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1-5
“기상! 쳐 일어나 쓰레기들아!”
F구역의 아침, 어김없이 감독관의 성난 목소리가 죄수들을 깨웠다.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다들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끄응…!”
형우도 그 목소리에 깨어났다.
그런데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다가 갑자기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어?”
형우는 몸이 가뿐한 것을 느끼며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리고 몸 상태를 확인했다.
놀랍게도 어제 준석에게 베이고 찔렸던 몸의 상처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손도…….’
심지어 두 번 꿰뚫렸던 손도 별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붕대에 감겨있어서 상처를 볼 순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다 나아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몸도 너무 가벼웠다. 그리고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무언가가 속에서 느껴졌다.
“빨리 안 나와?!”
“예, 예!”
감독관의 호통에 그걸 느낄 새도 없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형우는 죄수들의 행렬에 끼어 채굴장으로 움직였다.
까앙! 까앙!
채굴장에 힘찬 곡괭이질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힘들여 곡괭이질 할 필요가 없음에도 유독 하나의 곡괭이질은 소리가 컸다.
그러나 정작 그 당사자는 큰 힘을 들이지 않았다.
평소처럼 똑같이 했을 뿐이었다.
‘겨우 E급이긴 하지만… 이래서 등급 하나 차이가 천지 차라고 하는 거구나.’
형우는 곡괭이를 내려찍으며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어제 그렇게 난전을 벌이며 상처를 입었건만 몸 상태는 오히려 더 좋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형우는 잘 알고 있었다.
‘소켓! 그리고 E급 능력…!’
놀랍게도 몸속에는 새로운 소켓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형우는 하루 밤사이 일명 ‘멀티 소켓(Multi Socket)’이라 불리는 능력자가 됐다.
멀티 소켓은 둘 이상의 소켓을 보유한 능력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오직 선천적으로만 얻을 수 있고 후천적인 노력으로 절대 얻을 수 없는 능력.
그게 바로 멀티 소켓이었다.
멀티 소켓이라고 하며 하급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대우를 받았다.
연구 목적이나 전투의 다양성 덕분에 쓸모가 많았으니까.
‘밖에서 얻었었으면…….’
형우는 속으로 아쉬움을 토로하며 새 소켓에 자리 잡은 능력을 떠올렸다.
그런데 새로 얻은 능력은 이미 알고 있는 능력이었다.
E급 재생력.
약의 효과도 있었겠지만, 이 재생력의 효과도 상당히 컸을 터였다.
재생력은 등급이 낮아도 위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최준석만 해도 심장을 꿰뚫렸는데 죽지 않았다.
그렇다고 잘린 신체가 다시 돋아나는 건 아니었으나 이것만 해도 엄청난 거였다.
다만, 의문이 있었다.
최준석이 가지고 있던 E급 재생력이 자신의 소켓에 자리 잡았다는 거였다. 그리고 왜 자신에게 그 능력이 생긴 건지 예상가는 게 있었다.
‘설마 그 종이가?’
얼마 전 눈의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썼던 종이에 적힌 내용.
그게 떠올랐다.
형우는 곡괭이질을 멈추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졌다.
무슨 게임도 아니고 퀘스트 완료했다고 보상을 주는 게 말이 되는가.
만약 사실이라면 그 종이에 쓰인 걸 완수할 때마다 능력과 소켓이 생기는 거였다.
물론 종이에 적힌 번호가 ‘0’인 것으로 보아 첫 보상만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걸 떠나서 이 자체가 말이 안 됐다.
차라리 학회에 보고가 안 된 후천적 최초 각성 사례가 처음 등장했다는 게 더 신빙성 있었다.
그러나 어제 그 일을 겪어놓고 지금 상황을 부정할 순 없었다.
‘목소리… 도대체 누굴까?’
감옥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아니, 지구에 있는 던전에 들어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왜 이 목소리가 들려온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형우는 머리를 최대한 굴려봤다.
물론 그래 봤자 고민하는 게 다였다.
이내 형우는 고개를 젓고 곡괭이질을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었다.
잠시만 쉬어도 바로 발길질을 날리던 감독관들이 형우가 쉰 걸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기만 했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그러게. 그래도 최준석이면 나름 잔뼈도 많이 굴고 E급에서 중간은 가는 놈이었는데…….”
“F급이 아니라 E급인 거 아냐?”
