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127화 (127/138)

125화 조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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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여기 앉으세요.”

최병우 변호사는 한쪽 의자를 가리켰다.

“좀 불편할 겁니다.”

실제, 앉아 보니 좀 불편하다.

하지만 여기가 구치소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런 불편함 따윈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아주 단출한 곳이다.

긴 테이블 하나와 의자 몇 개가 전부.

그러나 녹음 우려가 없기 때문에.

수감자인 조상구는 이 자리에서 뭔가 폭로를 할 수도 있다.

“대표님. 절대 상대를 자극하지 마시고, 침착하게 대응하셔야 합니다.”

“네.”

“그리고 아셔야 할 게 또 있습니다. 조상구는 향후 1심 판결시 형량이 좀 세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아마 반성하지 않고서 끝까지 죄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김도철 전 사장 등은 좀 다릅니다. 과도할 정도로 반성문을 많이 제출했고, 피해 복구를 위해 노력한 점도 있어 정상 참작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김도철 전 사장의 횡령 액수가 너무 큽니다. 정상 참작이 된다고 해도, 양형시 집행유예 판정까진 힘들 겁니다. 형량은 좀 줄겠죠.”

“근데 제가 듣기론, 김도철 전 사장이 이혼을 했다면서요?”

“네. 재산을 조금이라도 지키고 싶겠죠. 그래도 김도철 전 사장의 자택과 각종 집기들은 압류 처리가 된 상태이고, 민사 판결이 향후 나오면 경매 집행도 가능할 겁니다.”

나는 쓴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 그리고 제 생각엔··· 오늘 조상구가 대표님한테 뭔가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독 대표님과 면회를 하고 싶어, 조상구가 난리였거든요. 조상구 변호인 측을 통해 지금껏 끈질기게 연락이 왔습니다.”

날 무척 만나고 싶어하는 조상구.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최 변호사님, 그럼 조상구 변호인 측은 오늘 안 오는 겁니까?”

“네. 그쪽은 오지 않습니다.”

조상구는 자신의 변호인마저 배제하고 날 만나려고 한다.

정말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다.

그렇게 잠시 생각하던 중.

이때, 인기척이 들렸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덜컹! 하는 소리.

그 소리와 함께 접견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교도관들과 함께, 미결수 수의를 입은 조상구 전 부장이 마침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면서 곧장 날 뚫어지라 쳐다봤고.

잠시 후, 착석한 뒤, 교도관들이 밖으로 나가자,

그때부터 그의 표정은 무척 이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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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하하하···.”

처음엔 낮은 목소리로 웃다가.

잠시 후, 조상구는 최병우 변호사와 날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그는 무척 수척한 얼굴인데.

입 주변엔 상처가 있고.

오른쪽 눈을 계속 찡그렸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다.

뭔가 눈에 문제가 생긴 듯한 모습이다.

지금 미결수 수의를 입고 있는 조상구 전 부장.

무척 어색한 모습이었고 또한 무척 낯선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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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구씨! 김한수 대표님께선 오늘 스케쥴이 무척 바쁘시지만, 특별히 여기까지 왔습니다. 혹시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뭐든 말씀하세요.”

그렇게 최병우 변호사가 먼저 용건을 말했고.

그 순간, 조상구는 입을 비틀며 피식 웃었다.

이때, 약간 광기가 서린 듯한 눈으로 날 노려봤는데.

“···김한수··· 개새끼··· 시팔, 니가 공장을 먹었다고?”

무척 저음이다.

독기어린 목소리.

그런 목소리가 갑자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러나 내 옆에 앉은 최병우 변호사는 달랐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며 바로 삿대질을 했고, 무척 사납게 외쳤다.

“야!! 당신 뭐야!! 당신 미쳤어!!? 이봐!! 말조심해!! 누가 여길 요청한 거야? 이분이 어떤 분이신지 아직도 몰라?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아까 조상구를 자극하지 말라고 했던 최병우 변호사.

그는 더 무섭게 화를 냈고.

그런 최병우 변호사의 기세에 조상구는 놀란 듯 눈이 커졌다.

단숨에 조상구를 압도할 정도로 최병우 변호사의 눈빛은 무척 사나웠다.

폭행·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 조상구.

