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129화 (129/138)

127화 태양이 뜨거워도...

<129>

“···임 과장님! 오늘 밤도 무척 주의해서 흐름을 따라가야 합니다. 여전히 위험한 구간입니다···.”

박유진 사장과 저녁을 먹은 이후, 밤은 어느새 깊어져 가고 있다.

특히, 오늘 밤은 차가운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

거실 창 너머로 보이는 정원의 모습.

여기저기 나뭇가지들이 요란하게 파닥이고 있다.

잠시 후, 나는 임범준 과장과 통화를 마친 뒤, 정원 전체 조명을 껐다.

그러자 거실마저 온통 어두워진다.

그래서 거실 조명을 조정한 뒤, 소파에 조금 앉아 있다가.

주방에 들렀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었고 조용히 서재로 내려갔다.

오늘 밤, 나는 다시 ‘파머 밀 코퍼레이션’에 대한 집중 투자를 이어 나갈 예정이다.

물론, 골칫덩이 곡물가공업체의 매각 발표 건은 아직 안갯속이다.

그 때문에 해외 주식커뮤니티들의 반응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파머 밀 코퍼레이션’의 주가 하락은 당분간 이어질 거라는 분석들이 압도적이고.

주가 하락에 대한 대응책들이 커뮤니티에 가득했다.

물론, 투자자들의 근심과 한탄도 그 속에 깔려있다.

#

‘하긴, 주가가 그렇게 추락하고 있는데, 버티기 힘들지.’

아무래도 이 종목의 주요 세력인 ‘데이빗-보닐 펀드’ 측은 당분간 하락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았고.

특히, 개별주식옵션 쪽에 착 달라붙어 있는 고집스러운 거머리(?)를 떼어내는 데 훨씬 더 집중하는 것 같았다.

‘근데 내가 그 거머리란 말이야.’

지난 11월 이후, 나는 줄기차게 이 종목에 붙어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다.

3월의 역대급 폭등 종목.

그게 바로 파머 밀 코퍼레이션이다.

‘아마 오늘은 전법이 좀 더 다양해질 것 같은데···.’

과연 그들이 어떤 식으로 날 밀어내려고 전략들을 짰을까.

아직 알 수는 없으나.

은근히 기대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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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커피를 몇 모금 마셨다.

따뜻한 기온이 감돌며.

몸이 약간 노곤해진다.

그 순간, 탁탁! 두 볼을 손으로 치며 정신을 차린 뒤.

잠시 후, 나는 모니터들을 다시 빠르게 살펴나갔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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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가 너무 일방적인데? 이렇게 하다 보면, 반전 시기도 더 빨라질 텐데···. 그 사람들 너무 위험하지 않나?’

왜냐하면, 파생 시장을 보는 투자자들은 대체로 역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3개월, 6개월, 12개월 구간에서.

미국증시 종목 차트가 우상향 중인지.

아니면 하향 중인지 먼저 따져보게 되는데.

이때, 지속적인 상향 차트가 확인된다면.

이땐 풋 투자를 시작하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

고점은 언제나 낙폭을 동반하니까.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콜을 잡는 게 더 유리하다.

현재, ‘파머 밀 코퍼레이션’ 종목은 지속적인 폭락의 장에 들어가 있고.

그래서 파생 시장 투자자의 눈에는 투자적 ‘콜’의 가치가 더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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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기서 주가를 더 빼 버리면, 실물 주식판은 아수라장이 펼쳐질 거고. 파생 시장은 분위기가 더 역전될 수도 있어.’

왜냐하면, 그 정도까지 추락한다면 이후 반등세는 폭발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증시는 단순하게 볼 수 없는 곳이다.

아무리 잘난 시세 조종자도 한국에서만큼 압도적일 수가 없다.

증시의 흐름 자체가 한국과 다르기 때문.

일례로, 미국증시에선 5%대의 대폭락이 터진 뒤, 금방 다시 원점을 회복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미국증시에 대한 예찬론이 아니라, 그만큼 증시가 튼튼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전세계 수많은 투자자들이 미국증시에 몰려가 있고.

미국 현지의 중학생, 고등학생들마저 직접 소액 투자를 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대체로 공정한 게임의 장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

한국증시처럼 외국인 투자자, 기관투자자, 시세 조종자들의 농락에 의해 주가가 급등하고 급락하는 아수라판과는 대체로 다르다.

