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20
“꺄아악!”
“아, 안 돼! 내 딸!”
“반항하면 죽인다!”
“여자는 다 중앙으로 데려와! 대장이 고르기 전에 따로 꼬불치는 새끼들은 다 아랫도리 토막 나는 줄 알아라! 킥킥!”
“저기 도망간다! 잡아 와!”
새벽부터 갑자기 나타난 약탈자들은 평화롭던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놨다.
그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을 사람들 모두를 잡았다.
다만, 특이한 게 있었다.
본보기로 몇몇을 죽인 거 외엔 아무도 안 죽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살육보단 생포에 목적을 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게 마을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 수 없었다.
“바룬 대장, 대충 끝난 거 같습니다.”
“상태 괜찮은 년들로 따로 모아놨습니다, 대장.”
어느새 마을 사람들 모두 잡혀 왔고 부하들은 자신들의 대장인 바룬에게 보고했다.
“어어, 그래. 수고했다.”
바룬은 부하의 보고에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마을 중앙에 잡혀 온 마을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 시선을 느낀 사람들은 흠칫 놀라며 벌벌 떨었다.
“쯧, 이번엔 할당량을 못 채우겠는데.”
바룬은 바소르에 소속된 사냥꾼이었다.
이름 그대로 주로 하는 일은 사냥.
사냥의 대상은 인간, 이종족, 몬스터들이었다.
그러나 몬스터는 잘 안 건드렸다.
인간이나 이종족은 좀만 겁주면 알아서 항복하는데 몬스터들은 죽을 때까지 덤비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생포해야 하는데 끝까지 덤비면 정말 골치 아팠다.
바룬이 이끄는 사냥 부대의 등급은 C급.
바룬은 A급이고 B급도 있었으나 나머지 평균이 상당히 낮았다.
결국, 전체적으로 실력이 부족했기에 더 선택지가 없었다.
그 때문에 매번 상부에서 내려주는 할당량을 겨우겨우 채워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 겨우겨우 채우던 할당량도 못 채울 판이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이거라도 가져가야죠.”
“얼마 전에 빡세게 모아서 한 번 보냈더니 정말 씨가 마른 거 같습니다. 이러다간 드레이크 숲이라도 들어가야 할 판인데요?”
“미친놈! 할당량 채우려다가 뒤지려고?”
부하의 말에 바룬은 바로 욕했다.
드레이크 숲은 이곳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였다.
떼로 나오는 드레이크들은 S급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런 숲에 A급 한 명과 오합지졸들이 가봤자 칼질 한 번 못하고 죽을 게 뻔했다.
“하하… 농담입니다, 대장.”
“쯧, 얼른 넣기나 해.”
어색하게 웃는 부하를 향해 바룬은 대충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부하들은 수레에 달린 철창에 사로잡은 이들을 넣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무언가 지나갔다.
스악! 스악!
“어?”
부하 몇몇이 이상함을 느끼고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아무 일이 없자 다시 태평하게 몸을 움직이려고 할 때 세상이 뒤집혔다.
“억…!”
“…….”
툭. 툭.
단말마 비명을 토해낸 부하들은 토막 나 바닥에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이들이 기겁했다.
“히, 히익!”
“무, 무슨 일이야?!”
갑자기 사람이 토막이나 쓰러지자 다들 혼비백산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었다.
휘익! 휙! 푹!
“크아악!”
“커억…!”
무언가 휙 소리를 내며 지나갈 때마다 한 명씩 무언가에 당해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바룬의 동공이 확대됐다.
‘S급! 어디서 갑자기 S급이…!’
바룬 말고도 사냥 부대로 활동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 중엔 S급만 전문적으로 잡으러 다니는 이들도 있었고.
그러나 지금 그들은 그 이하 등급만 잡고 다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S급의 씨가 말랐으니까.
안 그래도 초장부터 다른 곳으로 추방된 S급이 많았다.
마지막 전투에서 대다수 죽은 것도 있고 그나마 전력을 보존했던 엘프들이 튄 것도 영향이 컸다.
그 때문에 바소르 소속이 아니라면 S급 보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물론 그렇게 보고 싶다면 바소르 말고 다른 곳에서 보는 방법도 있었다.
S급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죽음의 땅이 존재했으니까.
그러나 그곳 말고는 S급을 보기 힘들었다.
여하튼… 그만큼 보기 힘든 S급이 나타나 바룬의 부대를 학살했다.
심지어 S급 능력이 하나가 아니었다.
슈우욱!
“커억!”
“으아악!”
황금빛 오러가 빔처럼 뿜어질 때마다 대여섯이 나자빠졌다.
몇몇 B급이 저항하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바, 바로 도망을…….’
