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7
“…귀 길드에게 동맹을 요청합니다.”
“동맹이요?”
성우는 쿨한 외모만큼 꽤 직설적인 사람이었다.
돌려 말하는 것 없이 바로 본론을 이야기하겠다며 동맹을 요청했다.
다만, 바로 알아듣진 않았다.
형우는 못 알아듣는 척 되물었다.
“예. 믹스 연합 말고 개인적인 동맹을 말입니다.”
성우가 그 말을 하며 낮게 웃었다.
‘역시 바로 딜이 오네.’
너무 빠른 접촉이라 놀라긴 했지만 충분히 예상했던 시나리오였다.
밖에서도 정치질은 착한 사람, 나쁜 사람 가리질 않는데 이곳은 대다수가 나쁜 사람이었다.
같은 연합 내에서 뒷공작이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했다.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면 좀 끌어야 하나?’
솔직히 지금 당장 받아들여도 상관없었다.
리젝 길드엔 A급 헌터 3명을 보유했다.
형우와 똑같은 숫자.
둘이 합치면 무려 A급만 6명이었다.
나머지가 다 합쳐도 A급이 4명밖에 안 됐다.
게다가 다른 중소 연합 전체를 합쳐도 6명을 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정말 제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형우에게도 나쁘지 않은 선택.
그러나 바로 수락하긴 좀 그랬다.
조금 더 끌다가 애태워야 만만하게 보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거 하나만으로 내가 호군지 어느 정도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인지를 알릴 수 있었다.
“음… 너무 갑작스러워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와 연합하면 바로 다수파가 됩니다. 우리끼리 연합하면 다 해먹을 수 있단 말입니다.”
침을 튀겨가며 성우는 이 동맹에 대한 유리함을 설명했다.
이미 알고 있는… 그리고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형우는 이미 생각을 정했다.
‘수락은 며칠 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형우는 일단 고개를 저었다.
“며칠만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독단으로 정하는 것도 좀 그렇고요.”
“으흠… 알겠습니다.”
선택을 어떻게 할진 모르지만,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다는 건 성우도 눈치챘다.
그러나 지금 유리한 건 형우였다.
최고의 선택지이자 최선의 선택지는 형우와의 동맹.
언제 배신할지도 모르는 길드들 자잘하게 모아서 형우를 핍박하는 시나리오는 정말 허접한 시나리오였다.
“그럼 며칠 뒤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예, 오시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어서 쉬시죠.”
성우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형우를 배웅했다.
‘급 피곤하네. 빨리 들어가서 정리하고 쉬어야겠다.’
형우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숙소로 향했다.
그러나 형우는 바로 숙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가는 길에 리젝 길드 말고 다른 길드의 길드장들을 차례대로 만났으니까.
그들 역시 형우와 동맹을 원했다.
A급 헌터가 하나밖에 없는 남 길드와 김 씨 길드는 어떻게든 형우와 동맹을 하고 싶어서 난리를 쳤다.
포인트를 주겠다느니, 나중에 밑으로 합병하겠다느니… 별의별 이야기를 다 했다.
물론 형우는 생각해보겠다며 모두 뿌리쳤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자 식사 중인 성민과 도영을 볼 수 있었다.
“아, 왔어?”
“회의는 잘 끝나셨습니까?”
성민과 도영이 밝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아, 회의랄 것도 없었어. 그냥 대충 연합 상황을 알려준 것뿐이야. 그런데… 나 버리고 먼저 먹는 거야? 이거 엄청 서운한데.”
형우는 삐진 척을 하며 둘을 바라봤다.
그러자 피식 웃으며 성민이 접시를 내밀었다.
“양은 충분하니까 와서 얼른 먹어. 부족하면 더 시키고.”
“땡큐.”
형우는 접시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때 반대편 테이블에 앉은 여자가 보였다.
깨작깨작.
다람쥐가 밥을 먹는 모습을 재연이라도 하듯 정말 깨작깨작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보다 더 답답한 건 그녀가 말을 전혀 안 한다는 거였다.
‘잰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일까?’
형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시오였다.
E구역 던전에서 만났던 시오는 이번 S구역 공략에 참여했다.
사실 형우는 명단에 시오를 넣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시오가 자신을 공략에 껴달라고 말했다.
“저도 같이 갈래요.”
“왜요?”
“…….”
“…….”
그렇게 공략 원정대에 참여한 시오는 프로즌 케이브까지 오게 됐다.
다만,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오가 왜 같이 가자고 했는지 말이다.
‘지금까지 정말 죽은 것처럼 조용히 있더니만 왜 갑자기 변덕을 부려서…….’
