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9
“하아압!”
기합과 함께 수혁의 몸에서 불이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퍼졌다.
화르르!
C급 화염 능력과 비교할 수 없는 화염이 숲을 뒤덮었다.
그건 불보다 용암 같았다.
천천히 움직이며 모든 걸 집어삼키는 용암.
그 용암은 나무 위를 뒤덮으며 나아갔다. 그리고 그때 다른 능력이 사용됐다.
수혁은 S급 능력 ‘파이어 마스터’와 A급 ‘윈드 웨이브’를 보유한 멀티 소켓 능력자였다.
“윈드 웨이브!”
화아악!
거대한 파도 같은 바람이 생겨났다.
바람은 화염의 확산을 빠르게 해줬다.
화르륵!
금세 숲 전체가 타올랐다.
그런데 신기한 건 불길은 연합원들을 피해 갔다.
덕분에 피해는 온전히 쉐도우 에이프들에게만 있었다.
“끼, 끼익!”
“끼이이익!”
불에 노출된 쉐도우 에이프들은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갔다.
“전부터 느꼈지만, S급은 정말 장난 아닌 거 같아.”
성민은 감탄하며 주변을 뒤덮은 화염을 바라봤다.
쉐도우 에이프는 B급에 속하는 몬스터였다.
그러나 일반적인 B급과 달랐다.
S급도 먼저 기척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은신술의 대가였다.
그 때문에 A급 몬스터보다 더 까다로웠다.
그런데 그 까다로운 상대를 하나도 아니고 수십, 수백을 단번에 처리했다.
정말 경이로운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장난 아닌 건 장난 아닌 거고. 다 죽기 전에 우리도 작업을 좀 하자.”
“작업? 무슨 작업?”
형우의 말에 성민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상황에서 몬스터들을 죽이는 거 외에 따로 무슨 할 일이 있나.
“아…!”
그러나 성민은 이해했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소정아, 테이밍 준비.”
“네, 오빠!”
“속박! 염력!”
소정이 대답을 하자마자 형우는 능력을 연달아 사용했다.
속박으로 쉐도우 에이프 하나를 묶어버렸다.
등급이 B였기에 A급 속박에 저항하긴 힘들었다.
덕분에 무방비 상태가 된 쉐도우 에이프를 염력으로 데려왔다.
“끼익? 끼, 끼익?!”
저항 한 번 못하고 끌려온 쉐도우 에이프는 그대로 소정의 앞에 놓였다.
소정은 바로 테이밍을 시도했다.
“테이밍!”
스으으.
테이밍을 사용하자 소정의 손에서 흰빛이 나와 쉐도우 에이프의 몸으로 흘러들어 갔다.
“끼익! 끼기긱!”
쉐도우 에이프는 테이밍에 격렬히 저항했다.
상처 하나 없는 팔팔한 놈을 잡아와서 그런지 저항이 꽤 거셌다.
그때 뀨우가 쉐도우 에이프에게 다가왔다.
“뀨! 뀨우!”
날개를 세우고 위풍당당하게 걸어온 뀨우는 에이프를 무섭게 노려봤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끼익?”
쉐도우 에이프는 뀨우의 이상한 행동을 보곤 이해를 못 했다.
그러나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곧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퍽!
“끽!”
퍼억! 퍽! 퍽!
“뀨우우우!”
뀨우는 앙증맞은 주먹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주먹이 워낙 작아 저게 과연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문제는 때리는 부위였다.
스치기만 해도 아플 것 같은 아랫도리에 크리티컬 히트가 연달아 터지고 있었다.
“끼, 끼익?!”
그러는 사이 새로 잡아온 2번 타자가 그 모습을 지켜보곤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리고 잠시 후 테이밍이 끝났다.
2번 타자가 빠르게 굴복한 덕분에 시간이 오래 안 걸렸다.
사실 굉장히 콩트 같았으나 이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었다.
이전에 지구에서 오우거를 테이밍했던 헌터도 사실 막판에 이 방법으로 테이밍에 성공했다.
그러는 사이 쉐도우 에이프들 태반이 죽었고 거의 전투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쿵…! 쿵…!
그때 어디선가 묵직한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왔다.
“뭐, 뭐야?”
“지진은 아닌데…….”
