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5
형우는 자신의 앞에 거만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인물을 보면서 말했다.
그는 시종일관 같은 표정으로 중소 연합의 장점을 설명하곤 마지막엔 거의 강제에 가까울 정도로 중소 연합에 들어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뭐, 정리하자면 그런 말이지.”
그는 형우에게 반말로 대답했다.
그 모습이 형우를 심히 거슬리게 만들었다.
사실 존댓말은 외국에 거의 없는 말이다.
존경, 경의, 상관에게 말하는 것들을 제외하곤 동양의 몇몇 국가만이 썼다.
유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은 그게 유독 더 심했고.
그 때문이랄까.
한국에선 20대와 40대가 친구가 되기 참 어려운 환경이었다.
물론 예외가 존재하긴 했다.
여하튼 그래서인지 존댓말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존댓말에서 나오는 예절, 예의, 문화 등 많은 것이 파생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반말은 사회적으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 됐다.
다만, 형우는 별로 상관치 않았다.
반말도 충분히 이해할만큼 개방적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처음 만난 상대한테 반말하고 있는 건 개방적인 것과 달랐다.
상대가 자신보다 어리다거나 만만할 때 쓰는 종류의 반말이었으니까.
그저 하위 구역 길드라고 생각해서인지 계속 무시를 하고 있었다.
“최성욱 씨, 중소연합에서 직책이 어떻게 되신다고 했죠?”
형우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직책? 그런 게 왜 중요한데? 당신은 그저 여기에 사인하고 우리 연합에 들어오면 된다고. 설마 연합에 안 들어올 생각은 아니지?”
성욱은 감히 연합에 안 들어오냐는 듯 쳐다봤다.
당연히 그들이 말하면 들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중소연합.
사실 이곳은 이전부터 많은 길드가 만들려 했다.
위에 꼿꼿이 서 있는 SH 길드와 명진 길드 때문에 억눌려서 살았다.
그래서 거기에 반항하기 위해 연합이 필요했다.
그러나 조금 모일 낌새가 보이면 두 사자는 바로 행동에 나섰다.
감히 하이에나가 높은 바위 위를 넘보는 걸 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중소연합은 생기질 못했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SH와 명진만으로는 공략에 버겁다고 생각했는지 중소 길드들의 참여를 권장했다.
물론 실상은 그저 화살받이나 인간 방패, 소모품으로 쓸 게 뻔했지만 상관없었다.
계기와 틈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 순간 평소에 생각이 있었던 수많은 길드가 모여들었고 거대한 중소연합을 만들었다.
중소라는 이름이 우스울 정도로 거대한 연합을 말이다.
물론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그들에겐 S급 헌터가 없다는 거였다.
아무리 인원을 많이 모아봤자 S급에겐 소용이 없었다.
정말 많은 인원이 모여야 대항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까진 불가능했다.
규모와 다르게 괜히 중소가 아니었다.
A급의 수도 많이 부족했다.
그런 와중에 형우의 길드에 A급이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소문을 들은 중소연합의 수뇌부는 바로 형우의 길드를 스카웃하자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 최성욱이 형우에게 와 있는 거였다.
그러나 이건 아니었다.
‘이러면 내가 들어가기 싫어지지.’
시종일관 거만한 태도와 반말로 대꾸하는 성욱에게 형우가 뭐가 좋다고 져주고 싶겠는가.
대외적으로 알려진 형우의 등급은 몬스터 웨이브 때 장현민과 싸우면서 밝혀진 B급이었다. 그리고 성욱의 등급도 B.
그는 중소연합이라는 배경 외엔 형우보다 나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정말 기고만장한 태도를 유지했다.
형우의 길드에 A급이 둘이나 더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사실 이스케이프 길드의 진짜 전력은 A급 3명 B급 1명이었으나 그건 상관없었다.
A급이 속한 길드를 그저 만만하게 아니, 자신의 길드를 만만하게 본다는 게 더 거슬렸다.
“사인할 거야, 말 거야? 자꾸 시간 끌래?”
“생각할 시간을…….”
“이봐!”
쾅!
성욱은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그 모습을 형우는 차갑게 바라봤다.
“네가 지금 누굴 상대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SH 길드와 명진 길드 다음으로 강한 곳에서 너한테 스카웃을 한 거라고. 그런데도 망설여? 한 번 제대로 털리고 싶어서 그래? 내가 너희 길드 다 죽이라고 말할까? 아까 보니까 여자들도 많은데 다 노예시장에 보내줘? 어?”
