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2-6
E구역에 나타난 삼백 명의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압박이 있었다.
한 명이 보고하러 가자 경비를 서는 죄수의 수는 겨우 9명.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적인지 아니면 저번처럼 F구역에서 단체로 탈출한 이들인지는 아직 몰랐다.
일단은 추이를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오늘 경비조장 근무를 서는 명환은 이미 저들의 정체를 잘 알았다.
그들은 SH길드의 후원을 받아 D구역의 지배자인 리넬 길드를 공격했던 길드 연합의 패잔병들이었다.
“이런… 굿이라도 해야 하나.”
명환은 D구역에서 넘어온 길드 연합을 보며 안색을 굳혔다.
하필 경비조장을 서고 있을 때 문제가 생기자 명환은 정말 굿이라도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들이 D구역에서 넘어온 이들이란 걸 아는 건 쉬웠다.
원래 D구역의 하청, 산하와 같은 지하 투기장에서 박 사장의 비서 겸 경호로 일했으니 웬만한 건 다 알았다.
몇몇은 아는 얼굴마저 보였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의 얼굴에서 명환의 시선이 멈췄다.
제일 선두에서 여자깨나 울렸을 것 같은 얼굴로 오만한 표정을 짓는 자.
‘이강민.’
이강민은 바로 박 사장과 명환이 소속되었던 ‘강’ 길드란 곳의 길드장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길드 연합을 이끄는 연합장이었고.
‘망해서 다 넘어왔나 본데.’
저쪽 상황은 이미 몬스터 웨이브 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대충 바로 파악이 됐다.
“어? 너 명환이 아냐?”
그때 길드 연합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환은 그쪽으로 시선을 줬다.
시선의 끝엔 명환이 아는 인물이 있었다.
‘김장우, 저놈도 살아 있었네.’
그는 박 사장에게서 포인트를 수금해가던 길드 간부였다.
매번 올 때마다 꼬장이란 꼬장은 다 피워가며 돈을 더 걷어갔다.
박 사장이 더 포인트에 목을 매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게 됐다.
그 때문에 명환과도 그다지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저쪽 입장은 아닌 거 같았지만.
“나다, 장우! 거기에 뭐하냐? 얼른 나와서 인사 안 하고. 여기 우리 길드장님도 계시는데.”
명환은 장우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자신의 전(前) 길드장이었던 강민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용무로 오신 겁니까?”
“허? 저 새끼 봐라?”
장우는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자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그러나 강민이 손을 들어 올리며 장우를 막았다.
“알면서 물어보는 겁니까? 아니면 예의상 물어보는 겁니까?”
강민은 바로 앞에 서서 말했다.
분명 존댓말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명백한 비꼬는 말투였다.
“무슨 용무냐고 물었습니다.”
“하…….”
“풋, 웃기네. 여기서 제일 높은 등급이 겨우 C급 아니었어? 그것도 딱 한 명 주명훈.”
“같은 소속도 아니지 않나? 아, 그 사이 주명훈이 E구역 통일이라도 했나 보네.”
명환의 말에 길드 연합 사람들이 비웃으며 떠들었다.
“아가리는 닥치고 이제 비켜요. 겨우 E급, D급들이 지금 막겠다고 설치는 건 아니겠죠?”
“…….”
강민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나 그 말에도 명환은 반응하지 않았다.
“어쭈?”
퍽!
“컥!”
강민은 명환의 배에 주먹을 꽂았다.
C급 헌터의 빠른 주먹에 명환은 90도로 접혔다.
신체 능력 차가 워낙 컸기도 컸지만 가까이 붙은 상태에선 반응하기 힘들었다.
강민은 이어서 명환의 머리채를 잡았다.
짜악!
“큭!”
“어디서 개새끼가 주인을 무냐? 애교도 적당히 피워야 주인이 좋아하지 그 이상 가면 재미 없어.”
존댓말은 사라지고 강민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짜악! 짝! 짝!
“읍…!”
강민은 무자비하게 명환의 뺨을 쳤다.
순식간에 뺨은 멍들고 피가 났다.
그러나 강민의 손을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뺨을 때리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죽이려는 듯이.
그때 갑자기 누군가 나타났다.
팟!
“엇?!”
강민의 앞에 갑자기 누군가 나타났다.
