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위협적 거물 김한수 대표 02
<137>
“···상무님, 회장님 호출입니다!”
한세증권 최세진 상무.
그는 비서실의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일어섰다.
벽면에 걸린 시계를 문득 보니, 저녁 6시 25분.
일상적인 업무가 끝나는 좀 늦은 시각이다.
‘이 시각에 왜 나를···?’
그러다가 그는 이내 눈치챘다.
이번 호출 건은 딱 보니, 짐작이 간다.
나단 킴 이사의 4억 달러 펀드 조성 건.
그 건과 관련이 있다.
‘보나 마나 거절이겠지.’
어디 4억 달러를 함부로 내준단 말인가.
나단이 아무리 뛰어난 투자자라고 해도.
랜드브리지 캐피탈과는 별개의 문제다.
나단 킴 이사만을 믿고서 어떻게 그런 펀드를 던져준단 말인가.
‘꼴 좋다. 일본에서 개털이나 되고···.’
세계적 헷지 펀드의 이사라고 해 봤자, 결국 김한수 대표가 주도한 일본 증시에서 헛물만 켜고서 돌아서지 않았나.
그냥 맹탕이다.
순 맹탕.
자기 딴에는 김한수 대표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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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과장, 오늘 닛케이지수는 얼마나 올랐어요?”
잠시 후, 상무실을 나서기 전, 최세진은 해외투자팀에 전화를 걸었다.
일본 닛케이지수가 오늘 장중에 급등했다는 소식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상무님, 4.82% 상승했습니다.”
“와아, 엄청나게 올랐네.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원전 해결 가능성입니다.”
“원전 해결?”
그러나 최세진은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그렇게 쉬운가.
원전 방사능 누출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게 아니다.
수십 년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거 웃겨서 죽겠다니까. 일본도 참 딱하단 말이야.’
띵!
잠시 후,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최세진 상무.
그는 순식간에 한세빌딩 최상층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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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최세진 상무입니다.”
아주 아리따운 여자 비서.
짧은 치마차림인 그녀.
특히, 진한 화장 냄새가 풍기는 그녀는 차분하게 최세진 상무의 입실을 알렸고.
짙은 침묵이 내려앉은 듯한 아주 넓은 회장실의 창가 쪽.
그 창가 쪽에 아주 넓은 데스크를 두고서.
업무를 보고 있는 한세증권 최동욱 회장은 비서의 언질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 서류에 사인하느라 무척 바쁜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최동욱 회장은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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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호출받고 바로 달려왔습니다.”
순간, 90도로 머리를 숙이는 최세진 상무.
그는 최동욱 회장의 친조카이지만.
무척 극진하게 최동욱 회장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그런 최세진 상무의 모습을 묵직한 시선으로 노려보다가.
최동욱 회장은 서류 하나를 데스크 끄트머리 쪽으로 툭! 던졌다.
“···이걸 나단이 원한다고 했지?”
놀라며 쳐다보는 최세진.
그러자 최동욱 회장은 귀찮다는 듯 손짓했다.
얼른 그쪽으로 다가간 최세진 상무.
“가져가.”
무척 중후한 목소리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숙이는 최동욱 회장.
그러다가 최세진 상무가 그 서류를 손에 쥐자, 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4억 달러는 불가!”
불가?
역시.
최세진 상무는 씩 웃을 뻔하다가 억지로 참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
“3억 달러 밖에 못 해주겠어.”
“네? 3억 달러요??”
최세진 상무는 처음에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펀드 제공을 결정하신 겁니까?”
최동욱 회장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4억 달러는 무리야. 나단에게 잘 이야기해서, 3억 달러 선으로 합의를 봐.”
이때, 최세진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자금이 나왔단 말인가.
최약체 한세증권.
자산운용사와 껴서 펀드를 만들더라도 그만한 규모를 만든 적이 없다.
PI(자기자본투자) 투자 역시 최동욱 회장은 쉽게 결재해주지도 않는다.
최근에 구리 투자와 현성철강 투자 등, 심각한 투자 실패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도 쉽게 3억 달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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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가?”
“네!”
