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2-3
“우아… 던전이라니. 살면서 던전 볼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뭘 볼 일이 없어. 그냥 사체 처리반만 해도 맨날 보는 게 던전인데.”
형우는 던전을 보고 신기해하는 용준을 핀잔하며 던전을 봤다.
지구에선 정말 흔하게 봤던 던전.
그러나 여기선 의미가 좀 달랐다.
감옥 안에 던전이 있을 줄은 상상을 못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감옥도 일종의 던전 같은 곳이었다.
던전은 일종의 분리된 개별의 차원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했다.
지구와 전혀 다른 곳에 있었기에 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 던전이 있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여기엔 뭐가 있을까?’
던전은 기본적으로 등급별로 나뉘어 있었다.
안에서 등장하는 몬스터에 따라서 던전의 등급을 나눴다. 그리고 지구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던전을 차지하는 게 C급 던전이었다.
D급 이하 던전도 많긴 했다.
그러나 생기는 속도가 클리어하는 속도를 못 따라갔다.
던전은 안에 있는 몬스터를 모두 처리하면 보통 일주일 이내로 사라졌다.
학자들은 그 현상을 던전에 존재하는 생명체가 던전을 유지해주는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생각했다.
여하튼 그렇게 던전이 없어지는데 제일 많이 처리하는 던전이 D~F급 던전이었다.
가장 처리하기 쉽고 C급부터는 조금 다른 유형의 던전이 등장했다.
C급부터는 던전 내에서 몬스터가 증식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유형의 던전은 보통 길드나 국가가 관리했다.
몬스터 증식이 되니 여러 용도로 사용 가능한 몬스터 사체를 계속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C급 던전이 계속 남았다.
B급 이상은 위험했기에 지속적인 클리어가 필요했으나 C급 정도면 봐줄 만했다.
그러다 보니 D급이나 F급, E급보다 C급이 더 많았다.
‘다만 그건 지구의 일이고… 여기가 E구역이니까 E급 던전이 아닐까?’
혹시 다른 등급이어도 큰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A급이 된 이상 그 희귀하다는 A급 던전이나 S급 던전이 나오지 않는 이상 다 클리어 가능했다.
“들어가 볼까.”
“형, 안녕히 다녀오세요.”
“길드장님 잘 다녀오십시오.”
“…….”
형우가 들어간다고 하니 뒤에 있던 세 사람이 거리를 벌렸다.
용준과 박 사장, 김 사장은 들어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러나 형우도 놔줄 생각이 없었다.
“얼른 와요. 제 능력이 뭔지 알면서 뭘 걱정해요.”
“그래도…….”
“그럼 둘만 따라가는 건 어떻습니까? 저는 복구 문제 때문에 자리를 지켜야 하니 용준이와 박 사장이 가면 좋을 듯합니다.”
“야! 김 사장!”
김 사장의 배신에 박 사장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최고 결정권자는 그 말에 이미 멤버 구성을 끝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얼른들 오세요.”
“썩을…….”
“으어… 싫은데…….”
둘은 썩은 표정으로 형우의 뒤를 따랐다.
툭.
형우는 던전 게이트의 문을 건드렸다.
그러자 게이트가 반응했다.
우웅. 쿠웅!
약간의 떨림과 함께 문이 양옆으로 열렸다.
문이 열리자 형우는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썩은 표정의 둘도 안으로 들어갔다.
“살아만 돌아오자.”
“넴…….”
꽈악.
두 손을 꼭 잡으면서.
넓은 동굴 안, 세 남자가 가지각색의 표정을 지으며 걸었다.
소풍 온 것 같은 표정.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
겁에 질린 표정.
다양한 표정의 그들은 던전 안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처음 보는 형식의 던전이군요.”
박 사장은 던전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그도 밖에선 D급 헌터로 활동을 했으니 던전을 들락날락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단연코 이런 종류의 던전은 처음이었다.
몬스터는 하나도 안 보이고 길게 쭉 이어지는 동굴의 통로만 보였다. 그리고 동굴은 밖에 있는 던전의 통로와 다른 바가 없었다.
보통 던전의 경우 밖과 생태가 전혀 달랐는데 여기는 밖과 안이 완벽히 같았다.
박 사장은 그걸 보며 신기해했다.
“그러게요. 이러면 감옥에 있는 몬스터가 등장하려나요?”
“그럴 가능성도 큽니다. 환경이 같으니 아무래도…….”
“그런데 몬스터가 전혀 없네요? 보통 입구부터 몬스터가 존재해야 하는데 입구는커녕 가는 길에도 전혀 안 보이네요.”
