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1-8
“헉! 헉!”
“더럽게 거머리처럼 쫓아오네!”
어두운 통로, 미로처럼 여러 갈래로 나 있는 길을 형우와 용준이 숨 가쁘게 달렸다.
둘은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상태였지만, 쉬기 위해 멈출 수 없었다.
“윈드 커터!”
휘이익!
그때 바람의 칼날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파직!
그것은 중간에 있는 돌기둥을 그대로 관통했다.
덕분에 형우는 공격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었다.
“피해!”
형우는 용준의 어깨를 잡아당겨 왼쪽으로 끌었다.
잡아당기자 자연스럽게 옆으로 넘어졌다.
곧 용준이 있던 자리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콰아앙!
‘미친! 윈드 커터라면서?!’
벽을 아예 박살 낸 윈드 커터를 보며 경악했다.
그러나 바라볼 시간도 없었다.
형우는 바로 용준과 함께 일으키며 다시 도망갔다.
“거기 안 서?!”
“야! 새끼야!”
“죽이기 전에 멈춰!”
‘이미 죽이려면서 뭘 멈춰?!’
뒤에선 멈추지 않는 둘을 향해 온갖 말이 날아왔다.
그러나 멈출 생각은 없었다.
잡히는 순간 미래가 어찌 될지 뻔했으니까.
“달리는 거 하나는 정말 잘하네.”
병철은 끊임없이 달리는 둘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둘을 추격하며 이미 F구역에서 꽤 멀어진 상황.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형님, 이제 계속 추격합니까?”
옆에서 길드원 하나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밤이 된 상황에서 밖을 돌아다닌다는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었다.
게다가 병철이 능력까지 사용하는 바람에 더 소란스러워졌다.
이젠 언제 어디서든 징벌자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 여기서 멈춰?! 어차피 못 잡아가면 너나 나나 다 뒤지는 거 몰라?”
“…….”
그 말에 길드원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길드원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병철은 이대로 안 되겠다는 듯 길드원들을 나눴다.
“너희 다섯은 왼쪽으로, 너희 다섯은 저쪽으로 가! 나머지는 나 따라오면서 능력으로 몰이하고!”
“예, 형님!”
“예, 형님!”
미로 같은 감옥이지만 길만 잘 알고 있으면 충분히 이용이 가능했다.
F구역에 터를 잡고 몇 년간 왔다 갔다 했던 그들이었다.
다만, 정신없이 도망치던 터라 형우와 용준은 길드원들이 좌우로 빠진 사실을 몰랐다.
그저 저들에게 도망치기 위해 달릴 뿐이었다. 그리고 두 가지 갈림길이 나왔을 때 또 능력이 날아왔다.
“윈드 커터!”
휘익!
윈드 커터가 오른쪽을 노리고 날아왔다.
“왼쪽!”
능력을 막으면서 오른쪽 길로 갈 힘이 없었기에 둘은 바로 왼쪽 길로 들어갔다.
둘은 몰이를 당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왼쪽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계속해서 능력이 날아왔다.
가는 곳을 제한하기 위해 순간순간 능력이 사용됐고 둘은 병철이 몰이하는 대로 갔다.
그러나 둘도 바보는 아니었다.
“형! 우리 지금 몰이 당하는데요?”
“나도 알아!”
“이번엔 반대편으로…….”
콰아앙!
“못 가겠네요.”
몰이 방향이 아닌 다른 곳으로 틀려고 했던 용준은 날아온 공격에 바로 궤도를 원상복귀 시켰다.
하나하나가 무시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D급인 손병철부터 E급인 길드원들 전부 둘이 감당하기엔 너무 강했다.
다만, 그렇다고 기회가 없는 건 아니었다.
“용준아, 능력 쓸 준비해. 내가 신호하면 바로 날리고.”
“네? 어쩌시려고요?”
“어쩌긴 한 방 견디고 어떻게든 다른 경로로 가봐야지.”
