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6
“와…….”
“오빠, 엄청 예뻐요!”
쉘터에 발을 들인 형우와 소정은 바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러나 감탄사를 터트린 건 둘만이 아니었다.
길드원 전원이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곳은 마치 얼음 왕국 같았다.
쉘터 전체가 얼음으로 이뤄져 있었고 중앙엔 쉘터의 반을 막고 있는 거대한 얼음 궁전이 보였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궁전은 이 쉘터의 멋을 한층 더했다.
다만, 이 얼음은 그냥 얼음이 아니었다.
녹지 않는 얼음, 아이스 큐브로 만들어졌다.
모습은 그냥 얼음과 다를 바 없었으나 일반 얼음과 차원이 달랐다.
가장 간단한 차이는 강도였다.
그냥 때리면 깨질 것 같은 모습이지만 어떤 강철보다 더 단단했다.
명진 길드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오직 이 쉘터에서만 나오는 광물 아이스 큐브가 있었으니까.
“명진 길드의 쉘터, 프로즌 케이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영호는 그 말을 하며 피식 웃었다.
자신이 이곳에 처음 들어올 때 반응과 완전 같았다.
영호도 처음 들어올 때 감탄사를 숨길 수 없었다.
정말 쇼크사로 죽을 것만 같은 감동.
지구에서도 몇 없는 절경이었다.
“안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우리 믹스에게 배정된 구역이 있습니다.”
이제 형우가 속하게 된 연합의 이름은 믹스였다.
다 같이 잘 섞이잔 의미에서 정해진 이름이었으나 상당히 유치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들어와 놓고 ‘연합 이름이 유치해서 안 들어갈래요’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영호는 한쪽을 가리키며 움직였다.
이곳 ‘프로즌 케이브’는 쉘터 치고는 상당히 컸다.
어찌 보면 F구역보다도 넓어 보였다.
물론 F구역은 여러 통로가 많고 넓은 장소가 한 곳밖에 없었다.
그곳만 비교했을 땐 확실히 F구역보다 넓은 것 같았다.
“대단하네. 이걸 쉘터라 할 수 있으려나.”
“하하. 저도 처음 왔을 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여기가 S구역은 아닐까 라고요.”
“S구역이라… 하긴.”
형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동의했다.
사실 쉘터라기보단 그냥 하나의 구역이었다.
쉘터 자체가 원래 비상대피처 용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규모가 이 정도 되면 그냥 조금 작은 구역 정도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그래도 쉘터는 쉘터죠. 아, 그리고 숙소는 5층 규모로 되어 있어서 여러 명이 같이 한방을 쓰는 식으로 해야…….”
“너 이 새끼야! 방금 뭐라고 했어? 어?!”
영호가 말하던 도중 어디선가 고성이 들려왔다.
욕과 함께 언성을 높인 누군가에게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그곳엔 두 명이 대치하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랐으나 둘은 눈을 부릅뜬 채 서로를 노려봤다.
그들은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두 활화산이었다.
“하아… 또…….”
영호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마치 익숙한 광경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러는 사이 화산이 폭발했다.
퍽!
“밀었어? 방금 날 밀었냐고?! 어디서 별 쓰레기가 다…!”
“쓰레기?”
퍼억!
“아악! 쳤어?!”
밀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싸운다! 빨리 도와줘!”
“저 미친놈들이!”
“다 죽여!”
둘의 싸움은 어느새 패싸움으로 변했다.
싸움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소식을 들은 다른 인원들도 몰려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영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저 병신들이…….’
지금 싸우는 두 패거리는 믹스 연합의 길드와 다른 중소연합 필(feel)의 길드였다.
쉘터에 집결이 시작된 이후 이런 사소한 싸움이 계속 생기고 있었다.
물론 거대 두 길드 쪽은 건들지 못했고 시비를 걸어도 참았다.
그러나 같은 중소연합인 둘은 서로를 만만하다고 판단해서인지 계속해서 갈등이 일어났다.
실제로 만만한 것까진 아니어도 전력이 비슷하긴 했다.
나머지 잡다한 인원을 빼고 A급이나 B급의 인원은 비슷했으니까 말이다.
여하튼 서로 연합해도 모자랄 판에 계속된 반목이 일어나 영호의 입장에선 미칠 지경이었다.
반대쪽 지도부의 생각은 어떨지 몰라도 영호가 속한 믹스에선 지금 당장 갈등을 원치 않았다.
