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옥에서 재능 찾기-21화 (22/151)

▣ Chapter 1-21

첫 번째 밤과 두 번째 밤사이.

지구의 시간으로 약 6시, 아직 사람들이 깨어나기 이른 시간의 도시는 고요했다.

오직 감옥 특유의 울림만이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울림이 차갑게 식은 도시를 더 삭막하게 했다.

뭔가 생기가 빠져나간 듯한 모습.

그러나 도시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무언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사삭!

“…….”

“…….”

말없이 움직이는 그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족히 수백은 되는 사람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빠르게 각 도시 곳곳에 배치됐고 골목골목을 장악했다.

배치된 위치를 상공에서 바라보면 마치 도시를 포위한 것 같았다.

다만, 다른 곳과 다르게 도시의 정면이자 E구역의 유일한 출입문에만 많은 인원이 몰렸다.

모인 이들은 뭔가 비장하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러나 한 명만은 그러지 못했다.

‘계약서만 아니면 내가 모든 걸 먹는 건데. 배성문… 그 새끼는 언제 100만 포인트나 모은 거지?’

주 길드장, 명훈은 지금 상황이 맘에 안 든다는 듯 주름진 얼굴을 더욱 구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자신만이 C급이었다.

위로는 차민밖에 없었고.

그런데 차민이 E구역에서 손을 떼면서 제일 강한 강자가 명훈이 됐다.

그런 상황에서 당연히 일인자를 꿈꿨다.

하지만 쉽게 상황이 돌아가진 않았다.

일명 5대 길드라 불리는 이들은 계속 회담을 해왔던 사이였고 같이 뜻을 같이하기로 한 이들이었다.

사실 배신은 쉬웠다.

다만, 그들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C급이라도 D급 수십, 수백이 모이면 벅찼다.

‘그렇게 이긴들 뭐가 남는다고.’

설령 그렇게 이겼다 하더라도 양패구상의 상황이 오면 D구역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계약서에 사인을 해버렸다.

그 때문에 일인자가 되고 싶었던 명훈은 이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계약서에 사인한 이상 이행을 해야 했으니까.

“주 길드장님, 준비 끝나셨습니까?”

“… 나야 이미 끝났네.”

명훈은 배 길드장을 보곤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서 감정을 느낀 배 길드장은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 너무 서운해하지 마십시오. 저희도 다 먹고살자고 한 거 아닙니까.”

“…….”

“일 끝나면 주 길드장님은 더 챙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분 좀 풀어주세요.”

“퍽이나.”

휙.

명훈은 고개를 돌리곤 다른 곳으로 갔다.

그러자 뒤에서 유 길드장이 다가왔다.

“영감이 제대로 빡쳤나 봐?”

“풋, 너 같으면 안 그러겠어?”

쪽.

배 길드장은 유 길드장에게 가볍게 키스를 했다.

“하긴. 여하튼 이제 곧 성문 씨 원하는 대로 되겠네?”

“유진이 너도 원하는 거지.”

둘은 그 말을 하며 웃었다.

감옥에 와서 사귀게 된 둘은 그동안 다른 길드의 길드장이면서 뜻을 같이 해왔다.

물론 어제까지 밝히지 않았다.

밝히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걸 위장하기 위해서 서로 반목하는 모습도 많이 보여줬다.

다만, 그것도 어제부로 끝났다.

계약서를 쓴 이상 더는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연예인들은 비공개 연애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 정말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어.”

“미치긴. 아… 밤에 미치긴 했네.”

“아, 오빠.”

둘은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사이 작전 시간이 다가왔다.

작전 시간은 5대 길드가 모두 동의한 7시였다.

혹시나 있을 방해꾼까지 막기 위해 작전을 시작을 이 시간으로 택했다.

게다가 7시 정각은 두 번째 밤이 시작되는 시간.

두 번째 밤이 시작되면 E구역의 문이 닫힌다. 그리고 그 문이 닫히는 순간 작전 개시였다.

“아주 깨가 쏟아지네. 그동안 어떻게들 참은 거야?”

신 길드장은 둘에게 다가가며 그 말을 했다.

“최근에 사귀게…….”

“구라는 적당히. 선수끼리 그러지 맙시다.”

“하하…….”

성문은 어색하게 웃었다.

“뭐 나도 지금 상황은 마음에 드니까 별말 안 하겠수다. 그럼 난 내 길드 있는 곳으로 갑니다.”

탓.

신 길드장은 그 말만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때 어디선가 돌이 긁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륵!

E구역의 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닫히기 시작했다.

문이 닫히는 시간은 5분.

