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132화 (132/138)

130화 위기의 유럽

<133>

고풍스러운 서재.

그러나 동물 박제를 비롯하여 상아, 산호, 해초 등 기이한 것들이 서재 군데군데에 전시되어 있다.

로스차일드 카비네 드 라 퀴리오지테(Rothschild cabinet de la curiosite).

이 서재의 이름은 꽤 긴 편인데.

그 서재의 창 너머로 화사한 나무들이 보이고.

그 안쪽 창가에는 아주 묵직하면서도 아주 두꺼운 대형 데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데스크 앞으로 앉아 있는 백발의 노신사.

그는 우아한 새 깃털이 달린 펜을 들고서 문서에 사인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노신사는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늘씬한 키의 중년 남자는 조금 다가왔다.

그 중년의 남자는 장발이었고 턱 주변에 짙은 수염들이 가득한 모습이다.

그러나 무척 잘 생긴 모습이었고, 중후한 정장 차림이었다.

“윌리엄.”

“네. 회장님.”

“그레이엄이 뭔가 일을 하고 있다면서?”

순간, 표정이 약간 굳는 중년의 남자.

그는 정확하게는 윌리엄 드 로스차일드 이사다.

한편, 윌리엄은 이내 표정을 고쳤는데.

어떤 경우든, 눈앞의 노인한텐 최선을 다해 진실을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인은 바로 리처드 드 로스차일드.

프랑스 로스차일드 일가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회장님, 최근에 한국증시와 일본 증시에 관여했습니다.”

“으음. 일본? 그럼, 손해를 봤겠군.”

“잠정적으로 수십억 달러의 손해가 난 것 같습니다.”

“수십억 달러?”

흠칫 놀라는 노인.

그리고 노인의 표정은 조금 일그러졌다.

“일본이 우리한테 큰 피해를 입혔군.”

‘일본···?’

그리고 바로 이때.

그 말을 듣던 윌리엄 드 로스차일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조금 찌푸리고 있었다.

사실, 이 자리에서 무조건 진실은 말하되.

그 말을 하면서 은근히 기대감이 조금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는 그레이엄 이사의 실책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신뢰는 여전했다.

#

“···그레이엄이 혼쭐이 났겠군. 하하, 핫핫핫!”

그레이엄 드 로스차일드.

파리 RC 뱅크의 재무이사이자.

프랑스 가문을 이끌고 있는 리처드 드 로스차일드의 둘째 동생.

리처드는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동생인 그레이엄을 무척 아낀다.

하지만, 이 노신사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윌리엄은 그레이엄 이사가 무척 싫다.

점잖은 척하지만, 그레이엄은 무척 집요한 사람이다.

저번 가문 파티 때, 자신에게 손가락질했고.

또한, 심한 훈계까지 했던 인간이 바로 저 그레이엄이 아닌가.

아무리 자신의 숙부뻘이라고 해도.

자신이 그런 모욕을 들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

“···윌리엄.”

“네! 회장님.”

“또한, 그레이엄이 중국을 노린다고 했나?”

“네.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그렇듯 간단히 대답한 뒤.

윌리엄은 잠시 기다렸다.

이때, 리처드 드 로스차일드의 눈빛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무척 무거워진 눈빛이었고.

알 수 없는 격랑과 날카로움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중국은···.”

그리고 잠시 후, 노인은 뭔가 말을 시작했다.

“···내가 죽기 전···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그렇게 말하며.

노인의 주름진 눈가엔 눈 밑 살들이 이리저리 꿈틀거렸는데.

수많은 주름들이 얼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윌리엄!”

“네! 회장님!”

“우리 가문의 철칙은 구성원들의 신뢰다. 신뢰와 단합(unity). 그 어떤 경우든 힘을 합치는 게 우리의 철칙이지.”

그러면서 손가락을 까닥거렸고.

노인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린 윌리엄.

그는 표정이 조금 굳어졌지만.

서류철에서 하얀 서류 하나를 꺼내, 공손하게 데스크 위에 올려놨다.

잠시 후.

노인은 삭! 삭! 소리가 나도록 시원하게 사인을 마쳤다.

“···일본은 구해야지.”

잠시 후, 사인이 된 서류를 챙긴 윌리엄.

그는 극진하게 인사했고.

조용히 그 서재를 빠져나갔다.

#

한편, 노인은 계속 뭔가 고민에 빠져 있다가.

잠시 후,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선 그.

