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128화 (128/138)

126화 비밀 그리고 백반집

<127>

조상구 전 부장은 글로벌 펀드, 랜드브리지 캐피탈에 포섭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일의 시작은 바로 서울시 내부 자료 때문이라고 한다.

‘2013~2014 서울 도심개발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대강화학 부지는 새로운 도심개발 프로젝트에 있어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정보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국내 모 증권사 측에 넘어가게 되었고.

그 증권사가 랜드브리지 캐피탈에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이때, 랜드브리지 캐피탈의 에바 가보르 이사가 그 일들을 총괄하게 되었는데.

자신은 그 프로젝트에 포섭됐으며.

프로젝트 성공시, 각종 혜택과 큰 보상을 받기로 약속받았다고 한다.

특히, 랜드브리지 캐피탈의 미국 뉴욕지사에 5년간 근무를 보장받았고.

이후 미국 영주권 획득 과정에서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혜택의 대상에 경리과 직원 박소희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국내 모 명문대 졸업자인 박소희.

그녀는 그 이전에 포섭되었고.

자신은 처음에 그 사실을 몰랐으나.

박소희가 입사한 이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즉, 그런 식으로 에바 가보르 이사는 대강화학 내부에 자기 사람들을 심어 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대강화학을 서서히 해체하는 전략들을 펼쳤다고 한다.

물론, 랜드브리지 캐피탈의 자금력으로 대강화학을 직접 인수할 수도 있다.

또는 제삼자 명의로 대강화학을 인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전략들을 즉시 폐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폐쇄적인 한국의 도심개발 프로젝트에 직접적인 개입을 원했고.

천문학적인 수익 확보 외에도 해외자본 참여 히스토리를 남겨놓은 뒤.

향후, 다양한 프로젝트에 직접적인 개입을 할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아는 어느 도심개발 사업에서도 실제 해외 자금 유치 건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적극적인 해외 자본 침투 건이었다.

“···그럼, 직접 인수와 부도 처리는 무슨 차이가 있죠?”

묵묵히 듣다가 내가 질문을 던지자, 조상구는 다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먼저, 랜드브리지 캐피탈의 직접 인수는 한국의 국민적 감정 때문에 즉각 폐기되었다고 한다.

과거, IMF 때 론스타 사건이 있었고.

이후, 자신들이 대강화학을 인수한 뒤.

이를 매개로 대형 도심개발 사업에 참여한다면 대형 부패 게이트가 터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악랄한 자본 침투로 오해받을 수도 있고.

이 과정에서 프로젝트가 갑자기 공중분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으로 고려한 것은 제삼자 한국 기업을 통한 간접 인수였다.

그러나 이때도 문제가 있었다.

해외 자본의 직접적인 투입이 불가능하다는 것.

아마 개발에 필요한 자금들은 한국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융통될 것이다.

한국 국내 은행 및 자산운용사 등을 중심으로 말이다.

반면, 대강화학이 부도 처리가 되고, 그 부지가 채권자의 손에 들어갈 때.

랜드브리지 캐피탈이 조용히 움직인다면.

대강화학의 부지를 모두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대강화학의 부도 원인을 김도철 전 사장에게 돌린다면.

랜드브리지 캐피탈에 대한 세간의 시선을 희석할 수도 있다.

또한, 그 부지를 확보한 뒤.

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시행사를 세우고.

이후, 주요 토지 보유자 자격으로서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이를 정식으로 서울시에 제출한다면.

랜드브리지 캐피탈은 상당한 요건을 갖출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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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랜드브리지 측에선 폐쇄적인 한국의 도심개발 사업에 침투할 기회로 봤고. 그 기회를 잡은 뒤, 하나씩 풀어나갈 생각으로···.”

즉, 명분도 챙기되.

실리도 챙기겠다는 것.

물론, 그런 일들이 가능하게 되려면, 우선 대강화학의 부도 처리가 선결 조건이었다.

그런데 그 회사에 대한 정밀 분석 결과, 가능한 조건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김도철 전 사장의 지속적인 횡령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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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성공 확률이 높은 만큼, 프로젝트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기밀 엄수 대가로 100만 달러 지급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에바 가보르 이사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실패로 인해 에바 가보르 이사는 징계를 받은 것 같았고.

이후, 소식이 끊긴 상태라고 한다.

반면, 자신은 이후 모종의 인물들에게 몇 번의 심각한 위협을 당했다고 한다.

