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1-10
감옥 E구역.
E구역은 F구역과 다르게 도시의 형태였다.
이유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도시를 실질적으로 지배 중인 길드가 계획적으로 나선 덕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구역 밖과 동일하게 개미굴 같았던 F구역과 달리 E구역은 넓은 돔과 같은 형태였다.
그렇기에 도시의 형태로 발전할 수 있었다.
처음 도시에 들어오면 정면에 여관과 시장이 있었고 외각은 대부분이 주거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됐다. 그리고 중앙엔 상징물과 광장, 길드 건물들이 보였다.
유흥가는 시장의 바로 옆에 붙어 있었는데 여느 유흥가에나 있는 술집이나 홍등가가 몰려있었다.
범죄자들이 모인 감옥인 만큼 이쪽으로 발달이 잘된 상태였다.
다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도박장은 기본이고 노예, 마약장사까지 별의별 것들이 넘쳤다.
게다가 지하에도 특별한 공간이 있었다.
지상보다 지하가 더 매력적이라 할만한 것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지하엔 투기장이 존재했다.
“와아아!”
“짓밟아버려!”
“아, 더럽게 못 싸우네!”
“이겼다! 이겼어!”
온갖 고함으로 시끄러운 투기장 안, 원초적인 쾌락을 즐기기 위해 모인 죄수들은 투기장 참가자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모였다.
안에는 총 4개의 경기장이 있었고 가끔 특별한 경기를 위해 4개의 경기장을 합쳐서 하나의 경기를 진행하기도 했다.
다만, 그런 빅 게임은 자주 벌어지는 게 아니었다.
이 지하 투기장의 챔피언인 ‘브레이커’가 싸울 때나 D급 헌터들의 이벤트 매치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잘 열리지 않았다.
물론 그것 말고도 흥미로운 많은 경기가 있었기에 항상 문전성시를 이뤘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형, 정말 괜찮은 거죠?”
“괜찮다니까.”
“정말 괜찮은 거 맞죠?”
“아, 그래. 괜찮다고.”
“하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베팅 매표소 앞, 용준은 불안한 눈으로 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E구역에 도착하자마자 형우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숫자와 P가 새겨진 동전 ‘포인트’로 바꿨다.
포인트는 감옥의 화폐이자 블랙 머천트와 유일하게 거래 가능한 화폐였다.
그러나 형우는 블랙 머천트와 거래를 위해 바꾼 게 아니었다.
바로 이곳 지하 투기장에서 도박 베팅을 위해서였다.
“형, 진짜 다시 한 번 생각해봐요. 여기 애들을 최준석이랑 다르다니까요.”
“많이 생각하고 하는 거야. 그리고 잃으면 형이 다 물어준다니까.”
“뭘 물어줘요? 지금 전 재산 처박는데 잃으면 돈이 어딨어요?!”
용준은 화를 내며 손에 쥔 돈을 꽉 쥐었다.
그러나 이내 손에서 힘을 빼야 했다.
워낙 형우가 강경한 터라 질 수밖에 없었다.
“220포인트, C경기장 10경기 2번.”
“영수증입니다. 잃어버리면 돈 안 줍니다.”
돈을 주고 베팅할 경기와 선수 번호를 말하자 직원은 영수증을 건넸다.
형우는 영수증을 용준의 손에 쥐여줬다.
“잘 가지고 있어.”
“아, 이건 진짜 아닌데…….”
형우는 울상을 짓고 있는 용준을 내버려 두고 어디론가 향했다.
“대기실로 가서 몸이나 좀 풀어야지.”
이미 베팅을 하기 전에 선수로 등록을 마쳤다.
안타깝게 파이트 머니는 돈을 받고 튀거나 불성실하게 경기에 임하는 죄수들 때문에 경기 후 지급되기에 베팅에 넣지 못했지만.
물론 이번 경기가 끝나고 나면 그것도 합쳐서 다음 경기에 베팅할 계획이었다.