그래서 미국 주식커뮤니티도 한국 주식커뮤니티와 비교될 만하다.

특히, 미국 파생시장 커뮤니티에선 정확한 시세 분석 의견, 차트 분석 방법, 수학적 모델 기법 등, 좀 더 디테일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데.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늘 외국인 수급 현황, 기관 수급 현황 등, 그런 정보들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편이다.

‘이래서 증시가 튼튼하다고 하지.’

그래서 우리나라는 공매도 제도부터 빨리 고쳐야 한다.

투자의 공정한 게임을 반드시 확립해야 한다.

그래만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맞게 증시가 살을 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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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휴우! 오늘도 역시 하락 출발이다.

좀 전에 시작된 미국증시.

이 종목의 전 거래일 종가는 234.65달러.

그러나 첫 거래가는 229.53달러.

2.18% 하락한 수치다.

‘결국, 오늘도 폭락인가?’

나는 잠시 눈을 감고서 생각에 잠겼다.

이때 별의별 전략들을 다 떠올리다가.

문득, ‘풋’을 잠시 잡을까 하는 그런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급락과 급등이 언제든 오갈 수 있는 이 종목의 현실.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풋’을 잡다간 크게 경을 칠 수가 있다.

그 생각을 마친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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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과장님!”

“네.”

“오늘 주가가 200달러 아래까지 혹시 추락한다면, 그땐 저번처럼 포괄적 콜 매수에 다시 들어가세요. 앞선 투자를 다 날렸다고 생각하고, 뒤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콜을 매수하세요! 절대 흔들리지 마시고 콜 매수에 그냥 집중하시면 됩니다!”

“근데, 왜 계속 콜입니까? 대표님! 혹시 호재에 대해 아시는 게 좀 있습니까?”

임범준 과장은 내가 줄기차게 ‘콜’을 잡자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 공개되지 않은 호재를 내 입으로 말할 순 없고.

그저 평범한 대답으로 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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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머 밀 코퍼레이션의 재정 규모와 각종 지표는 보셨죠?”

“네. 수없이 봤습니다.”

“이 주가가 현실적으로 말이 됩니까?”

“아, 아뇨.”

“그렇다면 다른 투자자들은 어떨까요?”

“네?”

“미국증시는 방향을 잘 읽어야 합니다. 일례로 미국증시에선 주요 주체별 동향과 특정 주체의 수급 형태 같은 건 전혀 발표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의도적 왜곡’ 같은 건 대체로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변수가 있지 않습니까? 큰 악재 같은 게 숨어 있다면···?”

그게 바로 심리적 공포심이다.

근간에 자리 잡아 투자를 방해하는 요소.

때로는 위험을 회피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공포심은 항상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임 과장님, 미국 파생 시장에서 퀀트 투자가 각광받는 이유는 아시죠? 차트 흐름과 숫자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선 이런 퀀트 투자를 하면, 부정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더 중요한 것은 주체별 수급 현황 등이니까요.”

“네! 그렇긴 하죠. 하지만 퀀트 투자가 잘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선 외국인, 기관 등 각 주체별 수급 현황 분석 없이는 제대로 된 퀀트 투자를 할 수가 없죠. 다행히 우리는 미국 파생 시장을 타깃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파생 시장 쪽에 이런 말이 있죠. 선택된 사람만이 좋은 옵션을 가질 수 있다! 임 과장님, 제 의견은 어쩔 수 없이 주가가 날아오른다는 겁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왜냐하면, 갑자기 주가가 다시 추락했기 때문.

그때부터 주가는 미친 듯이 떨어지더니.

어느덧 220달러 저지선마저 곧 깨질 것 같았다.

그리고 활짝 열리는 대폭락의 비명.

그 비명이 갑자기 장내에 퍼지며.

악랄한 거인의 발자국에.

사정없이 유린될 것만 같은.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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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 시각.

데이빗-보닐 펀드가 위치한 뉴욕 월스트릿 증권가.

그곳 실무이사인 앨리엇 고든은 현재 인상을 팍 쓰며 차트 흐름에 주목하고 있었다.

지난 연말부터 파생 시장 쪽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누군가 쉴 새 없이 콜 옵션들을 매집하고 있고.

그 기세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상태다.

심각한 골칫거리.

수급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너무 일방적이다.

물론, 처음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갈수록 콜 옵션 호가창이 말라 비틀어졌다.