입조심 하라는 바로 그런 경고.

그래서 조상구는 무척 무서웠고.

함부로 이 사실들을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그에게 다른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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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와이프가 이혼하겠다며 소송을 걸었습니다···.”

문제는 자신이 빼돌린 회사 자금과 아내 명의의 예금들이다.

그 자금들을 관리하고 있던 아내.

아내가 그 돈들을 집어삼키겠다는 것이다.

화가 나서 아내를 고소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아내를 고소해 봤자, 그 돈이 자신한테 돌아올 것도 아니고.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 돈이었다.

#

“···조상구씨. 차라리 법정에서 다 실토하고 보호를 받는 게 낫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떤 위협을 받았는지 몰라도, 조상구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최병우 변호사는 다시 말했다.

“하지만 저의 법률적 판단으로 봤을 때, 무조건 공개하는 게 조상구씨한테 도움이 됩니다. 정상 참작이 될 수도 있고 지금이라도 반성의 의지를 보이면···.”

“아, 저도 압니다. 하지만···.”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 조상구.

그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한편, 내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최병우 변호사는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최초 그 정보를 수집했던 증권사, 대체 어느 증권사입니까?”

그 질문에 조상구는 더는 감출 게 없다는 듯 곧이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대답했다.

“···한세증권··· 최동석 의원입니다···.”

<128>

“···대표님! 그럼, 어디로 가실 겁니까? 회사로 가실 겁니까? 아니면···?”

운전석에 앉은 김성태 팀장.

그가 나한테 목적지를 물었는데.

좀 전에 나는 서울구치소 접견실에서 나왔고.

최병우 변호사와 인사를 나눈 뒤 헤어졌다.

그러고는 차량 뒷좌석에 탔는데.

내가 한참 말이 없자, 김성태 팀장은 그렇게 물었고.

나는 좀 생각하다가 대충 대답했다.

“···그냥 퇴근하죠.”

“그럼, 한남동으로 바로 가겠습니다.”

곧이어 차가 출발하자, 창밖의 모습은 빠르게 변했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

저 너머의 해는 이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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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단 말이야.’

한세증권 최동석 사장.

아니지, 이제는 최동석 국회의원.

그런데 그는 바로 최세진 상무의 아버지였다.

몇 년 전, 그는 한세증권 경영진에서 물러났고.

정치권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지난 2008년 총선에서 승리했고, 현재 국회의원 신분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언급되자, 너무 놀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동석 의원은 나이가 많은 편인데 미중년이라고 해야 하나. 분위기는 아주 대단한 사람입니다. 근데 보통 사람이 아니라서. 그때 골프채로 누군가를 미친 듯이 두드려 패던데, 그때 너무 놀라 제가 그냥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아까 만났던 조상구의 말이다.

나는 그 말이 문득 떠올랐고.

최세진 상무의 모습도 문득 떠올랐다.

특히, 한국에 공격적인 랜드브리지 캐피탈의 한국 커넥션.

점입가경으로 나는 뜻밖의 정보들을 획득한 것인데.

최동석 의원 외에도 최세진 상무 때문에.

나는 더욱더 머리가 아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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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후, 차량이 한남동으로 접어들 때.

나는 이것저것 생각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몇 가지 추측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약탈적인 랜드브리지 캐피탈은 2월 코스피 공매도 사건의 주역일 수도 있어.’

다만, 그들이 정말 공매도 사태에 참가했고.

내 유인책에 넘어갔다면.

일본 증시에서 그들은 엄청난 손해를 봤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내 추측이 정말 맞다면.

대강화학, 일본 증시 등.

나는 두 번의 응징을 가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 앞으론 좀 긴장해야겠는데···.’

작은 실수로 큰 산을 태우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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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유진씨! 저 아직 식사 안 했어요···.”

한편, 어느덧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박유진 사장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요지는 저녁을 같이 먹자는 전화다.

근데 오늘 인테리어 일이 바쁘지 않았나.

보통, 이 시간대는 무척 바빴던 것 같던데.

“···그럼 저번에 식사한 데서 다시 볼까요?”

사실, 저번 백반집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

다시 생각이 날 정도로.

그런데 다른 대답이 곧 들려왔다.

“아, 다른 데 가자고요? 그래요. 그럼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나는 김성태 팀장한테 다른 목적지를 이야기했고.

김성태 팀장은 급히 핸들을 틀었다.

그리고 잠시 후.

