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2
‘미친…! 싱크홀도 아니고 무슨 이런 구멍이?!’
떨어지는 와중에 형우는 아래를 바라보며 경악했다.
추락도 서러운데 아래가 보이질 않았다.
주변이 어두워서 그럴 수도 있었으나 아직 지상과 가까운 상태였고 위에서 빛이 비치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바닥을 못 볼 리가 없었다.
그러나 바닥이 보이질 않았다.
그 말은 이 구멍이 꽤 깊다는 거였다. 그리고 형우 일행의 생존확률 또한 낮아졌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거 어떻게 하질 못하겠네.’
형우는 다급히 염력을 사용해 떨어지는 걸 막으려 했으나 위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돌들을 보곤 염력을 거뒀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지금 상황에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끄아아악!”
“꺄아악!”
계속해서 비명이 들려왔다.
다들 정신을 못 차리질 못했다.
비명이 이어지는 만큼 추락을 하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헌터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게 되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형우라면 그래도 살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은 각성도 못 한 C급, D급들이었다.
살 수 있는 희망이 안 보였다.
“이대로 죽을 수 없어! 죽을 수 없다고!”
도영은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
이대로 죽기엔 아쉬운 게 너무 많았다.
상현을 죽이긴 했으나 상현의 계획에 동조한 다른 길드들, 나아가 신우 길드까지.
모두 원수였다.
그들을 못 죽이고 여기서 허무하게 낙사(落仕) 하는 건 정말 억울했다.
팟.
그런데 그때 도영에게서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가, 각성?”
형우는 바로 인사니오의 눈으로 이도영을 확인했다.
[이도영 /C급/1소켓-C급 방어 강화 2소켓-B급 스톤 쉴드]
‘미구현이 사라졌어! 진짜 각성을…!’
도대체 무슨 경우인진 모르겠지만, 도영이 2차 각성을 했다.
'무슨 이런 순간에 각성을 해?'
형우는 또다시 소영과 같은 천재를 보며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다만, 천재라서 각성한 건 아니었다.
위기의 순간 각성하는 건 이미 학회에서 인정받는 정론 중 하나였다.
워낙 멀티 소켓을 가진 인구가 적다 보니 2차 각성에 대해선 연구자료가 없었으나 첫 각성을 할 땐 위기의 순간 각성하는 경우에 대한 자료가 많았다.
실례로 처음 몬스터들이 등장했을 때 위기의 순간 각성한 능력자들 덕분에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만약 그때 각성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최소 반 이상의 인구를 몬스터에게 헌납해야 했다.
‘그래, 그건 좋다 이거야. 왜 갑자기 기절하냐고!’
2차 각성을 끝낸 도영은 각성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떨궜다.
상황으로 봐선 다시 깨어난 후에야 본인이 2차 각성을 했다는 걸 알아챌 듯싶었다.
쿠웅! 쿵!
추락하는 형우 일행에서 위에서 같이 떨어진 돌이 벽과 부딪히면서 날아왔다.
이전까진 대치상황이었으나 가속도가 붙은 덕분에 곧 일행을 덮칠 것 같았다.
“염력!”
형우는 바로 염력으로 돌을 막았다.
그와 동시에 일행 전원에게도 염력을 사용했다.
“크윽!”
일단 막고 보긴 했는데 무게가 장난 아니었다.
염력도 일단 한계란 게 존재했다.
한계 이상의 무게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돌과 경매장의 잔해가 떨어졌다.
쿵! 쿵!
“큭…!”
무게가 더해지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충격까지 같이 전해지자 형우는 죽을 맛이었다.
그 때문에 염력을 사용해서 공중에 떠 있는데도 조금씩 아래로 추락했다.
“윈드!”
휘이잉!
형우는 윈드를 사용해 돌 위를 막았다.
그러나 이건 임시방편이었다.
큰 돌 하나만 떨어져도 얼마 못 버티고 윈드가 깨질 터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염력을 좀 강화해주는 건데!’
돈이 없어서 2강이 한계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았을 것 같았다.
형우는 아래를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아직도 끝이 안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블링크로 실어나를걸!’
깊은 줄은 알았으나 이 정도로 깊을 거라곤 생각 못 했다.
그 때문에 혹시 중간에 타이밍을 놓치면 바닥과 먼저 닿는 이들이 생길까 봐 블링크로 탈출하는 건 포기했었다.
물론 그래도 소용없었을 터였다.
다 떨어지기도 전에 돌 때문에 먼저 죽을 게 뻔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지만.
