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2-10
“당신이 여기 왜 있는 거예요?”
형우는 지영에게 경계 어린 눈빛을 보냈다.
늦은 밤, 그것도 창문으로 몰래 들어왔다.
게다가 먼저 기습까지 하려 했고.
“그건 제가 묻고 싶은데요, 아저씨. F급 무능력자라면서요?”
“그건…….”
지영의 말에 형우는 말문이 막혔다.
준비해놓은 변명이 없었거니와 섣불리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안 그래도 지영은 형우에게 의문인 존재였다.
F구역에서 일부터 지금 다시 C구역에서 만난 것까지 모두.
모든 게 의문인 정체불명의 그녀에게 말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털썩.
“어?!”
그때 지영이 바닥에 쓰러졌다.
형우는 깜짝 놀라 지영에게 달려갔다.
“하아… 하아…….”
지영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온통 피칠갑을 한 터라 상처가 중할 거라 생각은 했는데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온몸이 다 상처였다.
게다가 복부엔 관통상까지 있었다.
지금까지 서 있는 게 기적일 정도.
‘이 상태에서 태연하게 말도 하다니…….’
형우는 일단 아공간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냈다. 그리고 지영에게 부었다.
촤아.
포션이 온몸에 뿌려지자 몸에 있던 상처들이 눈에 띄게 아물었다.
“상처가 너무 심한데.”
그러나 포션 하나로는 소용이 없었다.
형우는 포션 세 개를 더 꺼냈다.
꺼낸 것 중 하나는 다시 몸에 부어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둘은 천천히 입으로 흘려 넣었다.
본인도 살고 싶은 건지 조금씩 흘려 준 포션을 잘 마셨다.
“후우…….”
그러자 지영의 숨이 고르게 변했다.
지영의 숨이 고르게 뛰자 형우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아…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갑자기 쳐들어와서 기습하고… 갑자기 쓰러진 지영을 보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형우는 일단 지영을 침대에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올리려는 순간 멈췄다.
“이 피를 다 어떡하지?”
이대로 침대 위에 올렸다간 침대도 피범벅이 될 터였다.
결국, 그녀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샤워를 마친 소정이 밖으로 나왔다.
“오빠? 꺄…읍!”
탁!
형우는 소리 지르려는 소정의 입을 급하게 막았다.
“쉿! 소리 지르면 안 돼. 오빠가 다 설명해줄 테니까. 진정하고. 알겠지?”
끄덕.
다행히 소정은 형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형우는 조심스럽게 손을 치우고 지금 상황과 과거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자 소정은 바로 지영에게 다가갔다.
“응? 뭐하려고?”
“씻겨야죠. 이대로 둘 수 없잖아요.”
“아, 그렇지.”
“아니면 오빠가 씻기실래요? 제가 하기엔 좀 무겁긴 해서…….”
“아, 아냐! 내가 어떻게 하냐?”
말로 기습을 당한 형우의 얼굴이 빨개졌다.
소정이 이런 말을 할 줄 몰랐기에 더더욱.
물론 소정이는 놀리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끄응… 들기 불편해요. 오빠, 좀 도와줘요.”
“어, 어. 그래.”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했던 형우는 소정의 말에 급하게 달려갔다.
잠시 후 소정은 어찌어찌 지영의 몸을 씻기곤 자신의 옷을 지영에게 입혔다.
사이즈가 좀 안 맞긴 했지만, 잠옷으로 입기 위해 프리사이즈로 산 옷이 그나마 들어갔다.
물론 그래도 사이즈가 작긴 작았기에 타이트한 티셔츠가 돼버렸다.
툭.
둘은 지영을 침대에 눕혔다.
“저 다시 씻고 올게요.”
“그래.”
지영을 씻기느라 같이 피가 뭍은 소정은 다시 씻으러 갔다.
그사이 방을 정리한 형우는 소정이 나오자 샤워를 했다.
샤워가 끝나자 시간이 꽤 지났다.
벌써 여섯 번째 밤과 첫 번째 밤사이인 2시쯤 되는 듯했다.
소정은 졸렸는지 다른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형우는 바닥에 대충 침낭을 깔고 누웠다.
“나도 일단 자자.”
어차피 신지영이 일어나서 둘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진 않았다.
물론 도망가기도 힘들 터였다.
포션으로 치료했다만 정신적 피로까지 모두 회복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피를 철철 흘릴 정도면 아무리 헌터라도 정말 잠을 푹 잘 것 같았다.
형우는 그렇게 침낭에 누웠다.
“에이…….”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석연찮았던 형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침번 아닌 불침번을 서길 몇 시간, 소정이가 깨어났고 방 안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지영은 일어나지 않았다.
‘괜히 뻘짓했나?’
형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안전하게 마음 편한 게 나았다.
그러면서 지영을 바라봤다.
지영은 여파의 여파가 컸는지 숨소리조차 작게 쉬며 자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포션을 다섯 개나 썼네.’
지영을 보니 어제 포션을 쓴 게 생각났다.
하나당 5만 포인트짜리 포션이었다.