가파른 언덕을 조금 오른 뒤.

내리막길 골목길에 진입했는데.

한편 저 앞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이 있었다.

비록 날이 저물었으나.

곳곳에 가로등 불빛이 있고.

그래서 나는 금방 박유진을 알아봤다.

“팀장님! 전 여기서 내릴게요.”

“네!”

이때, 김성태 팀장은 즉시 깜빡이를 켜며 차를 멈춰 세웠고.

내가 내리자, 조수석의 강민정 경호원도 즉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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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씨, 오늘 일이 빨리 끝났나 보죠?”

“네. 운이 좀 좋았어요.”

보조개를 보이며 웃는 유진.

“마루 공사가 생각보다 빨리 끝났거든요.”

비록 일체형 작업복 차림이지만.

자신의 머리를 풀어헤쳐, 긴 머리카락이 잔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한편, 화장기가 없는 수수한 모습.

그래서 더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배고프죠? 빨리 들어가죠.”

“네!”

무척 유쾌하게 말하는 유진.

우리는 함께 잠시 걸었고.

곧이어 아는 사람만 찾는다는 어느 밥집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가 백반을 무척 좋아한다는 걸.

유진은 어느새 알아차린 것 같았다.

물론, 우연히 알게 된 거겠지만.

왜냐하면, 회귀 전의 유진은 내 식성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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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아, 저는 뭐든 좋습니다.”

잠시 후, 우리는 아담한 한옥 식당으로 들어섰고.

한쪽 자리에 서로 마주 보며 앉았다.

점원이 메뉴판을 가져왔다.

전라도 가정식 백반이라고 한다.

이것저것 주문했고.

추가 메뉴로써 얼큰하게 먹으려고 전복해물탕 하나를 시켰다.

“유진씨, 한식은 좋아하세요?”

“네. 좋아해요.”

보조개를 보이며, 웃으며 대답하는 유진.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곧바로 실소가 밀려왔다.

맙소사, 박유진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내가 아는 그녀.

그녀는 주로 파스타를 비롯한 면 요리를 좋아한다.

일부러 나한테 맞추려고 노력하는 걸까.

그래서 그런 마음을 알게 되자, 실소와 함께 은은한 미소도 내 입가에 피어올랐다.

“고마워요. 유진씨.”

“네?”

“이런 좋은 델 알려주셔서···. 앞으로 종종 와야겠어요.”

유진은 다시 웃었다.

화장기가 없어 수수한 그녀의 눈꼬리는 부드럽게 율동했다.

“근데 한수씬, 한식 백반 같은 걸 좋아하시나 봐요?”

“네. 좀 그렇게 됐습니다. 그게···.”

한편, 나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멈추고, 이내 씩 웃었다.

그러자 그녀는 재촉했다.

“말씀하세요. 무슨 이유가 있으세요?”

“아, 아닙니다.”

“혹시 바깥 음식만 많이 드셔서, 가정식 백반 같은 거··· 그런 거 그리워하시는 거···?”

와! 근데 오늘따라 왜 이러지?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네.

“···네. 제가 좀 그런 셈이죠. 하하.”

“하지만 한수씬 엄청난 부자잖아요?”

“부자···? 근데 부자랑 무슨 상관이죠?”

“부자는 언제든···.”

“아닙니다. 이런 분위기와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겠어요? 유진씨, 감사합니다!”

내가 다시금 고맙다고 하자, 박유진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 가득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밝고 매력적인 모습 때문에.

나도 모르게 순간 뜨끔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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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이쪽 일도 머리가 좀 아파지네.’

내일 저녁엔 현주를 만나게 된다.

박지훈 상무와 함께.

사실, 내가 이 여자, 저 여자한테 걸치려는 게 아니다.

참하고 똑똑한 현주.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무척 밝게 살아가는 유진.

어느 순간, 현주에게 빠졌다가.

다시 유진한테 매력을 느끼고.

결국, 내가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아직도 내 감정이 혼란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회귀 전의 인연인 유진.

아마 그때 내가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나는 유진과 결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유진은 어느 순간 한 발 뒤로 물러서 버렸다.

그러나 지금의 유진은 또 다르다.

무언가 시점의 차이 때문일까.

그녀가 나에게 먼저 다가오려고 저렇듯 노력하고 있다.

하아! 근데 진짜 모르겠다.

잠시 후 음식이 나왔고.

그때부터 나는 오로지 숟가락질에만 열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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