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핵폭탄 02
<140>
“하하! 어서 오십시오. 대표님!”
JS인베스트먼트 김대호 이사.
내가 갑자기 연락했으나.
그는 다른 스케쥴들을 보류하고서 감사히 시간을 내줬다.
“자, 이쪽으로 오세요.”
웃으며 김대호 이사는 사무실 한쪽 소파로 날 안내했다.
그런데 그의 사무실은 무척 검소하다.
싸구려 소파가 양쪽으로 놓여 있고.
책상, 의자, 책장 등 하나같이 저렴한 가구들이다.
“하하, 커피 한 잔 드세요.”
잠시 후, 그는 직접 커피 두 잔을 타서 가져왔다.
나는 얼른 일어나 커피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잘 마시겠습니다.”
“하하.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좋은 원두를 제가 직접 갈았고, 그걸로 커피를 내린 겁니다.”
“그럼, 더 맛있게 마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여긴 회사가 작아, 임원 직원 가리지 않고 각자 알아서 일들을 합니다. 그 덕분에 저도 커피를 나름 잘 타게 됐고요. 하하! 회사가 상당히 소박하죠?”
“아, 규모가 뭐가 중요합니까? 오히려 제가 여기서 좀 배워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내가 너스레를 떨자, 김대호 이사는 기분이 무척 좋은 듯 껄껄 웃었다.
JS인베스트먼트 사무실.
이곳은 대략 이십여 명 정도의 직원들이 있다.
경영진을 위한 두 개의 사무실은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데.
나머진 완전히 개방적인 사무실 형태였다.
현재, 직원들 모두가 각종 투자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고.
각자 모니터들을 정신없이 살피며 무척 바쁜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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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죄송합니다. 아직 장이 끝난 것도 아닌데, 불쑥 찾아뵙겠다고 해서···.”
“아이고, 괜찮습니다. 제가 직접 투자를 하는 것도 아니고, 투자 지시만 내리는 건데. 그리고 김한수 대표님이 오신다는데 만사 제쳐놓고 기다리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김대호 이사는 다시 껄껄 웃었다.
그러고는 우리는 잡다한 이야기들을 잠시 이어가다가.
어느덧 안부 인사 등이 충분히 되자.
나는 이제 오늘 방문 목적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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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님! 혹시 저랑 프로젝트를 같이 하시겠습니까?”
“프로젝트요? 그게 뭡니까?”
김대호 이사는 의아해했다.
사실, 이 시점 기준으로 봤을 때, 나는 김대호 이사와 아주 친한 관계가 아니다.
그저 김대호 이사는 나에 대한 호감과 놀라움을 갖고 있을 뿐.
그런 상황에서 내가 프로젝트 제의를 하자, 그는 속으로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회귀 전 경험들을 통해 나는 김대호 이사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그런 애매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 요청 외에도.
적극적인 도움 요청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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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30분 뒤.
한참 내 이야기를 듣게 된 김대호 이사.
그는 무표정하면서도.
날카로운 두 눈을 반짝이다가.
어느 순간,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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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님, 제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콜 워런트, 풋 워런트. 이게 홍콩 시장에 등장하게 되면, 일본 증시 참여자들은 뭔가 심리적 위축 현상이 발생될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80년대 말, 90년대 초,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그 절망감을 떠올리기에 딱 좋은 테마들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외부에서 흔들어 일본 증시에 오히려 유동성을 집중시키자, 그 말씀이군요?”
“아마 조금만 흔들어줘도 유동성이 크게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일본 증시는 위험한 구간에 있지 않습니까? 겉으론 상승세를 타고 있으나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그런 위험 속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즉, 유동성이 몰리면 몰릴수록 거품이 끼게 된다, 그렇게도 해석될 수 있겠군요?”
“네. 폭락의 전조는 거대한 집중입니다. 어떤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게 치솟는 순간, 급격한 폭락을 위한 신호탄이 터집니다.”
“하하. 저도 그 점은 동의합니다. 거대한 집중은 늘 거품을 만드는 법이죠. 거기다가 지금 일본은 내환까지 겹쳐 있습니다. 그런데 김 대표님에 대한 반발 기조로써 자금들이 더 일본 증시에 몰리게 되면, 그 반향이 더 커지겠죠. 증시 상승세가 갈수록 커지게 되면, 아마 일본 증시에서 이탈했던 자금들도 귀환하게 될 테고, 더 큰 폭등으로 이어질 수 있겠군요. 그런데 결국 그게 무너진다?”
