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옥에서 재능 찾기-12화 (13/151)

▣ Chapter 1-12

E구역 4일 차.

사람은 환경에 빠르게 적응한다는 말이 맞는 듯싶었다.

E구역에 온 지 4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여기서 오래 지낸 것 같았다.

여관에서 지낸 것도 꽤 오래 지난 것 같고 생활도 금세 익숙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F구역 채굴장에서 노예처럼 지냈는데 그게 벌써 꿈같을 정도로 말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는가 보네.’

형우는 그 생각을 하며 아침으로 나온 빵을 먹었다.

놀랍게도 E구역은 제빵소까지 존재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지구에서 흔하게 접했던 식료품들도 꽤 많이 보였다.

그걸 보고 신기해하자 나이 지긋한 이 여관의 주인이 살짝 귀띔을 해줬다.

“이거 다 밖에서 가져온 거야.”

“네? 밖이라니요? 이걸 어떻게 밖에서 가져와요? 들어오기 전에 다 뺏길 텐데…….”

“어허, 젊은 사람이 머리가 안 돌아가네. 이걸 어떻게 가져오겠어? 아공간 쓰는 능력자들 있잖아. 걔들이 다 가져오는 거야.”

“아…!”

감옥에 들어오기 전 모든 물품을 다 압수당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러나 ‘아공간’ 능력을 가진 헌터들은 달랐다.

자신만이 넣고 꺼낼 수 있는 다른 차원의 공간에 여러 물품을 넣어놓고 감옥에 수감된 뒤 꺼낼 수 있었다.

그들은 이 능력으로 감옥에 많은 것들을 전했다.

살아있는 것들을 전할 순 없었지만, 그 외 것들은 아공간이 허락하는 한계까지 물품을 가져올 수 있었다.

덕분에 그렇게 가져온 씨앗 일부는 현재 감옥에서 파종 되어 생산됐다.

키우기 어려운 식물은 몰라도 어느 정도 노력으로 맞춰줄 수 있는 것들은 이젠 모두 자급자족이 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감옥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세계네.”

감옥은 어찌 보면 인류가 새로 개척한 개척지 같은 느낌이었다.

그 개척지에 온통 범죄자밖에 없어서 문제였지만.

“넴?”

형우의 혼잣말을 들은 용준은 입에 빵을 잔뜩 넣고 우물거리던 입으로 말했다.

“아냐. 얼른 먹기나 해.”

“넵.”

짧은 대화가 끝나고 곧 식사도 끝났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둘은 바로 경기장으로 향했다.

평소엔 점심 이후에 갔지만, 오늘은 좀 빠르게 갔다.

대망의 디데이였기에.

“오늘 제대로 한 번 대박 나면 좋겠네요. 막 몇천만 포인트씩 벌면 좋겠는데.”

“몇천만 까진 몰라도 대박은 날 거야. 그러려고 그렇게 이긴 거니까.”

“하긴. 저 같아도 오늘은 형한테 안 걸 거 같아요. 지금 3일째 9판 연속으로 다 이겼는데 돈 걸기 싫죠.”

“그러니까 그걸 노려서 반대로 가야지. 첫판은 이겨주고 말이야.”

오늘은 형우는 드디어 전적에 첫 패를 추가시키려 했다.

의뢰서의 내용을 충족시키기 위해 한 판은 이겨야 했지만, 다음 경기는 질 생각이었다.

사실 의뢰서가 아니라도 처음 한 판 정도는 이겨줘야 했다.

그래야 다음 베팅의 효과가 더 극대화될 테니까 말이다.

‘쩝. 윈드 커터로 쓸 거 이것저것 연구해봤는데 결국 하나도 못 쓰고 돈 벌 궁리나 했네.’

형우는 속으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걸 모르는 용준은 밝은 목소리를 냈다.

“우리 그러면 끝나고 바로 블랙 머천트에게 가요! 와, 살아보니 능력 강화도 해보는 날이 오네요.”

“얼마나 살았다고 벌써… 그래, 알았다. 나도 많이 궁금하긴 했으니까.”

“오예!”

용준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 모습을 보며 형우는 피식 웃곤 투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시끌시끌.

투기장은 아침, 저녁을 가리지 않고 시장바닥 같았다.

다만, 토너먼트로 이벤트가 열릴 때의 아침은 조용했다.

지금은 아침, 저녁 가리지 않고 경기가 벌어졌다.

그러나 토너먼트가 열릴 때면 일반 경기가 없고 일정이 오후부터였다.

“사람이 질리지도 않나 봐요. 무슨 아침부터 이렇게…….”

“경기가 재밌어서 오는 것만은 아니니까.”

“네?”

“난 경기 접수하고 온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형우는 용준에게 궁금증만 남기고 접수처로 갔다.

접수처로 가는 길, 형우는 투기장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봤다.

모두 뭔가에 찌든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형우는 고개를 젓곤 접수처에 경기 등록을 했다.

경기 등록을 마친 형우는 곧장 용준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용준에게 누군가 붙어있었다.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대놓고?’

꽤 체격이 있는 남자는 손을 흔들며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형우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이 안일했음을 느꼈다.

