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2-21
F구역 옛 파츠 길드 본부.
이곳은 한때 수많은 길드원과 노예 광부들을 부리던 곳 파츠 길드가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파츠 길드는 순식간에 망했고 사람의 발길이 끊어졌다.
다만, 그건 얼마 전까지 사실이었다.
지금은 달랐다.
F구역에 들어온 떠돌이 몬스터들이 아닌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또한,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건 F-5지점으로 옮겨! 상하면 안 되니까 조심히 옮기고! 어이, 거기! 그거 부서지면 네가 책임질 거야?! 조심히 못 해?!”
박 사장은 목청을 높이며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 지휘에 따라 길드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수많은 건설 자재와 식료품 등이 운반되었고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는 건물을 짓기 위한 뼈대가 차곡차곡 올라가고 있었다.
덕분에 삭막했던 F구역에 활기가 돌았다.
비록 겨우 바닥과 뼈대만 완성된 거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변화는 충분했다.
“굼벵이처럼 움직이지 말고 후딱후딱 움직여! 거긴 F-19지점이잖아? 회의 때 졸았어? 그건 F-9로 옮기라고 했…….”
탁.
“박 사장, 좀 쉬엄쉬엄해.”
한창 열을 내며 지휘하는 박 사장의 어깨에 손이 올라왔다.
박 사장이 고개를 돌리자 김 사장의 얼굴이 보였다.
벌써 부길드장이 된 지 꽤 지났지만 둘은 예전에 부르던 호칭이 편한 건지 계속 박 사장, 김 사장으로 부르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길드원까지 그렇게 부르는 건 아니다.
길드원이 그렇게 부르면 바로 화를 냈다.
“뭘 쉬엄쉬엄해? 빨리해도 모자랄 판에?”
“어허. 뭘 빨리해. 저거 지어지면 어차피 속도 팍팍 날 텐데. 그때 가서 지어도 늦지 않아. 지금 이렇게 하는 게 시간은 빨라 질지 몰라도 돈 소모가 장난이 아니라고.”
짜증을 내는 박 사장에게 김 사장은 뒤를 가리켰다.
그러자 박 사장은 뒤를 손가락질했다.
“저거 때문에 빨리하는 거라고.”
그들의 뒤엔 거대하게 지어지는 무언가가 보였다.
벌써 규모가 5층에 달하고 있었고 계속해서 위로 건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저 건물이 저 정도까지 지어지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러나 그건 이 이름 앞에서 다 이해가 됐다.
블랙 머천트.
감옥 내에서 유일하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상인의 이름이었다.
“도대체 블랙 머천트 저 양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여기에 상점을 짓겠다는 거야.”
박 사장은 잔뜩 짜증을 내며 얼굴을 구겼다.
사실 블랙 머천트의 상점이 들어서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었다.
F구역이 그동안 천대받았던 것은 그저 최하급의 구역이라 그런 게 아니었다.
상점의 부재.
이게 가장 큰 이유였다.
감옥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생필품이 이 상점에서 나왔고 상점이 있어야 부산물을 팔 수가 있었다.
죄수 간의 거래로는 감당이 안 됐다.
그 때문에 블랙 머천트의 상점은 감옥에서 구세주라고 불렸다.
그런데 그 상점이 F구역에 다시 생긴다.
그 말은 F구역에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 거란 소리였다.
비록 낮은 구역이라고 하나 사냥터는 찾으면 얼마든 있었다.
사냥은 하고 싶은데 실력이 안 되는 낮은 등급의 헌터는 이제 E구역만이 아니라 F구역에서 몰려들 터였다.
다만, 그 때문에 바빠진 건 박 사장이었다.
“저거 완성되고 소문 퍼지면 사람들 몰려들 텐데 그 전에 우리가 싹 다 선점해야 한다고. 아주 더 뭐 지을 곳 없게 빽빽하게 지어놔야 우리가 다 해 처먹지!”
“아주 욕심이 하늘을 찌르는구만. 그래, 사서 고생하게. 난 신선놀음이나 하려니까.”
“이 배신자!”
“그래, 나 배신자야.”
박 사장이 죽을 듯이 째려봤지만 김 사장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에 미소까지 띄웠다.
“거기 빨리 안 움직여!”
결국, 박 사장의 화는 길드원들에게 향했다.
아무런 잘못 없는 그들은 박 사장의 화를 받으며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으흠…….”