성욱은 오른손으로 형우에게 삿대질을 하며 화를 냈다.
그러나 그건 그의 실수였다.
적어도 그렇게까지 형우를 도발해선 안 됐다.
그것도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선 말이다.
“속박.”
“…!”
그 말을 한순간 마치 단단한 슬라임 안에 갇힌 것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제야 성욱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느꼈다.
알려진 대로 B급이라면 속박에 당하자마자 바로 대응을 했을 터.
그러나 그러질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것도 더 높은 등급이니까 말이다.
“A급?”
“일단 그 손은 제가 가져갑니다.”
그 말을 하며 형우는 검을 뽑았다.
그 모습을 보며 성욱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자, 잠깐!”
형우는 다급하게 외치는 성욱을 무시하곤 검을 휘둘렀다.
스악!
“아아아악!
“기, 길드장님? 이제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저 사람 그냥 중소 길드의 길드원이 아닙니다! 무려 중소연합 길드원이라고요! 거기 속한 A급 헌터가 7명입니다! 인원도 우리보다 몇 배나 많다고요!”
박 사장과 김 사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설마 제안을 받는 자리에서 외교관이자 사신인 이의 팔을 잘라버리다니.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으면 분명 동석을 요청했을 터였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들은 동석을 못 했고 일은 벌어졌다.
이제 수십일지 아니면 망하는 길일지 모를 결과만 남았다.
그러나 당황한 두 부길드장과 달리 형우는 태연했다.
“아마 괜찮을 겁니다.”
“예?”
“아니, 그게 대체.”
태연한 형우의 말에 둘은 이해를 못 했다.
제3의 세력으로 떠오른 중소연합에 밉보였다.
분명 제재가 들어올 거로 생각하는 둘이었기에 형우의 말은 뜬구름 잡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저희보다 힘이 강해도 우리를 어떻게 하진 못할 겁니다.”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당장 얼마 뒤에 A급으로 5명만 오더라도 우리 구역은…….”
“절대 그럴 일 없어요. 지금은 더더욱이요.”
형우는 딱 잘라서 말했다.
분명 그들은 형우에게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건 확실히 장담했다.
지금이니까.
단순히 기분이 나빠서 저지른 짓이 아니었다.
다분히 정치적이었고 거기에 분노가 살짝 곁들여졌을 뿐이었다.
“지금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들은… 아!”
“으흠… 확실히…….”
반박하려던 둘은 형우의 말을 이해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S구역 공략 직전의 상황이었다.
이제 2대 길드와 함께 수많은 길드가 S구역 공략에 참여하려 할 때.
그렇기에 함부로 몸을 움직일 상황이 아니었다.
당장 중소연합은 세력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S구역으로 넘어갈 것을 최우선으로 삼을 터였다.
그런데 초장에 전력 소모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은 감행한다?
절대 그럴 리 없었다.
게다가 형우는 성욱에게 A급의 힘을 보여줬다.
그럼 이제 이스케이프 길드에 A급이 3명 있다는 걸 확실히 알린 거였다.
그럼 더더욱 형우에게 칼을 들이미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형우와 더 친해지려 할 터.
그게 중소연합 내에서 입지를 더 높일 테니까.
아마 최성욱이라는 인물이 온 건 그들의 의도였을 터였다.
성욱이 통한다면 형우는 호구로 판명되고 호구는 호구답게 부려 먹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형우가 멍청하게 휘둘릴 호구가 아니라는 걸 보여줬으니 이제 다른 식으로 반응이 올 게 뻔했다.
“중소연합에 참여한 길드 리스트를 뽑아보겠습니다.”
상황판단 빠른 박 사장은 바로 핵심을 이야기했다.
“그럼 리스트가 나오는 대로…….”
며칠 뒤, 중소연합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보냈다.
이번에 보낸 사람은 이전과 다르게 예의가 바르고 똑 부러지는 변호사의 느낌이었다.
그는 확실하게 현 상황을 이야기하고 형우에게 제대로 된 제안을 했다.
물론 제안은 그저 중소연합에 들어오라는 제안이 아니었다.
“길드장님께서 따로 한 번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아시다시피 제 길드장님은 연합 내에서 제일 강한 세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중소연합엔 총 27개의 길드가 연합되어 있었는데 솔직히 23개는 다 어중이떠중이였다.
A급도 없는 길드는 길드로 쳐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나머지 4개는 달랐다.