“태산에서 도와주기로 했어. 제삼자 위탁 운용 개념이고. 알다시피, 태산자산운용 쪽에 내 지분이 있어.”
“하지만 많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
“랜드브리지 캐피탈 측에서 정식으로 요청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자 최동욱 회장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최 상무는 모르지?”
“네?”
“랜드브리지 캐피탈은 나단의 투자와 무관하다는 거야.”
“······?”
“핫핫. 조만간 코스피가 다시 움직일 거야. 더 공격적으로. 우리는 그때 나단만 쫓아간다. 나단의 특기가 드디어 나올 거야. 알겠나?”
그 순간, 최세진 상무의 표정은 굳었다.
‘근데 나단은 김한수 대표한테 발린 새낀데.’
속으로 그렇게 외쳤으나.
최동욱 회장은 나단 킴 이사에 대한 신뢰가 아주 대단해 보였다.
할 수 없이 최세진 상무는 속으로 그 말을 삼켰다.
“그 서류는 가져가서 나단한테 잘 말해. 알겠나?”
“네! 회장님.”
“그리고 최 상무는···.”
한편, 뭔가 더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최동욱 회장은 짧은 한숨을 내쉬더니.
그냥 나가보라며.
손으로 귀찮은 듯 시늉했다.
최세진 상무는 이때 얼른 인사했고.
재빨리 그곳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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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나단의 특기가 나온다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잠시 후, 자신의 상무실에 도착한 최세진 상무.
그는 최동욱 회장에게 받은 서류를 몇 번이고 읽어 본 뒤.
생각에 잠겼으나.
아직도 그 영문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명확하다.
나단이 실패한다면, 그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어쩌면, 한세증권에 큰 피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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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지시 사항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점점 더 한세증권의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손해 규모는 누적되고 있고.
영업이익은 연거푸 적자투성이다.
이러다간 증권사로서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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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방법이 없을까? 뭔가 뾰족한 방법?’
할아버지는 큰아버지 최동욱 회장을 후계자로 선택했지만.
다음 후계자는 자신이 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가.
이런 한세증권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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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3억 달러 이상이 움직일 거야.’
즉, 3억 달러가 전부가 아닐 것이다.
좀 전에 코스피가 언급된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리고 이때 최세진 상무는 다시금 김한수 대표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138>
“···현주씨, 식사는 어땠어요?”
내 손을 잡고 인근 공원을 걷던 중.
현주는 살짝 웃었다.
아직은 조금 추운 날씨.
그러나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는 현주.
그녀의 두 다리가 무척 추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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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많이 나오네요.”
이미 하늘은 컴컴한데.
공원에서 간단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걷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런닝을 하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 일찍 가봐야 한다고 했죠?”
“네. 미국 투자 건이 있어서···.”
“너무 바쁘신 거 아니에요?”
“하! 그러게요. 현주씬 안 추워요?”
“전 괜찮아요.”
“우리 저쪽 카페로 들어가죠.”
“···네.”
잠시 후, 이쁜 카페가 보여 그쪽으로 향했는데.
이때 갑자기 휴대폰에 진동이 느껴졌다.
그래서 휴대폰을 꺼내 즉시 확인해 보니.
한세증권 최세진 상무가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가능하다면, 내일 점심때 점심을 같이하자는 제안.
그 문자를 보고서 나는 잠시 멈칫했다.
현주는 의아해했다.
“···문자가 왔어요. 최세진 상무.”
“아, 네.”
살짝 고개를 돌려주는 현주.
그사이, 나는 계속 문자를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세진 상무의 아버지 최동석 의원.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상구 전 부장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날 만나자고 하는 걸까.
이젠 경계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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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씨, 혹시 한세증권 최동욱 회장님 혹시 아세요?”
그러자 카페 맞은편 자리에 앉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혹시 랜드브리지 캐피탈과의 관계에 대해, 좀 아시는 게 있으세요?”
“랜드브리지 캐피탈요?”
“네. 글로벌 헷지 펀드 계열인데···.”
“아, 저도 알고 있어요.”
“역시 아시는군요. 그럼 혹시 한세증권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아세요?”
그녀는 미래그룹의 혈육이다.
그리고 박승남 미래증권 사장의 딸.