바룬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S급이 나타난 이상 부하들이 전부 덤벼도 이길 수 없다.
심지어 A급의 눈으로도 쫓아가기 힘든 상대는 더더욱.
바룬은 바로 몸을 돌려 도망가려 했다.
“카가각!”
“드레이크다!”
“아아악!”
갑자기 드레이크 하나가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드레이크는 난동을 부리며 부하들을 죽였다.
그 모습을 보며 바룬의 얼굴이 굳었다.
‘S급이 이어서 드레이크까지? 미치겠네.’
이 마을에서 나가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뒤는 절벽으로 막혀 있었기에 나갈 수 있는 길이 하나였다.
게다가 드레이크 뒤에 인간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A급과 B급 능력을 사용해 부하들을 학살했다.
‘하필…! 이제 방법이 없다. 인질을 잡아서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야 해!’
바룬은 몸을 틀어 마을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형우가 부하들을 죽이면서 놀란 마을 사람들은 사방으로 퍼졌다.
형우가 최대한 보호를 하긴 했으나 그 때문에 모두를 커버 못 했다.
바룬은 근처에 있던 수인족 소년을 하나 잡아 왔다.
“아악! 엄마!”
“쿰!”
“안 돼!”
“조용히 해!”
인질로 잡힌 건 쿰이었다.
쿰은 눈물을 흘리면서 부모와 멀어졌다.
바룬은 쿰을 데리고 마을 입구로 달려갔다.
“쿰?”
“쿰아!”
입구를 지키고 있던 형우 일행은 쿰이 잡혀 있자 깜짝 놀라 외쳤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바룬은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 검을 휘둘렀다.
“비켜! 안 비키면 얠 죽인다!”
휙! 휙!
그 모습을 보고 형우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물러섰다.
잘 못 했다간 쿰이 다칠 게 뻔했다.
그러나 형우 일행을 통과하려는 순간 몸이 굳었다.
“속박. 뀨우야, 처리해.”
“…!”
속박이란 말이 들려오자마자 바룬의 몸이 굳었다. 그리고 형우의 말에 소정의 품에 있던 뀨우가 달려왔다.
파닥파닥.
“뀨우!”
“…?”
바룬은 뀨우를 의문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저 작은 생명체가 뭘 한단 말인가.
그러나 바룬은 곧 그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뀨우우!”
“끄아악!”
타닥타닥.
마을 중앙, 큰 모닥불 하나가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닥불 중심으로 수인족이 의식을 행했다.
이건 수인족 고유의 의식이었는데 죽은 이들을 보내는 진혼(鎭魂)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수인족 말고 다른 종족인 마을 사람들도 그 의식에 동참했다.
“신기하네.”
형우는 수인족의 의식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일행은 그 의식보다 더 신기한 형우를 주제로 떠들었다.
“길드장님은 어떻게 맨날 볼 때마다 능력이 늘어나는 겁니까?”
“제가 처음 봤을 때보다 등급도 오르고 능력도 엄청 많아지셨어요!”
다들 그걸 제일 신기해했다.
제일 처음 인연이 있었던 용준이도 그렇고 박 사장과 김 사장도 제일 놀란 부분이었다.
처음엔 그저 F급이었는데 갑자기 E급이 되고 D급이 됐다.
그러다 눈 좀 깜빡하는 순간 A급이 되고 어느새 S급이 헌터로 변해버렸다.
그 변화를 계속 봐 온 이들로선 정말 경악할만한 일이었다.
“능력 흡수라…….”
“정말 부러운 능력이네요.”
“나름은 제한이 있다던데… 보기엔 전혀 제한이 없어 보이는데…….”
형우가 최대한 낼 수 있는 변명은 능력 흡수였다.
인사니오에 대해서 밝힐 수도 없었고 의뢰에 대해서도 밝히기 좀 힘들었다.
결국, 변명으로 만들어낸 능력이 능력 흡수.
물론 그거로 의문이 풀리긴 어려우나 그나마 조금은 변명이 되긴 했다.
“은인.”
“아, 촌장님.”
어느새 의식이 끝나자 형우에게 촌장이 다가왔다.
드워프인 촌장은 형우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남에게 잘 고개 안 숙이기로 유명한 드워프가 말이다.
그만큼 형우에게 고마움이 컸다.
“목숨을 구해준 것도 고마운데 정리까지 도와줘서 고맙소.”
“아닙니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요. 다친 사람들은 괜찮습니까?”
“은인의 동료 덕분에 다들 멀쩡하게 일어났소.”
촌장은 봄이를 바라봤다.
치명상을 입은 이들도 있었으나 그레이트 힐 덕분에 다들 말끔히 치료됐다.