연합에 주축이 되는 이들이자 A급 헌터를 보유한 길드들이었다.
그들 세력이 가장 강한 길드에서 바로 로비를 해왔다.
형우는 그저 알았다고만 대답했다.
어쩌건 연합에 끼는 건 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혼자 남은 형우는 사무실에서 생각에 잠겼다.
"힘만 있으면 그냥 혼자 S구역에 가는 건데.“
S구역엔 인사니오의 조각이 있다.
그리고 인사니오의 조각 외에도 처음 S구역에 발을 들인다는 선점 효과도 있었다.
그거면 참여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됐다.
게다가 S구역의 진실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S구역이 아니라 통합 구역이라…….”
인사니오는 분명 형우에게 S구역이란 없다고 말했다.
대신 다른 국가들과 한데 모이는 통합된 공간이 있다고 알려줬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나 형우에겐 더더욱 좋은 기회였다.
‘거기면 더 많이 의뢰서의 목표량을 채울 수 있을 테니까.’
어찌 되었건 형우의 목표는 능력 100개를 채워서 감옥을 탈출하는 거였다.
그것을 위해서 활약하기엔 한국인들만 있는 지금의 감옥은 너무 좁았다.
“점점 살인에 무뎌지는 거 같네.”
형우는 자조적인 미소를 보였다.
이곳에 온 뒤로 정말 많은 이들을 죽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아직도 천 리 길의 한걸음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더욱 형우를 힘들게 했다.
그러나 이미 시작한 일이었다.
이제 살인에 관해선 도덕과 윤리 따윈 벗어던져야 했다.
“후우… 그럼 준비해서 가보자고.”
그렇게 참전이 확정된 이스케이프 길드는 S구역 공략에 참여할 인원을 선별했다.
며칠 뒤 SH와 명진 길드에서 집결지와 공략 시작 날을 알려줬다. 그리고 그날이 되자 정해진 장소로 인원을 움직였다.
이번 공략엔 형우를 포함해서 B급 이상은 모두 참여했다.
A급 박형우, 민소정, 백성민.
B급 이도영.
아래 등급은 C급에서 반 이상을 차출했고 D급은 100명을 차출했다.
나머지를 남기는 이유는 혹시 모를 몬스터 웨이브를 대비해 남겨놨다.
게다가 아직 F구역 확장이 끝나지 않을 터라 인력이 많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반 이상을 남겨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꽤 대인원이 모였다.
D급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긴 했지만 그래도 백이 넘는 인원이었다.
A급이 3명이었으니 다른 길드에 전혀 밀리지 않을 터였다.
A급을 제일 많이 보유한 중소연합의 길드도 3명이었으니까.
각설하고… 형우의 길드는 며칠 동안 행군을 했고 드디어 목표에 도착하기 일보 직전이 됐다.
“저희가 방문할 곳이 쉘터라고 했죠?”
“예, 쉘터입니다. 다만 좀 특수한 게…….”
이번 원정에 같이 참여하게 된 배성문은 형우 옆에 딱 달라붙어서 이것저것을 설명했다.
겨우 D급이지만 정보나 관리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덕분에 형우의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정작 그 신임을 형우가 주질 않았다.
부길드장 두 명의 입에서만 나온 말이었다.
그걸 모르는 성문은 더더욱 형우에게 충성을 다했다.
그게 자기 등골까지 빨아먹으려는 건 줄 모르고.
그때 근처에서 일단의 무리가 다가왔다.
그들은 마치 마중을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30대 초반쯤 되는 남자가 홀로 다가왔다.
“이스케이프 길드장님 계십니까?”
“제가 길드장입니다. 귀하는 누구십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리젝(reject)길드의 한영호입니다. 직책은 부길드장입니다.”
“아, 저도 반갑습니다.”
영호는 그 말을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형우는 그 손을 맞잡으며 기억을 떠올렸다.
‘리젝이 중소연합에서 가장 강한 길드였던가?’
리젝은 A급 헌터 3명을 보유한 길드였다.
사실 원래 두 개의 길드였으나 중소연합이 만들어지면서 급하게 합쳐진 곳이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중소연합 내에서 가장 강한 발언권을 가졌다.
물론 내부에선 정치적인 알력과 갈등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A급을 제일 많이 보유했어도 막 100% 본인 뜻대로 이끌진 못했다.
“근처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마중을 나왔습니다. 바로 쉘터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영호는 형우를 집결지로 안내했다. 그리고 곧 명진 길드의 본부이자 쉘터인 그곳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