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12
1,255명.
이 숫자가 뭘 의미하는 거냐고?
1,255명은 이번 연합의 사망자 수였다.
오직 S구역 문 앞에서 죽은 숫자만 계산했을 때 숫자.
여기에 몬스터와 싸우다 죽은 420명을 포함하면 무려 1,675명이 이번 공략에서 사망했다.
중상자로 이미 돌아간 240명과 도망친 SH 길드원 400명 빼면 이제 남은 연합의 인원은 겨우 칠백밖에 안 남았다.
3,000명이라는 대인원으로 시작한 원정의 끝이 초라하게 변했다.
그러나 형우에겐 초라하지 않았다.
같이 간 C급 중 5명과 자이언트 트롤, 듀라한 2기가 희생됐지만 도영과 성민, 소정은 멀쩡했다.
주요 전력을 모두 챙긴 셈.
게다가 형우는 S급으로 올랐다.
유현서의 영혼석을 흡수하며 스피드 마스터라는 S급 능력을 얻었고 유혁기마저 죽이면서 S급 능력을 하나 더 얻을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중소연합의 잔재 세력이 모두 형우의 길드로 투신했다.
그 중엔 A급도 있었고 B급도 있었다.
덕분에 순식간에 형우의 길드는 감옥에서 최상위 길드가 됐다.
SH 길드만 없다면 1위가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SH 길드에 복수하기 위해 명진이 열을 내고 있었다.
이번 공략에서 명진의 길드는 정말 몰락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쇠락했다.
S급 헌터가 사망했고 A급 헌터들 대부분을 잃었다.
그 때문에 산하 길드를 하나로 합치는 대대적인 작업을 펼쳤다.
그러나 S급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게 타격이 컸다.
이탈자가 나왔고 그 이탈자들은 독립하거나 형우의 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되니 명진 길드는 겨우 전(前) 중소연합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다만, 세력이 줄었음에도 명진은 수혁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2차전을 준비했다.
“자존심이 제대로 상했으니까.”
비록 S급 헌터는 아니었지만 명진의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다.
한국 최대의 기업 은성 그룹에 후원을 받아 만든 길드였다.
그런데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인 길드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었다.
만약 형우가 없었더라면 명진 길드는 그날부로 해체될 뻔했다.
그게 명진의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렸다.
“뭐, 여하튼 알아서 하겠지.”
형우는 남의 일이라며 신경을 껐다.
수혁을 처리하긴 해야 했지만, 지금은 처리할 다른 일이 많았다.
순식간에 길드 규모가 배로 늘어났고 아직 E구역과 연락도 못 했다.
그래서 형우 혼자 일 처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S구역에서 얻을 이익을 먼저 선점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개척자라고 모든 이익을 선점하는 게 아니었다.
그 때문에 형우는 아주 바빠졌는데…….
“좀 놓으면 안 됩니까?”
“…….”
꽈악.
형우는 자신의 소매를 꽉 쥐고 있는 시오를 황당하다는 듯 바라봤다.
새로 합류한 인원만 350명이었다.
그들을 확인하고 분류하는 데만 하룻밤을 셀 정도로 많았다.
이중 혹시 첩자가 없을지, 아니면 하자가 있는 인원이 있는지 꼼꼼히 확인해야 했기에 시간이 더 걸렸다.
물론 그것에 관한 건 명진 길드의 도움을 받았다.
명진 길드는 형우와 친분을 쌓기 위해서 여러 방면에서 물심양면 도움을 주고 있었다.
‘당연하지. 이제 우리가 더 강하니까.’
각설하고… 그래서 형우는 많이, 아주 많이 바빴다.
그런데 자꾸 시오가 걸리적거렸다.
처음엔 뭐 필요한 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형우를 끌어당기고 있는 거였다.
아무리 놓으라고 말해도 안 놨다.
이제 겨우 인원 분류 작업을 끝내고 물자 분류를 하는 와중에도 말이다.
형우가 잘 때도 붙어 있으려고 해서 떼어놓느라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미치겠네.’
형우는 결국 항복했다.
“하아…모르겠다. 시오 씨 맘대로 가봐요.”
형우는 한숨을 쉬며 시오에게 몸을 맡겼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시오는 형우를 이끌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S구역 안? 여기 길도 모르면서 어떻게 가겠다는 거야?’