연합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나 소리의 근원을 파악하는 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근원이 워낙 컸으니까.
“자이언트 에이프다!”
“아, 미치겠네. 쟨 또 왜 있는 거야?!”
다들 돌겠다는 듯 머리를 헝클었다.
이번에 등장한 건 자이언트 에이프였다.
“인간놈들!”
쿵쿵대며 나타난 자이언트 에이프는 무려 사람의 말을 하고 있었다.
놈은 부하들을 죽이고 자신의 영역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인간들이 향해 크게 분노했다.
‘쉐도우 에이프가 있을 때 예상은 했다만…….’
원래 에이프들은 세트였다.
단체 생활을 하는 놈들은 무리를 이끄는 보스가 하나 꼭 있었다.
그 보스는 보통 자이언트 에이프였고.
다만, 저놈은 쉐도우 에이프보다 더 죽이기 까다로웠다.
기본적인 능력도 뛰어났지만 속도가 장난 아니었다.
키가 무려 3M에 이르면서 어떻게 속도가 그리 빠른진 몰랐으나 그 때문에 힘겨운 전투가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자이언트 에이프 뒤에는 200마리쯤 되는 쉐도우 에이프들이 보였다.
“다들 꼭 붙어있어. 단체로 움직이고 최대한 몸을 사려.”
“예.”
“도영이는 스킬 틈틈이 써서 잘 막아주고.”
“예, 맡겨주십시오.”
형우는 길드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자이언트 에이프를 바라봤다.
자이언트 에이프는 잔뜩 숨을 들이켜고 있었다.
“오빠, 쟤 왜 저래요?”
갑자기 숨을 들이켜는 놈을 보곤 소정이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모두 아무거나 붙잡고 버텨!”
그런데 명진은 저게 뭔지 제대로 알고 명령을 내렸다.
형우도 이미 뭔지 알고 있었기에 말없이 소정을 감싸고 능력을 사용했다.
“다들 모여! 염력!”
형우는 염력을 사용해 돌덩이들을 앞에 세웠다.
그 상태에서 염력을 풀지 않았다.
“후우우!”
쓰아아!
자이언트 에이프가 숨을 세게 내뱉자 갑자기 강풍이 불어왔다.
“끄아악!”
“나, 날아간다!”
그 바람이 연합원들은 혼비백산하며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나무를 붙잡았다.
그러나 버티지 못한 몇몇은 바람에 휩쓸렸다.
“아아악!”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멀리 날아갔다.
그러는 사이 왜 갑자기 바람을 분 건지 이유를 알 수 있게 됐다.
“그 불을 단번에…….”
“미친!”
입으로 분 바람이 S급 헌터가 만든 불을 모두 꺼버렸다.
그 엄청난 위력에 다들 기겁했다.
“A급 헌터는 자이언트 에이프를 맡는다! 나머지는 쉐도우 에이프를 공격!”
명진은 바로 빠른 명령을 내렸다.
자이언트 에이프는 A급 몬스트였기에 드레이크와 같은 대응이 필요했다.
다만, 거치적거리는 쉐도우 에이프들이 있으면 A급 헌터들도 상대하기 힘들었다.
그 때문에 다른 헌터들이 나머지 잔챙이를 맡아야 했다.
그런데 달려가는 A급 헌터들 앞을 수혁이 막아섰다.
“이왕이면 피해가 없는 게 낫잖아. 거기 옆에 깍쟁이 아가씨 좀 차출하는 게 어때?”
수혁은 다짜고짜 그 말을 하곤 피식 웃었다.
“…….”
명진은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지휘나 작전은 명진을 통해서 이뤄져야 했다.
이미 앞에서 한차례 수혁의 단독으로 한 행동이 있었다.
그런데 연달아 이런 식이면 자신의 권위가 흔들렸다.
그러나 지금 당장 지휘권을 가진 내가 판단하겠다며 설왕설래하기엔 상황이 촉박했다.
일단 명진이 물러났다.
“현서 씨.”
“예.”
현서는 자이언트 에이프를 향해 뛰어갔다.
그러자 수혁이 따라붙었다.
“이야! 유현서랑 협업(協業)을 할 줄은 몰랐는데. 아, 협업보다 첫 경험이 더 나으…….”
