축’까지 방출하다 보니 다음까지 제대로 할당량을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 때문에 롤랑의 시름이 깊어졌다.
똑똑.
“롤랑 님.”
“들어와.”
그때 부하 하나가 롤랑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음, 무슨 일이지?”
롤랑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부하를 바라봤다.
“드레이크 숲 외곽 남쪽으로 파견된 사냥 부대 하나가 실종됐습니다.”
“실종?”
심드렁하게 있던 롤랑은 실종이란 말에 자세를 바로잡았다.
부하는 롤랑의 책상 위에 복귀 예정일이 써진 종이를 올려놨다.
“예.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연락이 끊기고 예정된 복귀일이 벌써 5일 지났습니다.”
“그쪽에 강한 놈들은 있던가? 드레이크 외곽까지 나올 리는 없고. 설사 나왔더라도 최소한 누구 하나는 살아서 연락했을 텐데…….”
“본부에 보고 올립니까?”
“보고를 올…….”
보고를 올리라고 말을 하던 롤랑은 말을 멈췄다. 그리고 손을 저었다.
“아니, 됐다.”
“예? 그럼 어떻게 처리합니까?”
“음… 그래, 리소린 부대가 좋겠군.”
부하는 롤랑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그들은 이런 일에 동원되는 부대가 아니었다.
이곳 서부 지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지부장은 롤랑을 제외하고 가장 강한 이들이 모인 부대였다.
“리소린 부대를 말입니까? 하지만 그들은…….”
“하지만 뭐?”
롤랑은 부하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그 시선에 흠칫한 부하는 더 이상 사견을 달지 않았다.
“예, 전달하겠습니다.”
부하는 대답하고 바로 집무실을 나갔다.
롤랑은 부하가 집무실을 나가자 무언가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뭐라 혼잣말을 시작했다.
“예, 롤랑입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일단 리소린 부대를 보냈습니다. 예? 그게 무슨? 아, 예. 알겠습니다.”
쿵. 쿵.
드넓은 숲, 드레이크는 자신의 무게만큼 큰 발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드레이크 위에는 평안한 표정으로 바깥 풍경을 즐기는 성민과 봄, 도영이 있었다.
“경치 좋다. 이런 걸 보는 게 얼마만 인지…….”
성민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푸르른 숲을 보며 상쾌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런 광경은 지구에서도 흔했다.
몬스터들이 나타나면서 그곳에 거주하던 인간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빈 곳을 식물들이 채우면서 옛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 같은 곳들이 늘어났다.
그런 곳은 주로 헌터들의 사냥터로 쓰였고.
그래서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곳에 갈 때면 항상 긴장을 풀지 못했다.
항상 긴장한 상태에서 진입하다 보니 풍경 따윈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자신들을 확실히 지켜줄 S급 헌터가 있었고 드레이크 때문에 몬스터들이 접근할 생각을 안 했다.
덕분에 긴장을 푼 채로 여유롭게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맞아요, 성민 씨. 정말 경치가 좋은 거 같아요.”
“공기도 좋은 거 같고.”
“네, 공기도 정말 좋은 거 같아요!”
봄은 성민이 말하는 모든 것에 반응했다.
마치 관심이라도 가져달라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성민에게 그런 눈치는 없었다.
그저 주변 풍경을 바라보는 데 빠진 상태였다.
‘참 눈치 없다,’
‘참 눈치 없다,’
도영과 지호는 똑같은 생각을 했다.
봄이 안쓰러울 정도로 성민은 눈치가 없었다.
본인들도 많은 연애를 해본 건 아니었으나 보통 이 정도 되면 속된 말로 ‘연애고자’라도 알아채야 정상이다.
그러나 눈치를 밥 말아 먹었는지 아직도 성민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음… 그나저나 이제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겁니까?”
어느새 드레이크에 적응했는지 지호는 흔들리는 드레이크 위에서도 태연하게 말했다.
“아까 내비… 하하, 바룬이 말하기로는 드래곤 밸리까지는 일주일은 더 가야 한다더군요. 그전에 오늘은 검문소라던가? 거기를 지나야 한다고 하던데요.”