그는 창밖을 말없이 쳐다봤는데.

이때, 종달새 한 마리가 마주 보듯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곳 3층까지 다다른 높은 나뭇가지.

그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녀석.

그러나 이내 좌우를 살피던 녀석은 파다닥! 날개짓하며 저 높이 날아오르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인.

노인의 주름진 입가엔 작은 미소가 살짝 피어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노인은 데스크 앞에 다시 앉았고.

이제 전화기를 손에 쥐었다.

“···에블린, 나야. 리처드.”

그리고 그때부터 노인은 영국 가문의 수장 에블린 드 로스차일드 경과 무척 은밀한 대화들을 시작했다.

#

···어느덧 토요일 아침.

힘껏 하품을 했고.

기지개를 켠 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간단히 스트레칭부터 했고.

씻은 뒤, 정말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새벽에 문자메시지를 보낸 덕분에.

조금 늦은 시각에 김성태 팀장 등이 집 안으로 들어왔는데.

#

“···대표님, 그럼 언제 출발하시겠습니까?”

나는 손목시계로 현재 시간을 다시 확인해 봤다.

“그럼 두 시간 정도 뒤, 10시쯤 출발하죠.”

“네. 대기하겠습니다.”

잠시 후, 나는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고서 곧장 서재로 내려갔다.

간밤에 요동쳤던 파머 밀 코퍼레이션의 주가 추이도 다시 한번 점검해 봤다.

장중, 무려 335달러 선까지 찍었던 고점의 주가.

그러나 그게 폭락의 전주곡이라도 되는 듯.

주가는 폭삭 주저앉았다.

장중 292.56달러까지 추락한 것이다.

청산 압박감은 무척 심해진 상태.

그래서 임범준 과장은 나한테 여러 차례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청산 시점이 아니었다.

지금은 무조건 물량들을 사수해야 할 그런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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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유가 뭘까?

간밤의 갑작스러운 폭락의 이유.

처음에 나는 데이빗-보닐 펀드 측의 농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미국증시 전체가 갑자기 휘청거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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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증시가 어젯밤 폭락했단 말이야.’

중간중간 급보가 떠서.

그 정보들을 확인했었고.

3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보니.

모든 게 더 명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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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유럽 증시 폭락···]

[유럽 증시, 위기 폭증···]

[EU, 정치적·경제적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풍전등화! 위기의 유로화···]

[···유럽 경제 리스크는···]

간밤, 유럽 증시는 각 차트의 지수가 무섭게 추락했다.

우선, 언론에 보도된 첫번째 이유는 시리아 내전 등으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 때문이다.

유가 상승은 경기 부양 기세가 치솟던 유럽을 벼랑으로 내몰았고.

경기 부양이 필요한 일부 국가들을 위축시켰다.

그 때문에 다시 점화된 헝가리, 그리스 사태!

지난 해부터 이어진 위기는 전혀 진화(鎭火)되지 않았다는 절망론이 한순간 팽배해버렸다.

그 불덩이 속에 또다른 대형 폭탄, 이탈리아 위기론마저 가세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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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날 밤 터져나온.

로이터통신 등의 각종 해외 기사들.

[···이탈리아 정부, 재정 악화 충격적···]

[···위기의 이탈리아···]

[경제 규모가 큰 이탈리아 디폴트 선언? EU 붕괴할 수도···]

[이탈리아, 새로운 재앙지로 등극···]

[이탈리아 정부, 드디어 우려 표명···]

“···이탈리아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공적 부채는 1조 8,900억 유로에 달하며, 이런 천문학적인 부채에 대해 EU는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특히, 최근 재정 악화가 심화되면서 정부 디폴트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대형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중략)···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는 현재 급증 중에 있으며, 국채에 대한 위험도가 갈수록 커져···.”

이런 유럽 위기론들이 터지면서.

유럽 여론 전반엔 변화가 생겼다.

재정 위기가 심각한 피그스 국가 대열.

그곳에 이탈리아도 단숨에 추가된 것이다.

이런 충격 속에서.

데이빗-보닐 펀드 측에선 적절히 손을 쓴 듯.

파머 밀 코퍼레이션 주가도 급락했다.

하지만, 나로선 크게 놀랄 일이 아니었다.

두 가지 일 모두 충분히 예상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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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유럽에 큰 열매가 열리겠는데···.

내가 진행했던 열일곱 번째 투자.