“역설적으로 유동성이 크게 밀려들수록, 일본 증시는 더 위태로워질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시점이 아닙니까?”
김대호 이사는 정확하게 짚고 있었다.
폭락의 시점을 정확하게 맞추지 못한다면.
풋 워런트의 가치는 소멸하게 된다.
“이사님, 그 부분은 투자자의 몫입니다. 저도 그렇고, 이사님도 그렇고. 투자자가 개인적으로 판단할 문제입니다. 다만, 이사님께서 저의 풋 워런트 프로젝트에 동참해 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 순간, 김대호 이사의 두 눈이 반짝거렸는데.
내가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그 말 때문인 것 같았다.
사실, 나는 혼자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냉정히 여러 가지 면들을 생각해 봤다.
우선, 혼자서 방방 뛰며 ‘풋 워런트’를 주장했다가.
정말 일본 증시에 핵폭탄이 터지고 나면, 아마 분위기가 뭔가 묘해질 수도 있다.
마치 내가 미래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호 이사까지 ‘풋 워런트’ 프로젝트에 동참한다면.
그땐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이렇게 평가할 것이다.
시대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뛰어난 통찰력이 있다고···.
그리고 그건 회귀자인 나에게 있어 무척 중요한 고려 요소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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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좋습니다. 대표님. 그 정도 동참이야 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재밌을 것 같네요. 일본 증시가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저한테도 무척 흥미진진한 볼거리입니다.”
“그럼 동참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우선, 회장님께 말씀드려 보고, 좀 더 크게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게 안 된다면, 그땐 제가 개인적으로라도 무조건 동참하겠습니다.”
와! 잘 됐다.
확실히 김대호 이사는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다.
시류의 흐름을 금방 이해할 수 있는.
그런 통찰력을 가진 투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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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대표님! 저번에 제가 이야기했던 그 중국 시장 말입니다.”
잠시 후, 김대호 이사는 마치 딜을 하듯 다른 이야기도 슬쩍 꺼냈다.
“실상, 대표님과 비슷한 견해인데, 저는 중국 증시의 대폭락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웃을 뻔했다.
왜냐하면, 김대호 이사로부터 저 이야기는 회귀 전의 내가 수없이 들었기 때문.
그런데 이 시점에서 다시 듣게 되자, 바로 웃음이 밀려왔는데.
그러나 한편으론 김대호 이사가 아주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증시.
그 증시를 바라보며.
김대호 이사는 이미 거대한 폭락을 예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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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공매도 제도입니다. 우리나라는 외국인들, 기관투자자들이 미친 듯이 공매도를 때릴 수가 있는데, 중국은 아직 공매도 제도가 완벽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실제, 중국은 공매도 제도를 허용한 게 바로 작년 2010년 3월이다.
그러나 광범위한 허용도 아니었고.
고작 100개 종목에 대한 부분 허용에 불과했다.
이런 공매도 대상 종목은 나중에 1,000개 가깝게 늘어나지만.
2015년도 중국 증시의 대폭락 사태가 터질 때, 중국 증시의 공매도 서비스는 잠정적으로 중단되게 된다.
그 이유는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공매도 철회 때문이 아니라.
중국 정부의 언론 탄압 및 증권사 탄압 등이 이어지면서.
증권사와 공매도 브로커 업체들이 공포에 질려 공매도 서비스를 중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 3월이 되면, 공매도가 재개되지만.
그 공매도는 이미 방향과 힘을 상실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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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파생 시장은 어떨까?
중국의 파생 시장 역시 작년 2010년도에 처음 시작된다.
상하이 중국금융선물거래소가 주가지수 선물 거래 등을 그때부터 시작하는데.
안타깝게도 외국인들은 이 선물 시장에 전혀 접근할 수가 없다.
그러나 2022년도가 되면.
구리, 알루미늄, 주가지수 등의 파생상품 시장에 외국인 투자자들, 정확하게는 ‘적격외국인 기관투자자(QFII)’들이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 보니, 중국 파생 시장은 현시점의 외국인 투자자들이 감히 들어갈 수가 없는 그런 금단의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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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중국 증시가 폭락하더라도 특별한 의미는 없지 않습니까?”
잠시 후, 나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는데.
그 말에 김대호 이사는 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제 규모가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중국.
그런 중국을 겨냥하면서 글로벌 헷지 펀드들은 사냥에 나서고 싶어 하지만.
실제, 중국 시장의 제약 때문에.
