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2-15
드디어 며칠 뒤 용준의 출소날이 됐다.
용준의 옆엔 같이 출소할 지영이 서 있었다.
형우는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 감옥의 문까지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출발은 안전을 위해서 밤이 지난 후로 정했고 그사이 형우는 용준에게 많은 것을 전해줬다.
“이건 비상용 포션이고 이건 네가 나중에 문제 생기면 쓸 계약서랑 해독 포션. 아, 이건 정말 잘 챙겨야 해. 이게 치료제야.”
“…형 그 말만 해도 벌써 열 번째에요. 종류랑 위치랑 다 외워버리겠어요. 그 정도만 해요 제발.”
“아직 안 끝났어. 잠깐 이것도.”
“으어… 살려줘…….”
형우의 설명은 끝나지 않았다.
용준은 귀를 막으며 괴로워했지만, 그럴수록 말이 많아졌다.
다만, 용준도 더 뭐라 할 순 없었다.
뭐 때문에 형우가 저러는 건지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제 오랫동안 동생을 괴롭혔던 병이 없어진다.
게다가 삶마저 풍족하게 해줄 수도 있었고.
그 때문에 그동안 모든 포인트를 긁어모아 치료제와 포션부터 별의별 돈 되는 것들을 챙겨줬다.
그걸 팔아서 병원비와 앞으로 선우가 살 집까지 모두 해결될 것이다.
그것에 대해선 지영이 해야 했다.
헌터라고는 하나 아직 미성년자인 용준이 하기엔 벅찼다. 그리고 여기에 용준에게 주는 수고비도 있었다.
비록 오래 본 사이는 아니다만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고 가장 먼저 출소하고 동생을 도와주겠다고 했었으니 챙겨주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한동안 용준에게도 꽤 챙겨주기 위해 포인트를 바짝 벌었다.
그 결과 잘 나가는 헌터들에 비해 부족하지만 그래도 꽤 많은 돈이 생겼고 그 돈으로 집이나 생필품 등의 문제는 모두 해결될 터였다.
“그리고 이건…….”
“아저씨. 얘 늦게 가면 아저씨 동생이 더 아파요. 이제 끝내요.”
“아…….”
지영의 말에 형우는 정신을 차렸다.
지금도 선우는 고통받고 있을 터.
한시라도 빨리 치료제가 용준에게 도착해야 했다.
결국, 지영의 말을 듣고 용준을 놓아줬다.
그러자 용준은 살았다는 듯 길게 한숨을 쉬곤 짐을 챙겼다.
형우가 챙겨준 짐 외에도 챙겨갈 본인의 짐이 많았다.
감옥에서 꽤 오래 생활했기에 정리에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옆에서 형우가 도와준 덕분에 정리는 금세 끝났고 어느덧 출소의 시간이 다가왔다.
드르륵!
두 번째 밤이 끝나고 문이 열렸다.
문에서 같이 대기하고 있던 형우와 용준, 지영, 소정, 박 사장, 김 사장은 문이 열리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
“네.”
출소가 가까워지자 형우도 용준도 말이 없어졌다.
감옥의 문에 가까워질 동안 아무런 말도 안 나눴고 각자 묘한 표정을 지었다.
탁.
“감옥의 문…….”
감옥의 문에 도착하자 첫날 보았던 그 철문이 보였다.
첫날엔 정신도 못 차렸던 터라 제대로 문을 보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정말 컸다.
문엔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고 칙칙한 검은색으로 칠해졌다.
아니, 원래 검은색인 재료를 사용한 듯싶었다.
쿠릉! 쿵!
출소자 둘이 도착하자 문은 자동으로 열렸다.
“출소자만 나와라. 나머지는 나오는 순간 죽이겠다.”
그리고 문틈 사이로 집행인이 보였다.
집행인은 살벌한 눈빛을 보이며 출소자가 아닌 형우와 두 사장을 노려봤다.
‘저놈들이 날 여기로 보냈다는 거지?’
다만, 형우는 그 살벌한 눈빛에도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살벌한 눈빛을 보내며 저항했다.
그 눈빛을 느낀 걸까.
집행인도 형우를 노려봤다.