“아!”
그때 형우의 눈에 작은 틈이 보였다.
사람 하나 겨우 비집고 들어갈 만한 좁은 곳이었으나 지금은 저곳 말고는 살 방도가 없었다.
게다가 어느새 일행 모두가 기절했는지 비명도 안 들려왔다.
“후우!”
형우는 기합을 넣듯 숨을 내쉬곤 염력에 힘을 더했다.
“염력!”
휙! 휙!
그곳을 향해 노예들과 엘프를 날려 보냈다.
염력을 중첩되어 사용됐기에 형우가 감당하는 부담은 더 커졌지만 이를 악물고 능력을 썼다.
털썩! 털썩!
그 덕분에 4명은 모두 무사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모두를 구하자마자 형우는 염력으로 본인의 몸을 이동시키려 했다.
“이제 나도…….”
쿠우웅! 쾅!
하필 그 순간 거대한 돌 하나가 떨어졌다.
이미 큰 돌 하나를 막고 있던 터라 위의 상황을 볼 수 없었던 형우는 속수무책을 당했다.
“크아악!”
순간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이어졌다.
형우는 악을 썼다. 그리고 잠시 후 돌 두 덩이는 지하를 향해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추락한 돌 뒤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간간이 떨어지는 잔해들을 제외하곤.
팟!
그때 블링크로 형우가 나타났다.
“후우… 죽는 줄 알았네.”
안으로 들어온 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위기의 순간 형우는 마지막 힘을 짜내 돌의 한 축을 위로 들어버렸다.
그 덕분에 조금의 공간이 생겼고 그곳으로 피한 뒤 바로 블링크를 사용했다.
빠른 순간적 판단 덕분에 형우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미치겠네.”
기절해있는 노예들을 바라보며 형우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기절해있던 엘프는 그렇다 쳐도 나머지는 너무 대책 없게 짐이 됐다.
덕분에 골치가 아파졌다.
이들이 깰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했다.
“아, 어떡할까?”
형우는 공간 너머를 바라봤다.
단순히 작은 틈 같은 곳이라 생각했는데 안이 꽤 넓었다.
게다가 다른 곳으로 이어진 길도 보였다.
만약 이곳으로 탈출할 수 있다면 미리 길을 알아봐도 좋을 듯싶었다.
‘일단 다녀오자.’
형우는 그 생각을 하곤 틈을 돌로 막아놨다.
혹시나 위에서 떨어진 뭔가가 그들에게 피해를 줄지도 몰랐으니까.
그렇게 작업을 해놓고 형우는 안으로 움직였다.
“이거 이상한데?”
안을 수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형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연적으로 생긴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인공적인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상황은 마치 누가 만들어놓은 곳 중간에 난입한 느낌 같았다.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었다.
틈으로 들어왔으니까.
“정말 수상해…….”
경매장 지하에 알 수 없는 장소.
형우는 이전보다 더 조심히 움직였다.
이제부터 누가 나올지 몰랐다.
그러나 다행히 아무것도 없었다.
인공적으로 만든 곳이긴 하나 그저 예비공간으로 만들어놓은 곳인지 한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 같았다.
‘더 들어가 봐야겠어.’
형우는 더욱더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 좀 더 들어갔을 때 거대한 공동이 나타났다.
위에 있던 경매장보다 더 넓었다.
그런데 그곳에 의외의 존재들이 있었다.
‘이종족?’
공동에는 수많은 이종족과 인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손발이 결속된 채 벌벌 떨면서 무언가를 지켜봤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엔 결속된 이종족 노예, 인간 노예 수십과 그들의 주인으로 보이는 죄수 몇 명이 있었다. 그리고 저들의 정체는 모르나 놀랍게도 이제 곧 벌어질 장면은 형우도 알고 있는 거였다.
“합성.”
“꺄아악!”
“크허억!”
“으아아악!”
합성이란 말과 함께 이종족들이 하나로 합쳐졌다.
수십의 이종족은 사지가 찢겨나가면서 한데 뭉쳐졌고 곧 하나가 됐다.
‘여기 설마?’
형우는 F구역에서 봤던 그 장면을 떠올렸다.
파츠 길드 내부에 용준과 같이 들어갔을 때 봤던 장면.
거기서 봤던 것과 똑같은 일이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형우는 구역질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스아아.
그런데 파츠 길드에서 봤던 것과 조금 다른 건 있었다.
그때 만들어졌던 영혼석은 붉은빛이 가득했다.
그래서 붉은 영혼석이라 말하기도 했는데 이번 영혼석은 달랐다.