‘너무 안일했어. 범죄자들만 있는 곳인데 사람이 많든 적든 무슨 상관이야.’

투기장 안에선 안전할 줄 알았다.

사람이 워낙 많기도 했고 일을 벌이기엔 너무 눈에 띄었다.

그래서 투기장 밖에서만 조심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오판이었음을 알고 형우는 바로 용준에게 달려갔다.

그런데… 딱 도착할 때쯤 용준의 웃음이 들려왔다.

“푸핫! 와, 아저씨 쩌네요.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된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됐긴. 내가 아주 제대로 뭉개줬지.”

“우아!”

“아, 근데 나 아저씨 아니다. 이제 25살이라고.”

“헐?!”

둘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별 시답잖은 이야기로 웃으면서 떠들었다.

탁.

그 모습을 보고 맥이 빠진 형우는 걸음을 멈췄다.

“어, 형? 오셨어요?”

다가온 형우를 발견한 용준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응?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남자가 얼굴이 낯익었다.

곧 형우는 남자가 누군지 기억났다.

‘김… 지성이라고 했나?’

그는 처음 형우가 경기를 치른 상대였다.

비교적 최근이었지만 워낙 경기가 빨리 끝난 탓에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아, 라이벌! 저번엔 내가 방심해서 졌지만 이번엔 내가 무조건 이길 거야!”

“…?”

지성의 말에 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이벌은 만든 적도 없었고 라이벌이라 불릴만한 상대와 겨뤄본 적도 없었다.

“형 아니, 지훈이형.”

용준은 자기도 모르게 형우의 본명을 부르려다가 빠르게 바꿨다.

“왜?”

“여기 이 아저씨가 지훈이형 상대래요.”

그 말에 형우는 더욱더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상대를 정하는 방법은 랜덤이었다.

지금 아예 접수자가 둘밖에 없다면 당연히 맞는 말이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소수이긴 하나 접수가 좀 있었고 노예들도 출전했다.

그러니 용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방금 접수하고 왔는데 상대라니?”

“지명권 사용했데요.”

“지명권?”

“그게 무슨 소리야? 지명권이라니?!”

투기장 특실, 박 사장은 이번에도 뭔가에 화나 소리치고 있었다.

“김지성이란 놈이 지명권을 썼답니다. 아침에 5경기를 채우고 바로 썼답니다.”

명환은 박 사장의 말에 바로 대답해줬다.

지명권은 5연승을 한 선수가 다른 선수를 바로 지명할 수 있는 카드였다.

이미 대전 상대가 정해져 있어도 경기 시작 전이라면 얼마든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명권은 먼저 사용한 사람에게 우선권이 부여됐다.

“그럼 우리도 지명권 썼다고 하고 우리가 더 빨랐다고 하면 되잖아!”

“하필 대전 상대가 경욱이로 이미 정해진 상태라서 지명권을 먼저 썼다고 말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있을 겁니다. 게다가 김지성은 이미 방지훈에게 지명권을 썼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낸 터라…….”

“…….”

명환의 말에 박 사장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조작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

“썅! 뭐 하나 되는 일이 없어! 지성이란 새끼는 또 뭐야?”

“처음 방지훈이 투기장에 왔을 때 경기한 상대입니다.”

“아아, 그 한 방에 나자빠진 병신? 허… 능력 덕분에 그래도 계속 이기긴 했나 보네.”

“…….”

“아, 이제 어떡해야 할까.”

명환은 박 사장의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남의 생각을 듣길 죽어라 싫어하는 박 사장에게 조언을 해봤자 욕밖에 안 돌아온다.

특히 혼자 떠들 땐 더더욱.

이땐 침묵에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좋아. 오후에 이벤트 경기가 있지?”

“예. 이벤트 경기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빨리도 그거 전에 3번 이상 못 뛸 테니까 이벤트 경기 끝나고 접수되면 무조건 바로 지명 때려서 다른 놈이 못 잡아가게 해.”

“예, 알겠습니다.”

명환은 대답을 하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박 사장은 씩씩거리며 지성의 이름을 수십 번 곱씹었다.

“팔이 탈골된 거 같아… 머리도 아프고…….”

“그러게 왜 또 덤비셨어요.”

“그러게 말이다…….”

투기장 관중석 한구석, 얼굴에 시퍼런 멍이든 지성에게 용준이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하아…….”

몇 시간 전만 해도 기운이 넘치던 지성은 얼굴을 푹 수그린 채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형우에게 제대로 얻어터진 탓이었다.

E급 쇼크 능력자인 지성은 처음 경기에서 진 것을 인정치 않았다.

방심한 상황에서 기습을 당한 탓에 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도전하기 위해 5연승을 했다.

쇼크는 운 좋으면 D급 헌터도 기절시킬 수 있는 능력이었기에 E급들을 이기는 건 쉬웠다.

덕분에 지명권이 생겼고 바로 도전했지만, 그 결과가 이거였다.

한동안은 꽤 접전이 이어졌었다.

형우도 방어 위주로 가면서 장기전이 됐고 그에 기가 산 지성은 신나게 싸움판을 벌였다.

