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1-17
웅성웅성.
E구역 시장 안, 여관들이 즐비한 곳을 지나면 바로 나오는 그곳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가장 안전한 루트가 뚫린 E구역이라 그런지 다른 구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왔다.
그러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모인 물건들이 시장을 통해 팔리고 있었다.
게다가 비교적 E구역 문 근처에 있던 터라 죄수들의 유동이 잦았다.
물론 처음부터 그걸 염두에 둔 배치였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일수록 조금이라도 더 잘 팔리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여관 근처이면서 물건 파는 이들이 쉽게 오고 다니는 길이면 더더욱.
“D구역에서 온 물건도 많네.”
형우는 시장을 둘러보며 한 마디 툭 내뱉었다.
E구역에서 제일 가까운 구역은 D구역.
그러다 보니 자주 찾는 것도 그들이었다.
다만, 그것 말고도 이유가 많았다.
잘 정돈되고 치안이 유지되는 E구역과 달리 D구역은 춘추전국시대에 버금가는 혼돈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전투가 벌어졌다.
그곳은 길드 간의 싸움이 가장 치열했다.
E구역처럼 누가 확고한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고 그 위의 상위 길드들이 본인 구역이 아닌 다른 구역에서 세력 다툼을 벌이다 보니 더 혼란스러웠다.
그 때문에 이곳에서 주로 거래를 하고 있었다.
‘그럼 D구역도 그렇고 E구역도 그렇고 같이 혼란스러워야 하는데…….’
E구역은 이상하게도 겉으로 보이는 치안은 좋았다.
지하 투기장 같은 곳이나 숨겨진 곳은 몰라도 겉으로 보이기엔 안전했다.
그래서 맘 놓고 장사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궁금해서 살짝 알아보니 이 구역의 지배자에 대해서 듣게 됐다.
‘차민…….’
이곳을 지배하는 길드의 장은 차민이라는 죄수였다.
등급은 무려 S급.
겨우 E구역에 S급 헌터가 왜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가 문지기였다는 말을 듣자 더 놀랐다.
‘아니, S급 헌터가 할 일 없이 왜 문을 지켜.’
처음 형우가 감옥으로 들어왔을 때 만난 헌터가 바로 차민이었다.
차민은 자신의 길드인 플로어를 여기에 정착시키고 문을 오가며 문지기 역할을 했다.
왜 그가 문지기 역할을 하는진 모르지만, 그로 인해 죽는 이들의 수가 많이 줄었다는 거였다.
죄수는 자신의 형량을 모두 채우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때가 가장 위험했다.
많은 이들이 노리기 쉬운 시기고 이곳의 생활을 청산하며 그동안 모은 모든 것들을 가지고 떠나는 시기였다.
그 때문에 가장 위험했다.
그러나 차민이 문지기를 한 뒤부턴 많은 이들이 살아 돌아갔다.
그런데 도는 소문으론 차민은 마음대로 지구와 감옥을 오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게 됐으면 그냥 나가서 살겠지.’
S급이 뭐가 부족해서 이곳에 터를 잡고 살겠는가.
신기한 물건이 있든 말든 존재만 안다면 구하는 건 어렵지도 않았다.
다만, 지금 차민은 이곳에 없었다.
얼마 전부터 문지기의 역할만 수행하고 E구역엔 나타나지 않았다.
차민의 길드 또한 사라졌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 덕분에 이곳의 지배자가 바뀌었다.
그래도 아직 차민의 영향 덕분에 치안이 유지됐다.
‘그래 봐야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 그건 그렇고 블랙 머천트는 뭐하는 놈일까?’
형우는 가까워지는 검은 건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온통 새까만 어둠으로 칠해진 7층까지 건물이 멀리서 보였다.
내부 상황을 정리하고 투기장을 완전히 장악한 형우는 시장으로 향했다.
이제는 능력을 강화할 때가 됐으니까.
게다가 돈도 충분했다.
무려 600만 골드가 있는데 강화는 문제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 상위 단계인 D급과 C급도 강화할 수 있는 돈이 있었다.
형우는 이참에 C급을 한 번 강화하려 했다.
많이는 강화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하나 이상만 강화해도 큰 힘을 발휘할 터였다.
“용준아.”
“…….”
“용준아? 아직도 삐졌냐?”
“아닌데요.”
‘잔뜩 삐졌네.’
형우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잠깐 놀린 것 때문인지 용준은 제대로 삐진 상태였다.
