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2-12
“으흠… 으흠…….”
“그 으흠 소리 좀 그만 내면 안 돼요?”
여관 밖으로 나온 뒤부터 지영은 계속 ‘으흠’ 소리를 내며 형우를 째려봤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형우는 슬쩍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도대체 아저씨 정체가 뭐예요?”
“정체가 뭐긴요. 아저씨죠. 이봐요, 누님. 아저씨라고 좀 하지 말라니까요.”
“으앗! 방금 닭살 돋았어요! 누님이라고 하지 마요!”
지영은 팔을 긁으며 소름 끼친다는 듯 쳐다봤다.
“그럼 아저씨라고도 하지 마세요.”
“칫.”
지영이 삐진 표정을 지었으나 형우는 무시했다.
‘이 아가씨 참 얼굴도 두껍네.’
아침까지만 해도 칼을 겨누며 별짓을 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형우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뭐 상관없긴 했다.
당장은 노예 문서로 얽혔다만, 굳이 딱딱한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쩌건 헌터수사부 소속이 아니던가.
게다가 직위 또한 낮지 않았다.
‘28살에 헌터수사부 차장이라. 하긴 A급이 두 개나 있는데. 쩝, 세상 참 불공평하네.’
지영에게 노예 문서를 쓰며 능력을 듣긴 했다.
그러나 이미 지영이 잠들었을 때 인사니오의 눈으로 지영의 정보를 봤다.
그 확인한 정보는 충격적이었다.
[신지영/A급/1소켓-A급 은신 2소켓-A급 프리징]
누군 소켓 하나도 D급 이상이 아니어서 사체 처리반으로 겨우겨우 삶을 연명했다.
그런데 신지영은 무슨 축복을 받은 건지 무려 A급 능력을 두 개나 가지고 있었다.
정말 부러웠다.
만약 아침에도 기습으로 칼을 뺏지만 않았으면 형우가 밀릴 스펙이었다.
‘A급 헌터 이재경이라고 했던가? 그 사람도 장난이 아닌가 보네.’
이런 능력을 가진 지영에게 중상을 입힌 사람이 SH 길드 지부장인 A급 헌터 이재경이었다.
하필 지영과 상성도 안 좋았다.
재경의 능력은 프로미넌스.
이젠 형우 길드 소속이 된 명훈과 동일한 화염계 능력이었다.
그러나 A급은 달랐다.
같은 화염계라고 부르기엔 정말 차이가 컸다.
A급의 불은 한 구역을 지배하는 능력.
지영의 은신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었다.
프리징과 상성도 안 좋았고.
다만, 막 밀릴 정도는 아니었다.
함정과 더불어 다른 병력이 많았기에 지영이 치명상을 입은 거였다.
여하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들은 그렇게 당했음에도 입구로 향하는 게 아닌 도시 내부로 향하고 있었다.
“아저씨, 이거 잘하실 수 있겠어요?”
“걱정하지 마시고 이거나 써요.”
“네?”
“일단 써요. 아까 말해준 거 기억하죠?”
지영의 걱정 어린 말에 형우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또 다른 토끼 가면을 꺼내줬다.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면을 썼다. 그리고 도시의 안쪽 끝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추격이 붙었다.
“잡아라!”
“둘 다 속도가 장난 아니야!”
“지원, 지원을 요청해! 도시 주변을 다 둘러쌓아!”
벌써 여관에서 일이 알려졌는지 둘을 쫓는 이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여기저기서 죄수들이 모여 토끼 가면을 쓴 둘을 쫓았고 점점 거리를 좁혔다.
“프로미넌스!”
화르륵!
그때 누군가 쓴 능력이 둘의 앞을 막았다.
“헛!
조금만 늦게 멈췄더라면 통구이가 됐을 거 같았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십니까? 쫓기는 꼴이 우습습니다, 헌터수사부 신 차장님.”
“…….”
그들 앞에 나타난 사람은 SH길드 지부장 이재경이었다.
재경은 잇몸을 실룩거리며 지영을 바라봤다.
“외모에 딱 어울리는 가면이군요. 잡으면 침대에서도 그 가면을 씌워드리겠습니다.”
“푸하하하!”
“하하하!”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죄수들이 모두 웃었다.
지영은 그 말을 들으며 뭐라 한 마디 해주는 대신 능력을 사용했다.
“프리징!”
촤자작!
지영의 손에서 극한의 냉기를 가진 얼음이 분출됐다.
그러자 재경도 능력을 썼다.
“프로미넌스!”
화르륵! 콰아앙!
두 능력이 부딪히며 엄청난 굉음이 났다.
그것은 일반적인 불과 얼음의 만남이 아니었다.