“저, 그냥 나가면 되나요?”
그때 시기적절하게 용준이 끼어들었다.
“그렇다.”
집행인은 대답을 위해 고개를 돌렸고 둘은 그렇게 밖으로 향했다.
“형, 정말 고마웠어요. 나중에 된다면 꼭 다시 봐요.”
“그래. 나도 고마웠다. 나간다면… 꼭 보자.”
“네.”
“잘 가라, 용준아.”
“가서 또 사기 치지 말고.”
“오빠! 잘 가요!”
“뀨유-!”
4명과 한 괴생명체에게 작별 인사를 받으며 용준이 밖으로 나갔다.
지영은 밖으로 나가기 전 형우에게 살짝 눈짓했다.
그 눈짓의 의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둘이 나가자 문은 다시 닫혔다.
끼이익! 쿵!
“…!”
그런데 닫히기 일보 직전 형우는 볼 수 있었다.
형우를 향해 피식 웃는 집행인의 미소를 말이다.
그걸 본 순간 형우는 끓어오르는 살기를 주체하질 못했다.
그때 박 사장과 김 사장이 다가왔다.
“길드장님?”
“괜찮으십니까?”
둘은 형우가 용준과 헤어진 탓에 기분이 안 좋은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다만, 이유를 모르는 둘이었기에 형우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전 괜찮습니다. 이제 돌아가시죠.”
형우는 몸을 돌려서 E구역으로 돌아갔다.
“속박! 윈드!”
“하압!”
서걱! 푸욱!
“계속 전진! 이대로 다 쓸어버려!”
E구역 외곽 지역, 오크 부락.
앞장선 형우가 능력을 써가며 지원을 하자 길드원들은 어려움 없이 오크들을 처리하며 전진했다.
비록 오크가 겨우 F급이긴 하나 일반 오크들 말고 D급에 달하는 오크 전사나 오크 족장도 있었다.
게다가 가끔 돌연변이인 C급 자이언트 오크들도 나타난다.
그러나 형우에겐 별문제가 아니었다.
무려 A급이 속박을 걸어버리는데 거기서 벗어날 오크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인원들 대부분이 C급이었기에 마무리도 문제가 없었다.
“길드장님, 정리 끝났습니다.”
“뒤쪽까지 마무리됐습니다. 살아남은 오크는 없습니다!”
“후우… 수고하셨습니다.”
형우는 좌우에서 들려오는 보고를 들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바닥에 앉았다.
용준이 나가고 며칠 뒤 형우는 혼란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눈을 돌린 곳은 구역 밖의 몬스터들.
안 그래도 C구역에 다녀온 이후 제대로 전투다운 전투를 못 했던 터라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때 딱 맞춰서 박 사장이 제안을 건넸다.
구역 밖을 토벌하면 어떻겠냐고.
사실 구역 밖을 토벌하는 건 여러 의미가 있었다.
그저 주변 정리를 하는 것도 있었지만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수익이 생기기도 했다.
게다가 E구역이 워낙 초창기 구역이긴 하나 아직도 미개발 지역이 있었다.
그런 곳들을 들으면서 혹시 있을 대박을 치기 위해 이리저리 수색도 했다.
다만, 아까 말했다시피 E구역은 초창기 구역이었다.
워낙 많은 이들이 지나갔고 워낙 많이 개발되기도 했다.
그 때문에 별것이 없었다.
그나마 이득이라면 쉘터 하나를 찾았다는 거였다.
그 쉘터 덕분에 그들은 편히 쉴 수 있었다.
물론 그게 다였지만.
“길드장님,”
“네, 말씀하세요.”
“피해는 없으며 죽인 오크의 수는 총…….”
바닥에 앉은 형우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그는 피해 상황과 죽인 오크의 수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보고했다.
“…그리고 처리반에 연락해서 몬스터 사체를 정리하겠습니다.”
“네, 수고 좀 해주세요.”
“예.”
보고가 끝나자 그는 바로 처리반을 부르기 위해 E구역으로 향했다.
사실 그는 E구역에서 5대 길드 중 하나를 맡았던 배성문이었다.