“이번에 이기면 합쳐서 바로 베팅해야지. 아, 처음부터 줬으면 쥐꼬리만 한 돈이 그나마 좀 더 커질 텐데.”
형우는 경기도 전에 이미 이긴 것처럼 이야기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 경기장에서 열리는 경기의 선수 대부분은 E급.
D급은 선수로 참가가 불가능했고 이벤트 경기로만 등장했다.
그러니 당연히 형우의 상대는 E급이었다.
그러나 형우는 이제 F급도 E급도 아닌 D급이 됐다.
E급과 D급의 차이는 천지 차였기에 형우가 당연히 이길 수가 없었다.
다만, 이건 형우만 가능한 방법이었다.
등급을 속이는 건 불가능했다.
블랙 머천트에게 구매할 수 있는 ‘등급 판정기’를 경기장 측에서 보유하고 있었기에 경기 시작 전에 일일이 등급을 확인한다.
워낙 비싼 기기긴 했지만, 경기장 신뢰도를 잃지 않기 위해선 필요한 투자였다.
그러나 형우에겐 번외의 이야기였다.
소켓의 능력을 교체할 수 있는 형우는 언제든 등급을 바꿀 수 있었다.
그 말은 등급 판정기를 완벽하게 속일 수 있다는 거였다.
‘등급 판정기에 부딪혀봐야 알겠지만… 성공하겠지.’
형우는 그 생각을 하며 2번 대기실이라 적힌 곳 안으로 들어갔다.
“…….”
“…….”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자 제일 처음 느낀 건 적막이었다.
죄수들은 모두 과묵했다. 그리고 다들 별 행동 없이 각자 의자에 앉아있었다.
‘노예들인가?’
형우는 죄수들의 팔에 보이는 긴 문신을 보며 생각했다.
감옥엔 놀랍게도 노예가 있었다.
지구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여긴 달랐다.
폐쇠된 곳, 범죄자들의 소굴.
자연스럽게 노예들이 생겨났다.
이유는 각양각색이겠지만, 제일 간단한 이유는 돈이었다.
유흥가에 넘치는 도박장에서 돈을 잃고 빚을 진 죄수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그리고 노예가 된 이들 일부는 이렇게 경기장에 와서 옛 고대 로마의 검투사처럼 경기를 뛰었다.
다만, 그렇게 오는 경우도 있고 빚을 갚기 위해 오는 경우도 많았다.
승수가 많아지고 오래 살아남으면 살아남을수록 파이트 머니가 올라갔으니까.
물론 그들 대부분은 끝까지 살아남지 못했다.
빚을 다 갚아갈 때쯤 꼭 어려운 상대를 만나서 죽었다.
‘뒤로 뭔가 있나 본데.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지. 나야 안전하게 돈 버는 겸 실전 경험이나 충분히 쌓고 나오면 되니까.’
그 생각을 하며 형우는 몸을 가볍게 풀었다.
형우가 그 투기장에 참여하게 된 것은 사실 돈만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제일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왔다.
‘실전 경험.’
지구에서 F급 무능력자로 살았기에 전투는커녕 전투 장면도 많이 보질 못했다.
전투가 다 끝난 자리에나 와서 몬스터 사체를 치우는 게 다였다.
그 일만 몇 년을 반복했으니 실전 경험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형우는 이곳에서 돈을 버는 겸 실전 경험을 얻기 위해 왔다.
등급 간 확실한 능력 차이가 있는 만큼 자신이 패할 가능성이 없다.
게다가 다양한 전투를 보고 경험할 수 있었으니 형우에겐 정말 최상의 장소였다.
‘이것저것 해보자고.’
“C경기장 10경기 2번 박형우?”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형우를 불렀다.
“예.”
“다음 경기입니다. 따라오세요.”
형우는 바로 직원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직원을 따라가자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 입구 바로 옆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다음.”