투자금융의 모태에서 자랐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건데.
의외로 많은 정보들이 그녀의 입에서 잠시 후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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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내가 아는 한세증권의 미래는 그냥 블랙 그 자체다.
왜냐하면, 훗날의 한세증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기 때문.
“···으음. 제가 듣기론, 최동욱 회장님이 한세증권을 물려받게 된 것은 해외 자본의 도움이 컸다고 들었어요.”
해외 자본?
“혹시 그때가 IMF 때인가요?”
“네. 아주 위험할 때 한세증권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죠. 그리고 당시 최동욱 회장님은 부동산 투자를 많이 하셨는데, 그게 잘 돼서 그 자금을 바탕으로 지금의 한세빌딩을 세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최동욱 회장은 증권사 회장이면서도.
재계엔 대단한 부동산 부자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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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엔 그 해외 자금이 유럽에서 왔다고 들었어요.”
유럽?
유럽에서?
“혹시 랜드브리지 캐피탈인가요?”
“아뇨. 그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랜드브리지 캐피탈의 주요 주주들이 유럽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들은 적은 있어요.”
유럽 출신들이라?
“근데 현주씬 그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랜드브리지 캐피탈한테 우리 미래증권이 당한 적이 있어요.”
“네?”
순간, 놀라며 나는 현주를 쳐다봤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현주를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걸 깨달았다.
현주는 귀가 열려 있는 사람이다.
“···혹시 기업 인수 시장에서 당한 겁니까?”
문득 IB투자본부의 김인범 부사장이 떠올라 그렇게 묻었고.
그러자 현주는 고개를 저었다.
“악성 유언비어가 퍼져, 8년 전 미래증권 주가가 급락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공격적인 인수합병 시도가 있었고.”
“미래증권을 노렸다고요?”
“네.”
“끝까지 지분 경쟁을 치열하게 하다가 간신히 승리했대요. 하지만 그때 입은 피해가 엄청났대요. 랜드브리지는 큰 수익을 챙긴 뒤 사라졌고···.”
와아, 이럴 수가!
이게 바로 ‘그린 메일링(green mailing)’ 수법이다.
대량의 주식을 매수한 후 경영권 위협을 통해 기업 오너와 빅딜을 진행하는 방식.
대량의 주식을 다시 오너에게 넘기면서.
위협자는 막대한 시세 차익을 얻고 사라진다.
세계적 펀드 그룹이지만 랜드브리지 캐피탈은 그런 금융 협박을 저지른 것이다.
실제, 세계적 헷지 펀드인 타이거펀드(tiger fund)가 SK텔레콤에 그린메일링을 시도한 의혹이 제기된 적도 있다.
타이거펀드는 1999년도 SK텔레콤 지분 매각을 통해, 대략 1조 원가량의 투자 수익을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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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나는 현주를 성북동 집까지 바래다준 뒤.
곧장 한남동 집으로 향했다.
뒷좌석에 앉은 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는데.
생각을 거듭할수록.
뭔가 흐름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거의 하수인 격인데.’
유럽 자본, 어쩌면 랜드브리지 캐피탈 자금을 이용했을 최동욱 회장.
서울 도심개발사업을 랜드브리지 캐피탈에 누설했던 최동석 의원.
그리고 부동산 부자 최동욱 회장의 모습까지.
‘하지만 그만한 이권이 한국에 있나?’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바로 IMF가 떠올랐고.
론스타 사태 등도 떠올랐다.
또한, 한국 부동산 시장의 맹점도 떠올랐다.
일례로 IMF 시대의 국가 구조조정은 금융의 문을 활짝 열어놨는데.
외국인 투자자들과 관련된 법들은 공정하게 제도가 정비되지 않고 방치된 게 많았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들의 무분별한 자금 유입을 부동산 시장에선 제대로 거를 수가 없다.
그래서 해외 자금 세탁도 쉽게 가능하다.
불법 자금(현금성 자본)이 부동산으로 들어갈 수 있고.
다시 어디론가 흘러 들어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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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국이 재밌겠구나.’
금융 기반이 약하다.
그래서 증시, 부동산, 금융 등 자기들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다.
참나!
아무튼, 나는 다시금 현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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