“무슨 상관이야. 재밌으면 되지. 어젠 반전도 있고 오랜만에 제대로 빅 경기였어. 하하!”
감독관들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어제 있었던 일을 떠들었다.
크게 말한 덕분에 그 말소리는 모두 형우의 귀로 들어왔다.
‘달라졌다.’
이미 형우는 감독관들이 자신을 대할 때 태도가 달라진 걸 느끼고 있었다.
달라졌다고 해봐야 노예에서 볼만한 장난감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였다.
그런데 달라진 게 또 있었다.
죄수들의 시선.
아예 무관심이거나 하찮게 봤던 시선들이 달라져 있었다.
몇몇은 감독관과 같이 흥미로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고 몇몇은 두렵다는 듯 바라봤다.
가지각색이지만 형우는 그 눈빛 속에서 하나를 확실히 느꼈다.
‘무시를 안 당하려면 내가 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해.’
멍청하게 있다가 길드의 광부 노예가 됐고 멍청하게 당해서 최준석과 혈투를 벌여야 했다.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말이다.
감옥.
온갖 범죄자들이 모이는 곳.
과거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전 있었던 범죄자들은 범죄자 취급도 안 해주는 진정한 쓰레기들이 모인 곳이었다.
쓰레기들이 모인 곳에서 정상인은 비정상인이었다. 그리고 이용당하기 좋은 호구였다.
이런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독해져야 했다.
밖에 다른 이를 걱정하고 밖으로 나갈 생각만 할 게 아니었다.
자신부터 살 생각을 하는 게 옳았다.
그래야 다음이 있는 거였으니까.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지. 그 목소리도 분명 더는 도움이 없다고 했으니까.’
더 이상의 요행은 없었다.
이제 모두 본인 힘으로 헤쳐나가야 했다.
형우는 속으로 한 가지 각오를 다졌다.
‘다시는 멍청하게 당하지 않겠어.’
형우는 각오를 다지며 묘하게 힘이 들어간 곡괭이를 휘둘렀다.
웅성웅성.
일주일 뒤 다섯 번째 밤이 가까워지는 시간.
곧 일을 마치고 정리를 할 시간이었으나 이상하게 죄수들이 시끄러웠다.
그들은 무언가를 구경하기 위해 F구역 문 앞에 모여 있었다.
형우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 대열에 참가했다.
다만, 무슨 일이 있는 건진 몰랐다.
“뭐 대단한 거라도 있나?”
다섯 번째 밤이 다가올 땐 보통 길드원들이 외출하지 않았다.
두 번째 밤과 세 번째 밤사이, 아니면 세 번째 밤과 네 번째 밤사이에만 외출했다.
그 외 시간엔 감옥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을 잡을 능력이 없었으니까.
몇몇은 가능하더라도 많은 사상자가 날 게 뻔했다.
그런데 오늘은 좀 이상했다.
“형우 형!”
그때 누군가 형우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왔다.
‘거머리 또 왔네.’
형우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누군가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 전 최준석과의 일 이후로 좀 다르게 본 것인지 다들 형우에게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변했다.
먼저 다가오는 이들도 있을 정도.
지금 다가오는 이도 그 먼저 다가온 이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형우는 그다지 반기질 않았다.
다만, 사람 만나는 것에 트라우마가 생겼다거나 최준석처럼 의도가 불순해 보여서가 아니었다.
“형도 여기 오셨네요?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는데 딱 보이시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저도 왔죠. 아, 그런데 저번에 그거 보셨어요? 대박이던데 혹시…….”
“…….”
‘하아… 오늘도 말 많네.’
형우는 쉼 없이 떠드는 소년을 보며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러나 소년은 형우가 어떻든 자기 할 말만 계속 늘어놨다.
이제 17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
최준석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이는 걸 봐놓고도 뭐가 좋은지 그 날 이후부터 계속 들러붙어서 재잘재잘 떠들었다.
“…지들도 죄수면서 감독관들은.”
“잠깐, 용준아. 그거 말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좀 말해줄래?”
형우는 용준의 말을 끊으며 문 쪽으로 손가락 끝을 가리켰다.
놔뒀다간 끝없는 네버엔딩 수다를 떨 것 같았기에.
“아직도 모르세요?”
그러자 용준은 대충 문을 힐끔 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응?”
“한 달마다 길드 간부들이 다른 구역 다녀오잖아요. 모르셨어요?”