그는 금방 기세가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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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구씨. 앞으로 말조심하세요. 한 번만 더 그러면 우리는 바로 일어납니다.”

최병우 변호사는 다시금 경고했다.

그러자 조상구는 고개를 푹 숙인 뒤, 짧은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그러고는 그는 뭔가 감정 변화가 생긴 듯,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고.

그때부터 숨을 거칠게 몰아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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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구씨!! 정신 차려요! 정신!”

이때, 최병우 변호사가 다시 고함을 지르자.

그제야 조상구는 숨을 깊게 들이쉰 뒤 좀 진정된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두 눈은 어느새 충혈되어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런 급격한 감정 변화가 생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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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죄송합니다. 변호사님. 제가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대표님한테도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조상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완전히 기운이 빠져버린 모습이다.

어깨까지 축 늘어져 있다.

기세가 완전히 사라진 조상구의 모습.

그런 모습을 나는 잠시 쳐다보다가.

곧이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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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부장님! 이제 말씀하시죠. 대체 왜 절 보자고 하신 겁니까?”

조상구는 고개를 들었다.

“혹시··· 제가 제안을 해도 될까요?”

제안?

제안을 하겠다?

한편, 조상구는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최병우 변호사 쪽을 한번 쳐다본 뒤.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했다.

“김한수 대표님, 저한테 궁금한 게 있죠···?”

이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그거 다 말씀드릴 테니까···.”

순간,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는데.

“저한테 10억 원을 주십시오.”

10억?

10억 원?

찰나,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었다가 이내 실소가 밀려왔다.

‘딜을 하자는 거잖아.’

나는 슬쩍 최병우 변호사 쪽을 쳐다봤고.

이때 최병우 변호사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저 요청을 절대 들어줄 이유가 없다는 그런 제스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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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조 부장님. 좀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죠. 우선, 저는 조 부장님한테 어떤 경우든 10억 원을 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혹시 더 말할 게 없다면 이걸로 대화를 마쳐도 전 상관없습니다.”

그러자 순간 얼굴이 아주 심하게 일그러지는 조상구.

그러나 그 모습은 어느새 빠르게 변했다.

한숨을 푹푹 내쉬던 조상구.

그는 다시 말했다.

“하아··· 하아··· 좋아요. 딱 5억 원까지 낮춰드릴게요. 제가 다 말할 테니까 5억 원에 합의합시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대가가 5억 원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차갑게 대꾸했다.

“아뇨. 저는 단 1원도 드릴 마음이 없습니다.”

“야-아!! 내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를 텐데?”

순간, 갑자기 목소리가 빨라지며 반말을 하는 조상구.

이때, 최병우 변호사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가, 이내 날 쳐다보며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도 요청에 응하지 말라는 그런 제스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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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조상구씨. 다시 말하죠. 전 당신한테 5억 원을 줄 용의가 없습니다!”

내 목소리가 무척 차가워지자.

조상구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무척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잠시 후, 조상구는 머리를 뻑뻑 긁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고,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요! 3억! 그래! 3억까지 낮춰줄게. 3억 원 이하는 어림도 없어!”

어느새 그 대가는 3억 원까지 낮춰지고 있다.

그런데 왜 저렇게 당당할까.

그 정도는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언론에 나온 내 기사들을 봤나?'

그러니까 내가 돈 줄 여력이 있다는 걸 그는 잘 아는 모양이었다.

'기분은 좀 나쁜데.'

나는 불쾌해져 즉시 반말로 대응할까 하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을 다시금 떠올렸다.

조상구랑 싸우려고 내가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다.

조상구의 입을 통해 뭔가 사실들을 알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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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구씨! 단언컨대 전 그 돈을 줄 수 없습니다! 우선, 그 진실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수도 없고. 설령 그걸 제가 모른다고 해도 그 사건은 이미 끝난 겁니다. 대강화학을 제가 이미 인수했고, 구태여 그 진실을 알 필요도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당신한텐 중요한 일이지만, 저한테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는 조상구가 저지른 일 때문에.

대강화학을 인수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런 내가 구태여 더 깊이 들어가, 뭔가를 알아낼 이유가 없다.

직접적 관련자들은 법정 판결을 앞두고 있는 상태인데.