“다음.”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무슨 성문에서 검문검색하듯이 다음을 연발했다.
‘저게 등급 판정기인가?’
남자의 손엔 하얗게 생긴 막대기가 들려있었다.
봉은 선수들의 복부에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막대기가 옅게 회색으로 변했다.
막대기의 색은 사실 등급에 따라 다르게 바뀐다.
흰색에 가까울수록 낮은 등급, 회색이면 중간, 검은색이면 제일 높은 등급순이었다.
형우는 그것을 보며 바로 능력을 교체했다.
‘으으…….’
능력이 교체되자 몸이 마치 퇴화하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달의 중력을 겪고 있다가 지구의 중력을 겪는 느낌 같기도 했다.
“다음.”
그 기분 나쁜 느낌을 겪는 사이 형우의 차례가 됐다.
툭.
남자는 등급 판정기를 형우에게 가져다 댔다.
그러자 형우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안 걸릴 것이라고 나름의 확신이 있긴 했는데 그래도 막상 닥쳐오니 걱정이 됐다.
“… 다음.”
‘후우…….’
다행히 다음이란 말이 나왔다.
형우는 바로 경기장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바로 능력을 교체했다.
E급 재생력에서 D급 윈드 커터로 능력이 바뀌자 이전에 있던 긴장감과 걱정이 바로 사라졌다.
충만한 힘 덕분인지 자신감만 넘칠 뿐이었다.
“E급 헌터 방지훈 입장!”
형우가 입장하자 사회자로 보이는 이가 크게 소리쳤다.
방지훈은 형우가 쓴 가명이었다.
“끄아아악!”
그때 옆 경기장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형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어때? 여기가 더 아파, 아니면 여기가 더 아파?”
그 경기장에선 노랗게 염색한 남자가 상대를 가지고 노는 중이었다.
몸 여기저기를 찔러가며 고문을 하듯이 괴롭혔다.
게다가 항복도 외칠 수 없게 입을 완전히 망가트려 놓았다.
정말 잔인해도 너무 잔인했다.
그러나 투기장에 온 관중들의 생각은 달랐다.
“킥킥! 저 새끼 서비스할 줄 아네.”
“더! 더! 너무 약해!”
“죽기 전에 고자로 만드는 건 너무하지 않냐? 지옥 가서도 즐기겐 해줘야지!”
오히려 환호하며 더 잔인한 것을 원했다.
그걸 보며 형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때 형우의 안주머니가 작게 빛났다.
형우는 바로 안주머니를 확인했다.
『의뢰서 1-2#
내용: 10번의 승리.
보상: E급 이하 영혼석 흡수.』
『의뢰서 1-3#
내용: 10번의 배팅 성공.
보상: 소켓,』
‘상황에 맞춰서 주는 건가? 근데 도대체 이게 나오는 조건이 뭐야?’
딱 알맞은 타이밍에 알맞은 종이가 나왔다.
다만, 처음처럼 밸런스를 무시한 내용이 아니었기에 더 좋았다.
여기서 어떤 상대이든 10번 이기고 어떤 경기든 10번 베팅해서 성공만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E급 헌터 김지성 입장!”
“뭐야, 이 뼈다귀는? 뒤지고 싶어서 나왔냐?”
형우가 종이를 보고 있는 사이 올라온 지성은 그를 보고 비아냥거렸다.
상당히 체격이 좋은 본인에 비해 형우는 정말 볼품없어 보였으니까.
그러나 종이에 집중하고 있던 형우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너 씹냐?! 하, 내가 첫 경기라서 좀 신사적으로 하고 싶었는데 대가리를 돌게 만드네. 넌 내가 책임지고 기어서 나가게 해준다.”
“응?”
왜 화난 건지 모르는 형우는 그제야 반응을 하며 종이를 안주머니에 넣었다.
“C경기장 경기 곧 시작합니다! 베팅 마감 5분 전!”
“무조건 1번.”
“나도 1번.”
