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1-4
최준석.
그는 E급의 별 볼 일 없는 헌터였다.
여느 F급, E급처럼 약하고 영향력도 없는.
다만, 준석은 헌터가 되기 전부터 범죄자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죽는 순간의 표정을 보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싸이코로 말이다.
준석은 그 표정을 볼 때마다 성관계보다 더한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점점 심해져 갔다.
자극적인 쾌감을 계속해서 받은 뇌는 더한 쾌감을 원했고 방식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준석은 재미를 잃었다.
‘너무 쉬워.’
운동 좀 했다는 사람도 칼 앞에선 별거 없었다. 그리고 재미도 오래가지 못했다.
길가에서 쉽게 죽일 수 있는 개미처럼 너무 쉽고 너무 빨랐다.
반응도 비슷비슷.
결국, 준석은 점점 삶에 재미가 없어지자 스스로 자살하려고까지 생각하려 했다.
그러던 찰나, 몬스터들이 나타나고 헌터가 생겼다.
본인 역시 헌터로 각성했고.
그러자 준석에게 다시 재미가 생겨났다.
헌터들은 일반인보다 강하면서 능력이 있어 이전과 다른 색다름까지 맞볼 수 있었다.
다만, 힘이 약했기에 몇 번의 살인 이후 관리자에게 발각됐고 감옥에 갇히게 됐다.
그러나 준석의 입장에서 이곳이 더 천국이었다.
사람 죽이는 게 쉬운 세상에서 파츠 길드의 감독관과 말이 통한 덕분에 자신의 재미를 계속 느낄 수 있게 됐다.
처형장에 사각 링이 들어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준석은 신입으로 들어오는 죄수 중 어수룩한 놈을 선택해 속였다.
배신당해 죽는 그 표정을 보는 재미를 위해서.
그리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준석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퍽! 주르륵!
“크윽…!”
준석은 무식하게 달려와 부딪친 형우를 막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렁설렁 막은 게 아니라 온 힘을 다해 막은 거였지만, 뒤로 쭉 밀려났다.
‘분명 소켓 비었다고 말했었는데! 혹시 구라였나?‘
D급 이상의 등급들은 등급 간의 격차가 명확했다.
마치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처럼 말이다.
다만, 그에 비해 E급과 F급는 큰 차이가 없었다.
운이 좋으면 F급이 E급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다만, 그래도 확실하게 격차를 볼 수 있는 게 단 한 가지 있었다.
헌터로 각성하며 변화한 육체의 순수한 힘.
별 차이가 없긴 했지만 그래서 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똑같은 물체를 100kg이라는 힘과 101kg이라는 힘으로 밀 때 100kg은 절대 101kg을 이길 수 없었으니 말이다.
능력을 제외하면 더더욱.
그 때문에 기교라면 몰라도 순수한 힘에선 절대 준석이 형우에게 밀리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준석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갑자기 형우의 눈이 붉게 물든 뒤로 말이다.
눈이 붉게 물든 형우는 손에 박힌 검이 거추장스럽다는 듯 한 번에 뽑아 던지고 무작정 준석에게 육탄전을 벌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치고받는 무식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수없이 맞아도 형우는 멈추지 않았다.
“와아아!”
“이래야 재밌지!”
“준석이, 요새 너무 편했었잖아! 잘 좀 해봐!”
‘개새끼들…! 누구 덕분에 이게 생긴 건데!’
준석은 소리치는 관중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이런 이벤트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관중들은 그런 건 상관없었다.
당장 재밌는 걸 더 바랄 뿐.
“크아아!”
“미친…!”
형우는 마치 짐승과 같은 괴성을 지르며 준석을 밀어붙였다.
계속해서 뒤로 밀리던 준석은 점점 코너로 몰리자 형우를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 발로 찼다.
툭! 퍽!
“큭!”
발에 맞은 형우는 뒤로 밀려났다.
중심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였지만, 용케 넘어지지 않았고 바로 준석에게 달려왔다.
휙!
형우는 주먹을 휘둘렀다.
“스팀팩 빨았냐?!”
준석은 기겁하며 뒤로 피했다.
겨우 F급, 그것도 능력 없는 무능력자가 보였다기엔 정말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
덕분에 준석은 죽을 맛이었다.
그러나 정작 제일 힘들어하는 건 준석이 아니라 형우였다.
‘정신을 못 차리겠어!’
어떤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몰려든 뭔가가 형우의 육체를 옥죄고 조종했다.