시오가 가는 곳은 S구역 안이었다.
S구역 안은 미개척지였다.
아니, 그걸 떠나서 개척할 엄두가 안 났다.
감옥보다 더한 미로였으니까.
잠깐 들어갔다가 나온다던 정찰조가 길을 잃고 한참 후에야 돌아올 정도로 복잡했다.
본격적으로 조사하려면 길을 제대로 표시해놓으면서 많은 인원이 투입돼야 할 듯싶었다.
‘지금 알고 가는 건가? 도대체 뭐야?’
그런데 시오는 막힘없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길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게 더 불안했다.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길을 어떻게 시오가 알고 있으며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말이다.
“시오 씨, 우리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가보면 알아요.”
“네? 그럼 왜 가는 건지만 좀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다 왔어요.”
웬일로 많이 말한 시오는 형우에게 어딘가를 가리켰다.
“응?”
시오가 가리킨 곳은 특이하게 밝은 빛이 비쳤다.
감옥에선 볼 수 없는 새하얀 빛이 말이다.
형우는 그 빛이 비치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곧 눈 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넋을 놔버렸다.
“빨리 챙겨! 시간 없어!”
“필요한 것만 챙기고 나머진 다 없애버려!”
A구역 근처 숨겨진 쉘터.
수십의 인원이 다급히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 난잡 그 자체였다.
다만, 그래도 빠르게 일이 진행됐다.
빠르게 ‘무언가’를 큰 자루에 담아 옮겼고 잔해물로 보이는 것들은 모두 불태워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수혁이 지켜보고 있었다.
“공든 탑 무너지는 거 한순간이라더만…….”
수혁은 착잡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다.
S구역 입구에서 패배한 이후 수혁은 A구역이 아닌 이곳 쉘터로 왔다.
모든 기반을 다 포기하고 이곳에 먼저 온 이유는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이 모두 여깄기 때문이었다.
“후우…….”
한숨을 길게 내쉰 수혁은 손에 든 무언가를 바라봤다.
우웅. 우웅.
수혁의 손에선 불길한 검은빛을 내는 영혼석이 들려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수혁에겐 불길하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희망의 빛이었다.
다시 수혁을 화려하게 재기시켜줄 희망의 빛.
“희생이 좀 많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 새끼를 죽일 수만 있다면…….‘
수혁은 혁기를 죽인 형우를 떠올렸다.
다 된 밥에 제대로 재를 뿌린 새로운 S급 헌터.
원래라면 어떻게든 설득해서 영입하는 쪽으로 갔겠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명진이 수혁에게 자존심이 상한 것처럼 수혁도 형우에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 자존심은 겉으로 보면 유치할 수 있었다.
다만, 이건 그저 유치한 자존심 따위가 아니라 권위에 대한 흠집과 같았다.
그 권위에 제대로 새겨진 흠집을 메우려면 형우를 꼭 죽여야 했다.
“길드장님, 정리 끝났습니다.”
수혁이 복수를 다짐하는 사이 부하가 다가와 정리가 끝났음을 보고 했다.
“그래? 빠트린 건 없겠지?”
“급하게 처리하긴 했지만 확인은 확실히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종 확인을 끝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좋아. 그럼 페쿠스 안으로 들어가자.”
“예, 길드장님.”
페쿠스라는 생소한 지명이 들려왔다.
그런데 부하들은 이미 알고 있는 곳인지 반문 없이 바로 움직였다.
“수인족 새끼들한테 스트레스 좀 풀어야지. 이러다간 화병으로 먼저 뒤지겠네.”
수혁은 그 말을 하며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
페쿠스는 사실 수인족들의 마을이었다.
엘프들이 사는 에피리아 마을처럼 수인족들의 마을이 따로 존재했다.
그러나 그 마을은 하필 수혁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 뒤 벌어진 일은 뻔했다.
수인족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팔려나갔다.
그걸 맡은 게 바로 방수혁의 동생 방인혁이었다.
무려 A급 실력자이자 최상위 길드 길드장의 동생이 겨우 노예장사나 하고 있었던 이유였다. 그리고 수인족은 다른 종족에 비해 성인이 빨린 된다는 점을 노려서 일부를 가축처럼 사육했다.
수혁은 정말 쓰레기라는 말조차 부족한 만행을 벌였다.
