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11
위기는 기회라는 말은 일상에서 흔하게 듣는 말이었다.
다만,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이는 몇 안 됐다.
아니, 기회조차 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기회가 왔음에도 모르고 지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었다.
위기에서 처음부터 기회를 찾고자 노력한다면 분명 기회를 잡을 수 있으리란 걸.
그리고 형우는 노력했고 그 기회마저 잡았다.
처음부터 S급 헌터들의 싸움을 보며 기회를 노렸다.
사실 막판에 막타를 노려서 직접 죽이고 싶었으나 그건 힘들었다.
S급 헌터 셋이 싸우는 곳에 괜히 끼어들었다가 등 터진 새우가 될 게 뻔했다.
그래서 차분히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누구든 한 명이 죽기를.
곧 유현서가 죽었다.
2대1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드디어 형우가 바라고 바라던 S급 영혼석을 얻었다는 게 중요했다.
게다가 형우는 S급 영혼석을 한 번 흡수할 수는 상태였다.
『의뢰서(반복형) S-1#
내용: S급 1명 제거.
보상: S급 영혼석 흡수.』
S급 몬스터 본 드래곤을 죽이면서 의뢰 조건은 채웠다.
그 덕분에 형우가 현서의 영혼석을 만진 순간 그대로 흡수됐다.
스르륵.
영혼석이 흡수된 순간 형우의 몸에선 큰 변화가 일어났다.
A급의 몸에서 S급의 몸으로 바뀌는 순간, 엄청난 쾌락에 몸을 떨었다.
이전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쾌감.
형우는 그 느낌에 중독될 것 같았다.
다만, 아쉽게도 그 쾌락은 짧게 끝나버렸다.
대신 이제 다른 게 남아있었다.
“후우…….”
형우는 길게 숨을 내쉬며 헌터들을 학살하고 있는 수혁과 혁기를 바라봤다.
“윈드 웨이브!”
휘이잉! 화르륵!
“아아아악!”
“타, 탄다! 물!”
윈드 웨이브는 철저히 화염과 같이 사용됐다.
바람에 달라붙은 불은 순식간에 퍼졌고 거기에 닿은 모든 것들을 없애버린 뒤에야 꺼졌다.
다만, 그래도 불은 좀 나은 편이었다.
애시드에 닿으면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녹았다.
물론… 둘 다 죽는 건 매한가지였기에 뭐가 낫다고 할 수 없었다.
‘대장은 나중에.’
형우는 첫 목표를 혁기로 잡았다.
멀티 소켓인 수혁은 상대하기 꽤 까다로웠다.
이미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봤기에 그걸 확실히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혁기가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낫다는 거였다. 그리고 기습을 하기에도 좋았다.
‘스피드 마스터라… 정말 궁금한데.’
현서가 사용할 땐 정말 눈이 쫓아가기 힘들었다.
나름 바로 아래 등급이라는 A급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제 그걸 직접 시현 할 때가 왔다.
“흡!”
탓!
형우는 짧게 숨을 마신 뒤 입을 막고 뛰었다. 그리고 신세계를 맛보게 됐다.
휘이익! 휘익!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마치 풀악셀을 밟은 스포츠카 같았다.
게다가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니 상대적으로 다른 이들이 느리게 보였다.
‘이거 진짜 장난 아니네.’
형우의 얼굴에 미소가 띄워졌다.
새로운 장난감은 아이에게 제대로 재미를 줬다.
덕분에 형우는 잔뜩 상기된 상태로 속도를 즐겼다.
그러나 그걸 즐기고만 있을 순 없었다.
이제 목표를 처리해야 했다.
휘익!
혁기의 뒤로 빠르게 접근한 형우는 심장이 있는 위치에 검을 찔러넣었다.
“어?!”
그 순간 이상함을 느낀 혁기가 다급히 몸을 틀었다.
그러나 피한다고 피했지만 전부 피하지 못했다.
덕분에 옆구리를 내어줬다.
스악!
“끄아악!”
옆구리를 베인 혁기는 피를 흘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꽤 깊게 베였는지 허리에선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고 있었다.
콸콸!
혁기는 바로 포션 하나를 꺼내 상처에 부었다.
포션이 닿자마자 상처가 눈에 띄게 회복됐다.
하지만 그동안 형우도 놀고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염력!”
염력이란 말에 혁기가 움찔했다.
이미 잘 알려진 능력이었기에 주변을 경계하며 형우를 바라봤다.
그러나 염력은 공격을 위해서 쓰인 게 아니었다.
상처에 부어진 포션에게 사용됐다.
“미친!”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혁기가 가진 소지품 모두를 뺏어왔다.
소지품 중엔 검은빛을 내는 영혼석도 있었다.