“…….”
“으흠…….”
“…….”
“으흠…….”
“뀨, 뀨우?”
뀨우는 자신에게 부담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형우를 바라보며 당황했다.
몇 분간 계속 쳐다만 보고 있으니 어떤 생물이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어진 멘트도 문제였다.
“뀨우야. 전에 했던 거 있잖아. 그거 한 번 해볼래?”
“뀨우?”
“전에 했던 거 그거. 응? 다시 좀 보여줘 봐. 힘주고! 끄으응 해보라니까?”
“뀨, 뀨우우!”
“아니, 뀨우 말고 끄으응!”
흔들흔들.
형우는 뀨우를 흔들면서 독촉했다.
그러나 뀨우는 그저 괴로워할 뿐이었다.
며칠 전 에피리아에서 위기를 모면하고 형우는 뀨우에 대해서 더 큰 의문을 가졌다.
‘등급을 올려주는 버프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잖아.’
뀨우가 배변을 가장한 캐스팅을 마치고 형우에게 준 버프는 무려 속박의 등급을 S급으로 올려줬다.
비록 일시적이고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분명 그 순간만은 S급이 됐었다.
S급이 되자 정말 A급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을 느꼈다.
그 때문에 다시 A급으로 돌아왔을 땐 정말 큰 허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마약을 하는 건가?’
잔뜩 기분이 좋았는데 그게 사라지니 미칠 거 같았다.
마약의 금단현상과 같은 느낌.
그러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힘이 주는 금단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그것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자 뀨우에게 계속 들이대고 있었다.
그러나 뀨우는 그날 이후로 버프를 주지 못했다.
아니, 이틀은 아예 그런 말을 꺼낼 상태가 아니었다.
버프를 준 이후 창백해진 뀨우는 한 이틀을 앓아누웠다.
그 때문에 놀란 소정이가 울먹이면서 뀨우를 간호했었다.
다행히 이틀이 지나고 다시 쌩쌩해졌지만, 당시엔 형우도 많이 놀랐다.
그러나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 걸 보자 형우의 호기심이 동했다.
더불어 S급의 힘을 다시 느끼고 싶은 욕망도 강했고.
하지만 결과는 이랬다.
이때쯤 항상 뀨우의 구세주가 나타났으니까.
벌컥!
“오빠!”
문을 열고 들어온 소정이는 뀨우를 흔들고 있는 형우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에 찔끔한 형우는 뀨우는 조심스레 내려놨다.
“뀨우, 괜찮아?”
“뀨우! 뀨우!”
뀨우는 마치 엄마에게 이르는 아이처럼 뀨우뀨우거렸다.
그 모습이 얄미웠으나 형우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더 떠들어봐야 자신만 더 악당이 될 뿐이었으니까.
“왜 이렇게 자꾸 뀨우를 괴롭혀요?”
“미, 미안하다.”
“오빠 미워요! 흥!”
쿵!
소정은 그 말을 하곤 밖으로 나갔다.
“쩝…….”
형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닫힌 문을 바라봤다.
요 며칠간 계속 뀨우를 괴롭혔더니 소정에게 제대로 미운털이 박혔다.
‘포기해야 하나…….’
미운털만 박히고 얻어지는 게 없으니 형우도 영 답답했다.
그러나 포기할 순 없었다.
일시적이라도 무려 한 단계를 올려주는 능력.
소정에게 계속 미움을 받더라도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할 터였다.
앞으로 만약 형우가 S급 능력을 얻게 된다면 뀨우의 버프로 S급 이상의 힘을 낼 수 있었다.
그걸 놓치기엔 정말 아까웠다.
“후우… 그건 그렇고 능력을 좀 정리해볼까?”
형우는 사무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종이와 펜을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1소켓 - A급 속박 1강.
2소켓 - C급 윈드 풀강.
3소켓 - D급 블링크 풀강.
4소켓 - E급 재생력 풀강.
5소켓 - B급 염력 0강.
종이엔 하나의 소켓이 더 추가되어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능력이 보였다.
‘딱 원하던 보상이 나왔네.’
형우는 그 생각을 하며 보상을 떠올렸다.
차민을 막고 인사니오에게 얻은 보상은 B급 영혼석 흡수, 소켓, 랜덤 박스, 900만 포인트이었다.
그중 형우는 B급 영혼석 흡수를 사용했다.
대상은 아공간 주머니에 잘 잠들어 있던 장현민의 영혼석이었다.
