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1-14
“형, 저 먼저 씻고 올게요.”
“그래.”
쿵.
경기가 모두 끝나고 둘은 바로 여관으로 돌아왔다.
형우는 여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벌써 몇 명째 죽이는 거냐…….”
감옥에 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열 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
물론 그들을 죽이면서 감옥에서 독해지기로 마음먹긴 했다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듯했다.
독해지려면 말이다.
‘익숙해져야지.’
굳이 합리화는 하지 않았다.
그냥 나 살기 위해서 하는 짓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이제 어떡하지? 굳이 이제 피해가며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는데…….’
원래의 목표는 능력을 강화한 뒤 D구역으로 거취를 옮기려 했다.
그런데 D급 블링크를 얻게 되면서 그 생각이 싹 사라졌다.
같은 등급끼리의 싸움이면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걸 떠나서 역으로 이길 수도 있는 능력.
이제 굳이 숨을 필요가 없을 터였다.
그랬기에 고민이 됐다.
‘일단 터를 잡고 나갈 방법을 고민해봐야 하나?’
처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역시 목표는 밖으로 나가는 거였다.
여기에서 생을 마감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문제는 방법이 없다는 거였다.
다만, 그래도 정보 하나는 가지고 있었다.
얼마 전 들은 이야기였는데 이전에 용준이 해준 이야기와 통하는 부분이 존재했다.
대형 길드들이 연합해서 S구역을 노린다는 거였다.
노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S구역을 얻음으로써 생기는 이득과 감옥 탈출이었다.
문제는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른다는 거였다.
‘여기서 최대한 정보를 얻어봐야지. 정보 길드라고 있던 거 같은데. 없으면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고. 이건 용준이랑 이야기를 해봐야지.’
“아, 그러고 보니 보상이 있었지?”
형우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하나 꺼냈다.
종이엔 동그라미 두 개가 그려져 있었고 능력 합성권이란 글씨도 보였다.
“뭔가 되게 허접하게 생기긴 했는데…….”
종이만 보면 누가 장난쳐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머리에 주입된 정보는 이게 진짜라는 걸 알려줬다.
게다가…….
‘능력 두 개를 합쳐서 다른 능력을 얻게 해준다고?’
놀랍게도 합성은 도박 아이템 같은 거였다.
베이스로 한 능력 하나와 재물로 선택할 능력 하나를 합친다.
여기서 성공하면 그전보다 더 좋은 능력을 얻게 되고 실패하면 재물로 사용한 능력이 사라지게 된다.
다만, 넣은 능력에 따라서 확률이 달라졌다.
‘그래도 실패할 때 리스크가 엄청나게 큰 건 아니네.’
하나는 살아남는다는 게 컸다.
어쩌건 잃는다는 거 안 좋은 거긴 했지만, 도박을 걸어볼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해보자.’
현재 형우에겐 총 4개의 능력이 있었다.
하나는 있어도 쓰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능력이었고 나머진 D급 윈드 커터, D급 블링크, E급 재생력.
형우는 이 중 D급 윈드 커터와 E급 재생력을 합칠 생각이었다.
재생력이 필요한 순간도 있겠지만… 일단은 이게 제일 가진 것 중에 쓸모없는 능력이기에 제물로 삼으려 했다.
베이스는 윈드 커터.
윈드 커터는 솔직히 나쁘진 않았다.
다만, 그 나쁘지 않은 게 다라서 다른 능력으로 바뀌어도 상관없을 듯싶었다.
블링크를 얻게 된 이상 이걸 주력으로 쓰면서 되니까.
‘제발 좋은 거로 바뀌길.’
형우는 동그라미 두 개에 능력을 적어놨다.
능력 합성권의 사용 방법은 간단했다.
동그라미 두 개에 능력을 적고 찢는다.
형우는 바로 종이를 찢었다.
치지직. 팟!
종이를 찢자 짧게 빛이 터졌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면서 결과가 나타났다.
“어?”
쾅! 쿠웅! 파지직!
투기장 특실.
“아악! 망했어! 망했다고!”
“…….”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박 사장은 방 안의 모든 걸 부수고 있었다.
