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위협적 거물 김한수 대표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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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어느덧 월요일이 되었고.
이른 아침, 회사에 도착한 나는 두 개의 문자메시지를 연거푸 받았다.
하나는 현주가 보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진씨가 보낸 것이다.
간단한 아침 인사 문자들.
나는 잠시 그 문자들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우선, 현주한테 바로 답장을 보냈고.
유진씨의 문자메시지는 가만히 쳐다보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정보들이 실시간 업무 메일로 날아들자, 나는 곧바로 그 업무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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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각종 정보들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유럽 쪽 사정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대지진 사태 여파로.
일본발 거대한 자금들이 본국으로 되돌아가면서.
유럽 증시의 불안정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안정성은 앞으로 8월까지 쭉 이어질 거야.’
유럽 국가의 디폴트 위기는 8월에 정점을 찍게 된다.
그래서 유럽 증시의 진짜 대폭락은 올 8월에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더블딥’의 공포가 확산하게 될 것이다.
‘더블딥’이란 단기 경기 회복 이후 발생하는 폭락의 늪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세계적인 공포인 국가 채무 사태를 넘어서.
현실적인 문제인 국가별 경기 침체 위기가 다시 확산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경제 쪽에서도 이런 유형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이 파장은 결국 2011년도 전세계를 짓누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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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금값이 많이 오를 텐데···.’
안전 자산에 대한 기대감.
그 기대감은 금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잘 됐다.
회사 업무를 조금 나눌 필요가 있다.
특히, KH투자파트너스의 일반 투자 부문에 금 선물 투자 부문을 연계시킨다면.
썩 괜찮은 투자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비록 큰 급등세는 없다고 해도.
지속적인 금값 상승으로 인한 수익률 확대는 충분한 기대치가 될 수 있다.
즉, 우리 KH투자파트너스에 투자금을 맡긴 일반 투자자들의 수익률.
그 수익률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고.
일반 투자 부문의 투자수익률 발표 등.
대외적 위상을 높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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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무님! 잠깐만 뵙죠.”
잠시 후, 이용훈 전무가 대표실로 들어왔다.
얼굴은 무척 피로한 모습.
하긴, 미성건설 등 인수합병 업무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이용훈 전무는 살이 쪽 빠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름 일들을 잘 하다 보니.
나는 계속 일들을 맡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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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또 무슨 일입니까?”
“아! 죄송합니다. 전무님! 제가 전무님을 너무 혹사시키는 것 같아··· 에휴, 죄송합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뭐! 바쁘니까 좋네요. 대표님도 항상 3시간만 자고 일하신다면서요? 저희들도 이제 다 압니다. 무슨 안건인지 어서 말씀해주십시오.”
그래서 할 수 없이 안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앞으로 일반투자팀을 만들어, 투자 일임된 일반 고객들의 투자금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 일반투자팀요? 명칭이 좀 생소하긴 한데. 그 부분에 대해선 저도 적극 동의합니다. 고객별로 구분하여 자금이 운용되고 있는 상태라, 상당히 손이 많이 갑니다. 이걸 펀드 형태로 만든다면 더 좋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일반투자팀 설립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회사의 투자 범위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3천억 원 정도로 한정시킨 투자일임 자산은 관리가 조금 소홀해진 게 사실이다.
그래서 좀 더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그런 부서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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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3월 채용 건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습니까?”
“아! 현재 서류 접수는 끝났고, 순차적으로 면접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그 일은 제가 조금 관여하다가, 이제 조 상무님한테 넘겼습니다.”
“그럼, 채용 건이 끝나는 대로, 일반투자팀 설립에도 신경을 좀 써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사실, 이런 전략 파트의 일은 조관형 상무의 일이다.
그러나 이용훈 전무가 이쪽에 더 밝다 보니.
아직 업무가 완벽하게 나눠지지 않은 상태다.
거의 이용훈 전무가 날 대신하여 회사 전반을 다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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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만간 분기 인센티브 지급을 할 생각인데, 한번 논의해 주십시오.”
그러자 표정이 바로 밝아지는 이용훈 전무.
인센티브를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회사에 엄청난 수익이 생겼다.
물론, 큰 방향을 내가 잡았으나.
나 혼자 힘으론 할 수 없는 광범위한 투자가 집행되었고.
법인 수익은 천문학적으로 커졌다.
거의 밤샘 작업까지 마다하지 않고 일했던 사람들.
그들에게 당연히 인센티브를 통한 보상이 되어야 한다.
한편, 나는 그렇게 지시를 마친 뒤.
어느덧 시간을 확인해 보니.