뭐 하나 본인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 준석을 몰아붙였던 것도 형우가 한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힘’이 한 거였다. 그리고 머릿속에선 한 단어가 반복되어 들리고 있었다.
[죽여라. 죽여라.]
아까의 소름 끼치는 목소리와 다른 듣기 거북한 저음의 목소리가 ‘죽여라’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어? 이거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감옥에 와서 들은 목소리와는 다른 목소리였다.
그러나 분명 들어본 목소리가 맞았다.
문제는 어디서 들어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거였다.
‘이 목소리를 어디서 들어봤더라? 분명 얼마 전… 아!’
기억을 떠올리던 중 형우는 감옥에 오기던 마지막으로 들렀던 던전이 떠올랐다.
사체 처리반 일을 하던 형우였기에 던전에 들른 것도 당연히 몬스터의 사체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날도 역시 평소와 같이 동료와 함께 작업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시작된 지진은 모두를 혼비백산하게 했다.
그 지진으로 땅이 갈라졌고 형우는 던전 깊숙한 곳으로 떨어졌다.
밑으로 떨어지며 형우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와중에 분명 들었다.
지금 자신에게 들리는 이 목소리를 말이다.
다만, 뭐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근데 난 어떻게 법정에 있는 거지?’
분명 갈라진 틈으로 떨어졌으니 죽던가 아니면 운이 좋게 살아도 던전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자신은 법정에까지 서고 지금은 감옥 안이었다.
그러나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어떻게든 벗어나야 해…!’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본능은 이 ‘힘’이 위험하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준석과 싸우고 있는 지금 몸에 상처가 점점 늘어났다.
미친놈처럼 방어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형우는 어떻게든 그것에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을 쳐봤다.
‘으으…! 제발!’
그때 준석이 형우를 밀치며 검을 잡기 위해 달려갔다.
맞아도 맞아도 계속 지치지 않고 덤벼드는 형우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탁!
준석은 바닥에서 검을 잡아 치켜세웠다. 그리고 바로 휘둘렀다.
휘익!
검의 끝이 형우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죽어!”
‘제발!’
형우는 간절함을 담아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그 간절함에 화답이라도 하듯 몸이 검을 피해 왼쪽으로 기울었다.
큰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검의 경로에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휘청. 스악!
옆으로 피하긴 했지만, 완벽히 피하지 못해 옅은 자상이 몸에 새겨졌다.
“운도 더럽게 좋네!”
그 모습을 본 준석은 우연이라 생각했다.
형우는 나름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인 거였으나 보는 이들 입장에선 그저 휘청인 정도로 보인 탓이었다.
“그것도 제대로 못 찔러?”
“병신들만 상대하다가 병신이 됐냐?!”
“최준석도 한물갔네. 그냥 뒤져라!”
실시간 댓글처럼 주변에서 조롱이 계속 들려왔다.
그 덕분에 준석의 흥분한 공격은 더 힘이 들어갔다.
공격에 힘이 들어가자 검의 속도가 더 빨라졌고 살짝 움직이는 것만으론 피하기 힘들게 됐다.
만약 형우가 제대로 몸을 컨트롤할 수 있는 상태라면 흥분한 준석을 상대로 좀 더 수월하게 전투를 벌였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푸욱!
“크…!”
결국,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검은 이미 한 번 찔렸던 오른손을 다시 관통했다.
게다가 관통한 검은 그대로 형우의 왼쪽 복부를 찔렀다.
한 번 찔린 곳을 다시 찔린 고통도 어마어마한데 이어서 복부까지 찔렸으니 그 타격은 어마어마할 터였다.
“쯧. 끝났네.”
그 모습을 보던 병철은 혀를 찼다.
지금까지 죽었던 죄수들과 다르게 조금 색다른 모습을 보여줬으나 안타깝게도 결과는 패배로 보였다.
아무리 때려도 계속 덤벼드는 무식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하나 검에 찔리고도 계속 덤빌 순 없었다.
“나 먼저 간다. 영두야, 네가 알아서 정리해라.”
“예? 형님, 아직 안 끝났는데 벌써 가십니까?”
영두는 먼저 간다는 병철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름 치명상을 입긴 했지만, 스팀팩 맞은 좀비처럼 달려드는 형우는 죽지 않았다.
아직 뭔가 더 재밌는 장면이 더 나올지도 몰랐다.
그러나 병철은 고개를 저었다.
“끝났어. 뭐 더 볼 게 있겠냐.”