엄청난 힘과 폭발력을 가진 맹수들의 대결과도 같았다.
“프리징!”
“프로미넌스!”
다시 한 번 두 능력이 부딪혔다.
치이이.
두 능력이 부딪히면서 주변에 연기가 가득해졌다. 그리고 불이 좌우로 번지며 큰불을 만들어냈다.
“윈드.”
형우는 윈드의 능력으로 불을 더 키웠다.
수증기로 만들어진 연기는 최대한 모으고 불은 도시 전체에 번지도록 바람을 불었다.
“뒤로 물러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도 아니고. 무슨 A급 둘이…….”
그 여파에 다른 헌터들이 물러났다.
오직 SH길드 지부 인원만이 근처에서 대기하며 공격의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공격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윈드! 윈드! 윈드!”
“뭐, 뭐야?!”
“무슨 돌풍이!”
형우는 윈드를 이곳저곳에 사용했다.
그러자 일대가 혼잡하게 바뀌었다.
안개에 돌풍, A급 헌터들의 전투.
온통 혼잡한 상황에서 형우는 이제 계속을 실행했다.
“잠깐만 쓰고 있어요.”
“응?”
“속박.”
“억?”
갑자기 몸이 묶인 죄수 하나가 형우에게 머리를 내줘야 했다.
형우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또 다른 토끼 가면을 꺼내 죄수에게 씌웠다. 그리고 그 행동을 몇 번 반복하다가 지영에게 다가갔다.
“갑시다. 블링크!”
팟!
“뭐, 뭐야?!”
전투 중 갑자기 블링크로 도망치자 재경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러나 당황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토끼 가면이 도망쳤다! 잡아!”
“저기 토끼 가면이 있다!”
“자, 잠깐! 내가 아니야! 으아악!”
“저기 또 있다! 잡아라!”
안개와 돌풍이 있는 혼잡한 곳에서 토끼 가면을 잡기 위해 헌터들이 수십이 뭉쳐서 달려갔다.
그러나 토끼 가면들은 모두 진짜가 아니었다.
모두 형우가 속박을 걸고 가면을 씌운 죄수들.
그들은 형우의 계략에 놀아나며 정신없이 토끼 가면을 찾으러 다녔다.
“어딨어? 어딨냐고?!”
재경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그러는 사이 형우와 지영은 블링크로 입구까지 도망쳤다.
문으로 가니 약 30명의 사람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주위를 분산시켰는데 아직도 저렇게 사람이 많아? B급도 있네.’
형우는 인사니오의 눈을 사용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시선을 돌리기 위해 도시 깊숙한 곳까지 갔는데 아직도 입구엔 사람이 많았다.
게다가 B급도 몇 명 껴 있어서 걸리는 순간 발목이 잡힐 게 뻔했다.
결국, 이제부터가 관건이었다.
편하게 빠져나가려면 들키지 않고 빠르게 빠져나가야 했다.
“더럽게 시끄럽네.”
“그러게 말이야. 우리도 곧 문 닫히면 바로 쫓아가자.”
그들은 소란스러운 도시를 보며 몸이 근질거린다는 듯 몸을 풀었다.
형우는 그걸 보면서 조심스럽게 근처로 다가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길 정면으로 통과할 생각은 없었다.
“블링크로 빠져나가시려고요?”
“혼자 놀게요? 블링크로만은 힘들어요.”
블링크의 이동 거리는 상당히 짧았다.
강화로 최대한 늘렸지만 기껏해야 최대 이동 거리는 5M 정도.
아주 짧은 거리는 아니었으나 잘못하면 들키기도 쉬웠다.
‘단거리 워프라도 있으면 편했을 텐데. 박 사장님이 생각날 줄이야.’
박 사장의 단거리 워프라면 걸리지 않고 도망갈 자신이 있었다.
상대 쪽에서 그걸 알아챌 수 있는 능력자가 있다면 무용지물이긴 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블링크보단 안전한 이동수단이었다.
그 때문에 박 사장의 단거리 워프가 절실했지만, 지금 없는 사람을 데려올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지영이 F구역에서 보여줬던 은신이 필요했다.
“…….”
형우는 건물 뒤에 숨어 기회를 엿봤다. 그리고 잠시 후 기회가 생겼다.
“거기 잠깐.”
검문하던 죄수들은 수상하게 얼굴을 가린 여자에게 모여들었다.
저 여자가 누군진 몰랐으나 둘에게 기회였다.
“갑니다.”
“네?”
“블링크.”
팟!
형우는 블링크로 입구 근처 벽으로 이동했다.
정말 바싹 붙어서 알아챌 수 없도록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이 네 번째 밤, 16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는 거였다.