사회자의 배팅 마감 말이 들리자 아직 결정을 못 했던 이들이 매표소로 몰렸다.
물론 대부분이 형우가 아닌 지성에게 베팅했다.
체격 차도 컸고 능력에 대한 정보는 이미 관중에게 제공된 터라 E급 재생력을 가진 형우에게 베팅할 이유가 없었다.
“베팅 마감!”
어느새 베팅은 끝났고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 시작!”
“빨리 눕히고 두 다리부터 부숴주마!”
경기 시작이란 말이 들리자마자 지성이 기세 좋게 달려 나왔다.
‘아무래도 제대로 얕보인 모양이네.’
지성의 능력은 근력 강화.
그런데 상대인 형우의 능력은 재생력이었다.
누가 봐도 질 대상이 뻔해 보였다.
아무리 재생을 해봤자 힘에서 차이가 컸기에 만만히 보고 바로 달려든 것 같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판단은 틀렸다.
“하앗!”
휙!
달려오면서 날린 지성의 주먹을 형우가 가볍게 숙이며 피했다.
형우는 바로 아래로 파고들어 지성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으어?! 켁!”
지성은 손쓸 틈도 없이 무력하게 바닥과 만났다.
‘얘는 너무 약하네. 그냥 바로 끝내야겠다.’
형우는 지성의 위로 올라가 예전에 보여줬던 무지막지한 파운딩을 그대로 보여줬다.
잠시 후, 경기장에서 한 명은 떡이 되어 실려 갔고 한 명은 멀쩡히 걸어서 밖으로 나갔다.
그날 저녁, 형우와 용준은 경기장 밖으로 나와 거리를 걸었다.
용준은 잔뜩 흥분한 상태로 주머니를 매만졌다.
“형, 대박! 이거 진짜 대박이에요! 이대로만 가면 우리 능력 다 강화하고도 이것저것 다 사겠어요!”
용준이 들고 있는 주머니엔 오늘 3번의 경기로 얻은 배당금이 있었다.
첫 경기에 이긴 후 파이트 머니까지 포함해서 베팅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경기를 더 거치면서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지구에서 하는 토토처럼 통계를 필요로 하는 복잡한 계산 대신 돈의 비율과 베팅한 사람의 수로 돈을 나눴다.
그 결과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형우에게 건 이들이 적어 220포인트밖에 없었던 돈은 24,600포인트로 불어났다.
마법도 이런 마법이 없었다.
“안 될걸.”
그러나 용준을 보면서 형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거 다 계속 베팅해서 오늘처럼만 하면 되는데요. 아, 그리고 저는 형이 그렇게 잘 싸우시는지 몰랐어요. E급이 아니라 D급이 싸우는 줄 알았다니까요.”
“하하…….”
그 말에 형우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여하튼… 오늘처럼은 힘들어. 이제 내일만 해도 이렇게 돈이 안 벌릴 거야.”
“왜요? 오늘 많이 무리하셨어요? 아니면 좀 쉬시다가…….”
“아니, 몸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 배당률이 달라질 거야.”
“아…….”
용준이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늘은 형우에 대한 정보가 없었으나 내일은 3연승을 했다는 소식이 다 퍼져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오늘과 같은 배당금을 받긴 힘들 터.
당장 오늘만 해도 첫 경기 이후 정보가 돌기 시작하자 점점 배당금 비율이 깎였다.
그렇다고 일부러 지는 것도 문제가 있었다.
승부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총 3번 패한 선수는 재등록이 불가능했다.
‘그래도 3번을 잘만 베팅하면 좀 더 벌어들일 수 있겠지.’
게다가 많은 돈을 들고 다니고 베팅하는 것도 부담이 많았다.
범죄자들이 넘치는 이곳에서 말이다.
“일단은 베팅하는 건 가서 좀 쉬면서 생각해보고 오늘은 좀 먹자.”
“와아!”
용준은 그 말에 환호성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