형우는 깨어나면 돈을 청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 드디어 지영이 일어났다.
“으음…….”
지영은 푹 잤는지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두 쌍의 눈을 볼 수 있었다.
“에? 어?”
C구역 SH 길드 지부.
현재 A구역에 상주 중인 SH 길드는 특이하게도 C구역에 지부를 건설했다.
보통 산하나 하청 길드를 만드는 식으로 늘렸다.
실제로 B구역에 신우, 도끼 길드를 가지고 있었고 F구역엔 지금은 사라졌지만 파츠 길드가 있었다.
그런데 SH 길드는 아예 지부를 만들어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길드에서 건드릴 수가 없었다.
산하나 하청이면 그래도 적당히 선을 넘을 수 있는데 SH 길드 지부라는 이름은 정말 함부로 건들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C구역에 있는 SH 길드 지부는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A구역과 F구역을 잇는 정보원 역할과 신입 스카우터 역할을 했다.
그러다 보니 라이벌 길드인 명진에서도 이곳은 크게 터치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건 연막일 뿐이었다.
SH 길드 지부가 설치된 곳 지하엔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지하엔 SH 길드 지부의 지부장 이재경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아직도 못 잡았어?! 왜 아직도 못 잡았냐고!”
잔뜩 화나 있는 재경이 부하로 보이는 이에게 화를 냈다.
부하는 계속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분명 치명상을 입혔는데 끝까지 도망가는 통에…….”
째앵! 콰당!
“악!”
재경은 주변에 있던 유리잔을 그대로 부하의 머리에 내리쳤다.
“그걸 변명이라고 씨부리냐?! 어?!
“죄, 죄송합니다!”
충격에 쓰러졌던 부하는 급하게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재경은 아직도 화가 안 풀렸는지 표정이 풀리질 않았다.
“그래도 아직 구역을 빠져나가진 못한 거 같습니다, 지부장님. 일이 일어나자마자 구역 입구를 봉쇄했는데 아무도 지나간 사람이 없답니다.”
“그런데 왜 못 찾는 건데?”
옆에 있던 다른 부하의 말에 이번엔 타겟이 돌아갔다.
흠칫.
그는 살짝 흠칫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을 끝내면 무조건 지부장의 화풀이 대상이 될 뿐이었다.
“혹시 다른 길드 건물에 숨은 건 아닐까요? 그곳이라면 저희의 눈을 피하기 가장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데? 다른 길드 건물들 다 뒤지면서 C구역 전역을 다 헤집어 놓으라고? 안 그래도 지금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건…….”
지부장의 말에 그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것까진 생각을 안 한 듯했다.
“이 쓰레기들아! 길드에서 너희한테 얼마를 투자하는지 알아? 근데 헌터수사부 쥐새끼 하나 못 잡아?! 미리 덫을 쳐놓고도?!”
‘자기도 못 잡았으면서.’
‘지는…….“
지부장의 말에 부하들을 속으로 욕을 했다.
그러면서 머리를 빠르게 돌렸다.
지부장의 저 분노를 없애려면 뭐라도 해결책을 제시해야 했다.
다행히 유리잔에 머리를 맞았던 부하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차라리 이건 어떻습니까? 아예 C구역 전체에 알리는 겁니다.”
“뭐?”
“어차피 그년 잡는다고 너무 시끄럽게 벌린 터라 감추기도 힘듭니다. 차라리 공개적으로 알려서 잡은 뒤 입 막을 거만 막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지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그나마 대가리 돌아가는 새끼가 있어서 다행이네. 뭐 해? 안 움직여?!”
“네? 예!”
지부장의 호통에 부하들은 다급히 지하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곧 C구역에 헌터수사부 인원이 숨어있다는 정보가 퍼졌다.
“네?! 헌터수사부요?”
“네, 네. 헌터수사부에요.”
지영이 일어나자마자 형우는 정체를 물어봤다.
물론 지영은 답해 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아침을 요구하며 시간만 끌었다.
그러나 형우는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계속 집요하게 물어봤다. 그리고 거기에 한 마디 덧붙였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계속 시끌시끌한데 정체를 안 밝힐 거면 저랑 밖으로 나가요.”
“…….”
그 말에 결국 지영은 정체를 밝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영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은 순간 형우는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아니, 헌터수사부가 왜 여기까지? 근데 헌터수사부에선 고딩한테도 일 시켜요?”
“고딩… 하아, 일단 그건 넘어가요. 일단 이야기부터 해줄게요.”
고딩이란 말에 지영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최근 마약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어요.”
“마약이요?”
“예, 마약이요. 최근 지구엔 마약 물량이 엄청나게 풀렸어요. 갑자기 엄청난 물량이 풀리는 바람에 단속할 경찰 인력이 부족할 정도로요. 그런데 배후를 찾다 보니 헌터들이 연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들을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정보를 얻었어요. 감옥에서 공급받았고요.”
“아…! 설마?”
형우는 그 순간 F구역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반응을 보곤 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설마예요.”
“그럼 그 붉은 영혼석이 마약의 재료라는 거예요?”