‘누가 말해줬어야 알지…….’
스마트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보가 쉽게 공유되는 것도 아니고.
여기선 직접 겪어보거나 누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였다.
“근데 겨우 그거 구경하자고 사람들이 모인 거야?”
“엥? ‘겨우’가 아니에요! 얼마나 신기한 걸 많이 가져오는데요!”
“신기한 거?”
형우가 관심을 가지자 용준은 괜히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F구역은 기껏해야 제일 귀한 게 블러드 큐브 정도지만 다른 구역은 이것저것 훨씬 많다고요. 게다가 E급 구역부터 나온다는 블랙 머천트와 거래하고 가져오는 것들도 장난 아니에요. 들리는 말론 블랙 머천트에게 소켓도 살 수 있다고 하던데…….”
“소켓도 산다고?!”
형우는 그 말에 경악했다.
한 번 각성한 이상 늘어나거나 줄지 않는 소켓이었다.
자신의 경우 좀 특별한 일을 겪긴 했으나 이건 그것과 달랐다.
블랙 머천트에게 소켓을 살 수 있다는 건 돈만 있으면 얼마든 소켓을 늘릴 수 있다는 거였다.
“에이. 소문일 뿐이에요. 길드 간부들한테 이런 말 하면 다 웃어요.”
“그래?”
“그래도 그것만큼은 아니어도 신기한 게 많아요. 뭐가 있냐면……,”
“온다!”
용준이 말을 하던 중 누군가 소리쳤다.
그러자 다들 문밖으로 시선이 갔다.
문밖에선 길드 간부로 보이는 이들이 짐을 가득 들고 안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곧 다섯 번째 밤이 올 예정이었기에 다들 다급해 보였다.
안 그래도 문이 조금씩 닫히고 있었다. 그리고 한 명이 제일 먼저 안으로 들어왔다.
타앗!
“후우!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살 떨려 죽겠네.”
가장 먼저 들어와 안도의 한숨을 내쉰 건 병철이었다.
쿵!
병철은 들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놨다.
무게가 좀 나가는지 쿵 소리가 꽤 묵직했다.
‘온종일 안 보인다 했더니만 다른 구역에 갔다 온 거였구나.’
뒤이어 다른 간부들도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간부들 뒤로 30여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손에 수갑을 찬 채로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뭐야?”
“저도 잘 모르겠어요. 신입이 올 시기는 아닌데…….”
용준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준아, 신입이라도 수갑을 차고 들어오겠냐?”
“아, 그렇네요.”
“음… 어?!”
그런데 30여 명 중 아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신지영?!’
처음 법정에서 자신을 깨워주고 같이 채굴장까지 갔던 여자였다.
‘그랬는데 어떻게 저기에 껴있는 거지?’
형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혹시 얼굴이 비슷한 사람일까 다시 한 번 확인하려 했으나 인파에 가리면서 다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한 번 봤다고 착각하기엔 너무 확실히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확실히 신지영의 얼굴이었다.
“왜요? 아는 분이라도 있으세요?”
“아, 아니야.”
용준의 말에 형우는 고개를 저으며 표정을 감췄다.
끼이익. 쿠웅!
그때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자 길드 간부들의 자랑질이 시작됐다.
물론 자랑을 하는 건 길드 내에서도 낮은 위치에 속하는 3명뿐이었다.
병철을 포함한 대부분은 물건과 사람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어디로 가는 거지?’
30명이나 되는 사람을 밖에서 데려와서 어디로 끌고 가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의문을 풀 방법이 없었다.
“이거 한 번만 쓰면 D급도 별거 아니지.”
“아, 촌놈들이 이런 걸 봤나 모르겠네.”
그러는 사이 간부 3명은 물건을 이것저것을 보여주며 자랑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다른 것에 정신 팔린 형우는 뒤로 나와 숙소로 향했다.
“어? 같이 가요!”
용준은 바로 형우를 뒤따라갔다.
“형은 안 보세요? 자랑질이 반 이상이긴 한데 가끔 정말 신기한 것도 있어요.”
“됐다. 너나 많이 봐라.”
형우는 용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내저었다.
“으흠… 형 혹시 그 사람들 어디로 간 건지 궁금한 거예요?”
“뭐 궁금하긴 한데 그래도 알 방법이 없잖아.”
“방법이 있다면요?”
용준은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방법이 있다고?”
“흐흐! 있죠, 당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