“넌 상도덕도 없냐? 게임에서도 포션은 쓰게 해주는데…!”
“이건 게임이 아니잖아.”
형우는 차갑게 답하며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휘익! 까앙! 깡!
“큭!”
빠른 속도로 공격이 몰아치자 혁기는 막기 급급했다.
안 그래도 현서와의 전투로 누적된 피해가 컸는데 허리에 중상을 입고 싸우려니 죽을 맛이었다.
“길드장님!”
결국, 못 버티겠는지 수혁을 불렀다.
혁기의 목소리에 수혁이 고개를 돌렸다.
“스피드 마스터?”
수혁은 놀랍게도 죽은 현서와 똑같은 능력을 쓰는 형우를 볼 수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수혁은 망설임 없이 달려갔다.
그러나 기다리는 건 기습이었다.
“염력!”
염력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수십 개의 검을 수혁에게 날렸다.
“윈드 웨이브!”
휘이잉!
수혁은 바로 윈드 웨이브로 검을 밀어냈다.
“속박! 윈드!”
거기에 형우는 속박과 윈드로 대응했다.
수혁이 속박에 걸린 순간 윈드 웨이브가 통제를 잃었고 그 통제를 겨우 C급 윈드가 가져왔다.
바람은 이제 검을 밀어내지 않고 검을 도와 속도를 더 높여줬다.
“썩을!”
수혁은 어쩔 수 없이 몸을 뒤로 뺐다.
화르륵!
그리고 이어서 고농축 된 화염을 내뿜었다.
평소 확산시키는 화염과 다른 이 화염은 엄청난 온도를 자랑했다.
치이익! 치익!
화염에 닿은 검은 그대로 녹아내렸다.
검이 모두 녹자 윈드 웨이브로 형우에게 날려 보내려 했다.
“윈드 웨이…….”
“블링크!”
팟!
그 순간 뒤로 블링크를 한 형우가 수혁의 등을 찌르려 했다.
“…!”
수혁은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형우를 보고 당황했다.
그러나 침착하게 원래 쓰려고 했던 윈드 웨이브를 그대로 형우에게 썼다.
“…브!”
휘이잉!
“블링크!”
팟!
능력이 사용되자마자 형우는 미련 없이 블링크로 도망쳤다. 그리고 이번 목적지는 혁기의 등이었다.
정말 신출귀몰하며 S급 둘을 확실히 상대했다.
물론 이건 둘이 현서와의 전투로 누적된 데미지가 큰 상태라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수혁과 혁기가 정상이었다면 절대 안 벌어질 상황.
그러나 싸우는 와중에 만약이란 없었다.
그건 죽고 나서 염라대왕에게 하소연할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다만, 염라대왕에게 따질 수 있는 게 하나 있었다.
“도대체 능력이 몇 개인 거야?!”
수혁은 황당하다는 듯 소리쳤다.
지금까지 나온 능력만 해도 5개나 됐다.
정말 끊임없이 새로운 능력이 나왔다.
S급 헌터이자 길드장으로서 활동하며 많은 일을 겪었지만 오늘이 단연코 최고로 당황스러운 날이었다.
덕분에 둘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는 사이 전장엔 변화가 있었다.
꾸준히 저항한 명진 길드와 중소 연합이 차근차근 SH 길드를 밀어냈다.
거기에 주역은 형우의 이스케이프 길드였다.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한 방에 A급 헌터도 보내버리는 성민의 스나이퍼는 적들에게 큰 타격을 줬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타격을 준 건 소정이었다.
정확히는 소정이 테이밍한 몬스터들이 말이다.
B급 몬스터라고 하나 보스급인 자이언트 트롤 1기와 듀라한 2기는 A급을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 형우와 소정을 제외하고 4명의 A급 헌터가 같이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
적절하게 도영과 오크 라이더들이 방어를 했고 쉐도우 에이프들도 큰 활약을 해줬다.
덕분에 단일 세력으로 가장 큰 공을 세우고 있었다.
“좀 더 밀어붙여!”
“블리자드!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이스케이프 길드의 활약으로 수혁과 혁기 때문에 사라졌던 자신감은 다시 살아났다.
그 자신감 하나에 전장의 상황이 변했다.
‘전세가 기울었어…….’
수혁은 전장을 힐끔 바라보며 안색을 굳혔다.
초반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SH 길드가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절대 진다는 생각은 안 했다.
갑자기 등장한 S급 헌터, 형우만 이기면 다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형우를 처리하고 나서는 너무 늦었다.
이대로 가다간 이기더라도 손해였다.
억지로 꾸역꾸역 이겼는데 세력을 모두 다 잃으면 S구역을 공략한 의미도 없었다.
S급이 둘이니 어떻게든 또 끌어모을 순 있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게 뻔했다.