수많은 사람을 합성시켜 만들어낸 피와 같은 붉은 영혼석.
그게 마약의 재료였다. 그리고 그게 치료 약이라며 준석이 형우에게 발라줬던 약이기도 했다.
“네. 다만, 어떤 방식으로 그걸 가공했는지는 모르겠더라고요. 만드는 건 합성 능력자가 만든다는 건 알겠는데 정보가 없었어요. 그러다 최근 다른 부원이 파츠 길드의 길원 하나를 잡아서 정보를 얻었어요. C구역에 납품을 했고 거기서 가공한 약을 줬다고요.”
“그래서 여기까지 들어와서 또 한 판 하신 건가요?”
“한 판이라뇨. 전 적당히 알아만 보려고 했다가 걸린 것뿐이에요.”
“네? 뭔가 F구역 때랑 비슷한 거 같은데…….”
그 말에 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헤헤… 전혀 달라요. 그리고 이런 사소한 건 넘어가요.”
‘아니, 이게 왜 사소한 거야?’
형우가 속으로 화내고 있을 때 소정이 따지고 들었다.
“안 사소한데요.”
그 순간 보이지 않는 레이저가 수십 번 충돌했다.
그러나 여기서 더 파고 들어가 봐야 본인만 불리해지는 지영이 먼저 꼬리를 내렸다.
“…여하튼 걸려서 도망쳤어요. 그러다가 아저씨가 보이더라고요. 혹시 도움받을 수 있을까 해서 아저씨 방으로 들어왔죠. 뭐, 덕분에 고맙게도 살았고요. 전 어제 제 인생 쫑나는 줄 알았어요.”
“진짜 산 게 용하죠.”
어젠 정말 당장 죽어도 의심치 않을 상처를 입고 있었다.
포션이니까 살았지, 어제 그 상태는 어떤 의사가 와도 못 살렸을 터였다.
“그래서 이제 뭘 할 건가요?”
“뭘 하긴요. 같이 탈출해야죠.”
“…같이요?”
“네, 같이요. 설마 이대로 절 버리실 건 아니죠?”
“버릴 건데요.”
형우의 입장에서 굳이 지영을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
F구역에서 당한 일을 잊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쫓겼고 죽을 위기까지 겪었다.
물론 그게 계기가 되어 마음이 독해지긴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영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건 형우가 미친 거였다.
“아저씨, 너무한 거 아니에요?”
지영은 실연당한 여자와 같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형우의 표정은 확고했다.
당장 제압해서 노예로 안 만든 것만 해도 정말 있는 참을성을 다 끌어다 쓴 거였다.
“네, 너무하니까 어서 나가요.”
다만 지영은 계속 생떼를 썼다.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고 안 그러면 제압해서 노예로 만든다니까 그렇게 하라고 배짱을 부렸다.
그때 소정이 형우에게 다가왔다.
“오빠.”
“응, 왜?”
소정은 형우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차라리 탈출을 도와줄 테니 오빠 동생분을 보호해달라고 하시는 건 어때요?”
“아…!”
그 순간 머리가 시원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요구 조건으로 정말 최적이었다.
사실 용준만으론 불안했다.
계약서를 쓰면 용준은 믿을 수 있겠지만, 병원이나 혹시 모를 변수에 대해선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가져간 포션을 현금화시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런데 만약 헌터수사부가 도와준다면 안심할 수 있었다.
“소정아, 고맙다. 그냥 내쫓을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헤헤, 아니에요.”
형우는 소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바로 그걸 조건으로 이야기했다.
“오케이! 딜!”
그러자 지영은 바로 수락했다.
“근데 이걸 위에 보고 안 하고 그냥 하셔도 되는 거예요?”
“제가 출소해서 도와주면 되죠.”
“…네?”
“전 절도죄로 징역 2개월 선고받았어요.”
‘정말 진심으로, 격하게 부럽다…….’
누구는 2,000년인데 누구는 겨우 2개월.
형우는 이 순간 지영이 세상 누구보다 부러웠다.
그러나 부러운 건 부러운 거고 확실하게 해놔야 했다.
일전에 용준에게 쓰려고 샀던 계약서를 썼다.
“계약서도 썼으니 더 잘 부탁해요. 아, 그리고…….”
“…?”
“제가 누나예요.”
“네?”
갑작스러운 누나라는 말에 형우는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제가 누나라고요. 저 스물여덟이에요.”
“에엑?!”
그동안 들었던 말 중에 ‘I'm your father’보다 제일 충격적인 말이었다.
지영의 얼굴은 아무리 많이 봐줘야 고등학생 정도였다.
어리게 보면 중학생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스물여덟이라니.
정말 엄청난 동안이었다.
“아니, 왜 그럼 고딩 연기를 한 겁니까?”
“속이는 게 당연하죠. 그리고 ‘감옥에서 속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란 속담 못 들으셨어요?”
형우는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냈다.
“그런데 왜 나보고 아저씨라고 한 거예요?”
“남자가 20대 중반 넘으면 아저씨죠.”
“…….”
순간 형우는 온몸의 능력을 다 끌어올려 진심으로 때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