장현민의 능력은 B급 염력.
변변찮은 공격 능력이 없던 형우에겐 정말 필요한 스킬이었다.
형우는 그것을 사용해 바로 장현민의 영혼석을 흡수했다.
덕분에 이제 형우에게도 A급 속박에 걸맞은 공격 능력이 생겼다.
‘강화는 이번 보상 얻은 거로 해야겠네.’
보상으로 얻은 900만 포인트와 원래 가지고 있던 것들을 합쳐서 단번에 풀강을 만들 생각이었다.
비록 2,000만 포인트라는 거금이 들지만 투자할 가치는 충분했다.
게다가 이번에 F구역을 점령하면 얻은 부수익이 상당했기에 문제없었다.
사실 다들 파츠 길드가 사라지며 있던 것들 모두 없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 옛 본부를 뒤져보니 쌓아놨던 블러드 큐브와 다른 재산들 모두 그대로 있었다.
그 덕분에 그 모든 것들을 처분하면서 상당한 양의 포인트가 쌓였다.
거기에 블랙 머천트가 준 사례금도 있었다.
고맙다면서 가볍게 받으라고 준 포인트가 무려 1,000만 포인트.
덕분에 형우는 B급 염력을 풀강하고도 약 1,500만 포인트 정도가 남을 예정이었다.
다만, 이 중 500만 포인트는 현재 F구역 재건에 투입됐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정말 많은 돈이었다.
‘A급이나 한번 강화해볼까?’
애매한 1강에 걸쳐있는 A급 속박이 계속 걸렸다.
이참에 3강쯤 하면 그래도 기분이 좋을 듯싶었다.
“그래. 이참에 속박이나 강화를…….”
똑똑.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드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형우의 말에 사무실 안으로 김 사장이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김 사장의 손엔 웬 편지 하나가 들려있었다.
“음? 무슨 편지입니까?”
“아, B구역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B구역이요?”
형우는 의문이 가득한 시선으로 편지를 바라봤다.
B구역에서 올 편지가 없었다.
아니, B구역뿐만 아니라 다른 구역 전부.
잠시 C구역에서 사건이 있었지만 만약 그것 때문이라면 편지가 아닌 기습과 공격을 받았을 터였다.
그런데 온 것은 고급스럽게 잘 포장된 편지.
형우는 일단 편지를 받아 내용물을 꺼내 읽어봤다.
“감옥 최대의 경매장에 초대합니다? 한 달마다 열리는 저희 경매장은 선별한 희귀 상품들이… 김 사장님 이게 뭡니까?”
“그… 아무래도 초청장인 거 같습니다.”
“초청장이요?”
“네. B구역 경매장은 원래 초청된 인원만 초대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실 말이 좋아서 초청이지 돈 많은 사람이나 좀 강한 사람들을 선별해서 뿌리는 겁니다. 아무래도 저희 길드도 좀 소문이 난 듯합니다.”
“으흠…….”
김 사장의 설명에 형우는 침음성을 흘렸다.
E구역에 이어 F구역까지 확장한 대형 길드.
게다가 자금력도 꽤 나쁘지 않았다.
그게 보이니 아무래도 바로 초청장이 온 듯싶었다.
‘아 그러고 보니 방인혁이 여기서 장사를 했지?’
SH길드 길드장 방수혁의 동생 박인혁.
그가 이곳에서 노예장사를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경매장에선 주로 노예도 거래했다.
‘이참에 들러서 소정이 같은 애들이 있나 한 번 가볼까?
잘 찾아보면 소정이 같은 케이스가 꽤 있을 것 같았다.
이미 각성을 마쳐서 B급 A급 이상인 노예들은 가격이 비싸 사는 게 망설여질 터였다.
그러나 멀티 소켓 능력자이면서 후천적으로 얻은 능력이 더 강한 노예들은 비싸지 않았다.
제대로 있기만 하다면 정말 많은 능력자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쉽지 않겠지.’
멀티 소켓 능력자들은 그것만으로도 값이 비쌌다.
다음 각성할 능력이 더 높을 수 있었으니까.
소정이처럼 멀티 소켓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이상 처음부터 비싸게 값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노예상 이곳저곳을 들르고 경매장까지 둘러보면 꽤 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능력을 찾아야 하는데 노예를 찾고 있네.”
형우는 그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며칠 뒤 형우는 B구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