형우는 일직선으로 쭉 뻗은 통로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나오자마자 덤비기 바쁜 던전이랑 정말 달랐다.
내심 몬스터와 싸워보고 싶었던 형우는 몬스터가 안 나타나자 뚱했다
그러다가 속으로 깜짝 놀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허…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몬스터가 나오길 원했지.’
몬스터를 생각하면 드는 감정은 원래 공포였다.
겨우 F급의 최하급 고블린이라도 나오질 않길 바라며 살았다.
그런데 이젠 오히려 몬스터가 나오길 바라고 있었다.
‘뭐 어때. 좋은 게 좋은 거지. 성격 개조도 되고 능력도 좋아지고.’
형우는 그 생각을 하며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동굴이었다.
특별히 뭐가 보이는 것도 없었고 뭔가 느껴지는 것도 전무했다.
그러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속에서 작은 긴장감 하나만은 잡고 있었다.
지금 형우에겐 지켜야 할 인원이 둘이나 있었으니까.
“어? 형! 저기 뭔가 있어요?”
그렇게 한참을 걷던 중 용준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용준이 소리친 곳으로 달려가자 벽에 무언가 그려져 있었다.
“벽화? 이게 뭐지?”
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엔 사람과 몬스터처럼 보이는 것들이 도망가는 듯했다. 그리고 그 위에 큰 눈 하나가 빛을 뿜고 있었다.
그 옆에선 몬스터보다 더 큰 거인들이 둥근 원반을 들고 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도망가는 인간, 몬스터와는 꽤 대조적이었다.
“엘프? 드워프도 있군요.”
“여기 용도 있어요! 우아, 와이번이랑 드레이크도 있네요. 이런 게 왜 그려져 있데요?”
“그러게…….”
도망가는 이들 중엔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엘프와 드워프가 있었다.
드래곤의 경우엔 한 번도 지구에 나타나지 않았으나 혹시나 나타날 수도 있다 생각하는 몬스터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들이 A급 몬스터와 함께 도망가고 있었다.
위에 그려진 눈이 뭔지는 몰라도 마치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허겁지겁 도망가는 듯했다.
“이 던전에 대한 힌트인가?”
“힌트인지는 몰라도 일단 기억해둬서 나쁘진 않을 거 같습니다.”
“기억은 해두죠.”
벽화는 꽤 거대했다.
걸으면서 한참을 볼 정도로.
그렇게 벽화를 보면서 가는 사이 어느덧 끝에 다다랐다.
“여기가 끝?”
“허어… 던전이 이게 끝이라니…….”
“아싸!”
통로의 끝은 막혀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허망한 표정의 둘과 달리 용준은 환호성을 질렀다.
언제 긴장했냐는 듯 예의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왔다.
형우는 용준을 살짝 째려보곤 막힌 벽에 다가갔다.
벽에는 역시 지나면서 봐온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처음 보는 문자인데…….”
이번 벽엔 벽화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문자가 적혀 있었다.
빛을 발산하는 눈과 도망가는 몬스터, 그 밑에 장황하게 적힌 글.
안타깝게도 하나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문자 해석은 둘째였다.
기껏 던전에 들어왔더니만 벽화 빼고 아무것도 없는 맹탕으로 끝내긴 좀 그랬다.
“으흠.”
형우는 벽화를 유심히 바라봤다.
박 사장도 이리저리 둘러보며 뭔가 숨겨진 장치가 있나 찾으려 했으나 보이는 게 없었다.
그러던 중 형우는 눈에 시선이 갔다.
빛을 발산하는 눈.
왜 저것에 다들 도망가는 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눈을 유심히 보던 중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틈이 있잖아?’
눈 주변에 틈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긁어낸 거로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안으로 틈이 보였다.
스윽.
형우는 눈을 만져봤다.
눈을 만지니 그 틈이 더 확실히 느껴졌다.
“여기에 뭐가 있나?”
툭. 툭.
형우는 눈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반응이 왔다.
드르륵. 드륵! 드륵!
“어?”
형우가 건들던 눈이 뒤로 밀렸다.
그러자 벽 전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어느 마법 쓰는 영국 영화처럼 돌들이 재배치 되고 있었다.
다만, 그것과 이것의 차이는 벽돌과 통짜 벽의 차이였다.
벽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재배치됐고 곧 하나의 문이 나타났다.
“아… 망했어요.”
던전 탐사가 계속될 듯하자 용준의 표정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그러나 형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보다 지금 더 중요한 게 생겼으니까.