구역 전체가 어두워지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둘의 모습은 어둠 속에 가려졌다.
형우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더했다.
“은신 써요.”
“은신.”
스르륵.
은신을 쓰자마자 둘의 모습이 완벽하게 사라졌다.
형우는 지영와 함께 조심스레 이동했다.
은신이 A급이라고 하지만, 안 들키는 건 아니었다.
동급의 능력자나 상위 능력자가 있으면 들킬 수도 있었고 은신을 확인할 수 있는 B급 이상의 스캔 능력자가 있으면 바로 들켰다.
그 때문에 둘은 더 조심했다.
정말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살금살금 발을 옮겼다.
정말 천천히 가고 있었기에 혹시 문 앞에서 벌어지는 실랑이가 끝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엘프?!”
“엘프다!”
문 앞에서 벌어진 소란의 주인공은 바로 엘프였다.
엘프가 나타나자 상황은 진정되지 않았다.
덕분에 둘은 수월하게 문 앞에 도달했다.
그러나 문을 넘으려는 순간 지영이 막았다.
툭.
“…?”
휙. 휙.
지영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며 반원을 그렸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
형우는 저기에 뭐가 있는 건지 이해를 못 했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본 순간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공간이 약간 일그러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걸 본 순간 형우는 지영의 말을 눈치챘다.
‘뭔가 능력이 쓰여 있으니 블링크로 넘어가란 거구나.’
“블링크.”
팟.
형우는 바로 블링크를 사용해 문 너머로 이동했다.
“후우. 살았다.”
“다행히 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네요.”
들키지 않고 문을 통과했다.
“빨리 갑니다. 잘 잡아요. 블링크.”
팟!
형우는 열심히 블링크로 이동했다.
슬슬 혼자 둔 소정이가 걱정되던 찰나였다.
시선을 돌린다고 꽤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오빠!”
쉘터에 도착하자 소정이 달려왔다.
순간 어두웠던 표정이 밝아지면서 말이다.
와락.
“별일 없었지?”
“네!”
‘역시 아직 애라니까.’
사실 먼저 블링크로 쉘터에 있겠다고 말한 건 소정이었다.
형우는 처음에 당연히 반대했다.
애 혼자 남겨두고 다시 돌아가서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탈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다.
걱정도 너무 컸고.
그러나 소정이 괜찮다면서 이렇게 하는 게 제일 좋다고 밀어붙였다.
소정이 걱정돼서 그렇지 나쁜 계획은 아니었기에 형우도 따랐다.
그런데 막상 오니 또 여기선 애로 변했다.
물론 형우는 이게 차라리 나았다.
‘애는 애다워야지.’
괜히 외부 환경에 의해서 애가 급격하게 어른이 되는 과정을 겪게 하는 건 그다지 바라지 않았다.
자신의 여동생에게서 그걸 봐왔으니까.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만 이젠 이런 위험한 계획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A급으로 각성할 때까지.
‘아, 그러고 보니 노예시장도 한 번 들러볼까?’
안 그래도 E구역에 인재가 너무 부족했다.
그러나 형우가 가진 능력 ‘인사니오의 눈’이면 앞으로 후천적인 각성을 할 능력자들을 끌어 올 수 있었다.
거기에 혹시 등급은 같아도 능력을 속이는 경우도 고를 수 있으니 노예시장엔 한 번 꼭 들러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조금 쉬자.”
그렇게 그들이 쉘터에서 휴식을 하는 사이 C구역에선 재경의 분노가 들려왔다.
“이 쓰레기들아!”
재경은 분노를 못 참고 크게 소리쳤다.
분노가 가득 담긴 고성에 다들 움찔했다.
그러나 아무리 분노를 내질러도 도망친 형우와 지영이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겨우 토끼 가면 쓴 조루 새끼한테 당해서 못 잡았다 이거지?”
“그, 그게…….”
재경의 옆에 있는 부하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바들바들 떨었다.
저 인간이 제대로 화를 내면 누구 하나 죽을지도 몰랐다.
“구역 내에 없으면 밖에 나가서라도 찾아오라고!”
“저… 무, 문이 닫혔습니다. 아무래도 타이밍을 노려서 혼란스럽게 만든 뒤에 블링크를 써서 밖으로 나간 듯합니다.”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어! 그래서 못 잡겠다는 거야?”
“아, 아닙니다! 바로 찾아오겠습니다.”
부하들은 그 말을 하며 허겁지겁 자리를 벗어났다.
혼자 남은 재경은 점점 표정이 변했다.
“이걸 어떻게 보고 해야 하지…….”
자신의 상사에게 보고할 내용을 생각하며 재경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