그러나 승부가 길어진 건 전적으로 형우의 노림일 뿐이었다.

다음 경기에선 일부로 지기 위해 좀 접전을 벌이다가 지성을 이겼다.

그것도 처음 보여줬던 패대기와 무지막지한 파운딩으로 말이다.

“그래도 이번에 돈은 좀 벌 테니까 너무 상심하진 마세요.”

“그래, 그래야겠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어느새 형우의 경기가 끝났다.

“D경기장 2번 신창엽 승!”

“뭐야?!”

“아아! 내 돈!”

“왜 진 거야, 도대체!”

경기가 끝나자 관중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

완벽히 안전한 돈벌이라고 생각했던 형우가 지자 많은 돈을 베팅했던 이들은 순식간에 알거지가 됐다.

돈을 잃은 그들은 형우를 향해 온갖 저주와 욕을 퍼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기실에서 샤워까지 마친 형우는 여유롭게 관중석으로 향했다.

“형! 오셨어요?”

어느새 돈을 찾아온 용준은 밝은 표정으로 형우를 반겼다.

첫 경기에서 포인트는 109,395에서 164,242로 늘어났다.

형우가 이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긴 했지만, 지성도 연승을 해왔기에 그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덕분에 1.5 배당률로 꽤 많은 돈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건 새 발의 피였다.

이번이 정말 대박이었다.

“형! 이거 보세요! 10만 포인트짜리 동전이 8개예요!”

용준은 자랑스럽게 자루를 펼쳐 보이며 돈을 보여줬다.

자루 안에 든 돈은 무려 821,210포인트.

반대편에 돈을 건 덕에 번 돈이었다.

이거면 이제 E급 능력을 6번 강화 가능했다.

물론 혼자 다 쓸 생각은 없었다.

옆에서 좋은 정보도 제공하고 베팅하면서 발로 뛴 용준에게 반을 주려 했다.

‘얘도 앞으로 잘살아야지.’

감옥에 오긴 했으나 용준은 심성이 나쁜 애가 아니었다.

돈 좀 벌자고 사기를 쳐서 들어오긴 했지만, 어린 날의 치기 정도였다.

‘물론 아직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음… 그건 그렇고. 소켓이 하나도 아니고 세 개나 꽉 차 있으니까 정말 든든하네.’

형우는 몸속에서 느껴지는 새로운 소켓을 느끼며 기분 좋은 미소를 흘렸다.

지성과의 경기가 끝나고 난 뒤 ‘목소리’와 함께 몸 안에선 변화가 일어났다.

세 번째 소켓.

아까 전 경기로 형우는 전 세계에 다섯 명밖에 없는 트리플 소켓 능력자가 됐다.

형우는 바로 그 자리에 E급 재생력을 넣었다.

그러자 이전에 없었던 여유가 생겼다.

능력 간에 상성이 있긴 하다만, 그게 없다면 같은 D등급은 다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앞으로 열심히 실전 연습을 해야지.’

형우는 그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돈 잘 간수하고. 오늘 마지막 경기는 베팅하지 마. 내일 한 방에 제대로 터트리고 튀자.”

“넵!”

“음… 그쪽도 좀 벌고 싶으면 베팅하고요.”

“아, 예.”

어느새 공손해진 지성은 군기 바싹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기다리시던 이벤트 경기 시간입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사회자의 말에 관중 모두가 소리를 질렀다.

오늘은 투기장에서도 몇 번 없는 D급 간의 이벤트 매치였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투기장을 이용해주시는 고객님들을 위해 항상 노력하는 저희는 이번 이벤트를 위해…….”

“잡설이 길다!”

“닥치고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우우우!”

사회자의 서론이 길어지자 관중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사회자는 허겁지겁 다음 멘트를 날렸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벤트 매치 첫 선수는 D구역에서도 유명한 실력자이자 쾌속의 사나이! D급 신속의 능력자 김준혁!”

“와아아!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1번 게이트에서 D급 헌터 김준혁이 밖으로 나왔다.

그는 여유롭게 손을 흔들면서 경기장에 걸어갔다.

“이에 맞는 두 번째 선수는! 마찬가지로 D구역에서 유명한 실력자이자 회피의 정점! D급 블링크 능력자 안문철!”

“와아아! 안문철! 안문철!”

2번 게이트에서 D급 헌터 안문철이 나왔다.

안문철은 좀 굳은 표정으로 보였다.

“쓸데없이 긴 말 안 하겠습니다. 승리의 룰은 단 하나! 누가 죽거나 항복을 외치기 전까지입니다! 그럼 경기 시작!”

사회자의 말에 바로 경기가 시작됐다.

“하앗!”

“흡!”

한 명은 신속이라 능력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공격을 했고 한 명은 블링크라는 단거리 공간이동 능력으로 회피하며 기습을 했다.

형우는 그 모습을 보며 딱 한 가지를 떠올렸다.

‘저기서 한 명이 죽어줬으면 좋겠는데…….’

어느새 잔인해진 형우였지만, 저 두 능력 중 하나만 있으면 정말 싸움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형우의 생각이 실제로 일어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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