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옥에서 재능 찾기-3화 (4/151)

▣ Chapter 1-3

다음날, 두 번째 밤이 되기 전부터 어김없이 노동이 시작됐다.

시간으로 치면 거의 아침 6시였다.

“후우… 무슨 군대도 아니고.”

형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도 잠은 그나마 7~8시간 이상 잔 덕분에 피로가 어느 정도 풀렸다.

게다가 놀라운 약의 효과 덕분에 어제 다친 것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됐다.

‘근육통 푸는 데나 획기적인 줄 알았는데 대단하네. 도대체 뭐로 만들어진 걸까?’

밖에서도 ‘포션’이란 이름으로 치료 물약이 있었다.

상처를 급속으로 치료하는 데 특별한 효과가 있긴 했으나 워낙 소량에 구매 비용도 비쌌다.

그래서 형우도 선우의 치료를 위해 정말 많은 돈을 썼었다.

그것과 비교하면 이 약은 효과가 좀 떨어지긴 했지만, 다른 대체 수단도 없었고 이 정도 수준이면 충분히 포션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 불릴 만했다.

각설하고 약 덕분에 상처는 물론 육체의 피로도 어느 정도 풀려 아침은 수월하게 곡괭이질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자 형우는 밖에선 줘도 안 먹을 주먹밥 하나를 들고 구석에 자리 잡았다.

어디서 농작이 이뤄지는 건지 지구와 똑같은 쌀로 뭉친 주먹밥이었다.

‘김치찌개 먹고 싶다…….’

겨우 소금 간만 된 주먹밥을 먹으며 형우는 김치찌개가 절실하게 생각났다.

그러나 미음이랑 주먹밥이 섞여서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판이었다.

“집합!”

형우가 김치찌개를 떠올릴 때 갑자기 감독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에 형우는 헐레벌떡 일어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갔다.

저 집합이라는 소리에 늦었다가 반송장이 되어 실려 나간 사람을 봤기 때문이었다.

“…….”

장소에 도착하자 감독관 수십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죄수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또, 무슨 트집을 잡아 누구에게 재앙이 떨어질지 몰랐으니까.

“흠.”

감독관의 리더인 손병철은 죄수들이 다 모인 것 같자 짧게 헛기침을 하며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외쳤다.

“잠시 후에 길드의 물건을 훔친 도둑 새끼의 처형을 하겠다. 다들 10분 후 처형장으로 모이도록!”

“뭐?”

“이번엔 또 무슨 일인 거야?”

병철의 말에 죄수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 일도 없다가 갑자기 길드의 물건을 훔친 도둑을 처형하겠다니.

“아, 그거.”

“킥! 오랜만에 구경거리네.”

그런데 몇몇 죄수들은 기대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이곳에서 오래 살아남은 이들.

그들만이 모든 걸 안다는 듯이 처형장으로 갔다.

게다가 오히려 재밌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처형장으로 향했다.

처형장의 위치가 어딘지는 잘 모르고 있었으나 처형장으로 향하는 인파가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형우는 그들을 따라 움직였고 잠시 후 처형장에 도착했다.

“여기가 처형장…!”

처형장에 도착한 형우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헌터 시체의 특성상 죽으면 사라지기에 시체는 하나도 없었다.

다만, 그 대신 수많은 영혼석이 보였다.

영혼석들이 모여 처형터 주변에 작은 언덕을 여러 개 이루고 있었다.

형우는 그것에 위축되어 긴장한 표정으로 처형장 가운데 단상 위에 설치된 단두대를 바라봤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처형장에 단두대만 있는 게 아니었다.

넓은 사각 링.

마치 권투장에서 볼법한 링이 안에 영혼석들을 담은 채 있었다.

“저기요, 죄송한데 저게 왜 여기 있는 건가요?”

형우는 일면식이 있었던 한 죄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반응이 묘했다.

“곧 알게 될 거야.”

“네?”

그는 그 말을 건네곤 고개를 돌렸다.

형우는 바로 되물으려고 했으나 그때 감독관들이 등장했다.

쿵. 쿵.

감독관들은 쿵쿵 소리를 내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번 사건의 주인공이 보였다.

그런데 그 주인공은 형우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어? 최준석 씨…!”

놀랍게도 단상 위로 끌려가는 이는 준석이었다.