아예 고개도 돌리고 형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만, 용준이 하나 착각하는 게 있었다.
“용준아, 커지면 더 좋은 거라니까. 장난으로 한 말 아냐.”
형우도 살짝 놀리긴 했다.
그러나 용준의 능력은 앞으로 쓰임새가 더 많아질 터였다.
단순히 커진다는 것만으로 큰 효과가 없을 것 같았으나 상황에 따라 크게 달랐다.
물건을 던지며 높은 위치에서 능력을 쓰거나 좁은 통로에서 능력을 쓰면 효과가 배가 될 거였다.
강화를 풀로 하면 더더욱 더 클 것이고.
‘생각해 보니 무섭긴 하네.’
돌덩이 하나를 던졌더니 하늘에서 집채만 한 돌덩이 수십 개가 떨어진다 생각하니 아찔했다.
“풀강해서 더 커지면 그냥 던지기만 해도 애들이 나자빠질 거야. 그럼 D급도 네가 이길 수 있을걸?”
“…….”
쫑긋.
형우의 말에 용준은 애써 관심을 피했다.
하지만 이미 자신도 모르게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아래에 있는 적에게 증식을 난발하며 D급이 뭐야 C급도 잡을 수 있을 거야.”
“정말요?”
“정말이라니까.”
‘C급은 힘들겠지만.’
형우는 그 말을 속으로 숨기며 이제 좀 풀린 용준과 블랙 머천트의 가계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블랙 머천트 님께서 운영하시는 상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헉?!”
가계 안으로 들어서자 형우와 용준은 깜짝 놀랐다.
인간이 아닌 뭔가가 그들을 반겼다.
게다가 지구에선 몬스터로 분류된 생물이었다.
“몬스… 읍!”
형우는 말하려던 용준의 입을 막았다.
“하하, 저희가 처음이라 그런데 안내 좀 부탁해도 되겠습니다.”
“당연히 가능합니다. 이곳을 이용하시는 고객님들의 이용을 돕는 게 저의 역할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는 그 말을 하며 손으로 길을 안내했다.
둘은 그의 뒤를 따라갔다.
“형, 저거 엘프잖아요? 그것도 여자 엘프.”
용준은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 엘프 맞지.”
그들을 안내해주고 있는 건 엘프였다.
판타지 책이나 신화에서 나오는 그 엘프라기보단 그냥 외모 때문에 엘프란 이름이 붙었다.
다른 몬스터들과 다르게 인간을 많이 닮았고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다.
그 때문에 많은 헌터가 이들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엘프들을 잡을 순 없었다.
지금 안내를 하는 엘프처럼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온순하지도 않았다.
정말 포악한 짐승이었기에 잡기 힘들었다.
또한, 엘프는 잡히는 순간 자결을 했다.
설사 자결을 못 하더라도 금세 병들어 죽어버렸다.
그 때문에 아직 잡힌 엘프가 있다는 소문은 못 들었다.
‘물론 이건 언론에 공개된 내용이고.’
속으로 들어가면 분명 있을 터였다.
“근데 형 왜 말리신 거예요? 몬스터잖아요.”
“너 주변 못 봤냐? 다들 쟬 보고도 아무 말 안 하잖아.”
형우는 주변을 흘낏 바라보며 말했다.
주변에선 아무도 엘프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은 엘프에게 도움을 받아 물건을 사고 있었다.
“그리고 문제가 있었으면 벌써 문제가 있었겠지. 그러니까 괜히 촌놈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있어.”
“쩝…….”
용준은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지하로 내려갔다.
“어? 왜 지하로 가는 겁니까?”
분명 1층에도 물건이 있었다.
그러나 엘프는 그들을 지하로 안내했다.
“회원이 아니신 경우엔 E급 이하 물품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E급 이하 물품은 지하 1층에 갖춰진 상태입니다.”
“예?”
“또한, 회원의 경우 카탈로그를 따로 제공해드리고 있으나 회원이 아니신 관계로 저에게 물어봐 주시는 물품 외엔 안내할 수 없습니다.”
“회원이요?”
“예. 혹시 회원으로 등록하신다면 1층으로 다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일찍 좀 말하지…….’
형우는 괜히 엘프를 째려보곤 말을 이었다.
“그 회원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100만 포인트를 지불하시면 됩니다. 그럼 1층 D급 물품을 살 수 있는 D급 회원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100만이요?!”
“예.”
100만 포인트를 태연하게 말하는 엘프에게 형우는 주먹을 꽂고 싶었다.
