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거물 대학생 02
<125>
앞쪽 교단.
그곳엔 교양 강좌를 강의하는 어느 노교수님이 열띤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나는 가만히 앞쪽을 쳐다봤고.
때로는 노트에 필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척에서 누군가의 진한 시선이 불현듯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순간, 눈이 마주쳤고.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리는 한 여학생이 시야에 들어왔다.
긴 머리.
무척 화사한 모습의 여대생.
‘근데 저 애는?’
나도 모르게 두 눈이 약간 커졌다가 이내 입꼬리가 살짝 길어졌다.
바로 그 여학생이다.
나는 첫눈에 알아봤다.
같은 곳에서 과외 수업을 받았던 여학생.
저 여학생의 아버지가 유명한 국회의원이라고 했던가.
아마 컨설턴트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근데 왜 날 쳐다보지?’
학기가 시작된 뒤, 사실 나는 아주 조용히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회사에서 혹은 집에서 강의실을 오가는 일들을 조용히 반복하고 있다.
구태여 신입생 동기들과 인사를 나누지도 않았고.
학년 선배들과도 별다른 소통이 없다.
늘 강의가 끝나면 바로 회사 혹은 집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여학생이 언제부터인가 수업 중에 계속 날 쳐다보고 있다.
설마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시 후, 쉬는 시간이 되자, 나는 자리에서 바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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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가 바로 다가서자, 그 여학생은 놀란 듯 날 쳐다봤다.
“혹시 저한테 하실 말씀 있으세요?”
그렇듯 시간 관계상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그러자 바로 그때.
주변의 변화가 생겼다.
주변 학생들이 하던 일들을 멈추고.
다들 내 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 시선들이 나는 느껴졌으나.
나는 일부러 모른 척했다.
사실, 내가 이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이미 대부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늘 조용히 다니다 보니.
내내 자기들끼리 수군수군했던 학생들.
그런데 내가 어느 여학생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자, 그 모습이 무척 신기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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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저 알죠? 그 학원에서?”
잠시 눈이 동그래져 있던 여학생.
그 여학생한테 다시 그렇게 묻자.
뚫어지라 날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어서요.”
궁금한 거?
“대체 어떤 거요?”
내가 즉시 묻자,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과잠 신청하실 건가요?”
과잠?
“그게 뭐죠?”
“과잠 몰라요?”
내가 가만히 있자, 순간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여학생.
놀라운 점은 입시학원에서 늘 무표정했던 모습과 완전히 달라졌다.
“이거 신청하면 좋은데. 비싸지도 않고.”
“혹시, 과 잠바 말하는 건가요?”
“네. 맞아요.”
그러면서 환하게 웃는 여학생.
그 순간, 웅성웅성.
여기저기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새카만 눈동자.
짙은 눈썹.
새하얀 얼굴.
눈앞의 여학생은 이목구비가 한층 더 뚜렷해진 것 같은데.
일견, 두 눈에선 화사하면서도 총명한 빛이 만발하는 것만 같았다.
‘이쁘네. 무척 똑똑해 보이고.’
그러나 저기에 안경을 씌우고, 메이크업을 지운다면.
그리고 대충 머리를 묶어주면.
내가 그 입시컨설팅학원에서 종종 봤던 그 여학생의 모습일 것이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실소가 밀려왔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더니.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
한편, 듣기 좋으면서도 똑 부러진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과잠 신청하실 거죠?”
“네. 신청해야죠.”
그러자 여학생은 자신의 전공 책 사이에서 뭔가를 꺼내 나한테 내밀었다.
그 종이에는 학번, 이름, 서명 등이 쭉 이어져 있다.
나는 펜을 건네받은 뒤, 아래 칸에 내 이름과 학번 등을 휘갈겨 쓴 뒤, 다시 펜을 돌려줬다.
“혹시 동아리 참여할 생각은 없으세요?”
동아리?
“아뇨. 저는 시간이 없어서.”
