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2-2
랜덤 박스에서 빛이 사라지며 무언가 나타났다.
그런데 나타난 무언가가 형우가 예상하던 것과 완전 궤를 달리했다.
“알?”
두 개의 랜덤 박스에서 알 하나와 가죽 주머니 하나가 나왔다.
가죽 주머니는 얻자마자 형우에게 정보가 들어왔다.
‘아공간 주머니.’
가죽 주머니는 무게에 상관없이 어떤 물건이든 담을 수 있는 아공간 주머니였다.
안에 들어가는 물건은 다른 차원에서 보관되었기에 주머니가 절대 무거워질 일이 없었다.
다만, 제한은 1,000㎥.
집으로 치면 약 30평(100㎡) 정도의 공간이 찰 정도로만 담을 수 있었다.
질량을 무시하는 아공간 주머니였지만, 공간의 제한 때문에 덤프트럭 같은 것들은 넣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거였다.
앞으로 포인트나 중요한 물건 대부분을 여기에 담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일단 이것부터 넣어놔야지.’
형우는 바로 영혼석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다.
스르륵.
영혼석은 주머니의 입구에 닿자마자 스르륵 사라졌다.
이 영혼석은 얼마 전 형우가 죽인 장현민의 영혼석이었다.
장현민과 싸우면서 느낀 거지만, 염력은 효율이 높았다.
디버프 계열인 속박에 걸리고도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고 방어와 공격이 동시에 가능했다.
어찌 보면 정말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장현민이 사용한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응용법이 많았기에 더더욱.
그 때문에 형우는 장현민의 영혼석을 가져왔다.
비록 지금은 흡수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흡수할 수 있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이 돌덩이는 어떡하지?”
돌덩어리처럼 생긴 큰 알이었다.
어떻게 이런 큰 알이 주사위 같은 랜덤 박스에서 나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 문제는 이 알의 용도를 알 수 없다는 거였다.
아공간 주머니와 달리 어떠한 정보도 전달되지 않았다.
항상 친절하게 전달해주던 정보가 이때만큼은 나와주질 않았기에 형우는 답답했다.
“모르겠다. 나중에 공룡이 튀어나오든 병아리가 튀어나오든 알아서 하겠지.”
탁.
형우는 알을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놨다.
어차피 고민해봐야 답도 안 나오는 거 깔끔하게 포기했다.
대신 지금은 다른 것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A급 속박이라… 기대 이상의 능력을 보여줬으면 하는데…….”
B급에서 그냥 속박의 강도만 오른 정도면 좀 실망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A급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전 세계에서 세 자릿수밖에 없는 능력인 만큼 차원이 달랐다.
형우는 들뜬 마음으로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움직이려 했다.
“형우 형!”
“아, 깜짝이야.”
형우가 밖으로 나가려 문을 열려고 하자 용준이 들이닥쳤다.
“노크 모르냐, 노크?”
“형이 야동 보는 것도 아닌데 뭘 노크해요?”
“…….”
예상외의 반격에 형우는 한 방 먹었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용준은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광장에서 그게 나왔어요! 그게!”
“그게 뭔데? 말 좀 천천히 제대로 말해봐.”
형우는 용준을 진정시켰다.
“던전이요! 광장 밑에 던전이 있어요!”
“뭐?!”
E구역 광장.
“조심! 조심!”
“천천히 움직여!”
얼마 전 몬스터 웨이브 이후 망가질 대로 망가진 E구역을 재건하고 있었다.
사실 몬스터에 대한 피해보다 직접 때려 부순 게 더 많았다.
몬스터도 몬스터지만 용준의 능력으로 골목 구석구석 증식으로 늘린 돌을 처박느라 도시 이곳저곳이 만신창이었다.
다만, 그중에서도 제일 피해가 큰 곳은 광장.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 구덩이를 팠던 광장은 최고로 문제였다.
제대로 함정을 파겠단 마음으로 죽어라 날렸던 능력들은 지금 복구 시간을 배로 잡아먹고 있었다.
게다가 안에 죽어있는 몬스터들의 수도 문제였다.
타죽은 사체들을 치우는 작업만 며칠이 걸릴 정도.
이것 중에 쓸만한 것들은 블랙 머천트에게 팔기 위해 분류하는 것도 며칠 더 걸릴 예정이었다.
이 한 작업만 하는 게 아니라 도시 전체적으로 재건 사업을 벌이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것만 문제가 아니었다.