지금 가진 돈의 1/6이나 되는 돈.
함부로 지출하기 힘들었다.
‘잠깐.’
그런데 그것 전에 머릿속을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저… 1층에서 D급 물품을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1층엔 D급 물품이 있습니다.”
“그럼 2층에서 물건을 사려면 또 회원권을 갱신해야 합니까?”
“예. 2층의 경우 500만 포인트를 지불하셔야 C급 회원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2층엔 C급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3층과 4층, 5층 모두 이용하시려면 회원권을 계속 갱신하셔야 합니다.”
“허…….”
그 말을 들은 형우는 억장이 무너졌다.
C급 능력을 한 번 강화해볼까 생각했는데 강화는커녕 문턱이 도달하자마자 돌아와야 할 상황이었다.
‘그럼 회원권 사는 데만 600만? 미치겠네.’
“형? 회원권은 왜요? 아, 형 D급이라고 하셨죠.”
얼마 전 여동생의 이야기를 할 때 D급이라고 말해줬었다.
그러자 용준은 그동안 이해 안 됐던 게 이해됐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E급이 하루에 3경기씩 뛰어가며 다 이기는 게 말이 안 됐으니까.
다만, 이제 용준에게 다른 이야기를 또 해줘야 할 상황이 왔다.
“D급이시면 회원이 되어야겠네요.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네요. 돈에 여유가 있으니까 D급 회원권 정도는 그냥 살 수 있겠어요.”
“…근데 그게 좀 더 들어야 할 것 같아.”
형우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용준이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
“네?”
“형… C급이다.”
“…….”
“…….”
“에엑?!”
“다음에 또 들려주십시오. 고객님.”
“예, 수고하세요.”
“으으, 배고프다. 얼른 밥 먹으러 가요.”
결국, 형우는 C급 회원권을 사지 못했다.
C급 회원권까지 사면 아무것도 못 사고 나오게 되는 꼴이었고 용준의 능력도 강화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D급 회원권을 사고 용준의 능력을 최대로 올려줬다.
거기에만 소모된 돈이 총 208만 포인트.
그리고 형우는 D급 블링크를 한 번만 강화를 시켰다.
D급은 12만 포인트였던 E급보다 4배 넘게 비싼 50만 포인트가 소모됐다.
총 258만 포인트의 지출.
이제 남은 돈은 대량 342만 포인트 정도였다.
‘이제 이거로 돈을 불려야지.’
2개월 동안 무작정 모으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소모할 건 소모하면서 최대한 돈을 모으려 했다.
‘투기장에서 도박꾼들의 피를 끝까지 빨아먹어야지.’
2개월간 많은 수익을 위해서 형우는 계속 경기를 뛸 생각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조작도 계속될 터였다.
양심의 가책은 없었다.
그들은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들어오고도 정신 못 차리곤 인생을 허비해다.
굳이 그런 이들에게 쓸데없는 자비를 베풀 생각 없이 정말 피 한 방울까지도 다 뽑아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충분히 잘 모이려나…….’
조작으로 돈을 버는 건 쉬웠다.
대박을 치기도 쉬웠고.
다만, 그것도 오래 못 가는 짓이었다.
계속하다간 대박은커녕 투기장이 쪽박을 찰 터였다.
돈만 잃고 뭔가 석연치 않은 경기들이 계속되면 당연히 이용객들이 준다.
그렇다고 조절하면 많은 수익을 바라기도 힘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적은 돈을 버는 건 아니었으나 C급 강화하려면 한 번당 무려 100만 포인트가 필요했다.
그걸 벌기 위해선 더 많은 돈이 들었다.
“지훈 님! 아니, 형우 님! 큰일 났습니다!”
“음?”
그때 멀리서 박 사장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인지 박 사장의 표정은 꽤 다급했다.
“한창 장사할 시간인데? 무슨 일입니까?”
“헉헉! 김 사장! 헉! 김 사장 쪽에서 쳐들어왔습니다! 지금 투기장이 털리고 있습니다!”
“예?!”
박 사장의 말에 용준은 깜짝 놀랐다.
안 그래도 형우에게 제대로 다져진 탓에 다들 몸을 회복 못 했다.
그 상태에서 김 사장 쪽 인원이 들이닥쳤으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터였다.
“형, 어떡해요?”
용준은 당황한 표정으로 형우를 바라봤다.
그런데 형우의 표정이 이상했다.
“어떡하긴 알아서 가져다 바치는데 감사히 먹어야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