물론 계속 평화적으로만 살건 아니었다.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후우… 괜찮습니다. 저러다 말겠죠.”
헌터들간의 싸움이었기에 분명 사상자가 나올 수 있었다.
아니, 분명 나올 터였다.
그러나 그런다고 말릴 생각은 없었다.
지금 싸우는 이들은 기껏해야 C급 이하의 소규모 길드들.
전력 손실이란 것 따위가 없었다.
그저 짐꾼이나 잡일꾼으로 끼워준 이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싸움을 종결시킬 사람이 나타났다.
화아아악!
“흡…!”
“…!”
갑자기 진득한 바람이 그들을 스치고 갔다.
그 바람은 알 수 없는 압박감으로 한창 진행 중이던 싸움을 한순간에 멈추게 했다. 그리고 모두 숨죽였다.
그들은 지금 이 바람의 의미를 확실히 알고 있는 개미들이었다.
“더 깝치다간 다 죽는다.”
어디서 날 선 경고가 들려왔다.
그러나 다들 고갤 돌리지 못했다.
그나마 A급 이상이 겨우 고개를 돌렸다.
‘S급?’
형우는 호리호리한 체격의 여자를 바라봤다.
얼굴이 미녀이긴 했으나 눈매가 꽤 날카로워 차가운 인상을 줬다.
그녀는 그 날카로운 눈매로 그들을 훑었다.
흠칫!
다들 직접 보진 못했으나 시선에 닿은 이들은 흠칫 놀라며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길 원했다.
“유, 유현서…….”
몇몇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내뱉었다.
유현서는 명진 길드의 부길드장이자 S급 헌터였다.
보통 길드장이 제일 높은 등급을 가졌지만 명진 길드는 좀 달랐다.
길드장부터 핵심 직위 대부분이 은성 그룹에 고용된 직원이었다.
업무의 효율성에 따라서 직위가 분배되었고 명진은 가장 길드장에 적합한 업무 능력을 가졌다.
실력은 덤이었고.
여하튼 그 때문에 유현서는 길드장이 아닌 부길드장을 맡고 있었다.
“…한 번 더 시끄럽게 만들면 그 길드 자체를 없앨 거야. 명심해.”
저벅저벅.
현서는 그 말을 남기고 다른 곳으로 갔다.
그러자 느껴지던 압박감이 일순간 사라졌다.
“하아…….”
“사, 살았다.”
털썩.
그제야 긴장이 풀린 그들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물론 그들만 그런 건 아니었다.
A급, B급들도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나마 S급을 좀 겪어봤던 형우만 금방 정신을 차렸다.
덜덜.
“으, 으으…….”
처음 S급의 힘을 느낀 소정이 몸을 덜덜 떨었다.
아무리 A급이라지만 소정이는 이제 중학생인 아이였다.
중학생이 감당하기엔 S급이 주는 힘의 공포는 견디기 힘들었다.
형우는 떠는 소정이를 안아 들곤 토닥여줬다.
그러자 점점 떨림이 사라졌다.
“S급… 정말 어마어마하네.”
성민은 질린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카투바 덕분에 A급으로 각성한 성민이었지만, 한 번도 위의 강자를 겪질 못했다.
게다가 A급으로 제대로 활약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벌써 정신을 차린 영호와 다르게 좀 늦었다.
“어마어마하지. 그래도 하나는 참을 만하지 않아? 난 저번에 S급 수십 명을 겪어봤는데 그땐 정말 지릴 뻔했어.”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 정말 토 나온다.”
성민은 기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형우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어깨를 쳤다.
이곳에 오는 동안 보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동갑인 성민과 꽤 친해졌다.
물론 성민 말고 한 살 어린 도영과도 가까운 사이가 됐다.
나잇대도 비슷했고 범죄자의 성향과는 좀 먼 이들이었다.
호람 길드 자체가 최대한 사람을 가려서 받았으니 그들의 성향이 그런 것도 당연했다.
물론 그래도 안에 썩은 물이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없어 배신자가 나오긴 했지만.
여하튼 덕분에 이동하는 동안 꽤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차민 분신술 투어라도 한 번 해줘야 하나?’
S급의 기세 한 번에 창백해진 성민을 보며 형우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음… 계속 가시죠. 이제 다 왔습니다.”
영호는 상황이 어느 정도 수습되자 이어서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5층으로 된 숙소에 도착했다.
