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1-7
“제 이름 예쁜 거 아니까 조용히 있어요.”
지영은 속삭이듯 조용히 말하곤 몸을 움츠렸다.
그때 뒤쫓아온 길드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다!”
“얼른 잡아!”
‘헉!’
둘이 있는 곳까지 길드원들이 들이닥치자 형우는 헉 소리를 내며 숨을 참았다.
지금 있는 곳은 그저 사람들보다 조금 높은 위치였다.
막 건물처럼 환기구가 있어서 위로 숨은 게 아니라 그저 생짜 동굴의 위로 올라간 것뿐이었다.
어둠에 가려진 상태긴 하지만 들킬 가능성이 농후했다.
“어딨어?”
“방금 여기로 가는 거 봤다며?!”
“빨리 찾아! 놓치면 병철 형님한테 죽어!”
‘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길드원들은 바로 위에 있는 둘을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어둡긴 해도 조금만 집중하면 바로 보이는 자리였는데 말이다.
형우는 지영을 바라보며 의문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길드원들이 충분히 멀리 가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
“후아…!”
‘살 떨려 죽을 뻔했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서 이 소리에 걸릴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긴장했었다.
형우는 심장을 가라앉히곤 지영을 바라봤다.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영은 당장 궁금증을 풀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아저씨가 여긴 왜 오신 거예요? 쫓기는 걸 보니 길드원은 아닌 것 같고…….”
“음… 그게…….”
막상 당사자가 앞에 있으니 궁금해서 찾으러 왔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형우는 당황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툭.
그때 주머니에서 챙겨놨던 블러드 큐브 하나가 흘러내렸다.
“으흠…….”
떨어진 블러드 큐브를 본 지영이 형우를 게슴츠레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무려 2,000년 형을 받을 만큼 도둑질을 하신 대도셨구나. 하긴 이런 곳에서도 대담하게 도둑질을 하실 정도면.”
“아니, 그게…!”
형우는 오해를 풀기 위해 다급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지영은 손을 저으며 듣질 않았다.
“됐어요. 여하튼 남의 취미생활엔 관심 없으니 넘어가고요. 나 좀 도와줘요.”
“네?”
“별건 아닌데 도움이 좀 필요해서요.”
지영은 그 말을 하며 씨익 웃었다.
“하아…….”
“한숨 좀 그만 쉬고 얼른 와요.”
지영은 한숨을 쉬는 형우는 나무라면서도 빠르게 움직였다.
조금 전 조우 이후 지영은 형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대가는 이곳에서 안전하게 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하고.
근데 대가는 나쁘지 않은데 과정이 문제였다.
아까 벗어났던 그 길을 다시 걸어가고 있었기에.
“기껏 살 길이 열렸건만 다시 호랑이 아가리로 들어가고 있네.”
“제가 책임지고 밖으로 내보내 드린다니까요. 걱정하지 말고 얼른 따라와요. 그리고 살려준 것도 저…….”
휙.
지영은 말하던 도중 형우를 잡아채고 위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가자마자 곧 길드원들이 나타났다.
“빨리 찾아!”
“썅!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길드원들은 다급하게 움직이며 통로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탁.
길드원들이 다 지나가자 둘은 아래로 내려왔다.
그런데 형우는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잠깐. 그런데 능력이 근력 강화라고 하지 않았어요?”
“아저씨는 순진하게 그걸 믿어요? 범죄자들 있는 곳에서 자기 능력을 곧이곧대로 말하는 바보가 어딨어요.”
“…….”
그 말에 형우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설명하기 힘들어서 안 하긴 했지만, 자신도 능력을 알려주진 않았다.
물론 그 덕분에 최준석에겐 무능력자라고 얕보이기까지 했다.
“여기서 능력 말해줬다간 등에 칼 맞기 딱이라고요.”
“예, 예. 그건 그렇고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요?”
형우는 말을 돌리며 목적지를 물었다.
아까 블러드 큐브가 쌓여있던 곳을 이미 한참 지난 터였다.
그곳을 더 지나서 길드 본부 깊숙한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내부가 더 복잡해졌는데 지영은 길을 다 아는 듯 빠르게 이동했다.
“와보시면 알아요.”
지영은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형우는 그 말과 표정에 더욱더 경계했다.
‘수상해. 아주 많이 수상해.’
아직도 지영은 속 시원하게 알려준 게 하나도 없었다.
능력에 대해서도 그냥 쓴 거만 보여준 거지 그게 어떤 건지, 왜 여기에 들어왔고 전에 어디로 사라졌던 건지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다.
모든 게 의문투성이인 상황.
또 이러다가 호구가 될 수도 있었다.
다만, 지금은 혼자 자력으로 탈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협력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목적한 곳에 도착하자 그 생각이 싹 사라졌다.
“여긴?”
“조용히 하고 봐요.”
둘은 얼굴을 빼꼼 내밀어 어느 곳을 조심히 바라봤다.
그들이 보는 곳은 대충 농구 경기장 5개를 합쳐놓은 크기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옆에 작은 문이 하나 보였다.
다만, 공간은 중요치 않았다.
거기에 있는 것들이 문제였다.