어느덧 한국증시는 아침 개장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136>
“···팀장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일본 증시가 너무 이상한데요?”
아침 9시 25분.
한국증시 개장과 함께.
일본 증시 역시 9시 정각에 개장되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시아투자팀 사무 공간엔 소란이 일어났다.
팀원 이종훈 대리가 놀라며 외쳤고.
팀장 박진한은 재빨리 전화기부터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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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접니다! 박진한 팀장! 지금 일본 증시 동향이 심상치 않습니다···.”
무척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유럽 증시의 폭락.
국제유가의 급등.
미국증시의 폭락 등.
삼박자가 돌아가며.
오늘 한국증시는 개장 즉시 –2.3%대의 하락 출발했는데.
그러나 일본 증시는 개장 즉시 +0.4%대의 상승 출발하더니.
그 기세가 전혀 꺾이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상승 폭이 더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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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나는 박진한 팀장의 전화를 받은 뒤.
고개를 돌려 다른 모니터를 쳐다봤다.
좀 전, 8,637포인트였던 닛케이지수는 순식간에 8,750포인트까지 치솟고 있었다.
확실히 상승세가 무서울 정도.
한동안 빈집 같았던 일본 증시.
그 일본 증시가 변하고 있었다.
특히, 전세계로 흩어진 자국 자금들이 증시로 들어오면서.
증시는 다소 안정적인 모습을 되찾는 것 같았다.
오늘은 그 움직임이 무척 노골적이다.
한편, 나는 주요 종목 차트로 들어가.
각 종목별 호가창의 흐름도 확인해 봤다.
그런데 각 세부 종목에선 이런 변화가 더 두드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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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갑자기 돈이 쏟아져 들어오네.’
엄청난 매수세가 밀려들고 있었고.
쉴 새 없이 매도 물량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지난 3월 15일.
바닥까지 떨어졌던 일본 종목별 주가.
그러나 그 주가는 이제 엄청난 복원력을 발동하고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가속이 붙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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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내가 박지훈 상무한테 말한 게 소문이 났나?’
저번 통화 중에 박지훈 상무에게.
나는 일본 증시의 콜 포지션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마치 그게 소문이 난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미래증권에서 PI 투자(자기자본 투자)를 했다고 하더라도.
아직 일본 침체론과 위기론이 한국에서 압도적인데.
누가 감히 그런 식으로 일본에 투자를 할까.
사실, 증시폭락을 만드는 방법은 아주 쉽다.
그러나 한 나라의 주가지수를 상승시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과도할 정도로 일본 증시에 매수세가 밀려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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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뀜과 같은 변화의 조짐 같은데···.’
그래서 나는 얼른 일본발 기사들을 다시 확인해 봤다.
[福島原発、日本政府間違ってない···(후쿠시마 원전, 일본 정부는 잘못 없어···)]
[各企業プロセスの再稼働開始、しかし放射能リスクは疑問符?(각 기업 공정 재가동 시작, 그러나 방사능 위험은 물음표?)]
[政府発表、原発追加爆破リスクなし···(정부 발표, 원전 추가 폭파 위험 없어···)]
[放射能恐怖、余震に対する恐れは持続···(방사능 공포, 여진 두려움은 지속···)]
그렇듯 일본 정부 측 변명이 시작되고 있었고.
그 와중에 뾰족한 경기 부양책은 아직 수립되지 않았다.
그리고 원전 사태의 위험 역시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다.
언제 다시 재앙이 터질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이다.
그런데도 일본 증시엔 이상 동향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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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이런 경우는 시류와 상관없는 새로운 자본 유입이라는 말인데···.’
그리고 잠시 후, 뜻밖의 정보들도 잇달아 들려왔다.
놀랍게도 그 정보의 출처는 바로 룩셈부르크의 볼턴 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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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100억 유로, 일본으로···]
[유럽 자금 이탈, 목적지는 일본···]
딱 두 줄의 정보 메시지였는데.
나는 한참 그 이메일을 쳐다봤다.
무척 바쁜 볼턴 경.
그가 직접 보내온 정보인데.
긴 맥락의 설명은 없으나.
이 메시지가 가진 의미는 상당했다.
거대한 정체불명의 자금.
그 자금이 갑자기 일본으로 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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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렇게 되면, 상황이 또 달라지잖아.’
나는 이마를 쓰다듬다가 갑자기 인상을 팍! 썼다.
일본 증시가 아직 부활할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자금이 유입된다면.
삽시간에 일본 증시는 좀비처럼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그 증시에 대한 세계적 평가 역시 더 높아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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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내가 한국인이라서 좀 기분이 나쁘네.’