“다들 준비하고 문 닫히자마자 바로 시작이다. 제일 큰 투기장부터 처리하고 그 뒤로 나머지 바로 정리한다.”

“예.”

“예.”

성문의 말에 다들 조용히 대답했다. 그리고 곧 문이 닫혔다.

쿵!

“자, 다들 움…….”

쿠그긍!

“뭐, 뭐야?!”

“지진?!”

이제 막 출정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강해졌다.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니었다.

헌터들에겐 그리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강도.

그러나 이 진동을 느끼는 그들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렸다.

“모, 몬스터 웨이브…!”

누군가의 짧은 외침과 함께 닫혔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콰아앙!

지하 투기장 안의 어느 방.

그곳은 고급 스위트 호텔의 침실이 이 정도일까 싶을 정도로 화려했다.

게다가 수학여행 온 반 하나가 다 들어와도 남을 만한 널찍한 크기였다.

그런데 이 넓은 곳은 단 한 명만을 위한 곳이었다.

얼마 전까진 박 사장의 소유였으나 지금은 등기이전이 됐다.

“아함.”

형우는 넓은 침대에 눈을 떴다.

“참 적응 안 되네.”

침대에서 깨어나자마자 형우가 한 첫 마디였다.

넓은 방도 모자라서 지구에서도 써본 적 없는 거대한 트윈베드에서 눈을 떴다.

여기에 시종만 있다면 정말 딱 귀족인 된 듯한 느낌일 것 같았다.

다만, 몸은 귀족과 거리가 멀었다.

‘좀 여유롭게 자고 싶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변해버렸나.’

F구역에서 군대처럼 6시에 일어나는 것이 맞춰졌는지 꼭 6시에 일어났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라 나쁘진 않았다만, 그래도 영 찝찝했다.

안 그래도 자정 넘은 시간까지 뒷골목 통합 때문에 뛰어다녔는데 말이다.

형우는 침대에 나와 거실로 갔다.

“얜 왜 여기가 좋다는 거야?”

거실로 나오자 큰 소파에 누워 있는 용준이 보였다.

분명 다른 방이 많았다.

여기 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괜찮은 방이 있었는데 용준은 한사코 거절하며 소파에서 자겠다고 했다.

결국, 고집을 못 꺾은 형우는 용준의 손을 들어줬다.

자기 취향이라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얘도 참 웃기다니까.”

형우는 그 말을 하며 샤워실로 향했다.

일찍 일어난 김에 얼른 씻고 업무를 좀 볼 생각이었다.

뒷골목을 통일한 암흑가의 황제가 된 건 좋았다.

다만, 그 덕분에 업무량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겨우 2일 만에 일어났다.

2일 만에 말이다.

아직 제대로 업무 파악도 안 될 정도였으니 한동안은 바쁠 터였다.

그런데 그때.

쿠그긍!

“헉?!”

갑자기 땅이 울렸다.

형우는 혹시 지진인가 싶어서 용준을 바로 깨웠다.

“으으… 나 더 잘 거예요. 소파 좀 흔들지 마요.”

“내가 흔드는 거 아니니까 얼른 일어나!”

헛소리를 해대는 용준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형우가 밖으로 나오자 다급히 달려오는 박 사장의 모습이 보였다.

“형우 님!”

“박 사장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몬스터 웨이브입니다! 몬스터 웨이브!”

“네? 그게 무슨…….”

“모르십니까?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일단 나가서 설명하겠습니다.”

박 사장은 다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 김 사장은 부하들을 모으고 있었다.

“D급! E급! 투기장 앞으로 모여! 늦장 부리는 놈들 일 끝나고 다 뒤진다! 빨리 모여!”

형우가 어리둥절해 하자 박 사장은 그제야 설명을 해줬다.

“몬스터 웨이브. 정말 몇 년에 한 번씩 가끔 벌어지는 개 같은 일입니다.”

몬스터 웨이브는 감옥에서만 일어나는 이상 현상 중 하나였다.

갑자기 몬스터들이 들이닥치는 일이었는데 이게 무서운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밤이라고 생각할 때 문이 강제 개방되면서 몬스터들이 들어온다는 거였다.

다행히 징벌자들은 안으로 못 들어왔지만, 문이 닫히는 시간에 일어나는 기습은 정말 무서웠다.

보통 몬스터 웨이브가 끝나는 시간은 다음 문이 닫히기 전까지.

총 4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3단계로 나뉘어 몬스터들이 꾸역꾸역 쳐들어왔다.

“3단계만 막으면 됩니까?”

“예, 3단계만 막으면 되는데 정말 많이 옵니다!”