“닥쳐.”
“킥킥!”
수혁과 현서가 티격태격하며 자이언트 에이프에게 가는 사이 A급 헌터들이 보조를 위해 뒤따라갔다.
덕분에 자이언트 에이프의 운명은 확실히 정해졌다.
잠시 후.
“크어억…….”
쿠웅.
드레이크가 쓰러졌던 것처럼 자이언트 에이프도 바닥을 마주했다.
“하아… 죽겠다.”
“겨우 살았네, 겨우 살았어.”
자이언트 에이프가 죽었으나 환호성은 없었다.
모두 피곤함에 절은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S급과 A급이 자이언트 에이프를 상대하는 사이 다른 인원들은 열심히 쉐도우 에이프를 상대했다.
무려 3,000에 가까운 인원이었으나 200마리의 쉐도우 에이프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피해도 꽤 상당했다.
“후우… 오늘은 여기서 쉬어야겠군.”
명진은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미 다들 지친 상황에서 더 이상 이동은 불가능했다.
오늘은 여기서 쉬어야 할 듯싶었다.
그나마 다행은 이곳에선 징벌자가 안 나타났다.
그 덕분에 연합원은 바로 그 자리에서 야영 준비와 저녁 준비를 했다.
“자자, 빨리 움직여. 얼른 먹고 쉬자고!”
“빨리 재료 가져와!”
다들 지친 상황이라 빨리 먹고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기에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러나 바쁘게 움직이는 밖과 달리 어느 곳은 아주 정적이었다.
20~30명쯤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큰 야전 막사.
그 안에서 은밀한 대화가 오갔다.
“음…….”
“고민할 게 있습니까? 그냥 저희만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A급 이상은 확실히 막아줄 수 있습니다. 그사이 밑에 다 정리하고 같이 딱 하나만 잡으면 다 끝입니다. 다들 안 그렇습니까?”
“…예, 예. 그렇죠.”
“…….”
명진은 막사 안에서 누군가를 설득하고 있었다.
설득 중인 대상은 믹스 연합장 장성우와 필의 연합장 민경욱.
둘은 명진의 말을 들으며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명진이 말하는 주제가 당혹스러웠다.
“SH 길드가 없어지면 당신들은 바로 아래 자리에 앉는 겁니다. 제가 다른 길드들이 연합을 안 벗어나고 흡수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럼 2강 외 겉절이가 아니라 1강 2중이 되는 거라고요.”
명진은 놀랍게도 SH 길드를 배반하려 했다.
그것도 같이 S구역을 공략하러 가는 여정 중에 말이다.
그러나 배반의 시기를 잘 조절한다면 최고의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S구역의 공략이 끝나는 순간 배신하면 되니까.
두 중소연합이 협력하면 분명 성공할 게 뻔했고.
사실 출발하기 전부터 둘은 명진에게 이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결정하긴 정말 어려웠다.
혹시 SH를 상대하고 팽시킬 개가 필요한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으니까.
명진도 그걸 느꼈는지 바로 계약서를 가져왔다.
“이거면 되겠습니까? 더 이상의 배신은 없습니다.”
‘가서 노가다할 노동자도 있어야지.’
명진은 말을 하며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이들을 팽할 생각은 없었다.
어느 정도 소모품으로 생각하긴 했으나 그것도 어느 정도일 뿐.
최대한 인원을 보존하려 했다.
새로 S구역을 얻게 되면 노동력을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 천천히 흡수할 생각이었다.
감옥의 완벽한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
“1강 2중…….”
“계약서까지 써주신다면야 믿을 수 있겠죠.”
1강 2중에 계약서까지 들이밀자 둘은 바로 넘어갔다.
권력욕이 있었기에 중소연합에서도 연합장을 맡았다.
그런 이들에게 지위를 유지해주고 비록 공동이지만 2인자 자리를 주겠다니 혹할 수밖에 없었다.
둘은 바로 계약서를 확인하고 사인했다.
“어려운 결정해주신 연합장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하하,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 제안을 다 해주시고…….”
“앞으로 잘 부탁하겠습니다.”
그들은 기분 좋게 웃으며 거래를 마쳤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SH 길드에선 유혁기라는 다른 S급 헌터가 있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