형우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식탁에 있는 빵을 하나 집어 먹었다. 그리고 식사를 끝낸 형우는 방으로 들어가 일찍 잠을 청했다.
형우가 도착한 지 5일 후.
이미 몇 년간 S구역 공략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한 터라 막힘없이 착착 진행됐다.
그러는 사이 형우도 준비를 마쳤다.
어차피 물자는 대부분 형우의 아공간 주머니에 보관됐다.
덕분에 여독만 풀면 끝이었다.
다만, 출발 직전에 인원 변동이 생겼다.
“D급은 다 되돌려 보내자.”
“음… 하긴 그게 낫겠지.”
“동의합니다.”
형우의 멘토 역할을 하던 두 부길드장이 부재하면서 형우는 대부분의 결정을 성민, 도영과 함께 처리했다.
이전 호람 길드에서 중역을 맡진 않았으나 둘은 나름 행정직을 수행하며 실무 경험이 있었다.
덕분에 상의할 대상으로 딱 알맞았다.
그래서 그들과 상의를 했고 그중에 나온 이야기가 D급들을 돌려보내자는 거였다.
사실 이건 S구역에 대한 정보를 얻고 나서 결정한 내용이었다.
S구역은 정말 만만치 않은 곳이었고 D급은 그곳에서 지구의 일반인 정도였다.
결국, S구역 공략에 D급들은 도움이 전혀 안 된다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D급을 돌려보내기로 했다.
마음 같아선 C급도 다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그러면 너무 인원이 없었다.
그래도 열 명 정도는 넘어야 구색이라도 맞춰졌다.
‘보이는 건 아무래도 좋지만… 너무 적어도 좀 그러니까.’
D급이 100명이었기에 다 돌려보내면 몇 명 더 준다고 해도 오십보백보긴 했다.
여하튼 그렇게 결정을 내리자마자 D급은 인솔할 C급 한 명을 추가해 모두 E구역으로 복귀시켰다.
그러는 사이 공략 준비는 끝났고 드디어 출정의 날이 됐다.
“이야… 다시 한 번 이 쉘터의 수용 능력에 놀라네.”
출정의 날이 되자 수많은 인원이 집결했다.
참여 길드만 총 70개, 인원은 총 3,000명.
이 중 SH와 명진 길드 소속이 10개 길드였다.
두 길드와 그들을 합치면 무려 1,000명, 이 원정대 인원의 삼 분의 일이나 됐다.
나머지는 모두 중소연합 소속이었다.
다만 인원만 많을 뿐이지 다 합쳐도 산하 길드보다 못했다.
그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곳에 모인 연합원들은 들뜬 표정이었다. 그리고 곧 출정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동!”
척! 척!
그 말에 다들 발에 힘을 주고 한 발씩 내디뎠다.
다만, 긴장해서 힘이 들어간 건 아니었다.
그건 최초의 S구역 공략을 앞두고 설렘과 흥분으로 인해 힘이 들어간 거였다. 그리고 그건 형우 역시 똑같았다.
‘그저 그럴 거로 생각했는데 되게 가슴이 뛰는데…….’
형우는 들뜬 마음을 천천히 진정시키며 발을 움직였다.
그때 누군가 형우에게 다가왔다.
“박 길드장, 잠은 잘 잤습니까?”
“아, 예. 장 길드장님. 길드장님은 잘 주무셨습니까?”
형우에게 친근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온 건 성우였다.
출정 하루 전날 형우는 성우의 제안을 수락했다.
아무리 다른 곳과 비교를 해도 리젝 길드가 제일 조건이 좋았다.
굳이 A급이 적은 곳이랑 동맹을 맺어 수많은 변수를 만들어내기보단 제일 힘이 강한 한 곳이랑 동맹을 맺는 게 베스트였다.
게다가 리젝 길드에 대한 평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물론 범죄자들 사이에서 나쁜 편이 아닌 거였지만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여하튼 형우가 제안을 받아들인 덕분에 한시름 놓은 성우였다.
“저는 아주 푹 잤습니다, 하하. 어제 기분 좋은 소식을 들은 덕분에 꿀잠을 잔 거 같습니다. 출정날 기분 좋게 일어난 걸 보니 앞으로 이번 공략이 잘 이뤄질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드는군요, 하하!”
“그 예감대로 순탄하게 흘러갔으면 좋겠군요.”
형우는 그 말을 하며 피식 웃었다.
대부분 이 여정이 순탄하길 바랄 터였다.
형우도 마찬가지.
그러나 몇 년간 S구역 여정이 진행되지 않은 데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그건 그만큼 공략이 어렵다는 이야기였고.