할 수 없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때, 파머 밀 코퍼레이션의 실물 주가를 낮췄고.

주가는 빠르게 추락하여.

180달러 아래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콜 세력은 떨어져 나가지 않았고.

할 수 없이 일보 후퇴했다.

그러자 다시 주가는 올랐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얼마 전 250달러대까지 상승했던 주가.

그런데 여전한 문제는 콜을 쥔 누군가가 그럼에도 물량들을 전혀 풀지 않았고.

시점이 바뀌어, 어느덧 3월이 된 지금.

4월물, 5월물, 6월물 콜 옵션들의 수급은 무척 위태로워진 상황이었다.

#

“맷! 210달러까지 우선 떨어뜨려!”

잠시 후, 앨리엇은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하락의 하한선을 지정했다.

그러나 그 이하로 떨어뜨릴 경우, 좀 더 숙고해야 한다.

조만간 터져 나올, 파머 밀 코퍼레이션의 대형 호재들.

그게 도미노처럼 번지면.

걷잡을 수 없는 대형 폭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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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지금부턴 콜 물량들이 나오면 무조건 매집해! 무조건!”

“네. 보스.”

깔끔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그러나 앨리엇은 여전히 불안했다.

콜 물량들을 잡으려고 해도.

경쟁적으로 잡다 보니, 확률은 반반이다.

설마 내부 정보가 새어나갔나.

고민에 휩싸이던 앨리엇.

그는 잠시 후 전화기를 다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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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엘. 어떻게 지내?”

“나야 뭐 바쁘지. 무슨 일?”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무척 건조한 목소리.

그런데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지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정확히 예측했던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

당시 엄청난 수익을 누렸던, 글로벌 헷지 펀드 소속의 ‘카엘 배스’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그는 최근에 신생 헷지 펀드인 ‘배스 캐피탈’을 창업하기도 했다.

“카엘, 도움이 필요해.”

“무슨 도움?”

여전히 짧게 말하는 카엘.

지금 전화를 받는 것 외에도 다른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 종목에 콜에 붙어 있는 거머리가 있어. 별의별 짓을 해도 떨쳐낼 수가 없어.”

“하하, 나 같은 놈이네.”

“맞아. 너 같은 누군가. 혹시 방법이 없을까? 떨쳐낼 수 있는 방법?”

그러자 갑자기 목소리가 변했다.

“앨리엇! 어리석은 짓 하지 마!”

“무슨 말이야?”

“내가 항상 말했지. 데이빗-보닐은 그 종목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고.”

“음.”

“스스로를 죽이는 짓이야.”

“하지만 지금은 안 돼. 혹시 방법이 없을까?”

“간단히 내가 경고할게.”

“경고?”

“주가를 회복시켜.”

“뭐?”

“흐름을 보고 움직여. 그러지 않으면 데이빗-보닐은 큰 피해를 입게 돼.”

“으음. 정말 방법이 없어?”

“앨리엇! 스스로 답을 알고 있잖아.”

그리고 잠시 후, 전화를 끊었다.

앨리엇은 이내 이마를 잡았다.

머리가 아프다.

카엘은 방법이 없다고 한다.

고집스러운 투자자를 만났으니.

그냥 시세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기라는 조언.

그러나 그 거대한 수익을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길 수가 없다.

절대 견딜 수가 없는 일이다.

잠시 후, 앨리엇은 다시금 거대한 욕망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는데.

‘그래. 이대로 주가가 상승하면, 무려 수십억 달러를 빼앗기게 돼.’

할 수 없다.

더 낮추자.

150달러 선?

그렇게 엄청난 폭락이 발생한다면?

그러면 고집스러운 투자자가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잠시 후.

앨리엇은 다시 전화기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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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각 해외 팀에 연락해서 주가를 지금부터 쭉 끌어올려! 목표가는 280달러!”

한편, 앨리엇은 갑자기 생각을 바꿨다.

재고량이 실종되고 있는 실물 주식.

그 주식을 다시 확보하는 기회로 삼되.

마치 나그네가 태양 앞에서 옷을 벗는 것처럼.

빗발치는 주가 폭등 속에서.

콜을 벗겨낼 생각이다.

현재, 파머 밀 코퍼레이션의 4월 시점 주가는 최대 600달러 선으로 예측되고 있는데.

그 전에 콜을 다 벗겨낸다면.

천문학적인 수익을 자신들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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