“관?”
재배치되어 열린 그곳엔 관이 보였다.
작은 신전 좌우 벽엔 A급 언데드 몬스터 데스나이트의 모습을 한 석상들이 서 있었다.
수십 개의 데스나이트 석상은 가운데 있는 관을 노려보는 듯 있었는데 그 관 뒤엔 또 다른 통로가 이어졌다.
“아, 저기로 가라는 건가?”
어차피 길은 하나였다.
주변을 둘러봐도 신전 뒤의 통로 말곤 길이 없었다.
“이건 뭘까요?”
어느새 관에 다가간 용준이 관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러자 박 사장이 질색하며 말렸다.
“얌마! 던전에서는 뭐든 함부로 건드는 게…….”
드르륵! 쾅!
“아닌데… 쓰벌…….”
“저 안 건드렸어요!”
갑자기 관의 뚜껑이 밀려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산산 조각난 관의 뚜껑을 보며 용준이 발뺌했지만 그게 오히려 둘의 화를 더 돋웠다.
“넌 나가면 좀 맞자.”
“으어…….”
“관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막… 어? 사람?”
용준을 혼내주려 다가왔던 형우는 관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관 안에는 아름다운 외모를 한 여성이 누워있었다.
하얀 로브를 입은 여자는 뭔가 신비한 분위기를 뿜어댔다.
마치 동화 속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여자가 왜 여기 누워있데요?”
“누구한테 질문하는 거냐?”
“하하…….”
용준은 어색하게 웃었다.
지금 여기 있는 세 명의 처지가 똑같았는데 누가 알고 말고 할 게 없었으니까.
“이야. 진짜 예쁘다는 연예인들 다 들이밀어도 이 여자한테는 안 되겠는데요?”
“엘프보다 더 예쁜 거 같다. 그런데 이 여자 산 거야, 죽은 거야?”
형우는 그 말을 하며 여자의 얼굴을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때 여자의 눈이 떠졌다.
팟.
“으어?!”
“사, 살았어?”
털썩.
얼굴에 손을 뻗었던 형우는 놀라서 뒤로 자빠졌다.
물론 형우만 놀란 게 아니었다.
그걸 보고 있던 두 남자도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
여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세 남자에게 시선을 줬다.
다만, 여자는 말이 없었다.
그저 셋을 바라보기만 했다.
어색한 대치가 이어지고 용준은 헛소리를 내뱉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안녕하세요? 헬로우? 스미마셍?”
“얌마! 스미마셍이 인사냐?”
“아, 몰라요. 그럼 박 사장님이 대화해보던가요.”
“…….”
그 말에 박 사장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도 뭐라 해야 할지 전혀 몰랐으니까.
던전에서 나온 여자에게 한국말을 하든 다른 무슨 말을 하든 통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런데 여자에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외의 말이었다.
“도망가요.”
“네?”
“도망가요.”
“…?”
놀랍게도 여자의 입에서는 한국말이 나왔다.
뭔가 입이랑 말이랑 맞는 않는 느낌이었지만, 분명 한국어였다.
다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여자의 입에서 도망가라는 말이 나오고 곧바로 지진이 일어났다.
쿠그긍! 쿠그긍!
“으헉! 뭐, 뭐야?!”
“헉! 형! 저기 문이 닫혀요!”
“뭐?!”
형우가 뒤를 돌아보자 그들이 지나왔던 통로가 닫히는 게 보였다.
쿵,
통로는 예의 벽으로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좌우 벽에 붙어 있던 석상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파직. 부스스.
데스나이트 석상이 갈라졌다.
갑자기 일어난 지진 때문에 부서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건 석상이 부서지는 게 아니었다.
돌 안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죽음의 기사가 깨어나는 거였다.
“미친! 도망쳐!”
그걸 보자마자 형우가 외쳤다.
그러면서 관에 있는 여자를 어깨에 둘러멨다.
“승차감이 좀 안 좋아도 참아요!”
“으아아아!”
“A급 던전이었어! A급 던전이라고!”
형우가 여자를 챙기는 사이 둘은 의리 없게 먼저 도망갔다.
그러나 그들을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형우도 A급이긴 했으나 지금 깨어나고 있는 데스나이트의 수는 무려 20기.
혼자서 막기엔 힘들었다.
그런데 거기서 겨우 D급, E급을 보호하며 싸우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
둘이 먼저 도망가주는 게 차라리 형우를 도와주는 거였다.
쿵.
“스으으…….”
그러는 사이 타락한 기사이자 죽음의 상징, 데스나이트가 완벽히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