툭.
“아, 거 조심 좀 합시다.”
“뭐? 조심? 이 새끼가 미쳤나?”
“새끼? 이 새끼가 뒤지려고!”
퍼억!
“말려! 말리라고!”
“좀 참아! 아, 진짜!”
가볍게 부딪힌 것만으로도 시비가 붙었다.
그동안 5대 길드와 뒷골목은 다른 길을 걸어왔다.
5대 길드는 점포 정도와 구역에서 얻는 광물로 생계를 유지했다.
나름대로 양지에서 활동하는 이들.
굳이 D구역에서 스폰을 받는 뒷골목을 건드릴 필요도 없었고 가까워질 필요도 없었다.
D구역이 양패구상으로 망했다.
S급 헌터 차민이 E구역에서 손을 뗐다.
이 두 가지만 없었다면 앞으로도 섞일 일이 없는 부류였다.
그러나 형우에게 5대 길드 인원들이 모두 투항하면서 강제로 섞이게 됐다.
아무리 노예 문서로 묶여 있다고는 하나 형우가 두 부류 간의 싸움까지 막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억지로 눌러놓아 봤자 나중에 터지면 더 터져버릴 터.
박 사장과 김 사장은 형우에게 일부러 터치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원래 애들은 싸우면서 친해집니다.”
그 말은 들은 형우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인 거 같으면서 아닌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일단은 둘에게 맡겼다.
어차피 이런 부분에선 형우는 전혀 몰랐다.
각설하고 전(前) 5대 길드 멤버와 전(前) 뒷골목 멤버 간의 갈등 때문에 재건 속도가 더뎠다.
그 때문에 며칠 동안은 몬스터를 치우는 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도 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아졌다.
오늘 역시 이전보다 더 나아진 두 부류가 재건 작업하고 있었다.
“으윽… 냄새. 이놈의 시체들 치우는 것 때문에 정말 죽겠네. 이놈들은 죽어서도 사람을 괴롭히네.”
사체를 치우고 있던 한 죄수가 손으로 코를 막으며 괴로워했다.
감옥 자체가 꽤 선선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시체의 부패 속도가 빠르진 않았다. 그리고 사체 대부분이 탄 덕분에 조금 덜한 게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금세 썩은 내를 풍기며 작업하는 죄수들을 괴롭혔다.
“좀만 참아. 그래도 이제 다 끝나가니까.”
옆에 있던 다른 죄수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죄수는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미친놈. 여기서 뭐 좋다고 웃고 있냐. 하아, 여하튼 빨리 끝내자. 더 여기 있기 싫다.”
“킥. 알았어, 임마.”
둘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몬스터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게 보였다.
“응? 이게 뭐지?”
“왜 그래?”
사체를 치우던 중 뭔가 틈이 보였다.
작고 긴 틈이었기에 처음엔 검은 막대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갈라진 틈이 분명했다.
“이야…! 얼마나 능력들을 때려 박았으면 이렇게 파이냐? 이거 길드장이 만든 건가?”
툭! 툭!
죄수는 그 말을 하며 틈을 발로 밟아보았다.
그런데 그때.
파직.
“응?”
쿠아앙! 와르르!
“끄아아악!”
“헉! 야!”
갑자기 죄수가 서 있던 땅이 굉음을 내며 내려앉았다.
다른 죄수가 도와주기 위해 달려왔지만 이미 아래로 떨어진 뒤였다.
다행히 죄수는 멀쩡했다.
“크윽! 아, 허리야…….”
죄수는 3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헌터의 육체면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높이였기에 큰 부상은 없었다.
“야, 괜찮냐?”
“어어. 괜찮은 거 같아. 쓰벌.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재수가 없냐. 나 좀 올라가게 잡아주라.”
죄수는 그 말을 하며 위로 올라가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몸을 일으킨 죄수는 어디선가 많이 본, 익숙한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응? 헉!”
죄수는 무언가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어디 다친 거야?”
“저, 저기! 게이트가 있어!”
“뭐?!”
“게이트가 있다고! 던전 게이트!”
죄수의 앞엔 일명 던전 게이트라 불리는 던전의 문이 있었다.
특이한 원 문양으로 만들어진 문이 말이다.
“부, 부길드장님 좀 불러올게!”
위에 있던 남자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형우가 이곳에 도착했다.
A구역 검은 요새.
