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2-17
“전 파츠 길드 본부, 정리 완료입니다!”
“숙소 쪽 정리 완료입니다!”
“나머지 섹터 정리 끝났습니다!”
속속 들려오는 보고.
블랙 머천트를 구한 이후 형우는 F구역에서 거주 중인 가장 강한 오크 라이더들을 없애버렸다.
물론 없애는 와중에 소정의 테이밍으로 몇몇을 더 링크했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다 고만고만한 몬스터만 남았고 형우가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
덕분에 형우는 문 근처에서 대기하며 블랙 머천트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두 번씩이나 목숨을 구명 받을 줄은 몰랐네. 다시 한 번 고맙네.”
블랙 머천트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뒤에 있던 부하 둘이 같이 고개를 숙였다.
“음…….”
그러나 그걸 보면서 형우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이 벌써 두 번째.
게다가 인사니오는 연속해서 방관하라는 의뢰서를 보냈다.
이 방관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쩌건 인사니오와 블랙 머천트의 관계가 안 좋다는 건 분명한 거 같았다.
문제는 무슨 문제로 안 좋아졌냐는 거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분께서 싫어하시는 모양이구만.”
“예?”
“쯧쯧, 쪼잔한 양반.”
“……?”
블랙 머천트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곤 이번에도 랜덤 박스를 건넸다.
툭.
“자네가 최초네. 나에게서 두 번이나 이 선물을 받은 건.”
“음… 자랑스러워 해야 하나요?”
“허허, 자랑까지야. 그래 주면 고맙지.”
블랙 머천트는 허허 웃었다.
그런데 그게 상당히 언밸런스했다.
노화가 진행됐다고 하나 아직 기껏해야 30대 중반 정도였다.
게다가 노화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외모는 죽지 않았다.
그리 나이 안 먹은 미남자가 노인의 말투를 하니 영 안 어울렸다.
그러나 실제로 엘프의 나이를 안다면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엘프의 수명은 보통 800년.
이 중 100년의 성장기를 거치고 600년간 노화 없이 성인의 모습으로 지낸다.
이후 100년 동안 조금씩 늙어가는 거였다.
그걸로 유추했을 때 블랙 머천트의 나이는 대략 730살에 가까웠다.
700살부턴 거의 인간과 같은 속도로 늙었기에 지금 모습이 30대 정도라면 730살이 맞았다.
여하튼 그 정도 나이라면 당연히 이런 말투가 이해됐다.
“그런데 여긴 왜 오신 겁니까? 여긴 상점이 없을 텐데요?”
현재까지 개발된 구역 중 유일하게 블랙 머천트의 상점이 없는 곳이 바로 F구역이었다.
그 이유는 F구역에서 큰 사건이 하나 벌어졌기 때문.
원래 F구역엔 블랙 머천트의 상점이 있었다.
그러나 과거에 큰 사건이 하나 일어나며 블랙 머천트의 상점이 파괴됐다.
일명 F구역 몰살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최초로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였다.
당시 C구역까지 진출한 상태에서 바로 B구역으로 넘어가선 시기에 상위권 실력자들이 대부분 자리를 비웠었다.
덕분에 무력하게 당했고 F구역에 있던 인원 전원이 몰살당했다.
이후 그 자리를 파츠 길드가 혼자 차지한 거였다.
그때 블랙 머천트의 상점도 같이 파괴됐다.
물론 이후에 다시 짓지는 않았다.
F구역은 그 날 이후 구매력이 전무한 곳으로 변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곳에 다시 상점을 지어봤자 손해였다.
그래서 F구역엔 상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블랙 머천트가 상점도 없는 F구역에 올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물건을 잔뜩 가져온 블랙 머천트는 이곳에 왔다.
“상점에 가는 것 말고도 일은 있네.”
“일이요?”
“아, 마침 잘 됐군. 자네 혹시 시간이 있나? 시간 좀 있으면 나 좀 도와주게. 보상은 충분히 주겠네.”
블랙 머천트는 그 말을 하며 자신이 입은 로브의 안주머니를 슬쩍 보여줬다.
안주머니엔 랜던 박스와 포인트가 빼곡히 들어있었다.
‘이게 감옥식 돈지랄?’
그 생각과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대답을 해버렸다.
F구역 내부.
마치 감옥 내부처럼 F구역 내부엔 긴 통로가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완벽히 끊긴 곳.