형우의 길드원 수만 100명이 넘었기에 수가 많긴 했지만 같이 방을 쓴다면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다.
“여기서 머무시면 됩니다. 식사는 1층에서 모두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스케이프 길드장님. 지금 다른 길드장님들께서 회의 중인데 혹시 괜찮으시면 잠시 만나보시겠습니까? 아, 물론 피곤하시면 내일로 미루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바로 가죠.”
형우는 영호에게 괜찮다고 말하곤 소정이를 누군가에게 넘겼다.
“민희야, 소정이 좀 잘 부탁해.”
“걱정하지 말고 잘하고 오세요.”
형우는 같이 따라온 민희에게 소정이를 넘겼다.
민희는 싱긋 웃어주며 숙소로 들어갔다.
‘으흠… 이번에 각성해주려나…….’
형우는 민희의 뒷모습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원정을 시작하며 사실 제일 먼저 명단에 넣은 게 바로 이민희였다.
[이민희 /C급/1소켓-C급 체력 강화 2소켓-S급 마나 마스터(미구현) 3소켓-A급 마나 팩토리(미구현)]
멀티 소켓에서도 희귀하다는 트리플 소켓을 가진 이민희는 S급으로 각성할 예정자였다.
어떤 식으로 각성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번 기회에 각성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S급만 얻으면 우리 길드가 여기선 3번째가 되겠네.’
두 거대 길드를 빼곤 아무도 S급이 없으니 당연했다.
형우는 얼른 그녀가 각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영호를 따라갔다.
잠시 후 믹스 연합의 임시 본부에 도착했다.
2층 규모의 그곳은 연합의 수뇌부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장소로 활동하고 있었다.
“들어가시죠.”
안으로 들어가니 수십의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군의 작전실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들을 지나쳐 2층으로 가자 회의 중인 길드장이 보였다.
“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이스케이프 길드장님.”
형우가 등장하자 길드장들은 반가운 얼굴로 반겼다.
성욱의 일 따윈 아예 없는 일이라는 듯 웃으며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며 형우는 실소를 머금었다.
‘대단하네.’
형우는 이 상황에서 철면피를 깔고 말하기 힘들었을 터였다.
아마 불편한 심기를 보였을 텐데 이들은 그런 게 보이질 않았다.
물론 이유는 뻔했다.
형우가 합류하면 다른 중소연합보다 확실한 우위를 얻을 수 있었다.
A급이 무려 3명이나 합류하니까.
게다가 잘만 꾀어서 내부에 또 다른 동맹을 만든다면 꼴찌도 순식간에 다수파가 된다.
그 때문에 다들 과잉 친절을 베풀고 있었다.
“자자, 어서 앉으세요. 뭐 마실 걸 드릴까요?”
“아, 괜찮습니다.”
형우는 손을 들어 사양하며 자리에 앉았다.
형우가 자리에 앉자 그들은 각자를 소개했다.
스팀 길드의 박성.
김 씨 길드의 김경진.
남 길드의 김동민.
그리고 마지막으로 형우에게 제일 먼저 접근한 리젝 길드의 장성우까지 4명이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런데 왜 4명밖에 없냐고?
그 이유는 그들이 유일하게 연합 내에서 A급 보유한 길드였기 때문이었다.
나머진 그저 그들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겉절이였다.
그게 상당히 서글픈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여긴 강호보다 더한 강자지존(强者至尊)이었으니까.
“그럼 일단 간단하게 우리 연합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성우는 믹스 연합 내 구성원과 규모를 설명해줬다.
그 설명이 끝나고 본격적인 S구역 공략은 5일 뒤라고 말했다.
약간 촉박하긴 했으나 어차피 준비는 모두 끝냈고 여독만 조금 풀면 끝이었으니 상관없었다.
그렇게 설명이 끝나고 길드장들과 진한 악수를 한 뒤 형우는 숙소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숙소로 가려던 형우를 영호가 막았다.
“저희 길드장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습니까?”
“아, 예.”
어차피 지금 숙소에 들어가 봤자 할 일도 없었다.
형우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영호를 따라갔다.
영호를 따라 어느 구석진 곳의 방 안으로 들어가자 아까 봤던 리젝 길드의 길드장 성우가 있었다.
‘당연히 그것 때문이겠지?’
형우는 안으로 발을 들이며 뻔한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예상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