“으윽…….”
“흑흑… 제발 집에 가게 해주세요.”
‘이 사람들이 왜 여기 다 모여 있는 거지?’
안에선 20여 명 정도 죄수들이 모여 있었다.
다쳤다며 끌려갔던 사람들이나 얼마 전 수갑을 차고 안으로 들어왔던 이들도 보였다.
그들은 대부분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게다가 상처 입었던 이들도 거의 기본 치료만 받은 채 그대로 방치된 상태였다.
“곧 있으면 알게 될 거예요.”
지영은 당연히 들려올 질문의 대답을 미리 하곤 형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능력을 사용했다.
“은신.”
스르륵.
능력을 사용하자 둘의 모습이 그대로 사라졌다.
“안 그래도 너무 많이 써서 지속시간이 길지 않으니까 돌발행동은 하지 마세요. 그럼 더 빨리 끝나요.”
지영은 그 말을 하며 사람들을 지키고 있는 경비들을 지나갔다.
놀랍게도 경비들은 지영이 바로 옆에서 지나는데도 인지를 못 했다.
‘은신이 아니라 그냥 투명이네. 등급이 얼마나 높기에 이런 거야?’
보통 은신의 능력은 사전적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몸을 숨겨서 안 보이게 하는 정도.
거기에 기척을 숨기고 모습을 조금 감추게 해주는 부가적인 효과가 있을 뿐이었다.
물론 상대가 인지한 상태에선 너무 쉽게 들켰다.
그래서 은신 능력이 있는 헌터들은 기껏해야 매복이나 정찰 쪽 일밖에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건 정말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은신이 아니라 투명화라고 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거기에 기척까지 죽여주니 오히려 투명화보다 더 좋았다.
끼이익.
“나머지 다 데려와.”
“예.”
“예.”
그때 공간에 같이 있던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길드원으로 보이는 이 6명은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을 끌고 갔다.
“제, 제발 살려줘요!”
“아악! 싫어! 싫어!”
잡혀가는 사람들은 발악하며 안으로 안 들어가려 했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미 알고 있는 듯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러나 완벽히 속박당한 상태였기에 반항은 무의미했다.
“들어가요.”
“네?”
지영은 어리둥절해 하는 형우를 끌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밖보다 더 넓은 공간에 두 명의 남자가 보였다.
그들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많이 재료를 썼는데도 왜 안 나오는 거야! 재료 구하러 왔다 갔다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죄,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운이 크게 작용하는지라…!”
“그놈의 운, 운! 운이 아니라 네가 제대로 정성을 다 안 하는 건 아니고? 그리고 네가 제대로 성과를 안 보여주니까 내가 밖으로 뺑이치고 오는 거 아냐!”
“아, 아닙니다! 저, 절대!”
둘은 상하관계인 듯 보였다.
무슨 일인진 몰랐으나 상사로 보이는 이가 부하를 계속 나무랐다.
그런데 그 나무라는 상사는 형우도 아는 사람이었다.
‘정영두?’
처음 감옥 안에 들어왔을 때 길드 가입을 받고 안으로 안내를 해줬던 바로 그 정영두였다.
영두는 씩씩거리며 화를 내는 중이었다.
“이번엔 제대로 좀 해라.”
“예, 예!”
남자는 허리를 깊이 숙여 보이며 비굴한 모습을 보였다.
그사이 20여 명의 죄수가 모두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눈알을 굴리기 바빴다.
“노예 문서는?”
남자의 말에 한 길드원이 달려와 종이를 내밀었다.
“여깄습니다. 남은 인원 전부라서 전부 쓰시면 됩니다. 소유권 이전은 바로 지금 해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종이에서 빛이 났다. 그리고 남자는 비키라며 손짓을 했다.
“다들 나와.”
“예.”
그 말에 다들 재빠르게 비켰다.
지영와 형우도 무슨 일인진 몰랐지만, 일단 죄수들에게서 멀어졌다.
그러자 남자는 능력을 사용했다.
“합성!”
“으으!”
“아아악!”
“꺄아아아!”
능력을 사용하자 갑자기 죄수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으웩…!’
순간 구역질을 참지 못해 내용물을 밖으로 내보낼 뻔했다.
‘연금술사도 아니고 무슨 인체 연성이야?!’
정말 잔인한 장면이었다.
수십의 사람들이 사지가 뜯겨나가며 하나로 합쳐졌다.
그런데 점차 크기가 줄어들더니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형태로 변했다.
‘영혼석?’
만들어진 결정체는 바로 영혼석이었다.
그런데 영혼석의 색깔이 이상했다.
원래대로라면 안엔 푸른빛을 띠는 불이 보여야 했는데 지금 보이는 건 빨간빛이었다.
그 순간 형우의 안주머니에서 작은 빛이 터져 나왔다.
‘헉!’
형우는 깜짝 놀라면서 빛을 가렸다.
다만, 빛의 세기가 약해서 그런지 아무도 못 본 듯했다.
형우는 바로 안주머니에 생긴 무언가를 꺼내봤다.
『의뢰서 1#
내용: E급 이상 범죄자 10명 사살.