명환은 멀찍이 떨어져서 그걸 지켜봤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아저씨 같이 생겼지만, 박 사장도 D급 헌터였다.
막고 싶어도 막을 수가 없었다.
막는다고 화를 가라앉힐 사람도 아니었고.
“후우…….”
잠시 후, 박 사장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지만, 지금은 화내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명환아.”
“예, 사장님.”
박 사장의 말에 명환은 바로 옆으로 달려왔다.
“내가 지금까지 얼마를 잃었냐?”
“어제까지 잃은 69만 포인트에서 오늘 베팅한 50만 포인트까지 총 119만 포인트를 잃으셨습니다.”
“으드득!”
잃은 포인트에 대해 듣자 박 사장은 이를 갈았다.
“그놈들은 얼마를 벌었다고?”
“대충 80만 포인트가 넘어갈 겁니다.”
그들은 이미 형우와 용준이 한패라는 걸 알고 있었다.
숨겨질 정보도 아닌 게 끝나면 항상 둘은 같이 이동했다. 그리고 배당받은 돈을 아는 건 어차피 베팅 매표소 직원도 투기장 소속이었기 때문.
“그걸 가져오면 39만 포인트만 커버하면 되겠지?”
“예, 39만 포인트가 맞습니다.”
“으흠… 좋아. 두철이랑 애들 다 불러. 바로 놈들 있는 곳으로 간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아, 노예 문서도 준비해놔. 그놈 굴려서 나머지도 채워야 해.”
“예,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박 사장의 말에도 명환은 태연하게 대답하곤 밖으로 나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었으니까.
돈 좀 번 애들이 보이면 강탈하는 건 예삿일이었다.
그걸 넘어서 실력이 있는 죄수들을 잡아와 강제로 노예 계약을 맺게도 했다.
노예 문서는 블랙 머천트가 파는 것 중 가장 인기가 있는 제품이었다.
말 그대로 대상을 노예로 만들어주는 문서였는데 도망은 물론 배신까지 불가능하게 했다.
푸는 방법은 하나, 주인이 풀어주는 것뿐이었다.
박 사장은 그렇게 잡아온 죄수들을 투기장에서 선수로 뛰게 했다.
그중 하나가 경민과 싸웠던 신경욱이었다.
하필 그렇게 최후를 맞이하긴 했지만.
“방지훈… 꼭 잡아서 끝까지 부려 먹어주마.”
박 사장은 그 말을 하곤 밖으로 나갔다.
“음… 그러니까 형은 밖으로 꼭 나가고 싶다 이거죠?”
“응.”
“그게 형님도 살고 여동생을 위해서도 필수고요?”
“그렇지. 지금은 내가 사는 게 목적이긴 한데… 내가 못 나가면 동생이 죽는 거니까 마찬가지지.”
형우는 용준에게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다 이야기해줬다.
대충 형량을 2,000년 받은 거랑 여동생이 병에 걸려서 포션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믿고 의지할 대상이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 용준밖에 없다는 게 슬프긴 했다.
그래도 머리가 잘 돌아가는 아이라 충분히 대화가 될 터였다.
게다가 다음 거취 문제에 대해서 설득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형님, 여동생분 예쁘세요?”
“얌마!”
형우는 손을 들어 올리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용준은 본능적으로 가드를 올리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 왜요? 남자가 뭐 그런 것 정도는 물어볼 수 있죠.”
“지금 이 상황에서 그 말이 나오냐?”
“에이, 형. 남자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나오는 말이에요.”
용준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 모습에 형우는 더 열을 받았다.
“뭐가 본능이야. 예쁜 건 알아서 뭐하게?”
“예쁘면 제가 좀 다녀오려고 했죠.”
“응? 뭐? 뭐라고 했어, 지금?”
형우는 눈을 껌뻑거렸다.
표정이 딱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같았다.
“예쁘면 제가 다녀오려고 했다고요.”
“뭐?! 어떻게?!”
“저 두 달 뒤면 출소인데요?”
“허…….”
형우는 그 말에 온몸에 힘이 풀리는 듯했다.
용준의 죄목은 사기.