특히, KH 룩셈부르크 투자펀드를 주력으로 풋 옵션 투자를 감행한 터라.

유럽 전역의 국가들 대다수가 이 풋 옵션에 적용이 된다.

유럽 증시가 폭락하면 할수록, 나는 큰돈을 벌게 되는 구조인데.

현재, 꽃샘추위가 사라질 4월을 어느덧 코앞에 둔 시점에서.

KH 룩셈부르크 투자펀드의 계좌 잔고의 수익은 어느새 40억 유로를 넘어선 상태다.

이런 수익은 지난 2월 중순부터 시작됐는데.

시리아 내전 사태 이후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이 수익은 원화 가치로만 따지면, 대략 6조 원.

'목표는 200억 유로니까, 아직 갈 길은 멀어.'

앞서 일본증시는 순간적 급락이었다.

그러나 이쪽은 점진적 급락이었고.

전체 시장 역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래서 30조 원이 최종 목표인데.

그런 데다가 열여덟 번째 투자도 현재 순항 중이다.

바로 국제유가 콜 옵션 부문.

대형 수익들은 점점 더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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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입니다! 이쪽에 앉으셔서 저희 카탈로그부터 보시겠습니까?”

토요일 오전.

나는 먼저 외제차 매장에 들렀다.

투자 일들이 너무 바빠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꽤 시간이 흘렀고.

더는 늦추기 싫어.

먼저 여길 들렀는데.

이 일들을 마친 뒤.

곧장 미래증권으로 들어가 박승남 신임 사장을 만날 생각이다.

그래서 먼저 이곳 외제차 전문 매장에 들어섰고.

이때, 딜러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마 SBC 방송 때문이겠지.’

포털사이트 실검 순위, 그곳엔 아직도 내 이름이 상위권으로 올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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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어떤 차종으로 보시겠습니까?”

람보르기니, 페라리, 포르쉐, 마세라티, 벤틀리 등등.

한편, 유명한 브랜드들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우선, 페라리 모델부터 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딜러는 세부 카탈로그들을 가져왔는데.

나는 한참 페라리 458 모델을 유심히 살펴봤다.

디자인은 무난한 편.

매력적인 곡선의 차체를 갖고 있는 모습 등.

무난한 스포츠카의 모습이다.

다만, 내가 무척 좋아했던, 빠르고 늘씬했던 놈들.

페라리 458 스페치알레 모델.

페라리 812 GTS 모델.

페라리 2020 로마 모델 등은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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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스포츠카 컬렉션을 생각한다면, 페라리 한 대 정도는 있어야겠지.’

다만, 좀 걱정도 된다.

세간의 시선들 때문이다.

‘···뭐 조심해서 타면 되겠지. 그리고 앞으로 정치인이 될 생각도 없고···.’

나는 이미 한번 해 봤다.

국회의원 말이다.

그러나 임기 동안, 나에겐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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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주문하면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요?”

“대체로 현지 사정으로 시간이 좀 걸립니다. 대략 6개월에서··· 아니면 최대 1년까지.”

역시 시간이 좀 걸린다.

“근데 고객님, 혹시 이런 건 관심이 있습니까? 중간 계약 취소 건 하나가 떠 있는데, 이런 건 잘 잡으면 신차를 좀 빨리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나는 바로 솔깃했다.

왜냐하면, 회귀 전에도 그런 경험이 있다 보니, 나는 바로 반응했다.

“제가 바로 주문하면 됩니까? 그 건은 얼마나 걸릴까요?”

“···한 달 혹은 두 달? 근데 붙어 있는 옵션 사양도 있고 해서, 혹시 원하신다면 제가 이 건을 잡아둘게요. 옵션 내역 등은 다시 확인한 뒤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구매를 그때 확인해주시거나, 혹은 새로운 신차 주문을 바로 넣어도 됩니다.”

잘 됐다.

하나라도 빨리 받아야지.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딜러로부터 이런저런 조언을 들은 뒤.

최종적인 컬렉션을 확정했다.

페라리 스포츠카 1대.

무척 모범적인 느낌인 준수한 BMW 스포츠카 1대.

2009년도에 출시된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LP670-4 슈퍼벨로체 1대.

특히, 젊은 나이에 한번 타 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 시리즈 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는 람보르기니 슈퍼벨로체.

그 스포츠카를 나는 선택했다.

그렇게 2011년도 기준에 맞춰, 최고급 스포츠카 총 3대를 계약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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