그게 블링크라는 걸 알아챈 강민은 바로 주먹을 날리려 했다.
그러나 다음 한 마디에 의해 강민의 몸은 그대로 멈췄다.
“속박!”
“모, 몸이?!”
강민의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속박을 풀기 위해 힘을 끌어올렸으나 그 올라온 힘마저 흩어졌다.
‘능력이 안 써져…!’
자유자재로 써지던 능력이 안 써지자 강민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명환이 웃고 있었다.
강민에게 개길 수 있었던 이유가 도착했으니까.
“명환 씨, 괜찮습니까?”
“예. 이 정도로는 끄떡없습니다.”
명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제 형우가 해결해 줄 터였다.
“넌 누구야?!”
강민은 갑자기 나타나 모두를 묶어버린 형우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형우는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저벅저벅. 짜아악!
“악!”
형우는 강민의 뺨을 가볍게 쳤다.
그러나 들려온 소리는 가볍지 않았다.
단 한 번에 목이 휙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형우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뺨을 쳤다.
짝! 짝! 짜악!
“으어…….”
손이 두세 번 뺨을 오가자 이강민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걸 느꼈다.
잠시 얼어있었던 길드 연합의 인원들은 뒤늦게 놀라서 뛰쳐나왔다.
“미친!”
“연합장님!”
먼저 뛰쳐나온 건 C급 8명이었다.
가장 실력자들답게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그러나 가장 먼저 달려온 건 실수였다.
“속박.”
“억?!”
“으악!”
철퍽! 쿵!
달려오던 중 속박에 걸린 그들은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졌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윈드.”
휘이잉!
형우는 C급 윈드를 사용했다.
윈드는 넘어진 죄수들을 감쌌다. 그리고 공중으로 띄웠다.
“어어?”
“뭐, 뭘 하려는 거야?!”
“이렇게?”
휙! 퍽!
“끄아악!”
“컥!”
형우는 공중으로 띄운 죄수들을 다른 이들과 부딪히게 했다.
안 그래도 달려오는 와중이었기에 피해는 더 컸다.
“피해! 아니, 잡아!”
“어떤 미친놈이 능력을 쓰는 거야?!”
정말 예상치 못한 공격에 길드 연합은 우왕좌왕했다.
C급들은 이강민을 포함해서 모두 발언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지휘체계가 무너졌다.
아니, 지휘체계가 정상이어도 지금 이 상황에선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아악!”
“내 머리!”
“도, 도망쳐!”
계속 혼란이 이어지고 몇몇 계산 빠른 이들은 문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C급 9명과 삼백이라는 인원이 무색하게 단 한 명에게 장난감 다루듯 당하고 있었다.
그 말은 그 한 명이 최소 B급 이상이라는 거였다.
게다가 처음 나타날 때 블링크로 나타난 것도 생각하면 최소 2소켓 이상의 멀티 소켓 능력자.
그들에게 승산이란 없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함께 해온 동료들을 버리고 도주를 택했다.
그러나 그걸 보고만 있을 형우가 아니었다.
“속박!”
“…!”
“망했다…….”
속박에 묶인 그들은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길드 연합 대부분이 바닥과 마주했고 곧 속박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됐다.
그때 박 사장이 나타났다.
“길드장님! 저희가 함께 싸우… 정리를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허겁지겁 달려왔던 박 사장은 바닥에 널브러진 길드 연합원들을 보며 빠르게 말을 바꿨다.
땅 위에 제대로 서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몸 또한 온전치 않은 상태.
그걸 보고 박 사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제대로 가지고 노셨네.’
“이야, 형우 형은 진짜 운을 타고났네요. 형, 혹시 능력 자석 인간 아니에요? 포인트를 끌어드리는 포인트 자석 인간!”
박 사장과 같이 온 용준은 형우를 놀렸다.
그러나 박 사장은 그 말에 수긍했다.
박 사장 본인을 포함해서 김 사장과 5대 길드, 모두 제 발로 호랑이 아가리에 목을 들이밀었다.
그 대가로 노예가 되고 포인트도 뺏겼다.
그런데 정말 형우에게 헌터를 끌어들이는 자석이라도 있는 듯 이번에 또 제 발로 호랑이 아가리에 들이민 동지가 있었다.