이곳에서 처벌받는 종목 중에서 가장 낮은 처벌을 받는 것 중 하나였다.
게다가 용준은 형우가 오기 전부터 수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제 출소할 날이 다가온 거였다.
“포션은 밖보다 여기가 싸니까 잔뜩 사가면 되죠. 여긴 나갈 땐 압수 안 한대요. 대신 저 나가서 밑천 잡을 건 주셔야 해요.”
“밑천이 뭐냐. 부자로 살 수 있게 해줄게. 대신 꼭 좀 부탁한다.”
형우는 용준의 손을 잡았다.
지금 여동생을 살릴 수 있는 건 용준밖에 없었다.
형우는 진심을 담아 용준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두 달이라고 했으니 그사이 포션을 더 많이 사야겠어.’
두 달 뒤라면 지금의 투기장 말고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돈을 더 벌 수 있다.
지금과 같이 똑같은 방법을 쓴다면 문제없었다.
포션 하나에 3개월의 생명 연장.
그럼 포션 4개에 1년의 시간을 버는 거니 정말 악착같이 벌어야 할 터였다.
게다가 그동안 사실문제였던 건 아까 해결됐다.
돈이 많아지면 노리는 이들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정말 깔끔하게 해결된 느낌이었다.
다른 구역이라면 몰라도 E구역에선 이제 더 이상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으엑?! 뭐, 뭐해요?!”
용준은 그게 부끄러웠는데 괜히 큰 소리를 내며 손을 빼려 했다.
“짜식. 부끄러워하긴.”
“뭘 부끄러워해요. 아, 좀 놔요!”
“놓기 싫은데?”
둘은 그렇게 몇 분간 투닥거렸다.
잠시 후, 드디어 손을 뺀 용준은 짧게 한 마디 했다.
“저도 도움받은 게 있으니까요.”
“도움?”
“혼자였으면 F구역에서 탈출도 못 했고 거기서 노예로 지냈을 걸요? 그리고 출소도 못 했어요.”
“출소는 왜?”
“출소날이 되도 문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밖으로 못 나가요.”
“뭐? 집행인이 오는 게 아니라 문까지 가야 한다고?”
“네. 문까지 안 가면 절대 못 나가요. 그러니까 두 달 동안 잘 부탁해요.”
“그, 그래…….”
내용을 다 들은 형우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고맙다고 이야기는 한 것 같은데 뒷 내용이 뭔가 이상했다.
마치 개인 경호가 된 거 같았다.
‘그러면 어떠냐. 길이 생겼는데.’
형우는 일단 지금 상황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두 달 동안 면밀하게 감시할 생각이었다.
용준에게 포션을 맡겨도 되는지, 신뢰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비밀 하나를 더 말해줘야 할 것 같다.”
“네? 무슨 비밀이요?”
“내 등급에 관해서 말인데…….”
똑똑!
형우가 말을 꺼내려 할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응? 누구지?”
특별히 방을 방문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여관 주인이 문을 두드릴 일도 없었고.
‘김지성인가?’
형우는 혹시 지성이 따라온 건가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누구…….”
쾅!
형우의 말이 채 끝내기도 전에 누가 문을 발로 찼다.
“흡…!”
갑작스러운 기습에 형우는 문에 밀렸다.
그러나 밀린 건 잠깐이었다.
탁!
뒤로 밀리는 와중에 형우는 문고리를 잡고 버텼다.
“뭐야?!”
문을 열고 들어오려던 누군가는 갑자기 문이 밀리지 않자 당황했다.
“뭐해, 병신아?”
“얼른 안 들어가?”
“무, 문이…!”
남자는 문이 열리지 않자 당황했다.
그러나 다음 상황만큼 당황스럽진 않았다.
콰앙!
“크악!”
굉음과 함께 문이 바깥 방향으로 날아갔다.
덕분에 문에 붙어있던 두 명이 같이 벽에 부딪혔다.
형우는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여관 통로엔 수십 명의 사람이 보였다.
그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좋네. 딱 능력을 시험할 필요가 있었는데.”
“응? 뭐라고?”
“윈드.”
그 순간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