얼굴과 온몸이 진흙탕에 굴렀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준식인지 아닌지는 구분은 가능했다.

준석은 손에 쇠사슬을 감은 채 감독관이 끄는 대로 그대로 끌려왔다.

그걸 보며 형우는 숨이 턱 막혔다.

유일한 말동무이자 자신에게 잘해줬던 인물이었는데 준석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하지만 도와줄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겨우 F급 헌터가 E급과 D급으로 이뤄진 감독관들을 이길 리 만무했다.

“최준석은 감히 길드에서 생산한 ‘약’을 훔쳐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그에 최준석을 처형하려고 한다!”

‘약?! 설마… 나한테 준 그 약 때문에?’

병철의 짧은 말에 바로 상황파악이 됐다.

자신이 근육통으로 고생할 때 줬던 약.

그리고 어제 감독관에게 구타당한 상처에 발라준 바로 그 약을 말하는 듯했다.

그것 말고 약이라 불릴만한 게 없었다.

‘어, 어떡하지?’

상황파악이 되자 형우는 복잡한 표정으로 준석을 바라봤다.

자신에게 베푼 호의 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한 것으로 생각됐기에.

“그런데 이 쓰레기가 남을 위해서 약을 사용했다더라고?”

병철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박형우! 링으로.”

“…!”

형우는 자신이 이름이 불리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였다.

철컹. 철컹.

형우가 링 안에 들어서자 준식도 감독관들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면서 두 손을 구속한 쇠사슬이 철컹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형우의 마음이 더욱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겁이 났다.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기 위해서 자신을 불러왔는지 몰랐으니까.

스르릉.

그때 갑자기 병철이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았다.

병철은 검을 세워서 형우에게 다가왔다.

“왜, 왜…?”

겁먹은 형우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다행히도 검날은 형우를 향하지 않았다.

병철은 검을 반대로 잡아 형우에게 건네기만 했다.

“잡아.”

“네, 네?”

형우는 얼빠진 목소리를 내면서도 검은 받아 들었다.

병철은 검을 건네곤 옆으로 빠졌다.

그러자 다른 감독관들은 준석을 놔두고 링 밖으로 나갔다.

“죽여라.”

“네?”

“네가 준석을 죽이라고.”

“…!”

순간 형우는 준석을 쳐다봤다.

준석은 형우를 향해 애원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발 날 살려달라’는 듯한 표정으로.

그 표정을 보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무지 검을 휘두를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얼었다.

그러자 병철이 재촉했다.

“죽이라니까? 왜 못하겠어?”

“…모, 못하겠어요.”

“그으래?”

형우의 말에 병철은 조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검 하나를 더 뽑아 준석에게 던졌다.

휙.

준석은 그 검을 잡았다.

“그럼 반대편에게 기회를 줘야지. 준석이, 형우를 죽이면 살려주마.”

“무슨 말도 안 되는…!”

형우는 그 말에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준석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다행히도 준석은 형우를 공격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아니, 없다고 착각했었다.

휘익!

“헉!”

준석은 망설임 없이 형우에게 검을 휘둘렀다.

대각으로 날아오는 검의 끝에 형우는 기겁하며 피했다.

그러면서 형우는 들고 있던 검을 놓쳤다.

스악! 철컹!

갑작스러운 기습을 빠르게 피하긴 했으나 완전히 피하는 덴 실패했다.

가슴을 바라보니 대각선으로 베어진 옷 사이로 피가 소량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반응이 늦었다면 분명 내장을 쏟으며 쓰러졌을 터였다.

형우는 준석을 향해 의문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냈다.

“왜…?”

지금 상황에 말문이 막혔지만, 억지로 ‘왜’라는 한 마디를 꺼냈다.

그러나 돌아온 말은 차가웠다.

“병신. 얼굴 벙찐 거 봐라.”

준석은 비웃음을 가득 담아 말했다.

그러곤 다시 칼을 휘둘렀다.

휙! 휙!

“도대체…! 왜, 왜 이러는 겁니까! 윽!”

스악!

형우가 공격을 피하며 준석을 향해 절규하듯 질문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돌아온 것은 몸에 생기는 상처였다.

“죽여라! 죽여!”

“최준석, 빨리 못 죽여?!”

“아, 괜히 신입한테 걸었나?”