그러나 수혁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밑에 있는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여하튼 그렇게 수인족들을 팔면서 남는 공간을 활용해 비밀 장소로 썼다.
지금까지 누구한테도 들키지 않고 말이다.
지금까지만 말이다.
저벅저벅.
막 페쿠스로 진입하려 할 때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조용히 걷고 있었으나 뭔가 발소리가 크게 들렸다.
“누구야?!”
“누군지 말해!”
부하들은 다가오는 누군가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상대는 반응이 없었다.
그 때문에 다들 그의 정체에 대해서 몰랐다.
그러나 수혁 혼자만 상대를 알아보고 안색을 굳혔다.
“차민…….”
수혁의 앞에 나타난 이는 감옥의 문지기라 불리는 차민이었다.
“와…….”
형우는 넋을 놓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만큼 형우가 보고 있는 곳이 대단했다.
장관도 이런 장관이 없었다.
일전에 봤던 프로즌 케이브는 애들 장난 수준일 정도였다.
“여긴 감옥이 아니잖아…!”
드넓게 펼치진 초원과 숲.
그걸 본 순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여긴 감옥이 아니란 걸 말이다. 그리고 인사니오가 형우에게 해줬던 말이 기억났다.
[S구역이란 곳은 없다. 다른 국가의 죄수들과 만나는 곳이 있을 뿐.]
‘아니, 이건 그저 만나는 곳 정도가 아니잖아…!’
이건 그냥 하나의 세계였다.
지구와 같은 세계.
정말 끝이 보이지 않게 넓게 펼쳐져 있었고 결정적으로 그걸 증명하는 게 하늘 위에 떠 있었다.
“태양!”
하늘 위에는 밝고 따스한 빛을 내뿜는 태양이 있었다.
그 태양은 감옥에서 절대 볼 수 없었던 거였다.
“저걸 다시 볼 줄이야…….”
몇 달간 전혀 보지 못했던 태양의 밝은 빛을 보자 눈이 찌푸려졌으나 입은 웃고 있었다.
“어서 가요.”
꽈악.
다만, 시오는 감동 느낄 시간을 안 줬다.
빨리 따라오라며 소매를 잡아당겼다.
“거참. 지금 제대로 감동하고 있는데…….”
형우는 시오를 노려봤다.
감동은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그러나 따져봤자 형우만 손해인 싸움이었다.
어차피 시오는 답을 안 할 테니까.
“에휴… 말해봤자 나만 손해지. 갑니다, 가요.”
형우는 한숨 쉬며 다시 시오를 따라갔다.
다만, 그래도 감동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푸른 숲과 하늘을 보며 형우는 감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형우가 힐링을 하는 사이 목적지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신전?”
오래된 신전 하나가 보였다.
관리가 하나도 안 된 듯 넝쿨이 이곳저곳 자라 있었다.
건물 자체도 균열이 많았다.
“여기에요.”
시오는 그 말을 하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자, 잠깐! 뭐라도 나오면 어쩌려고! 아, 진짜!”
형우는 당황하며 소리쳤다.
그런데 그 순간 형우는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익숙한 기운을.
‘인사니오?’
놀랍게도 신전의 안에선 인사니오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 미약하긴 했으나 분명 인사니오의 기운이 맞았다.
“설마?”
형우는 바로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자 의외로 깨끗한 내부가 보였다.
밖과 다르게 안은 깔끔했다.
다만, 거기엔 비밀이 있었다.
신전 안으로 들어올 때 무언가를 통과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엔 그게 뭔지 몰랐는데 안으로 들어오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실드? 이게 안으로 들어오는 걸 차단하는 건가? 신기하네.’
실드와 비슷한 종류의 능력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게 신전 내부로 먼지 하나 못 들어오게 막고 있었다.
게다가 인사니오의 기운마저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 때문에 안으로 들어오자 기운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기운이 진하게 느껴지는 곳엔 수십 구의 해골이 있었다.
“이게 뭐야?”
절을 한 상태로 죽은 듯한 해골들은 한 구의 해골을 중심으로 둥글게 배치되어 있었다.
무슨 의식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중앙에 있는 해골엔 왕관 하나가 씌워져 있었는데 거기서 인사니오의 기운이 느껴졌다.
형우는 바로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해골 위에 씌워진 왕관에 손을 올리는 순간 형우는 그것에 대해 바로 알 수 있었다.
‘인사니오의 존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