“그 자석 인간한테 자석으로 맞아볼래?”
“맨날 뭐 만하면 때리려고 해요?”
“안 때리게 해 봐 그럼.”
형우는 용준이 티격태격하며 싸우다가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속박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은 숨죽이며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형우를 바라봤다.
내심 풀어줬으면 했지만, 형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분히 예상했던 말이었다.
“자, 이제 얌전히 작성해볼까. 혹시 안 쓸 사람 있으면 말해주세요. 세 번째 밤 1분 전에 친절하게 풀어주겠습니다.”
“…….”
“…….”
모두 입을 닫았다.
그 말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예로 살래, 아니면 죽을래’와 다를 바 없는 말이었으니까.
결국, 길드 연합 삼백여 명 중 길드장과 간부, 몇몇 핵심 멤버들은 모두 노예 문서를 쓰고 형우의 밑으로 흡수됐다.
“형, 좀 주세요. 좀만 좀 쓸게요오.”
“징그럽게 왜 이래? 저리 안 가?
“아, 좀만요오.”
지하 경기장 사무실, 용준은 형우에게 달라붙어서 뭔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형우는 질색한 표정으로 용준을 밀어냈다.
“가진 거 많잖아. 근데 뭘 또 달라는 거야?”
“그게 좀 비싸요.”
“뭔 비싼 걸 사길래 그래?”
“부자가 뭘 그렇게 쩨쩨해요. 대박 터졌으면 좀 나눠줘요오.”
“하아…….”
형우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며칠 전 D구역에서 E구역으로 넘어온 길드 연합이 형우에게 흡수됐다.
그런데 거기서 대박이 터졌다.
도망쳐 오느라 제대로 못 챙겨왔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포인트는 꽤 많았다.
무려 4,000만 포인트.
재기 자금으로 쓰려 했는지 정말 울상을 지으면서 형우에게 넘겨줬다.
길드마다 거의 300~500만 포인트씩은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모두 수금하니 정말 큰돈이 됐다.
사실 온전한 상태였다면 더 많은 돈이 그들에게 있었을 거다.
그러나 도망쳐오면 급하게 챙겼기에 D구역에 있던 그들 입장에선 정말 적은 돈을 가져온 거였다.
여하튼 3,000만 포인트 정말 로또 당첨과 마찬가지.
그 때문에 용준이 계속 형우를 조르면서 포인트를 구걸하고 있었다.
‘말 안 해도 챙겨줄 건데 얜 내가 그냥 포션만 줘서 보내는 건 줄 아나?’
안 그래도 용준이 출소하는 전날 제대로 챙겨줄 생각이었다.
형우의 입장에선 용준에게 정말 큰 빚을 지는 거였다.
용준이 없었다면 동생 선우는 곧 죽을지도 몰랐다.
대부분이 몇십 년은 가볍게 징역을 받은 이들이라 출소하는 이들을 찾기 힘들었다.
일부러 가볍게 형을 받고 들어오는 아공간 능력자들은 볼 수도 없었기에 정말 용준이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그런 용준에게 형우는 꽤 많은 포인트를 줄 생각이었다.
포션 한 개의 구매 비용은 5만 포인트.
약효가 3개월이니 대충 20년을 버틴다 치면 400만 포인트만 있으면 됐다.
거기에 몇십만 포인트 더 들여서 포션으로 바꾸고 그걸 병원비로 납부.
그러면 정말 한 20년은 안심하고 보낼 수 있었다.
형우는 1년 안에 탈출을 목표로 잡고 적당히 보내고 싶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정말 먼 미래까지 대비해놨다.
“알았어. 준다, 준다고.”
“예스!”
형우의 말에 용준은 환호성을 질렀다.
“가는 김에 나도 같이 가자. 안 그래도 살 게 있었는데.”
바쁘게 상황이 돌아가다 보니 아직도 A급 능력을 강화하지 못했다.
이참에 용준과 같이 블랙 머천트의 상점에서 가서 능력을 강화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직 용준이 들고 나갈 포션도 못 샀다.
강화가 제대로 안 끝난 다른 능력도 강화가 필요했고.
겸사겸사 필요한 게 있으면 구매를 할 생각이었다.
“넵!”
“가자.”
형우와 용준은 바로 투기장을 나와 블랙 머천트의 상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