병철은 더는 특별한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로 쓰는 손인 오른손이 복부와 같이 찔리면서 묶였다.
꽤 기형적으로 묶인 터라 부족한 F급의 힘으론 뽑기 힘들 것 같았다.
그 상태에서 역전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말은 매번 보았던 준석에게 상대가 죽는 똑같은 장면을 보게 된다는 말이었다.
‘아주 식상한 장면 말이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병철은 이미 흥미를 잃어버린 터였다.
그런데 그때 환호성이 들려왔다.
“와아아!”
“와아아!”
“어, 어?”
“…!”
환호성에 고개를 돌린 둘은 두 눈이 커졌다.
끝났다고 생각한 판이 뒤엎어지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멍청한 놈. 내게 몸을 맡겨라.]
촤악! 콰득!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린 순간 형우의 왼손은 무식하게 검을 뽑아냈다.
검을 뽑아내면서 손과 복부에서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식하게 힘으로 뽑아내며 검이 박힌 곳에 있던 뼈들이 부서진 것 같았다.
정말 정상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었다.
“크르르!”
검을 뽑자마자 짐승 소리를 내며 준석에게 달려들었다.
형우는 오른손을 뒤집어 그의 심장에 뻗었다.
푹!
“큭! 이 새끼가!”
날이 날카롭긴 했지만, 그저 박혀있는 상태에서 제대로 힘을 주지 못한 검은 준석의 몸을 뚫을 순 없었다.
겨우 살짝 찔린 정도였다.
그러나 공격이 끝난 건 아니었다.
“끄아아아!”
“아악!”
푸욱! 꽈당!
형우는 왼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아 그대로 밀어버렸다.
그러자 손바닥을 관통한 검은 그대로 준석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리고 바닥에 같이 엎어졌다.
그러나 준석은 죽지 않았다.
“내 능력이 겨우 E급 재생력이긴 한데… 이렇게 뚫렸다고 죽진 않거든? 심장이나 머리가 날아가지 않는 이상 바로 안 죽는다고.”
준석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크르…….”
“응?”
그런데 반응이 너무 평온했다.
아까부터 내는 똑같은 짐승 소리였으나 마치 비웃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에 이상함을 느낄 찰나 준석의 머리에 뭔가가 날아왔다.
퍼억!
“어억…!”
퍼억! 퍼억! 퍼억!
형우는 주변에 넘치는 영혼석 하나를 집어 준석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정말 자비가 없다고 표현할 정도로 살벌한 파운딩이었다.
검이 박힌 탓에 도망칠 수 없었고 준석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사, 살…!”
퍼억!
“살려…….”
퍼억!
“…….”
털썩.
잠시 후 준석의 몸이 축 처졌다.
스으으. 사아아.
준석이 죽었다는 걸 알려주듯 몸에서 영혼석이 빠져나왔다.
뒤이어 영혼석이 빠져나간 준석의 육체는 불탄 종이처럼 재가 되어 사라져 갔다.
털썩.
형우는 그걸 보자마자 그 위로 엎어졌다.
그와 동시에 몸을 뒤덮었던 ‘힘’이 형우에게서 빠져나갔다.
“…….”
“…….”
그 모습에 관중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링을 바라봤다.
피와 뇌수가 터져 나오고 얼굴이 반 이상 뭉개질 정도로 내려친 잔인한 행동 때문이었다.
최준석을 죽이기 위한 행동이긴 했지만, 잔인해도 너무 잔인했다.
그때 누군가의 웃음이 들려왔다.
“하하하! 안 그래도 질려가던 참이었는데 마지막은 꽤 신선했어. 영두야, 저 새끼 약 발라서 치료해줘라.”
“예, 형님.”
병철은 유쾌하게 웃으며 좋아했다.
무려 겨우 ‘노예’를 ‘약’까지 써가며 치료시켜주라고 시킬 정도로 말이다.
그때 정신을 잃어가던 형우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움은 이번뿐이다. 너희 세계에선 이걸 튜토리얼이라 부른다지? 그리고… 다음엔 좀 재밌었으면 좋겠군.]
‘이게 어떻게 도움이야…….’
형우는 목소리를 향해 투덜대며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몸속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
스르륵.
그때… 형우의 손에 닿아있던 준석의 영혼석이 스르륵 사라졌다.
아니, 흡수됐다.
그러나 바로 몸 위에 덮여있던 탓인지 다들 그걸 보지 못했고 형우는 치료를 받은 뒤 숙소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