“그런데 저들은 왜 이렇게 사람을 잡아들이는 겁니까?”
“다른 세계로 보낸다고는 들었소.”
“아…….”
형우는 단박에 이해했다.
이렇게 잡아들이는 이들이 모두 지구로 전송되는 모양이었다.
넘어오는 와중에 이성을 잃고 몬스터로 변하는 건 덤이고.
악랄한 약탈자들 때문에 오티움의 주민들은 죽을 때까지 고통받았다.
게다가 죽음도 고향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맞이했다.
관리자들은 차원의 모든 것을 정말 철저하게 파괴하고 있었다.
‘이렇게 끌어모아서 보내고 있었구나. 음… 아!’
혼자 생각을 하던 중 형우는 촌장의 안색이 굳어진 걸 봤다.
형우는 바로 말을 돌렸다.
“아, 혹시 드래곤 밸리로 가는 길을 알고 계십니까? 제가 지도가 있긴 한데 이게 맞는지 장담을 못 해서…….”
“떠난 지 너무 오래돼서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오. 다만… 이대로 가면 그래도 대충은 드래곤 밸리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네. 드래곤 밸리는 정말 넓은 곳이니…….”
“으흠… 그렇군요. 그럼 혹시 드래고니안의 신물에 대해서는 아십니까?”
“그것도 모르겠소. 음… 도움만 받아놓고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하오.”
촌장을 그 말을 하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닙니다. 그래도 길잡이가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죠.”
형우는 그 말을 하며 뒤를 힐끗 바라봤다.
“뀨우! 뀨우!”
퍽! 퍽!
“아, 아악! 그만! 제발, 그만!”
사지를 결박당한 바룬은 뀨우에게 제대로 교육을 받고 있었다.
뀨우는 그래도 그사이 친해졌다고 쿰을 인질로 잡은 바룬을 막 때렸다.
덕분에 바룬의 입에선 게거품이 흘러나왔다.
“뀨우, 잘한다! 더 세게!”
어느새 구경꾼이 된 쿰은 소정이에게 안겨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 광경에 형우는 실소를 머금었다.
사실 쿰을 인질로 잡은 게 괘씸해서 좀 고통받게 하다가 죽이려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굳이 죽일 필요가 없었다.
안 그래도 안내와 오티움의 세세한 상황을 알려줄 이가 필요했다.
그래도 한 부대의 대장쯤 되면 아는 게 많을 터였다.
그 때문에 형우는 바룬만 살려놨다.
“음…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촌장님?”
“마을의 위치가 발각된 이상 바소르 놈들이 계속 찾아올 게 뻔하니, 내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우린 떠나려고 하오. 어차피 마을도 이 꼴이 됐고.”
촌장은 반 이상 타버려 형체조차 흉물스럽게 변한 마을을 바라봤다.
하필 불을 지르는 바람에 마을이 반 이상 탔다.
덕분에 하루도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해버렸다.
그 때문에 촌장은 곧장 떠나려 했다.
그러나 촌장에겐 더 큰 걱정이 있었다.
“하아, 하필 식량도 같이 타버려서…….”
떠나는 건 좋은데 마을과 함께 식량도 같이 타버렸다.
그 때문에 촌장의 시름이 깊었다.
형우는 그 표정을 보며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으흠… 식량을 좀 드려야겠네.’
아공간 주머니에는 많은 양의 식량이 들어가 있었다.
어차피 아공간에 들어가면 음식의 상태가 그대로 보존된다.
그렇기에 아무리 많은 양을 넣어도 상관없었다.
비상을 대비해서 항상 필요 이상의 식량을 넣어놨다.
그 덕분에 마을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을 듯했다
형우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식량을 일부 꺼내줬다.
마을 사람들 전부가 먹기엔 많은 양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될 터.
“정말 고맙소.”
그러자 촌장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형우는 촌장을 진정시키고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일행이 설치해 놓은 막사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마을 사람들은 바로 마을을 떠났다.
“누나, 안녕! 뀨우도 안녕!”
쿰이 멀어지며 손을 흔들었다.
“뀨우우!”
“잘 가!”
그 모습을 보며 뀨우와 소정이 손을 흔들어줬다. 그리고 형우 일행도 여정을 떠나기 위해 드레이크에 탑승했다. “갈게요.”
모두 탑승하자 소정은 드레이크를 움직였다. 그리고 형우가 내비게이션을 켰다.
“바룬, 안내.”
“예, 예!”
군기가 바싹 든 바룬은 형우의 말에 바로 대답했다.
그 모습에 형우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엉뚱한 생각을 했다.
‘자가용이랑 내비게이션이 생겼으니 다음엔 뭘 얻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