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1-2
F구역 채굴장.
깡! 깡!
넓은 갱도 안, 여기저기서 곡괭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채굴하기 위해 허름한 곡괭이를 연신 내리찍었다. 그리고 바닥에 일정량이 모이면 그걸 긁어모아 수레에 실어 올렸다.
촤르르.
“…….”
그리고 이어서 계속되는 반복작업.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생기가 전혀 없는 눈빛, 깡마른 몸, 기계적인 움직임… 그 모습만으로도 그들의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있을 듯했다.
그 속에서 한 청년, 형우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아, 이게 뭐하는 짓이냐.’
여기에 끌려온 지 벌써 5일째, 형우는 말 그대로 노예처럼 부려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그치는 길드 감독관들의 목소리에 깨어나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일을 시작했다.
먹을 것으로 주는 건 어디서 난 지 모를 미음.
하루 세끼가 모두 제공되기는 했지만, 겨우 그거 먹어선 배를 제대로 채울 순 없었다.
노동의 강도에 비해서 양이 정말 부족했으니까.
다만,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감독관 개새끼들…!’
형우는 건성건성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감독관들을 바라보며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들은 심심하면 죄수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악독하게도 놈들은 죄수들을 죽이진 않았다.
죽지 않게 조절하면서 피폐해지는 그들의 모습을 즐겼다.
그 덕분에 중상자들이 많았고 그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져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인원이 부족해졌고 그 부족함은 기존 인원들에게 그대로 전가됐다.
신입이 맨날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인원도 많이 들어오는 게 아니다 보니 노동의 강도는 점점 올라갈 게 뻔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쿠데타를 벌일 수도 없고······.’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채굴장 관리자 병철은 무려 D급 최상위 능력자.
심지어 대량 학살이 가능한 ‘윈드 커터’라는 바람의 능력을 썼다.
그런 그에게 F급, E급들이 반항하고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물론 여기 있는 죄수들이 따라준다는 보장도 없었고.
‘그런데 그 아가씨는 어디로 갔을까.’
형우는 첫날 보았던 신지영을 떠올렸다.
분명 같이 채굴장으로 들어왔으나 어느샌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형우는 지영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하긴. 예쁘고 어린 여자가 범죄자들 소굴에 떨어졌으면 결과는 뻔한 거지.’
감옥이긴 하나 간수가 없는 무법천지, 그곳에서 겨우 F급인 여자.
결과는 뻔한 막장드라마와 같았다.
‘에휴… 그게 무슨 상관이냐. 지금은 내가 문제지.’
후두두.
형우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땅에서 캐낸 무언가를 자루에 담았다. 그리고 복잡한 시선으로 그것에 시선을 줬다.
자루 안에서는 피처럼 붉고 네모난 광석이 조금 담겨있었다.
블러드 큐브.
마치 피처럼 진하게 붉으면서도 네모난 모양으로 채굴되는 이 광석은 F급 구역에서 나는 제일 비싼 광석이었다.
무기나 방어구 제작에 주로 쓰이는데 블러드 큐브와 또 다른 광석이 합쳐지면 B~C급 헌터가 착용할 높은 수준의 장비가 나온다.
다만, 많은 양이 채굴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감옥 내에서 더욱더 비싼 값으로 거래됐다.
자루에 가득 담긴 블러드 큐브만 가로채도 감옥에서 호의호식할 수 있을 정도로 비싸게 말이다.
‘문제는 그럴 수가 없다는 거지.’
시퍼렇게 눈 뜨고 지켜보는 감독관들과 무려 D급 헌터라는 병철을 뚫고 여길 벗어날 가능성은 전무했다.
그리고 설사 벗어나더라도 많은 문제가 있었다.
‘일이나 하자.’
형우는 자루에서 시선을 돌리며 곡괭이를 휘둘렀다.
깡! 까앙!
“어이, 박 씨.”
그때 누군가 형우를 불렀다.
형우가 고개를 돌리자 얼굴에 서글서글한 미소를 띤 30대 초반의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 최준석 씨.”
“거참, 이름 다 불러가면서 딱딱하게 부르지 않아도 된다니까. 그건 그렇고 어깨는 좀 괜찮아요? 어제 약 은근히 효과 좋죠?”
“네, 덕분에 좀 살았습니다.”
형우는 준석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곳에 와서 중노동을 하다 보니 온몸에서 근육통으로 난리가 났었다.
그때 준석이 형우에게 바르라며 붉은색을 띤 약을 건넸다.
어디선 난 건지 전혀 모르는 정체불명의 약이긴 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온몸을 괴롭히던 근육통이 반 이상 사라졌다.
“하하, 다행이네요.”
그 말에 준석이 사람 좋게 웃었다.
준석은 이곳에서 꽤 오래 일한 죄수였다.
일명 마당발로 불리며 여러 죄수와 감독관들까지 두루 친한 사람이었는데 친화력이 워낙 좋아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형우와도 벌써 안면을 트고 있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형우 입장에선 그런 준석이 정말 고마웠다.