그래도 그 몇 년 사이 전체적인 수준이 상당히 올라갔기에 이번엔 공략에 성공할 가능성이 컸다.
강화라는 것 덕분에 자신의 위 등급에 준할 만큼 힘을 키웠다.
인원 보충과 힘의 업그레이드가 이뤄졌으니 이전과는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 순탄에 수다만 없었으면 좋겠는데…….’
예감 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시작한 성우는 뫼비우스의 수다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덕분에 형우는 그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용준이가 가서 좀 조용해졌는데 이번 공략엔 용준 2세가 있네. 아니, 용준이 더 어리니까 이쪽이 1세인가?’
성우의 수다는 장난이 아니었다.
쉴 새 없이 떠든 덕분에 원정 첫날부터 피곤했다.
“…그래서 저희 길드에서 어떻게 대응했냐면…….”
“길드장님, 잠시 처리할 일이 있습니다.”
한창 성우가 떠들던 중 성민이 다가왔다.
성민은 몰래 형우에게 눈짓을 줬다.
그걸 본 형우는 성민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장 길드장님, 이야기는 나중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이 있으면 어쩔 수 없죠.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예, 수고하십시오.”
형우는 멀어지는 성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성민이 아니었으면 아마 수다에 취해서 다음날 숙취에 시달렸을 터였다.
그런데 그때 성우가 지나가는 곳에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유혁기?’
B구역 지하에서 봤던 유혁기였다.
드래고니안과 질긴 접전을 벌였던 S급 헌터.
그가 이 원정대에 껴있었다.
혁기를 발견한 형우는 얼굴을 찡그렸다.
‘저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형우는 본능적으로 이번 원정에서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음을 느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성민은 형우가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있자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그제야 형우는 표정을 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여하튼 구해줘서 고맙다.”
“그거 가지고 뭘. 진짜 더럽게 오래 떠들더라.”
피식.
형우는 피식 웃으며 고맙다는 듯 성민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성민은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자리로 돌아갔다.
성민이 돌아가고 형우는 다시 혁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왜 여기에 껴 있는지에 대해서 추리하기 위해 머리를 최대한 굴렸다.
그러나 형우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질 않았다.
이번엔 시오가 다가왔다.
“와요.”
“네?”
주어, 목적어 다 때고 정말 짧은 서술어 하나 툭 던진 시오를 향해 형우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그때 어디선가 몬스터의 포효가 들려왔다.
“캬가각!”
“캬각!”
쿵! 쿵!
포효의 주인공은 드레이크 두 마리였다.
특이한 포효를 내지르는 그 드레이크는 무려 A급 대형 몬스터였다.
드래곤의 아류종이라고 불릴 만큼 공격력이 강했다.
피부도 워낙 단단해서 B급 이하는 아예 타격조차 입힐 수 없었다.
게다가 입에서 뿜어대는 불은 엄청난 고열을 자랑했다.
“드레이크다!”
“모두 방어 대형!”
드레이크가 나타나자 명진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지휘했다.
이번 공략의 지휘는 명진이 맡았다.
사실 지휘권이라는 것 자체가 상당히 민감한 사항이었다.
자존심의 문제였으니까.
그 때문에 다들 두 길드가 지휘권으로 많은 다툼을 벌일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휘권 문제는 의외로 쉽게 정리된 문제였다.
이유는 방수혁이 지휘가 귀찮다며 명진에게 떠넘겼기 때문이었다.
물론 말은 귀찮다고 했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S급 헌터인 방수혁은 무력에선 확실히 압도적이었으나 병력을 지휘하는 능력은 최악이었다.
그 때문에 SH 길드 내에서도 길드장 대신 다른 인원이 전투 지휘를 했다.
그러나 이번엔 길드장 본인이 지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각지에서 모인 오합지졸.
그들을 통솔하기 위해선 급이 최고로 높은 이가 지휘하는 게 맞았다.
그래서 명진에게 쿨하게 넘겨줬다.
“B급 이하 헌터들은 후방으로 후퇴! A급 헌터들 전원 전방으로 이동!”
지휘를 맡은 명진은 현명한 대처를 했다.
어차피 B급 이하가 데미지를 줄 수 없는데 굳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피해를 줄 수 있는 인원들만 나서서 처리하는 게 나았다.
A급 헌터들은 명진의 지휘에 바로 최전방으로 나왔다. 그리고 드레이크가 어느 정도 다가오자 바로 명령을 내렸다.
“원거리 계열 능력 먼저 공격!”
명진의 공격 명령과 함께 전투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