아니, 애초에 들여놓지도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 길을 형우와 블랙머천트 일행이 걷고 있었다.
“여기 정말 넓은 거 같아요!”
“뀨우!”
소정과 뀨우는 주변을 바라보며 감탄을 했다.
E구역은 돔 형식으로 딱 공간이 한정되어 있었다.
소도시를 지을 수 있는 넓이의 공간 외에 다른 공간은 전무했다.
물론, 우연히 발견한 지하에서 던전게이트가 발견되긴 했으나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끝도 없이 길이 이어졌다.
이미 크기는 E구역을 넘어섰다.
“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진 거야…….”
형우도 내부로 이렇게 깊숙이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아니, 형우 말고도 지금까지 F구역에 왔던 다른 죄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모험심으로 꽤 깊게 간 이들 몇몇을 제외하곤 아무도 이곳에 오지 않았다.
밖의 통로처럼 내부 길은 엄청나게 복잡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미로였기에 헤매기 일쑤에 몬스터까지 괴롭혔다.
그 때문에 다들 내부탐사를 포기했다.
위험도 하지만 겨우 F구역이었으니까.
결국, 누구도 F구역의 끝엔 가보질 못했다.
그 때문에 내부는 원치 않게 미지의 세계가 돼버렸다.
‘다른 인원들은 놔두길 잘했네.’
형우는 블랙 머천트의 의뢰를 받아들이며 나머지 인원들은 모두 F구역에 놔뒀다.
어차피 블랙 머천트를 호위하는 정도면 형우 혼자서 충분했다. 그리고 F구역을 점령하고 정비해야 했으니 그들이 남아있는 게 나았다.
게다가 혹시 문제가 생긴다면 다른 이들은 형우가 지켜주기 힘들었다.
다만, 소정이만은 따라왔다.
하도 같이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이들보다 소정이를 데려가는 게 더 나았다.
뀨우를 껴안고 귀엽게 따라오는 소정이는 저래 보여도 무려 A급이었으니까.
게다가 소정이가 링크한 오크 라이더도 있었다.
“크륵.”
“크륵.”
벌써 테이밍한 개체수가 여섯이었다.
하나는 뀨우, 나머지 다섯은 오크 라이더.
뀨우는 아직 능력을 모르니 제외.
다만, C급의 오크 라이더 5마리는 충분히 전력에 도움이 됐다.
그 때문에 오히려 다른 C급 헌터들이 따라오는 것보다 소정이 한 명이 더 나았다.
게다가 오크 라이더는 나오는 몬스터들을 헌터들보다 빠르게 정리했다.
그 덕분에 그들은 여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벌써 꽤 시간이 흐른 거 같은데…….”
“조금만 더 힘내시게. 이제 다 왔네.”
‘저 소리가 도대체 몇 번째야.’
형우가 예전 아버지와 등산을 했을 때 산 정상은 언제 도착하냐고 투정하면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이제 다 왔다.’, ‘저 봉우리만 넘으면 된다.’ 같은 말을 했다.
딱 그때와 같아서 형우는 피식 웃었다.
다만, 피식 웃는 것과 달리 얼굴은 쳐졌다.
벌써 F구역 안으로 들어온 지 1시간이 넘었다.
그것도 꽤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그런데도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질 못하고 있었다.
‘랜덤 박스랑 포인트가 뭐라고… 에휴, 일단 계속 따라가 보자.’
형우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블랙 머천트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또 몬스터를 처리하며 이동한 지 1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여기… 입니까?”
“허허, 아직 완벽히 도착한 건 아니지만 이곳이 1차 목적지네.”
“음…….”
형우는 도착한 주변을 바라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도착한 곳은 그저 벽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벽.
더 이상 길이 없었고 다른 쪽으로 가는 길도 없었다.
그런데 블랙 머천트는 이곳이 1차 목적지라고 말했다.
“뀨우! 뀨우!”
“뀨우, 왜 그래?”
그런데 뀨우가 벽을 향해 짖고 있었다.
마치 벽 너머에 뭔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신수라 그런지 바로 느끼는구만.”
“네?”
“잠시만 기다리게.”
블랙 머천트는 그 말을 하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랜덤 박스? 아니, 색이 다른데?’
블랙 머천트가 품속에서 꺼낸 물건은 랜덤 박스와 외형이 닮아있었다.