범죄자들 틈에서 그나마 말할 대상이라도 있는 거니까.
“일이 좀 많긴 하지만 적당히 요령 피우면서 해요. 안 그러면 금방 나자빠져요. 그리고…지금처럼 세 번째 밤일 땐 쉬엄쉬엄해도 돼요. 다들 사냥 나가느라 정신없을 때니까요.”
준석은 감독관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말을 이해 못 한 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 번째 밤이요?”
“그… 처음 올 때 통로에서 갑자기 어두워진 적 있죠? 그걸 우린 밤이라고 부르는데 24시간 동안 밝기랑 어두운 게 조금씩 다르게 총 여섯 번 있어요. 세 시간마다 한 시간씩 여섯 번. 지금은 대충 시간으로 치면 11시쯤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때 주력들이 다 사냥을 나가요.”
감옥에도 지구에 나타난 몬스터들이 똑같이 등장했다.
감옥 전체에 널리 분포해 있었는데 길드들은 몬스터를 사냥해 거래하고 있었다.
다만, 거래 대상이 좀 달랐다.
지구에선 관리자들이 거래를 해줬지만, 이곳에선 블랙 머천트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종족이 몬스터의 부산품을 거래해줬다.
그런데 블랙 머천트가 파는 물건은 지구에선 볼 수 없는 희귀한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몬스터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놈들은 밤에 따라 힘이 달라졌기에 사냥을 나가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첫 번째 밤과 여섯 번째 밤에 가장 강했고 그다음이 두 번째 밤과 다섯 번째 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밤과 네 번째 밤이 가장 약했다.
다른 길드라면 두 번째 밤이나 다섯 번째 밤에도 충분히 출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F급 구역에서 상주하는 파츠 길드는 그럴 여력이 없었기에 세 번째 밤에 나가서 네 번째 밤이 되기 전에 돌아왔다.
그래서 그 세 번째 밤에는 준비할 게 많았다.
그 준비는 죄수들을 시킬 수 없었기에 감독관들도 빈번히 자리를 비우며 사냥 나갈 준비를 도왔다.
그 덕분에 이 시간엔 적당히 농땡이를 부리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그 밤마다 나타나 우리를 죽이는 징벌자라는 놈들도 이 밤에 따라서 전투력이 달라져요. 그래서 네 번째 밤에 S급 헌터가 징벌자를 잡았다는 소문도 있고요.”
“아,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이런 것 가지고…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요.”
형우는 준석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위해 많은 정보를 알려줬으니까 말이다.
그 덕분에 조금 수월하게 세 번째, 네 번째 밤을 건너뛸 수 있었다.
얼마 후 다섯 번째 밤이 되고 하루 일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됐다.
형우는 그동안 본인이 채굴한 블러디 큐브를 가지고 죄수들이 모인 곳으로 갔다.
하루의 마무리는 블러디 큐브를 빼돌렸는지 아닌지와 채굴한 양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빨랑빨랑 안 오냐?”
“다음. 다음.”
감독관들은 신경질적으로 죄수들을 다그치며 몸수색과 작업량을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후 형우의 차례가 되자 빠르게 자루를 건넸다.
“으흠…….”
그런데 자루를 받아든 감독관의 표정이 이상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
형우는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말이 아니었다.
“억!”
퍼억! 털썩.
감독관은 형우의 배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그러자 형우는 허수아비처럼 나자빠졌다.
“작업량이 왜 이따위밖에 안 되는데? 중간에 쳐 놀면서 했냐? 어?!”
“아,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랑 양이…!”
퍼억! 퍽!
“컥! 커억!”
“뭔 말이 많아!”
감독관은 형우가 변명하는 와중에도 계속 발길질을 했다.
‘양이 뭐가 다른데…!’
분명 형우가 캔 블러드 큐브의 양은 다른 이들과 비슷했다.
첫날 왔을 때 양을 못 채운 죄수들이 어떻게 맞는지 봤던 형우는 최대한 양을 맞춰서 캐는 데 노력했기에 맞을 이유가 없었다.
또한, 차이가 있다 해도 정말 미세한 차이였다.
그러나 감독관은 형우의 변명 따윈 듣지 않았다.
“잠시만요!”
그때 준석이 나타났다.
“감독관님! 제발 한 번만 좀 봐주십시오! 제가 내일 그만큼 더 많이 채워 넣겠습니다!”
“그래?”
준석의 말에 감독관은 바로 주먹을 날렸다.
퍽!
“큭…!”
묵직한 주먹이 얼굴에 꽂히자 준석은 휘청거렸다. 그리고 더 주먹이 날아올 것을 대비해 손을 올려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또다시 주먹이 날아오진 않았다.
“후우, 준석이 때문에 산 줄 알아라. 다음부터 작업량 제대로 채워. 넌 내일 더 채워 넣고.”