이번에 만들어진 영혼석은 검은빛이 은은하게 나고 있었다.
‘검은 영혼석?’
검은빛은 보기만 해도 불길한 무언가가 있었다.
형우는 그것에 인상 찌푸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지영에게 좀 자세히 들어둘걸.’
형우의 동생인 선우를 챙겨주기 위해 정신이 팔렸던 터라 지영에게 따로 이것에 대해 알아볼 생각을 못 했다.
아니, 어차피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게 더 주요했던 거 같았다.
그 안일함 덕분에 지금의 형우는 무지(無知)했다.
그런데 그때 다른 길로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형우는 그들을 보며 몸을 숨겼다.
“이 벌레보다 못한 인간들!”
안으로 들어온 건 SRU였다.
온몸이 비늘에 뒤덮인 드래고니안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굴로 그들을 노려봤다.
“감히 우리 동족의 생명으로 이곳에서 이딴 걸 만들고 있었다니…….”
“이딴 거라니요? 이건 우리 인류의 위대한 발견입니다. 쓸모없는 이종족을 쓸모가 있게 만들어주는 친환경 재활용이라고요.”
드래고니안의 말에 누군가 대답을 하며 앞으로 나왔다.
“반갑습니다, SRU 여러분. 이 시설의 책임자인 유혁기라고 합니다.”
“네놈의 이름 따윈 알고 싶지도 않다!”
우웅!
드래고니안의 호통에 공동 전체가 울렸다.
그건 단순한 호통이 아니었다.
자신의 힘을 방출한 거였다.
‘최소한 S급…!’
형우는 그 힘을 느끼며 드래고니안이 S급 이상임을 짐작했다.
일전에 봤던 엘프 가디언들이나 차민과 비슷한 힘이었다.
그런데 그 힘에도 혁기는 표정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데미지를 받은 형우도 인상이 써질 지경이었는데 바로 앞에서 받은 혁기는 멀쩡했다.
그건 혁기도 S급이란 증거였다.
‘무슨 S급이 이리 많아?’
한국 내에 공식적인 S급 8명이었다. 그리고 비공식적인 멤버는 형우가 아는 건 두 명 존재했다.
SH 길드에 1명, 명진 길드에 1명.
차민은 공식적인 기록에 속해있었기에 제외였다.
여하튼 S급은 공식적으로 8명이었는데 이 숫자는 절대 적은 게 아니었다.
과거에도, 지금도 최강인 미국도 기껏해야 공식적으로 11명을 보유했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더 있을지 몰랐으나 이 정도만 해도 세계 최대의 S급 헌터 보유국이었다.
그다음으로 많은 건 EU였다.
브렉시트 이후 다시 합류한 영국이 포함됐는데 그들은 S급 헌터를 공동으로 운용하고 있어 수가 10명이나 됐다.
다음은 중국 9명, 러시아 7명, 일본 5명, 기타 국가 총합 10명이었다.
전 세계를 다 합쳐도 공식 인원이 겨우 60명.
비공식이란 게 있었지만 그래 봐야 백을 넘진 않을 터였다.
그만큼 S급은 희귀했다.
그런데 감옥에 들어와 보니 S급을 너무 많이 보는 것 같았다.
“버스터!”
콰아아앙!
형우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전투가 시작되었다.
S급들의 전투답게 위력은 상당했고 노예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SH 길드 측 인원이 막으려 했으나 SRU 멤버가 달려들어 막았다.
덕분에 난장판이 시작됐다.
‘정말 난장판이네.’
형우는 이종족과 SH 길드가 맞붙는 걸 보며 인상을 썼다.
이대로 가다간 어느 한쪽도 살아남기 힘들어 보였다.
양측 다 정말 필사적이었다.
모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싸울 것 같았다.
그런데 특이한 게 보였다.
이종족들이 죽으면서 영혼석을 떨구는 모습을 말이다.
‘이종족이 영혼석을 떨궈?’
이종족과 몬스터는 영혼석을 떨구지 않았다.
왜 그런지 아직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지구에서든 감옥에서든 이종족과 몬스터는 죽으면 그저 시체로 남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선 죽은 이들이 영혼석을 남겼다.
아무래도 뭔가 특수한 장치나 능력이 이 공동 내에서 작용하는 듯했다.
그 덕분에 공동 바닥에 순식간에 수많은 영혼석이 쌓이고 있었다.
그런데 형우는 그 생각을 하다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
‘잠깐? 이제 보니 나한텐 개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