그래서 내가 새로운 일을 더 벌일 필요도 없다.

거기서 내가 뭘 더 얻겠나.

그런 내 입장을 이야기하자, 조상구는 아주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자기 딴에는 너무 중요하게 여겨,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진실.

그런데 막상 생각해 보면, 그 진실은 자신한테만 중요한 것이다.

김도철 전 사장과 조상구의 혐의는 별개의 것이기 때문.

즉, 조상구는 자신만의 생각 속에 고립되어 있다가.

내 말을 듣고서 머릿속이 무척 혼란해진 것 같았다.

눈치가 빠르고 영악했던 조상구 전 부장. 그러나 지금은 그저 멍청해 보이는 힘없는 수감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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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왔어? 바쁜 사람이···? 아, 알았어! 낮춰줄게! 더 낮춰줄게! 1억!! 1억!! 더는 안 돼!! 1억!! 1억이면 돼!! 1억만 줘!! 다 말할게!! 다!!!”

구치소 생활이 무척 힘든 듯.

정신이 좀 이상해진 것 같은 조상구 전 부장.

그는 잠시 후 1억 원을 요구했다.

1억 원을 주면 다 말하겠다는 말인데.

1억 원도 사실 큰돈이다.

한편, 나는 고민에 빠졌다가.

최병우 변호사 쪽을 쳐다보니.

최병우 변호사 역시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그러나 최병우 변호사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직 딜이 끝난 게 아니라는 제스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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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1억 원은 너무 과하단 말이지? 그럼 천만 원은?? 이건 너무 약한가? 2천만 원? 아니지. 3천만 원 정도? 그래. 3천만 원이 딱 괜찮을 것 같은데.’

한편, 그 와중에 조상구의 표정을 보니, 너무 열렬한 모습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그는 돈이 무척 궁한 것 같았다.

‘그렇지! 변호사 수임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조상구의 아파트는 압류된 상태라고 한다.

그 역시 아내와 이혼 소송 중에 있다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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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구씨! 정확하게 말씀드리죠. 저한텐 그 정보가 큰 가치가 없어요. 다만, 저도 인간으로서 그 사건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어 여길 온 것뿐입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다 실토한다면, 그 대가로 제가 3천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조상구는 다시 발악했다.

“1억!! 1억이라고!!”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최병우 변호사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그 순간, 조상구는 깜짝 놀랐고.

삽시간에 기세가 다시 죽였다.

다만, 놀라운 점은 이곳에서 큰 소란(?)이 있음에도 교도관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최병우 변호사가 그 전에 뭔가 손을 쓴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최병우 변호사는 드디어 조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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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구씨! 정보 제공의 대가로 1억 원을 요구하는 것은 제가 봐도 무리입니다.”

“······.”

“그 정보의 가치가 대표님한텐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대표님께서 그 정보를 습득한 뒤, 과연 1억 원 이상의 이익을 볼 수 있을까요?”

“······.”

“정보의 가치는 그 정보가 본인한테 얼마나 중요하고, 또한 어떤 이익의 형태로 돌아올 수 있을지, 그런 것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표님은 특별한 이익을 볼 수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한편, 조상구는 대답 없이 눈을 감고 듣다가.

곧이어 뭔가 한참 생각하더니 길게 탄식했다.

“···그냥 진작에 판사한테 다 말해버릴걸···.”

뭔가 후회성 발언을 하고 있었고.

지금 심경의 변화가 큰 것 같았다.

이때 최병우 변호사는 눈짓했고.

나는 서둘러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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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부장님! 조 부장님 사정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제가 5천만 원까지 드리겠습니다. 다만, 그만한 가치가 안 된다면, 절대 드릴 수 없습니다. 조 부장님이 아시는 거, 모조리 빠짐없이 다 말씀해주세요. 알겠습니까?”

첫 제안이었던 10억 원.

그게 5천만 원까지 수직하락했다.

그러나 조상구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듯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5천만 원은 무조건 줘야 합니다.”

이때, 최병우 변호사가 나섰다.

“조상구씨가 신뢰를 보인다면, 저희도 신뢰를 보일 겁니다.”

그러자 조상구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그의 입에서 드디어 대강화학 사건의 전말이 폭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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