보상: 소켓 교체 가능.』
『의뢰서 1-1#
내용: D급 범죄자 1명 사살.
보상: D급 이하 영혼석 흡수.』
숙소에서 처음 봤던 종이가 다시 생겨났다.
그런데 이번엔 하나가 아니었다.
‘한 개든 두 개든 무슨 상관이야! 이걸 어떻게 하라고!’
형우는 종이를 보자마자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E급을 죽이는 것도 어려운데 그것도 10명이나 죽이라고 쓰여 있었다.
게다가 다른 종이엔 더 황당한 내용이 적혔다.
D급 범죄자 1명 사살.
사실 이게 E급 10명 죽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무협지에서 흔히 말하는 경지 중에 화경을 예로 들자면 화경의 경지에 든 무인은 그 아래 등급의 무인 수십, 수백이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다고 주로 묘사했다.
그런데 E급과 D급이 딱 그 상황이었다.
‘근데 종이가 생기는 조건이 뭐야?’
왜 지금 갑자기 종이가 생긴 건지 의아했다.
처음엔 어디서 생겼는지 몰랐기에 더더욱.
“아, 썅! 이번에도 겨우 ‘약’이나 만들게 생겼잖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영두는 남자를 향해 소리치며 화를 냈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린 듯싶었다.
그때 지영이 몸을 날렸다.
“응?”
서걱! 서걱!
무언가 베이는 소리가 두 번 연달아서 났다.
영두와 남자는 의아한 눈빛을 지었다. 그리고 곧 눈이 뒤집히며 토막 난 시체가 됐다.
“누, 누구냐?!”
둘이 순식간에 죽자 나머지 길드원들이 소리치며 검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검을 뽑기도 전에 영두와 같은 운명이 돼버렸다.
‘도대체 등급이 어떻게 되는 거야?’
형우는 지영의 놀라운 솜씨에 경악했다.
영두만 해도 D급이었다.
비록 D급에서 하위권에 속하는지라 병철보다 지위가 낮았지만 약하진 않았다.
그런데 영두를 지영은 손쉽게 처리했다.
“저기요?”
흠칫.
지영이 형우를 불렀다.
형우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 물러서며 긴장했다.
그러나 지영은 신경도 안 쓰고 웃으면서 어딘가를 가리켰다.
가리킨 곳엔 방금 그 ‘합성’으로 만들어진 붉은 영혼석들이 담긴 자루가 있었다.
“능력을 써가며 저걸 저 혼자 들고갈 수 없어요.”
“…….”
“뭐해요. 어서 들어요.”
털썩.
문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길드원이 지영의 칼질에 바닥과 마주했다.
“허억… 허억…….”
“수고했어요.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봐요. 아, 이건 팁으로 드릴게요.”
지영은 붉은 영혼석 하나를 건네주곤 형우가 들고 있던 것까지 들어 문밖으로 달려갔다.
“허… 힘이 대단하네. 저 정도면 그냥 혼자 들어도 됐던 거 아냐?”
정말 죽을 둥 살 둥 하며 힘겹게 들고 온 자루들이었는데 지영은 나뭇가지를 들 듯이 편하게 들고 갔다.
‘진짜 뭐하는 여자인지 궁금하네.’
그때 형우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형우가 고개를 돌리자 용준의 얼굴이 보였다.
“뭐야?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저야, 뭐 유능하니까요. 것보다 지금 큰일 났어요.”
“왜?”
“우리 아무래도 구역 밖으로 도망쳐야 할 것 같아요. 감독관들이 아무 죄수나 다 죽이고 있어요. 그리고 자리를 비운 사람들은 무조건 죽이고 있고요.”
그 말에 형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필…….’
지금은 문을 지키는 이들조차 없는 상태였다.
나가려면 지금이 적기긴 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지금 문이 반쯤 닫혀 있다는 거였다.
즉, 곧 밤이라는 말이었다.
“거기 누구야?!”
“형, 손병철이에요!”
“헉!”
툭.
형우는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붉은 영혼석을 놓쳐버렸다.
하필 살짝 머뭇거리는 사이 병철과 길드원들에게 걸리고 말았다.
“아, 진짜 지금 가기 싫은데!”
형우는 잔뜩 싫은 표정을 지으며 문을 바라봤다.
그러나 답은 하나뿐이었다.
“나가자!”
형우는 용준과 함께 닫히고 있는 문밖으로 도망쳤다.
“혀, 형님! 밖으로 나갔습니다!”
“썅! 그냥 쫓아!”
“하지만 밤이!”
길드원들은 모두 불안한 표정으로 반대하려 했으나 병철의 의지가 너무 확고했다.
“근처에 쉘터도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냥 가! 그리고 이거 안 보여? 저 새끼들이 범인이라고! 못 잡으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다들 멍청하게 서 있는 거야?”
병철은 땅에서 주운 붉은 영혼석을 보여주며 짜증을 냈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길드원들은 문밖으로 나갔다.
둘은 그들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러나 정작 위험한 건 병철과 부하들이 아니었다.
그르릉. 그르릉.
범죄자들의 천적, 밤의 지배자… 징벌자가 활동을 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