A구역에 오는 이들이면 누구나 다 놀라게 되는 건축물 중 하나였다.
요새인 만큼 높이나 규모 면에서 큰 편은 아니었다.
현대의 건물에 비하면 별 큰 의미 없는 5층 규모.
그러나 여기에 쓰인 재료를 아는 이들이라면 겨우 5층이라는 말은 못 했다.
블랙 큐브.
이 첨탑 건설에 쓰인 재료 이름이었다.
F구역에서 나오는 블러드 큐브와 비슷한 종류였지만 절대 비슷한 종류란 말을 꺼내지 못할 재료였다.
블랙 큐브는 무려 능력 증폭에 쓰이는 광물이었다.
정제 후 무기나 액세서리, 보호구 등으로 만들어 사용했는데 광물의 순도에 따라 능력 증폭의 양이 달라졌다.
제일 높은 순도의 경우 본인 능력의 10%를 증폭시켜줬다.
사실 별거 아닌 수치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10% 차이는 정말 엄청났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A급 능력을 가진 헌터가 풀강을 한 뒤 블랙 큐브로 정제한 무기로 능력을 쓰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안 그래도 풀강이 된 상태에선 위 등급에 준하는 능력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블랙 큐브로 증폭까지 되면… 무려 S급과 똑같은 능력이 발휘된다.
그 때문에 이 블랙 큐브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게다가 강도가 상당했기에 방어구나 무기로써도 최상급이었다.
그런데 그런 블랙 큐브로 하나의 요새를 지어놨다.
그러니 다들 놀랄 수밖에.
그러나 정작 이 요새를 지은 SH길드의 길드장 방수혁은 별 감흥이 없었다.
오직 요새 정상에 있는 본인 집무실만 소중히 여겼다. 그리고 그는 본인이 좋아하는 집무실에서 오늘 기분 나쁜 보고를 받았다.
“음… 그러니까 F구역이 전부 날아갔다 이거지?”
“예, 파츠 길드 책임자와 몇몇 부하를 빼고는 모두 죽었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D구역과 E구역에서 연달아 일이 터지면서 도망쳤던 인원의 회수도 불가능해졌습니다.”
수혁은 부하의 말에 인상을 썼다.
“어떤 쓰레기를 앉혀놨길래 운영을 그렇게 개떡같이 해? 안 그래도 납품하는 곳이라서 신경 쓰라고 했건만.”
“신우 길드에서 좀 소홀했던 거 같습니다.”
“소홀? 소홀은 개뿔. 됐어. 어차피 작업장으로 쓰기에도 부적합했어. F구역은 폐쇄해.”
그 한 마디에 F구역에 있는 파츠 길드의 운명이 결정됐다.
구역 폐쇄는 그저 구역 폐쇄가 아니었다.
모든 것의 폐쇄.
이제 얼마 뒤면 파츠 길드장과 부하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할 터였다.
“예, 길드장님.”
“그런데 왜 나한테 이걸 지금 보고한 거야? 어차피 정기회의 때 브리핑받으면 되는 내용인데.”
“F구역을 조사하던 도중 헌터수사부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헌터수사부? 허… 그 양반들이 여기까지 쫓아왔어?”
수혁은 헌터수사부라는 말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웃는 표정으로 변했다.
헌터수사부라는 이름은 지구에서 가볍지 않았다.
S급 헌터가 소속되어 있고 그 밑을 충분히 받쳐줄 국가가 존재했다.
하지만 여긴 지구가 아니었다.
헌터수사부의 S급이 오더라도 이길 자신이 있는 감옥.
오히려 S급 헌터가 와주길 원했다.
노예 문서로 묶어버리면 자신의 길드는 한층 강해질 테니까.
“그래? 헌터수사부의 김 부장이라도 왔어?”
“아닙니다. 그 아래 신지영인 것 같습니다.”
신지영이라는 말에 수혁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신지영? 재밌겠네. 노리는 곳은 C구역 거기겠지?”
“예, F구역을 거쳤으니 그곳일 가능성이 큽니다.”
“보안 강화하고 잡히면 바로 데려와. 아, 따로 뺄 수 있는 애들 있으면 다 동원하고.”
“예, 지시대로 이행하겠습니다.”
부하는 그 말을 끝으로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수혁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밖을 바라봤다.
“신지영이라… 신지영. 재밌겠네.”
밖은 수천 개의 영혼석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