글로벌 헷지 펀드들의 보폭은 무척 좁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다수 공격 패턴은 통화 시장 공격, 즉 위안화 공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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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많이 아쉽죠. 현재는 공매도도 불가능하고. 그리고 중국 정부의 개입이 심하니까 포지션을 잡기도 힘듭니다. 자국 증시가 몰락하는 걸 그들은 절대 두고 보지 않겠죠. 중국 증시와 경제가 흔들리는 건, 끔찍하게 여길 겁니다. 정치적으로도 좋지 못할 테니까요. 물론, 이해도 됩니다. 자국을 방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오히려 제가 중국이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중국 시장을 못 건드리니까, 외국인들은 날마다 우리 코스피만 때리는 거 아닙니까?”
불만 섞인 김대호 이사의 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김 대표님! 김 대표님은 일본을 주목했지만, 저는 계속 중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만, 중국 증시가 폭락하더라도 중국 증시에서 특별한 수익을 기대할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대폭락이 있기 전, 그 폭락 전야를 즐기자는 겁니다. 대폭등의 시기 말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대호 이사는 내 반응에 만족했다.
“그래서 이번 일이 끝나면, 한번 중국으로 같이 가시지 않겠습니까? 신문에서 저도 봤는데, 유럽 탐방을 직접 하시면서 큰 수익을 내셨다면서요? 하하! 정확한 투자를 하려면 직접 가봐야 합니다. 하물며, 국내 기업투자를 할 때도 기업 방문은 필수가 아닙니까?”
사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만 믿고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그리 긴 투자를 하지 못한다.
정말 중요한 것들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지 기업을 방문하게 되면, 더 많은 것들을 보게 되는데.
코스닥 기업인데도 창고 같은 분위기의 사무실을 볼 수도 있고.
주가 급등 종목인데도 사무실 직원들이 몇몇밖에 없는 경우를 볼 수도 있다.
“···알겠습니다. 이사님. 나중에 한번 같이 가도록 하시죠.”
그렇듯 내가 가볍게 승낙하자.
김대호 이사는 이내 아주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141>
그 시각.
한세증권 최세진 상무는 무척 바빠졌다.
일본 증시가 폭락할 거라는 김한수 대표의 말 때문이었다.
ELW, Equity Linked Warrant (주식워런트증권).
즉, ELW 중에서 콜 워런트를 만들어 팔면.
일본 증시가 폭락하게 될 때.
한세증권은 큰 수익을 볼 거라는 말 때문에 그는 무척 바빠진 것이다.
수익 가치가 수조 원을 넘어설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최세진 상무는 먼저 ELW 발행 조건 등을 확인한 뒤.
곧이어 나단 킴 이사부터 찾았다.
나단 킴 이사의 의견이 무척 궁금했고.
김한수 대표의 생각이 옳은지 냉철한 검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세진 상무는 김한수 대표가 말했던 일본 증시폭락에 대해 숨김없이 다 이야기했고.
콜 워런트 전략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나단 킴 이사의 눈빛이 점점 이상해졌다.
혹시 잘못됐나 싶었는데.
잠시 후,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괜찮을 것 같군요. 한번 추진해 보세요.”
와! 나단 킴 이사가 괜찮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무척 놀라운 일이었다.
그 때문에 최세진 상무는 황급히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고.
서둘러 ‘콜 워런트’ 설계안을 품의서로 올렸다.
또한, 나단 킴 이사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코멘트도 거기에 달아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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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세진 상무가 떠난 뒤, 머릿속이 무척 복잡했던 나단 킴 이사.
그는 어느 순간 아주 차갑게 웃고 있었다.
혹시 몰라, 몇 번이고 다시 생각을 해봤고.
그리고 사고의 방향을 이리저리 비틀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상황이 바뀌었다는 걸 김한수는 전혀 모르고 있어. 일본 증시는 무조건 부활한다. 그게 운명인데···.’
잠시 후, 나단 킴 이사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창가로 다가가.
창밖의 화려한 도심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렇다면 오히려 잘 됐어. 내가 제안한 것도 아니고, 김한수가 제안한 거야. 이번 기회에 한세증권을 뿌리째 뽑아 먹을 수 있어. 상진일렉트로닉스, 상진토목, 현성철강, 한성제강, 한성로직스, 구리 투자, 부동산···. 멍청한 최동욱과 최동석은 끝까지 우리를 믿겠지만, 병신 같은 짓이지. 우리는 사냥을 하기 위해 여기에 온 거야.’
잠시 후, 나단 킴 이사는 전화기를 들었다.
이번 사안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즉, 국제전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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