사실, 나는 개인 명의로 일본에 천억 원이나 기부했다.
그리고 한국 정부에선 물적 지원 외에도 119구조대 등을 급파했다.
민간단체에서도 인도적 측면에서 봉사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정작 일본 국내 방송 및 기사에선 이런 일들을 잘 다루지 않고 있었다.
내가 천억 원이나 기부했던 것도 모 일간지에 작게 기사로 실렸을 뿐.
기부 사실을 크게 알리는 한국 언론의 방향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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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생색낼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천억 원 기부의 가치는 정작 일본을 제외한 전세계로 쫙 퍼진 상태다.
듣기론, 로마 교황청에서조차 내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마당에 일본에선···.
‘하아! 갑자기 욱해지네. 안돼. 이러면 안 돼···.’
그렇듯 기분은 안 좋지만.
지금 일본 증시의 상향 곡선은 따지고 보면 나한테 유리하다.
풋 옵션들을 청산하면서.
그때 콜 옵션들을 잔뜩 매집해 놨기 때문.
그래. 이번에도 단단히 챙겨서 나가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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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10년도 기준, 대일 무역적자는 361억 달러다.
그 무역적자의 대략 4분의 1 정도를 내가 저번에 일본 증시에서 가져왔고.
이후 일본 닛케이지수가 다시 10,000포인트를 찍게 된다면.
나는 추가적 수익을 맛볼 수 있다.
대일 무역적자의 10분의 1 정도를 다시 쓸어 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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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런 일본 증시의 급격한 반등세 속에서.
나는 정신없이 오전을 보내다가.
어느덧 오후가 되자, 학교 강의 수강 때문에 한국대로 넘어갔다.
그리고 어느덧 마지막 9교시 강의가 끝날 때.
이때 때마침 박유진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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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유진씨. 지금 학교에 있습니다. 네? 아침에요? 아아! 죄송합니다.”
나는 아침 문자메시지에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아침에 제가 답장을 준비하다가 일이 바빠져서··· 죄송합니다··· 네? 저녁요? 그럼, 오늘 작업들은 다 끝난 겁니까?”
그렇게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저녁을 같이 먹자는 제안이었다.
한편, 나는 그 제안을 받은 뒤.
바로 생각에 빠져들었다가···.
이내 머뭇거렸다.
‘···아무래도 지금은 안 되겠어. 내가 여기서 더 나가면 아무래도···.’
알 수 없는 불안감.
알 수 없는 미안함.
현주와의 관계가 갑자기 급진전하면서.
아무래도 지금 이런 시점에선 뭔가 뚜렷한 확신이 필요했다.
어떤 확신 없이 달려들었다가.
모두가 힘들어질 수 있다.
“···어떡하죠? 회사로 바로 들어가야 하는데···. 네. 네. 죄송합니다. 유진씨. 그럼 죄송한데, 저녁 맛있게 드세요··.”
“···아, 어쩔 수 없죠. 한수씨도 저녁 맛있게 드세요···.”
약간 실망한 목소리.
그러나 이내 밝아진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한편,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나는 다시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현주한테서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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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같이 먹자고요?”
이번에도 저녁을 같이 먹자는 전화다.
이러니 양다리들은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
여기서 전화 받고, 저기서 전화 받고···.
아무래도 지금 이런 시점에선 뭔가 뚜렷한 확신이 필요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는 그 생각에 동시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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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현주씨! 제가 최대한 빨리 갈게요. 같이 저녁 먹죠. 그럼 조금 있다가 뵙죠··.”
정신없이 말했고.
나는 전화를 끊은 뒤.
잠시 후, 내 스스로에 대해 많이 놀랐다.
좀 전 일.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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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현주 부모님들을 만나고 나니까 기분이 좀 이상해졌어.’
혹시 내 마음속엔 내가 몰랐던 불안함의 장벽 같은 게 있었던 걸까.
그러나 그 장벽은 서서히 금이 간 것 같았고···.
현주에 대한 감정.
그녀의 따뜻한 가족의 모습 등.
그 모든 것들이.
내 장벽 안으로 휘몰아치며.
그렇게 들어온 것 같았다.
‘가족이라···?’
사실, 너무 단순한 개념인데.
긴 세월 동안 내가 외면했던 것···.
이때, 내 마음속에 도사린 그 열망이 내 이성의 틀을 통해 불현듯 인지되었다.
휴우.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쉰 뒤, 서둘러 움직였다.
이제 퇴근 시간이다.
도로가 꽉 막힐 수 있다.
더 서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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