“예, 예.”
감독관을 향해 고개를 숙인 준석은 형우를 부축해 나무판자로 대충 지은 거적때기 숙소로 데려갔다. 그리고 맞은 상처에 약을 발라줬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에이, 아니에요. 다 도우면서 사는 거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사래 치는 준석을 향해 형우는 감동 어린 표정을 지었다.
조금만 더 맞았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중상만 입으면 어디로 실려 갔다 안 돌아오는데 자신도 그렇게 될 뻔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며 다른 죄수들은 비웃고 있었다.
정확히는 형우를 향해 말이다.
“킥킥. 병신이네. 병신. 표정 봐라. 아주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표정이네.”
“지가 어딜 들어 온 건지 잊은 건가?”
“뭐 어때. 우리야, 오랜만에 구경거리 하나 나오니 좋지.”
“감독관들도 ‘그 표정’ 보는 맛에 준석이 도와주는 거잖아. 아니지. 지들이 더 즐기는 것 같던데.”
죄수들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킥킥거렸다.
그러나 준석에게 정신이 팔린 터라 형우는 그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했다.
잠시 후 준석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잠잘 시간이 되자 형우는 바닥에 몸을 뉘었다.
“하아…….”
바닥에 누운 형우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곧 눈물이 흘렀다.
“끄윽… 끄윽…….”
막힌 댐이 뚫린 듯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왜 이곳에 왔는지 모르고 왜 여기서 맞고 있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아직도 의문이었다.
그저 사체 처리를 위해 던전에 들어갔던 것뿐이었는데 자신이 왜 여깄는지 말이다.
‘선우야…….’
거기에 홀로 남겨져 있을 여동생 선우에 대한 걱정도 물밀 듯이 밀려왔다.
선우는 형우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부모가 죽고 남은 유일한 가족.
다만, 그녀는 병원에 있었다.
몬스터가 나타난 이후 나타난 특이한 병에 걸렸기 때문.
그 병은 ‘던전 중독’으로 불리는 병이었다.
랜덤하게 생성된 던전의 기운에 노출된 일반인들이 걸렸다.
이 병에 걸리면 서서히 몸이 말라가다가 죽었다.
왜 걸리는지, 왜 낫지 않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학회에서 시끄럽게 논의만 할 뿐 누구도 이 병의 치료법을 찾지 못했다.
그나마 효과가 있는 건 ‘포션’이었으나 그건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못했다.
포션의 효과는 3달이 한계였으니까.
그것도 너무 고가라 형우는 매일매일을 뼈 빠지게 일해야 했다.
그런데 포션을 구해줘야 할 형우가 감옥으로 와버렸다.
현재 선우는 방치된 거나 마찬가지.
그나마 다행은 비교적 최근에 포션을 전해줬다는 거였다.
그러나 그건 안도할 이유가 되지 못했다.
무려 2,000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3달이라는 여유가 무슨 소용인가.
‘하아.’
형우는 서러움에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
“후우…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선우를 혼자 둘 순 없어. 힘내자.”
한참 눈물을 흘리던 형우는 곧 진정이 되었는지 소매로 눈을 닦았다.
“윽…….”
그러나 그게 패착이었다.
곡괭이질을 하며 잔뜩 돌가루가 묻은 소매로 눈을 닦으니 닦으니만 못한 상태가 됐다.
일을 끝나고 털기는 한다만, 그런다고 다 가루가 빠지는 게 아니었다.
부스럭. 부스럭.
급하게 손을 움직이며 자리에서 일어난 형우는 눈을 닦을 다른 것을 찾았다.
그러던 중 옷 안에 있는 주머니에서 종이 하나가 잡혔다.
형우는 종이를 꺼냈다.
부드러운 휴지가 아니었기에 살살 움직이며 종이로 눈을 닦았고 곧 이물질이 모두 제거됐는지 형우는 똑바로 눈을 뜰 수 있었다.
“에휴.”
혼자 바보짓 한 게 한심했는지 짧게 한숨을 쉬며 눈을 닦은 종이를 버리려 했다.
그런데 버리려던 순간 안에 적힌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응? 이게 뭐야?”
형우는 종이를 펼쳤다.
눈물을 닦았는데도 종이 안의 내용은 하나도 번지지 않았다.
그 덕분에 내용을 확실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의뢰서? 뭔 말도 안 되는…….”
『의뢰서 0#
내용: F급 이상 범죄자 1명 사살.
보상: 소켓, E급 이하 영혼석 흡수』
종이엔 무슨 게임의 퀘스트를 보는 듯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형우는 바로 종이를 구겨버렸다.
“뭐 이딴 게 들어있어?”
툭.
구긴 종이를 쓰레기 더미에 던진 형우는 다시 바닥에 몸을 뉘었다.
“제발 내일은 조용하자.”
형우는 그 말을 하곤 잠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날, 형우의 바람과 다르게 일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