단계마다 오는 몬스터의 수는 약 천여 마리.

결국, 삼천 마리가 넘는 몬스터들을 모두 상대해야 이 웨이브가 끝났다.

게다가 그 단계마다 몬스터를 이끄는 지휘관 몬스터도 처리해야 했다.

그 지휘관 몬스터는 보통 다른 것들에 비해 한 등급 높은 몬스터였다.

“일단 가서 몬스터 등급부터 봐야 합니다. 형우 님이 계시기는 하다만, 처음에 F급 고블린이 나와야 무난하게 막을 겁니다. 혹시라도 D급 이상 몬스터가 나오면 바로 튀어야 하고요.”

기본적으로 몬스터는 하위 개체를 제외하곤 모두 레이드 대상이었다.

E급 오크라도 같은 등급이면 몇 명이 모여서 상대하는 게 정석.

그런데 그런 몬스터가 무려 천 마리씩 밀려오니 높은 등급의 몬스터가 몰려오면 정말 답이 없었다.

“형우 님! 소집 완료했습니다!”

그사이 부하들을 다 모은 김 사장이 달려왔다.

그 수가 무려 400여 명.

이 중 D급이 50명이고 나머지 350명 정도가 E급이었다.

그들은 뚱한 표정으로 형우를 바라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며칠도 아니고 몇 시간 전만 해도 서로 전혀 모르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보스라는 사람에게 갑자기 소집됐으니 뚱할 수밖에.

다만, 어차피 노예 문서로 묶이기도 했고 몬스터 웨이브라는 비상 상황이었다.

그 특수한 상황이 그들의 입을 막았다.

“갑시다.”

“예, 형우 님.”

그 말과 함께 400명이 넘는 인원이 E구역 문으로 움직였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워낙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걸은 지 얼마 안 돼서 몬스터가 꾸역꾸역 밀려 들어오는 문을 볼 수 있었다.

“크아!”

“크아아!”

최하급 몬스터인 F급 고블린들은 괴성을 지르며 문을 넘어왔다.

다만, 그들은 제대로 넘어오기도 전에 5대 길드에 의해 저지당했다.

“워터볼!”

“빙결!”

최전선에서 5대 길드의 두 수장이 분전하고 있었다.

성문과 유진은 능력의 시너지 효과를 활용해 최대한 많은 수의 고블린을 죽였다.

어차피 최하급 몬스터였기에 상대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얼씨구? 저놈들이 웬일로 이렇게 빨리 왔데?”

김 사장은 앞장서서 몬스터 웨이브를 막고 있는 5대 길드를 보며 비아냥거렸다.

몬스터들을 죽인 뒤 사체를 팔아 포인트를 벌 수 있었지만, 그런다고 5대 길드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없었다.

“설마?”

박 사장은 뭔가 눈치챈 듯 인상을 썼다.

그때 성문이 다가왔다.

“왔으면 좀 빨리 도와주면 안 됩니까?”

“아이고, 빨리 도와야 하는 거였습니까? 5대 길드분들이 잘 막고 있어서 도울 틈이 안 보입니다만?”

박 사장은 인상 쓰며 말하는 성문을 향해 비아냥거렸다.

그러자 바로 반응이 왔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아, 무슨 말이긴요. 5대 길드분들이 갑자기 빠릿빠릿! 해져서 문에 그것도 수백 명씩이나 몰려 있으니까 놀라워서 말입니다.”

“…….”

그 말에 성문의 입이 닫혔다.

이미 박 사장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다 파악한 듯했다.

그런 대상에게 여기서 뭐라 말해봤자 본인만 손해인 상황이었다.

왜 이렇게 빨리 왔냐, 많은 인원으로 어떻게 순식간에 모았냐.

이 두 질문에 무너질 게 뻔한 상황.

이런 상황에선 화제를 전환하게는 최선이었다.

“그러는 그쪽은 뭡니까? 언제부터 뒷골목이 연합이라도 했습니까?”

성문은 뒤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어… 음…….”

그 말에 역으로 박 사장의 말문이 막혔다.

설명해줄 순 있었다.

그런데 이름이 없는 게 문제였다.

그 때문에 어버버 거리며 말을 못 꺼냈다.

“우리는 프리즌 브레…읍!”

형우는 혼자 떠들려는 용준의 입을 막았다.

“이스케이프 길드입니다. 그쪽 말대로 빨리 나서줄 테니까 대화는 이쯤 하죠.”

탓!

대충 길드명을 지은 형우는 성문을 무시하고 앞으로 달려갔다.

성문은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그러나 형우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새로 등장한 의뢰서에 정신이 팔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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