그 말에 용준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D급 능력은커녕 E급만 날아와도 못 버텨요. 제대로 방비한 상태라면 D급도 막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힘들다고요. 그리고 충격을 다 못 견디면 우리가 공격에 맞아야 해요!”
“다 생각이 있으니까 블러드 큐브나 어서 꺼내.”
“으으… 밑천 다 털리게 생겼네.”
도망가는 와중에도 아직 블러드 큐브 몇 개를 남겨뒀던 용준은 울상을 지었다.
“죽으면 끝인데 뭔 밑천이야.”
“네…….”
용준은 풀죽은 목소리를 내며 가방에서 블러드 큐브 하나를 꺼냈다.
썩은 용준의 표정과 반대되게 블러드 큐브는 쓸데없이 더 번쩍였다.
“음.”
형우는 용준이 준비된 것을 확인하고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곧 때가 왔다.
“막아!”
이번에도 역시 갈림길에서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능력이 사용됐다.
“그리네이드!”
휙!
길드원 하나가 능력으로 만들어낸 수류탄을 던졌다.
그리네이드는 E급 스킬이긴 하나 다른 스킬에 비해서 문제가 많았다.
진짜 수류탄과 같은 힘이 있긴 했지만, 범위가 넓지 않았고 앞에서 막히면 곧장 터져버렸다.
그래도 지금은 통로가 좁은 덕에 범위의 제약은 없다시피 했다.
“용준아!”
“증식!”
형우의 신호와 함께 용준은 블러드 큐브를 던지며 능력을 사용했다.
촤아아아!
증식이 발휘되자 던졌던 블러드 큐브는 수십, 수백 개로 늘어났다.
그러자 다가온 수류탄은 그것에 부딪혀 터졌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수류탄이 터지자 블러드 큐브가 사방으로 퍼졌다.
블러드 큐브는 일차적인 폭발만 막아줬다. 그리고 그 사이로 수류탄에서 터져 나온 쇠구슬들이 둘을 덮쳤다.
턱!
형우는 바로 용준을 감싸 안고는 반대편 길로 몸을 날렸다.
휘익! 푹! 푹!
“크윽!”
쇠구슬들이 날아와 형우의 몸에 박혔다.
형우는 최대한 머리를 숙이면서 몸으로 쇠구슬을 막았다.
어차피 재생력이 있으니 죽지 않을 거란 생각에 한 행동이었다.
다행히 블러드 큐브가 제 할 일을 잘해준 덕분에 형우의 몸엔 세 개밖에 쇠구슬이 박히지 않았다.
그 세 개도 곧 재생력이 발동해 밖으로 배출할 터였다.
“혀, 형?!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어서 달려.”
용준은 형우가 몸으로 공격을 막아내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감동을 한 듯했다.
그러나 그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달려간 곧 중간엔 어느새 먼저 길을 막고 있는 길드원 두 명이 보였다.
“망했다…….”
“어, 어떡해요?”
길이 막히자 둘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꽤 신선하긴 했어. 근데 우리가 도망가는 노예들을 한두 번 잡아본 줄 아냐?”
어느새 바로 뒤로 다가온 병철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형우는 최대한 머리를 굴리며 도망갈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나 앞을 뚫고 갈 방법이 없었다.
형우의 능력은 E급 재생력, 용준의 능력은 E급 증식.
전투에서 변수나 버틸 힘 정도였지 주력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게 변수를 만들기도 힘든 상황에선 더더욱 쓸모 있는 것들이 아니었고.
“고문은 쉘터에서 해주지. 기대해도 좋아.”
병철은 사악하게 웃었다.
둘은 그 웃음을 보며 귀신을 본 것보다 더 두려운 표정이 됐다.
“그러게 왜 쓸데없는 짓을 했냐? 너희 어디 쪽 애들이야?”
“어디 쪽이라뇨?”