“하하하! 저 새끼 표정 봐봐.”

그때 주변에서 수십 가지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는 맹목적으로 죽이라고만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형우를 비웃기도 했다.

그 소음에 형우는 정신이 멍해지는 걸 느꼈다.

누가 죽을 수 있는 상황을 노리개로 느끼는 듯한, 죽음을 원하는 듯한 목소리와 조롱에 정신이 아찔했다.

그러나 그 아찔함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다리를 깊게 베이면서 말이다.

스아악!

“아악!”

형우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꽤 깊게 베였는지 왼쪽 다리에선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그 때문에 한순간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지만, 형우는 억지로 몸을 붙잡았다.

지금 넘어졌다가 100%, 200% 바로 죽을 게 뻔했다.

그러나 균형을 잡으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코너에 몰렸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형우는 소리치듯이 질문했다.

“멍청한 거야, 순진한 거야? 굳이 다 알려줘야 해? 하긴 그러니까 나한테 걸린 거지.”

준석은 비꼬듯이 말하며 다가왔다.

그 순간 형우의 눈이 준석의 얼굴에 고정됐다.

‘상처가?’

온몸이 더럽혀져 있는 탓에 진흙탕을 구르며 험하게 구타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냥 이리저리 진흙이 칠해진 탓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

그 덕분에 형우는 대충 상황을 눈치챌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어…….’

전체적인 상황에 대해선 모를 수밖에 없다.

다만, 두 개는 확실했다.

준석이 처음부터 자신을 속였다는 거.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거.

그 생각이 들자 형우의 얼굴에 분노가 떠올랐다.

“왜 이딴 짓을…!”

“왜라니? 으흠… 재밌으니까?”

“이익…!”

‘재밌으니까’라는 대답에 형우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킥킥! 빡쳤냐?”

준석은 그 말을 하며 검을 세웠다.

날카로운 검의 끝이 심장을 향해 세워지자 형우는 눈알을 굴리며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았다.

‘맞아, 검!’

형우의 시선이 준석의 뒤에 있는 검에 닿았다.

일단 어떻게든 저 검을 잡아야 제대로 대응할 할 터였다.

‘최준석이 E급이라고 했지만…….’

등급 차이가 있다고 그냥 죽어줄 순 없었다.

그리고 F급과 E급은 그래도 할만했다.

“이봐, 최준석! 빨리 죽이라고!”

“시간 끌지 마!”

“죽여! 죽여! 죽여!”

그사이 죄수들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모두 한목소리로 형우의 죽음을 원하고 있었다.

“더럽게 재촉하네. 난 아직 죽일 생각이 없다고.”

준석은 검을 휘둘렀다.

휘이익!

검은 바람 소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졌다.

그때 형우가 고개를 숙이고 돌진했다.

“흡…!”

퍼억!

“컥…!”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그대로 준석의 배에 부딪쳤다.

갑작스러운 반격에 공격을 그대로 허용한 준석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사이 형우는 바르게 달려가 검을 잡으려 했다.

휘익! 푸욱!

“으아아악!”

그러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검을 잡으려는 순간 날아온 준석의 검에 오른손이 꿰뚫린 탓이었다.

“겨우 생각해낸 게 그거냐?”

준석은 피식피식 웃으며 형우에게 다가왔다.

“끄윽… 끄윽…….”

처음 겪는 고통에 형우는 눈물을 흘렸다.

일선에 있는 헌터들처럼 싸우기는커녕 일반인보다 더 싸울 일이 없었던 시체 처리반인지라 고통에 익숙하지 못했다.

“어? 우냐?”

준석은 다가왔다.

“오, 오지 마!”

형우는 뒷걸음질치며 준석에게 멀어지려 했다.

그러나 도망쳐 봤자였다.

사각 링이 꽤 넓긴 했지만, 그래 봤자 링 안이었다.

미끌. 쿵!

“큭!”

뒷걸음질하는 와중에 실수로 집은 영혼석에 손이 미끄러졌다.

그 바람에 몸은 그대로 바닥과 마주했다.

“어디 갈 데라도 있어? 킥킥!”

“…….”

준석의 비웃음에 형우의 얼굴엔 절망이 드리워졌다.

그때, 감옥에 처음 들어온 순간 들었던 그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만 도와주지.]

그리고 형우의 눈이 붉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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