여기 있는 헌터들이 감옥에 있는 대다수의 상위권이었다.
이들이 다 죽으면 감옥엔 대부분이 C급 이하 잔챙이들만 득실댈 터였다.
‘그 방법으로 늘리려면 그래도 아래 등급은 돼야 한다.’
수혁은 무언가를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곧 결심을 내렸다.
“퇴각한다! 모두 튀어!”
탓! 타앗!
“후퇴! 후퇴!”
“다들 후퇴해! B지점에서 모인다!”
수혁의 퇴각 명령이 내려지자 SH 길드원들은 빠르게 전장을 이탈했다.
이미 이것도 염두엔 두었는지 후퇴 후 모일 집결지까지 정해져 있었다.
“이런 썅!”
혁기는 분한지 욕을 하며 뒤로 빠졌다.
그러나 형우는 곱게 보내주지 않았다.
“어딜 가려고! 속박! 염력!”
형우는 속박과 염력을 동시에 사용해 혁기의 몸을 묶었다.
A급과 B급 능력이었기에 오래 잡아둘 순 없었지만 이거면 충분했다.
“하앗!”
휘익!
형우는 빠르게 접근해 검을 휘둘렀다.
“오러 블라스터!”
“오러 블라스터!”
콰아앙! 콰아앙!
그때 방해꾼이 등장했다.
똑같은 능력을 사용하는 A급 헌터들이 길을 막았다.
오러로 이뤄진 빔은 형우의 앞에서 터지며 굉음을 냈다.
“빨리 준비해!”
그러는 사이 도망을 위한 텔레포트의 준비가 끝나가고 있었다.
미리 만약을 대비해 준비해둔 건지 조금만 더 준비하면 바로 활성화가 가능할 듯했다.
“스나이퍼!”
파아앗! 콰아아앙!
그때 오러 탄환이 날아왔다.
그 탄환은 형우의 앞을 막은 죄수들을 제거했다.
“길드장님! 저희가 돕겠습니다!”
“오빠!”
멀리서 도영과 소정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C급 헌터들은 남아서 저격 중인 성민을 호위했다.
“하아압!”
장애물이 치워지자 형우는 곧장 혁기에게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혁기는 당황하며 검을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스악! 툭.
“아아악!”
혁기가 비명을 질렀다.
검을 들던 오른팔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다만, 치료 능력만 있다면 잘린 팔도 다시 붙이는 게 가능했다.
그 때문에 혁기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오른팔을 회수하려고 손을 뻗었다.
파악!
그러나 형우가 먼저 땅에 떨어진 오른팔을 밟아 터트렸다.
“안 돼-!”
혁기가 악을 질렀다.
팔린 팔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됐다.
이건 능력으로 절대 복구할 수 없었다.
“으아아!
혁기는 이성을 잃었다.
마치 버서커가 된 듯이 오직 형우를 죽이기 위해 애시드를 끌어모았다.
그러나 그게 결정적인 실수였다.
푸욱!
“컥!”
혁기 몰래 염력으로 검 하나를 준비해놨다.
필요한 순간 한 방을 먹이기 위해서.
그리고 그 한 방이 제대로 먹혔다.
검은 심장에 있는 부분의 등 뒤를 꿰뚫었다.
혁기가 정상이었다면 안 당했을 터였지만, 형우의 도발에 제대로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결국, 혁기는 죽어서 영혼성을 토해냈다.
“저 멍청한 새끼!”
수혁은 죽은 혁기를 보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나 복수를 해줄 생각 따윈 없었다.
자신의 안위가 먼저였기에 바로 텔레포트가 준비된 곳으로 달려갔다.
“오러 블라스트!”
형우가 뒤쫓아 가려 했으나 마지막까지 똑같은 능력을 쓰는 A급 헌터들이 방해했다.
그사이 수혁은 도망쳤다.
“텔레포트!”
파아앗!
밝은 빛과 함께 수혁이 사라졌고 형우는 인상을 썼다.
“둘 다 죽였어야 했는데…….”
살려두면 분명 다시 올 적이었다.
나중에 어떤 후환이 될지 몰랐다.
그러나 수혁은 이미 도망간 뒤였다.
“뭐 어쩔 수 없지. 음… 이건 흡수하는 걸 좀 고민하기로 하고…….”
형우는 바닥에 떨어진 혁기의 영혼석을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홀로 불길하게 빛나는 검은 영혼석을 주웠다.
우웅.
검은 영혼석 내부에선 빛이 강해졌다, 약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형우는 묘한 표정으로 그걸 바라보다가 아공간 주머니에 수납했다.
“후우… 할 일이 많겠네.”
그 말을 하며 형우는 전장을 바라봤다.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닌 참혹한 지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