“허,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뭐 좋아. 길드 내부에서 테러에 ‘결정’까지 훔치려던 양반들인데 시작부터 불면 재미없지.”
병철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정작 억울한 건 이쪽이었다.
“무슨 말이에요?! 우린 안 그랬어요! 그리고 결정이 뭔데요?”
“어이! 증거가 있는데도 구라를 치냐?”
병철은 그 말을 하며 가지고 있던 붉은 영혼석을 꺼내 보였다.
‘저걸 결정이라고 하는 건가?’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지영이 왜 자신에게 저걸 줬는지 말이다.
‘설마 미끼?’
“저도 받은 겁니다. 그게 뭔지 모릅니다. 그건 신지영이…….”
흥분한 용준과 다르게 형우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병철은 말을 끊으며 손을 휘저었다.
“아, 예 예. 개소리는 나중에 실컷 하세요. 일단 빨리 쉘터로 가자.”
“예, 형님.”
길드원들은 형우와 용준을 붙잡았다. 그리고 손목을 묶으려고 했다.
“혀, 형님! 뒤에!”
그런데 그때 길드원 한 명이 창백해진 얼굴로 뒤를 가리켰다.
“뭐?!”
“그르릉…….”
“지, 징벌자다!”
3m는 넘어 보이는 징벌자는 거대한 키를 자랑하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양팔엔 손까지 이어진 날카로운 칼날이 박혀 있었고 몸 전체는 근육 덩어리였다.
‘저, 저게 징벌자…!’
형우는 징벌자가 나타나자 완전히 압도당했다.
외형은 문제가 아니었다.
짐승과 사람을 섞은 듯한 외모가 혐오스럽긴 했으나 그건 부수적인 거였다.
그것보다 징벌자에게 뿜어져 나오는 포식자의 기운이 모두를 얼게 했다.
“도망쳐!”
“으, 으아!”
“살려줘!”
그때 병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얼어있는 상황에서 병철의 목소리는 모두를 움직이게 했다.
형우와 용준도 그들과 함께 도망쳤다.
“그르릉!”
죄수들이 도망치자 징벌자는 그르릉 소리를 크게 내며 달려왔다.
쿵! 쿵! 쿵!
3m가 넘는 거구가 쫓아오자 바닥이 울렸다.
‘저 덩치에 무슨 발이 저렇게 빨라?!’
처음 보일 때만 해도 꽤 거리가 떨어져 있었는데 어느새 그 거리를 반 이상 좁혔다.
“윈드 커터! 멍청하게 도망치지만 말고 얼른 능력을 써! 몸에 맞추든 바닥에 맞추든 속도를 줄이게 하라고!”
병철은 능력을 사용하며 소리를 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길드원들은 각자의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네이트!”
“투척!”
“매직 미사일!”
쿵! 콰아앙!
날아간 수많은 능력이 모여 큰소리를 냈다.
그러자 징벌자가 주춤하는 게 보였다.
“좋아! 계속 이대로 견제하면서 쉘터로 가면…….”
공격이 먹히는 듯 보이자 병철은 이 상황을 유지하며 쉘터로 가려고 했다.
쉘터는 각 구역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죄수들이 쉴 수 있는 곳이었다.
구역처럼 징벌자가 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만들어놨기에 세이프존 같은 장소였다.
각 구역 간의 거리는 F에서 S로 갈수록 점점 멀어진다.
그 때문에 한 번 다른 구역을 가려면 며칠씩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쉘터가 없다면 징벌자를 만나 전멸할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죄수들이 필수적으로 확보하는 곳이 쉘터였다.
이게 없다면 구역 간의 이동은 불가능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쉽게 따돌릴 수 있는 징벌자가 아니었다.
“그르릉!”
징벌자는 갑자기 몸을 수그렸다.
그 모습을 형우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포기한 건가?’
견제당해서 추격이 안 되니 혹시나 포기한 거 같았다.
그러나 그건 절대 아니었다.
타앗! 쉬이익!