다만, 색이 좀 달랐다.
랜덤 박스는 검은색인데 꺼낸 건 금색이었다.
블랙 머천트는 꺼낸 것을 벽에 가져다 댔다.
벽엔 딱 작은 네모모양의 홈이 있었다.
그곳에 딱 맞춰 넣자 벽에 변화가 일어났다.
쿠궁.
“어?”
“벽이 움직여요!”
전혀 움직일 거 같지 않았던 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문처럼 벽이 뒤로 밀려났고 그 뒤의 공간이 드러났다. 그리고 순간 순도 높은 산소가 그들을 덮쳤다.
후욱.
“우아! 우아!”
“…….”
소정은 그곳을 보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벽의 뒤 공간엔 하나의 숲이 펼쳐졌다.
감옥에선 볼 수 없는 숲이 말이다.
감옥에도 식물이 살긴 했다.
그러나 이렇게 숲을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구역마다 작물을 키우긴 하나 숲을 만들진 않았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니 의문이 몇 가지 생겼다.
‘몬스터들은 어떻게 식량을 얻고 우린 어떻게 숨 쉬는 거지?’
일반적인 상식으로 본다면 생물은 당연히 무언가를 섭취해야만 살고 공기를 들이마셔야만 산다.
그런데 이곳엔 식량이나 공기를 공급해주는 부분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러나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몬스터의 경우 감옥에서만 나는 이끼 식물을 먹었다. 그리고 상대 종족이나 동족을 먹으면서 식량을 해결했다.
공기의 경우는 산소를 생산하는 특이 식물들이 존재했기에 그들이 숨 막혀 죽진 않았다.
물론 그런 특이 식물을 연구할 사람이 없었으니 다들 그 존재를 알지 못했다.
“뀨우! 뀨우!”
뀨우는 좋다고 짖으며 숲을 돌아다녔다.
사실 숲이란 말도 좀 과했다.
정원 정도?
넓은 통로에 길게 펼쳐진 정원 정도의 모습이었다.
“자, 안으로 들어가세.”
블랙 머천트는 그 말을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형우와 소정도 그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음?”
그때 뭔가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뭔가 뱀 여러 마리가 지나가는 듯한 섬뜩한 기운.
그 기분을 느끼자마자 고개를 돌려보니 붉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7명이 보였다.
그들은 무표정한 눈으로 형우와 소정을 바라보며 활을 겨누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 느꼈어…!’
저들이 나타나 활을 겨눌 때까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안 것도 저들이 완벽히 자리를 잡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벽 너머로 가는 길까지 막아섰다.
꽈악.
그들은 활의 시위를 힘껏 당기고 있었다.
팽팽한 시위.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를 긴장의 순간이었다.
“그만하게. 내가 초대한 손님일세.”
“…….”
블랙 머천트는 활을 거두라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그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초대한 손님이라네.”
“…….”
“어서들.”
그들은 계속된 블랙 머천트의 재촉에도 변함없이 활을 겨눴다.
블랙 머천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를 보고 눈을 보시게.”
휙.
갑자기 그 말 한마디에 모두 활을 치웠다.
활을 내리자 섬뜩한 기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알바 하나 하다가 죽을 뻔했네.”
형우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신에게 활을 겨눈 이들을 바라봤다.
붉은 두건 탓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이들도 엘프인 거 같았다.
‘지구에서 알던 엘프들과 영 다른데. 이놈들은 왜 이렇게 강해?’
A급 헌터인 형우의 이목을 완벽히 속였다.
그 말은 최소한 S급이란 말이었다.
그런데 그 S급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일곱.
기겁할만한 전력이었다.
‘죽어도 블랙 머천트는 건들지 말아야겠다.’
형우는 그 생각을 하며 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미안하네. 아무래도 외부인에 대해서 민감하다 보니…….”
“도대체 여기가 어디기에 이러는 겁니까?”
형우는 사과하는 블랙 머천트를 향해 물었다.
그러나 블랙 머천트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다만, 다음 공간으로 이어진 문을 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쿠궁.
“여, 여긴?”
“환영하네. 숲의 고향이자 엘프들의 보금자리, 에피리아에 온 것을.”
문 너머엔 거대한 숲이 보였다. 그리고 형우가 평생 봐왔던 엘프들의 몇 배나 되는 엘프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