D급 헌터로 나름 똑똑한 머리를 이용해 C급은 명훈을 이용해먹고 E구역을 5대 길드와 함께 지배하려고 했다.
그러나 하필 형우에게 걸려 모든 게 수포가 되었고 심지어 노예 계약까지 맺었다.
그 이후 성문은 정말 충실한 형우의 개가 됐다.
정말 비서로서 완벽한 모습을 보이면서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행동해 형우를 만족시켰다.
그러나 형우는 그가 왜 이러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감동을 줘서 노예 문서를 찢게 하겠다 이거겠지.’
형우는 사실 천성이 호구였다.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하나 남에게 독하질 못했다.
그러다 보니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이곳에서도 똑같았다.
물론 중간에 계기가 있어서 정말 독한 면이 생기긴 했으나 사람 천성이 어디 가는 거 아니라고 영 모질지 못했다.
그 때문에 형우의 성격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려졌다.
‘노예 문서로 자신들을 노예로 만들었지만 잘하면 풀어줄 수도 있는 인물.’
이미 박 사장과 김 사장에겐 나중에 풀어주겠다는 말을 했었다.
그 때문에 말은 더욱더 퍼졌고 덕분에 형우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다만, 이건 모두 박 사장의 노림수였다.
“이런 거로는 참 머리가 잘 돌아가신다니까…….”
형우가 그런 말을 한 건 사실이나 그건 기껏해야 최측근 한정이었다.
사실 박 사장이나 김 사장의 경우도 고민을 많이 했다.
다만, 형우와 지내면서 범죄자의 모습보단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줬기에 했던 말이었다.
그것조차 가식일 수 있었으나 그래도 형우를 많이 도와줬기에 언젠가는 풀어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범죄자들에겐 그럴 생각조차 안 했다.
아무리 좋은 모습을 보여줘도 해방해 줄 일은 없었다.
어차피 범죄자를 풀어줘 봤자 다시 범죄자가 생길 뿐.
이곳 감옥은 범죄자를 개과천선 시키는 곳이 아닌 더한 범죄자로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그래서 형우는 나중에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면 이들을 모두 데려가려 했다.
그게 안 된다면 감옥에서 나가기 전 공정하고 착하다는 문지기이자 S급 헌터인 차민에게 모두 넘겨줄 생각이었다.
‘이것도 나가고 나서야 생각할 일이지.’
형우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을 때 명훈이 다가왔다.
명훈도 5대 길드 길드장 출신 중 하나로 유일하게 E구역 5대 길드 길드장 중 C급 헌터였다.
“길드장. 저쪽에 뭔가 오고 있네.”
명환은 그 말을 하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엔 달려가는 트롤 무리가 보였다.
그런데 목표가 형우 일행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쫓고 있는 듯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다.
“누가 쫓기는 건가? 일단 바로 따라가 보죠.”
“예, 길드장님.”
“예, 길드장님.”
탓!
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들 곁에 모여서 달렸다.
빠르게 쫓아가 보니 검은 로브를 입은 3명이 10마리의 트롤에게 쫓기는 중이었다.
그런데 트롤이 일반적인 트롤은 아니었다.
“트윈헤드 트롤?”
추격 중인 트롤은 머리가 두 개였다.
나름 이 감옥에서 희귀종에 속하는 트윈헤드 트롤은 무려 B급에 해당했다.
다만, B급이라고 그냥 B급이 아니었다.
이 트윈헤드 트롤은 오우거도 이길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힘은 거의 오우거에 준하는데 재생력은 일반 트롤보다 더 뛰어났다.
게다가 일종에 버서커라 불리는 광적인 상태로 변하면 힘이 더 강해져 상대하기 더 까다로웠다.
그랬기에 상대만 보면 바로 달려든다는 호전적인 오우거도 쉬이 덤비지 못했다.
번쩍.
그때 형우의 안주머니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의뢰서?’
이 타이밍에 딱 의뢰서가 등장하자 형우는 더 망설일 게 없었다.
의뢰 내용은 안 봐도 뻔했다.
분명 트윈헤드 트롤을 죽이는 거 아니면 저들을 구해주는 거일 터.
어차피 둘 다 같은 내용이니 선택은 하나였다.