내비게이션이라 말하려다가 도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바꿨다.
형우는 바룬을 철저하게 인간 내비게이션으로 대했다.
게다가 이름이 아닌 내비라고 불렀다.
그 덕분에 일행들도 다들 내비란 말이 입에 붙어버렸다.
“검문소? 거긴 뭐 하는 곳입니까?”
“아무래도 사람들 못 빠져나가게 잡아들이는 곳이겠죠.”
“쩝…….”
지호는 도영의 말에 안색을 굳혔다.
이미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접 경험했고 알기까지 했다.
덕분에 검문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쯧, 말세네요. 아, 진짜 말세구나.”
지호는 무심코 내뱉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말세였으니까.
그 모습을 보며 도영이 피식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지호 씨는 밖에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아, 저요? 그, 그냥 길드원 소속이었습니다.”
도영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지호는 말을 더듬었다.
그러나 이내 어색하게 웃으면서 사실을 말했다.
“사실 도박을 좀 하다가 빚을 져서 능력으로 은행 금고를 털다가… 하하.”
“잡범이었네.”
성민에게 꽂혀 있던 봄이 지호의 말을 듣곤 비아냥거렸다.
그러자 지호는 바로 발끈했다.
“아니, 잡범이라니요? 그래도 대형 은행 하나 털려고 했으니까 대도급은 된다고요.”
“대도도 결국 잡범이잖아.”
“끄응…….”
지호는 말문이 막히자 끄응 앓았다.
“하하.”
그 모습을 보며 도영과 성민이 웃었다.
“봄이 씨는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도영은 말을 돌리기 위해서 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들려온 답변은 정말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저는 헌터수사부 소속이었어요.”
“에엑?”
“네? 헌터수사부요?”
“아니, 헌터수사부가 감옥엔 왜…?”
다들 경악한 표정으로 봄이를 바라봤다.
헌터수사부라고 감옥에 못 들어오는 건 아니었다.
죄를 짓고 관리자에게 잡히면 들어오는 게 감옥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건 보통 수사를 위해서 잠입하는 경우만 그랬다.
일부러 죄를 짓고 범죄자 추적이나 내부에서 외부와 연계되어 일어나는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서였다.
신지영도 그 수사를 위해서 감옥에 들어왔었고.
그러나 최봄은 아니었다.
길드 소속이 되어 감옥에 동화된 상태였다.
그 말은 즉, 감옥의 주민이 됐다는 말이었다.
주민이 된다는 건 감옥에서 한동안 벗어날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형량을 가졌다는 걸 알려줬다.
헌터수사부가 정말 수사를 위해 들어왔다면 그 정도로 범죄를 저지를 리가 없었다.
간단하고 금방 풀려날 수 있는 범죄를 저지르는 게 나았다.
또,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밝힐 일도 없었고.
“다 옛날이야기에요. 잘린 지 오래니까요. 여기선 그래도 해코지당할 일 없을 것 같아서 이야기하는 거니까 오해는 하지 말고요.”
최봄은 그 말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사연이 있는 듯했지만 다들 더는 묻질 못했다.
그녀가 헌터수사부였다는 걸 밝힌 것만으로도 정말 많은 부분을 오픈했다는 거였으니까.
‘거기엔 길드장님의 역할이 컸겠지.’
도영은 그 생각을 하며 뒤에서 뀨우와 놀고 있는 형우를 바라봤다.
감옥에선 사실 도덕, 상식 따윈 통하지 않았다.
계급마저 다시 살아난 곳이 감옥이었고 한 번 노예가 되면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것도 감옥이었다.
그러나 형우에게 소속된 이후부터 도덕과 상식이 다시 살아났다.
노예로 들어왔어도 다들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줬다.
인간 대 가축이 아니라.
물론 노예 문서가 남아있긴 했다.
그러나 솔직히 호구가 아닌 이상 가지고 있는 게 맞았다.
S급이라도 그걸 없애줬다가 뒤통수를 안 맞으란 법이 없었다.