징벌자가 바닥을 차며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미, 미친!”
“피해!”
포탄과 같이 날아오는 징벌자를 보며 모두 질겁한 표정을 지었다.
보고도 피할 수 없는 속도였기에 몸을 피한다고 했지만, 사정권에 든 몇몇은 그대로 징벌자를 마주해야 했다.
스악! 서걱!
“크아아악!”
“억…!”
순식간에 5명이나 되는 길드원이 토막 났다.
따라온 인원의 1/5이 단 한 번에 죽었다.
그 모습을 본 병철은 갑자기 다른 길로 빠졌다.
“형님!”
병철이 홀로 빠져나가자 당황한 길드원들은 허겁지겁 따라갔다.
“용준아! 따라가자!”
“으아아!”
둘도 바로 그 뒤를 따라갔다.
그사이 낙오된 5명이 더 죽었다.
“그르릉.”
단번에 10명을 처리한 징벌자는 다시 한 번 도약을 위해 몸을 움츠렸다.
타앗!
이번엔 거리가 짧아서 그런지 직선이 아닌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더 빨랐다.
다들 겨우 옆으로 피하기만 하고 징벌자가 땅에 박히는 걸 바라봐야만 했다.
쿠우웅! 와르르!
징벌자의 공격에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우악!”
“아아아악!”
하필 그 범위가 꽤 넓었는지 형우와 용준을 포함한 모두가 밑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형우는 용준을 감쌌다.
퍼억! 퍽!
“크억!”
“어억…….”
밑으로 떨어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중간에 지형지물에 부딪히면서 퉁겨진 그들은 다른 통로로 보이는 곳에 떨어졌다.
“크윽…….”
형우는 떨어지면서 느낀 생긴 부상에 신음을 흘렸다.
고통이 심해도 너무 심했다.
그냥 바닥도 아니고 돌덩이에 부딪히면서 떨어졌으니 헌터라고 해도 치명상을 입을 부상이었다.
용준의 경우는 다행히 기절만 하고 겉으로 큰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다 잡은 먹이를 사냥할 징벌자가 남은 상태였다.
“응?”
그런데 뭔가 조용했다.
그러자 당장에라도 그들을 죽여야 하는 징벌자는 멀리서 바라만 보기만 했다.
스릉.
징벌자는 손을 아래로 내리며 뒤돌아갔다.
형우는 멀어지는 그 모습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
‘설마 여기가 쉘터?’
“하… 하하…….”
형우는 헛웃음을 냈다.
천운도 이런 천운이 없었다.
쉘터가 흔한 것도 아닌데 징벌자가 공격하며 드러난 바닥 밑이 쉘터라니.
정말 다시 없을 행운이었다.
“끄으윽.”
“누, 누가 좀 도와줘…….”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신음하고 있는 병철과 길드원들이 보였다.
다들 당장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치명상을 입었다.
형우는 그들을 보며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고통이 남아 있었지만, E급 재생력 덕분에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재생은 상처나 절단에 대한 재생뿐만 아니라 자체 회복에도 뛰어났다.
병철은 형우가 다가오자 다급하게 말했다.
“이, 이봐. 도와주면… 네 목숨은 물론 다른 것도…….”
“…….”
형우는 병철의 말을 듣지 않았다.
표정을 굳히며 바닥에서 돌을 주웠다. 그리고 돌로 병철을 내리찍었다.
퍼억!
“커억…!”
퍼억! 퍼억!
준석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니, 이번엔 그때와 달리 자신의 의지로 행해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부하들도 모두 돌로 내리쳐 죽였다.
그러자 곧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뢰 성공을 축하한다. 운도 좋군.]
그 목소리와 함께 형우는 본능적으로 보상이 들어왔음을 느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병철의 영혼석을 손에 쥐었다.
스르륵.
영혼석은 그대로 녹아 형우에게 흡수됐다.
형우는 곧 시작된 몸속의 변화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