“어쩌건 구해주고 봅시다. 속박!”
꽈악.
“크르?!”
꽈당! 쿵!
형우는 바로 앞서 달려가는 선두 두 마리에게 속박을 걸었다.
그러자 관성을 못 이기고 두 마리의 트롤이 쓰러졌다.
그 쓰러진 트롤 뒤로 이어 달려오던 다른 트롤도 같이 넘어졌고 형우는 바로 달려들었다.
“윈드! 윈드! 윈드!”
휘이익! 서걱!
“크…!”
“크악!”
형우는 윈드를 D급 윈드 커터와 같이 만들어 날렸다.
그러자 트롤들은 속수무책으로 공격에 당했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 당할 트윈헤드 트롤이 아니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눈이 붉어졌다.
“크르르!”
눈이 붉게 물든 트롤들은 형우를 향해 진한 살기를 뿜어냈다.
자신들이 계속 쫓고 있던 대상들은 쳐다도 보지 않고 말이다.
“다들 좌우로 빠져요! 제가 신호 주면 바로 달려들고요!”
“예!”
“예!”
형우의 말에 다들 일사불란하게 양옆으로 빠졌다.
그와 동시에 트롤들이 달려왔다.
“속박!”
“크아!”
“크아아!”
트윈헤드 트롤들은 놀랍게 속박에 저항했다.
버서커 상태에선 물리적인 방어력이 낮아지는 대신 공격력과 디버프에 대한 저항이 극도로 높아졌다.
그 때문에 디버프 계열인 형우의 A급 속박이 제대로 통하질 않았다.
그래도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속박이 사용되는 동안 트윈헤드 트롤들은 멈칫했다.
그걸 보자마자 형우는 소리쳤다.
“속박을 쓰는 순간 능력으로 머리를 베어버리세요! 그리고 바로 빠지고요!”
“크아!”
형우가 말하는 사이 다가온 트롤 하나가 주먹을 내질렀다.
“블링크!”
팟! 쾅!
형우는 바로 블링크로 자리를 피했고 애꿎은 바닥에 주먹을 내지른 트롤의 눈은 더욱더 붉어졌다.
“속박! 지금!”
멈칫.
속박에 걸리자 다시 트롤들을 멈칫했다.
그 순간 능력들이 터져나왔다.
“윈드 커터!”
“익스플로젼!”
“워터 블레이드!”
“플레임 스트라이크!”
쾅! 콰과광! 콰앙!
멈칫한 사이 날아간 공격은 정확히 명중했다.
다만, 재생력이 좋은 트윈헤드 트롤답게 겨우 하나만 죽었다.
“이대로 계속 갑니다!”
그러나 트롤들에게 재앙은 이제 시작일 뿐.
이 작전은 계속 반복되었다.
기본적으로 트윈헤드 트롤들은 다른 트롤들에 비해 지능이 높았다.
그러나 버서커를 쓴 순간 이들은 오직 본능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같은 작전을 계속 써도 그들의 대응은 똑같았다.
덕분에 잠시 후 트롤들이 모두 쓰러졌다.
“크르…….”
털썩.
마지막 트윈헤드 트롤이 쓰러졌다.
“와아아!”
“역시 길드장님이시네. 길드장님 없었으면 이걸 다 어떻게 잡아?”
“살다 살다 버서커 걸린 트윈헤드 트롤들을 잡아볼 줄이야.”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그때 아까 도망치던 5명이 다가왔다.
그들은 형우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덕분에 살 수 있었소.”
리더로 보이는 이가 대표해서 말했다.
말투가 좀 이상하긴 했으나 형우는 바로 이어서 말을 받아줬다.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다행히 문제는 없소. 물건들도 이상 없고.”
“물건이요? 아…….”
그러자 그제야 그들 등에 메인 큰 가방이 보였다.
가방엔 뭐가 들었는지 빵빵하게 차 있었다.
“어디 뭘 팔러 가시는 중이었습니까?”
“나의 상점으로 가던 길이었네.”
“상점?”
“블랙 머천트의 상점. 나는 그곳의 주인이네.”
“블랙 머천트?!”
그 말에 다들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블랙 머천트라 밝힌 이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