그러니 그걸 폐기해 주지 않아서 서운하다는 감정을 가지진 않았다.
각설하고 여하튼 형우는 마치 노예란 없다는 듯 다들 평등하게 대해줬다.
‘그게 사실 놀랍긴 했지.’
처음 도영은 형우의 노예가 되고 절망했었다.
하필 자신이 모시던 길드장의 딸까지 함께 노예로 팔리면서 정말 지옥을 볼 생각마저 했다.
그러나 형우는 그들의 복수까지 해줬다.
‘이제 곧 B구역 길드들도 쓸어버린다고 하셨지?’
형우는 지금 원정이 끝나고 B구역 길드들도 모두 쓸어버린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을 제일 먼저 들은 건 전 호람 길드 소속의 3명이었다.
민희, 성민, 도영.
형우는 그들에게 그 사실을 제일 먼저 말해줬다.
그걸 들은 순간 도영은 형우에게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작은 길드도 아니고 무려 다섯 구역을 통합으로 운영하는 사람이 남의 복수 정도는 금방 까먹을 수 있었다.
일의 원흉이었던 이는 셋이 노예로 들어온 날 형우가 죽였다.
그 때문에 잊기도 쉬웠다.
그러나 형우는 그걸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 감동은 도영뿐만 아니라 민희와 성민도 느꼈다.
그래서 그 이후 더 진심으로 형우를 대하고 있었다.
봄이도 마찬가지였다.
A급이라고 하나 비전투계열.
B급에게도 밀릴 수 있는 게 비전투계열의 현실이었다.
만약 밖이었다면 힐러라고 S급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을 터였으나 여긴 달랐다.
A급이라고 하나 B급한테도 지는 A급.
거기다 여자였기에 범죄자들은 가만두지 않았다.
‘봄이 씨도 그동안 겪은 수모가 많았겠지.’
그러나 형우의 길드에 들어온 순간 싹 사라졌다.
정말 사람답게 대우를 받았다.
S구역에서부터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그걸 느끼기엔 충분했다.
그래서 그런지 봄도 조금은 그들에게 마음을 연 상태였다.
‘누구에겐 너무 열어서 문제지만.’
도영은 피식 웃으며 다시 성민에게 시선이 향한 봄을 바라봤다.
“성민 씨, 혹시 피곤하지 않으세요? 힐이라도 써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요즘 푹 자서 그런지 컨디션도 좋습니다.”
“엇? 봄이 씨, 저 좀 피곤한데…….”
그사이를 눈치 없게 지호가 끼어들었다.
방금까지 성민을 눈치 없다고 생각해놓고 정작 본인도 정말 눈치 없는 짓을 했다.
“뭐라고? 잘 안 들려.”
“저도 피곤…….”
“안 들린다고.”
봄은 눈에서 빔이라도 뿜어져 나올 것처럼 지호를 바라봤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지호는 뒤로 물러섰다.
“네…….”
“하하!”
“풋!”
모습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한가로운 시간이 지나는 사이 숲의 먼 곳에서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음? 저긴 뭐야? 이봐, 내비. 저긴 뭐야?”
“전에 말한 그 드래곤 밸리 검문소이자 요새입니다. 드래곤 밸리로 들어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곳이기도 합죠.”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바룬은 굽실거리며 말했다.
형우는 그 모습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더 물어봤다.
“병력은?”
“S급 한 명이 배치되어 있을 겁니다. 저곳이 드래곤 밸리로 들어가는 관문이기도 하지만 요즘 아르카 애들이…….”
“S급?”
바룬이 뭐라고 더 말하긴 했으나 형우는 관심이 없었다.
이미 S급이라는 말에 꽂힌 상태였다.
“길드장님, 이제 어떡합니까?”
도영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뭘 어떡해. 깽판을 쳐야지”
“네?”
도영은 말을 이해 못 하고 반문했다.
“차도 뽑고 내비도 달았으니… 이제 늦게라도 라이센스를 따야겠지? 기름도 좀 넣고.”
형우는 그 말을 하며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