내가 힘들다며 손을 젓자, 여학생 아니 한서연은 날 쳐다보며 갑자기 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일종의 봉사 동아리인데, 어때요?”
그러면서 그녀는 봉사 동아리에 대한 설명들을 쫙 늘어났다.
역시 수능 세 과목 만점자답다.
그러나 나는 역시 시간이 없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안 되겠어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다면 제가 기부 형태로 봉사를 대신할게요.”
그러자 주변의 웅성거림은 갑자기 커졌는데.
- 천억···.
- 천억이잖아!
- 천억 기부자 김한수!
일본에 천억 원을 기부한 것을 두고서.
좀 더 크게 수군거리는 학생들.
이때, 나는 못 들은 척하며 다시 물었다.
“혹시 다른 이야기가 없으면···?”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말씀하세요.”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데.”
개인적인 궁금함?
그 순간.
한서연은 긴 목을 살짝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뭔가 묘한 점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한서연은 내내 강의실 자리에 앉아 있었고.
나는 선 채로 대화 중이다.
물론, 내가 뭔가 물어보려고 한서연한테 다가갔기에.
한서연이 계속 앉아 있는 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누군지 아는 사람들은 절대 나한테 저런 태도를 보일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한서연은 너무 다르다.
그 순간, 나는 그걸 깨달았고.
많은 시선들이 갑자기 집중된 이유를 문득 알 것 같았다.
바로 한서연의 태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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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애는 정말 특이한 여자애구나. 무척 당당하고. 자신감도 넘치고.’
한편, 한서연은 날 뚫어지라 쳐다보다가.
잠시 후 아주 돌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혹시 여자친구 있으세요?”
여자친구?
순간, 사방에선 시선들이 더 집중되는 것 같다.
타 학과 여학생들마저 일제히 날 쳐다보고 있었고.
그런데 그 시선들이 너무 열렬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냥 있다고 하죠. 됐죠?”
그러고는 웃으며 내가 등을 돌리자, 한서연은 다급한 듯 뭔가를 외쳤고.
또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못 본 척했고.
곧장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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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
그 때문에 무척 차가운 바람.
그 바람을 잠시 쐬다가.
잠시 후, 나는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아마 이쪽이 흡연구역인 거 같은데.’
터벅터벅 걸어가.
거기서 나는 담뱃불을 붙였다.
“휴우!”
힘껏 하얀 연기를 뿜어낸 뒤.
그러고는 가만히 하늘을 쳐다봤다.
하얀 양 떼 같은 구름들.
저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대표님!”
그리고 바로 그때.
날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뜻밖이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얼굴에 여드름이 아직 남아 있는 학생인데.
1학년 혹은 2학년?
“혹시 절 부른 겁니까?”
“네. 대표님.”
“근데 여기서까지 절 대표님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는데. 혹시 경영학과 1학년인가요?”
“네. 11학번입니다.”
1학년 동기였다.
“그래요? 그럼 편안하게 ‘형’이라고 부르세요.”
그러자 눈이 동그래지는 학생.
“제, 제가 그래도 될까요?”
“네. 그게 더 좋죠.”
그 순간, 남학생의 얼굴은 더 환해졌다.
“그럼 인사하겠습니다! 저는 경영 11학번 김성수입니다!”
경영학과 11학번 김성수?
“하하! 우리 이름이 좀 비슷하네요? 저는 김한수입니다.”
그 순간, 김성수는 90도로 머리를 숙였다.
너무 과한 인사다.
그래서 내가 즉시 제지하려고 했으나.
그는 이미 그렇게 인사를 마쳤다.
“형님! 이렇게 뵙게 되어서 너무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같은 과 동기인데.”
“아뇨. 제가 형님하고 어떻게 같을 수가 있습니까? 형님! 우리나라 최고 부자이신 거 맞으시죠?”
우리나라 최고 부자?
아아, 내가 벌써 그렇게 됐나.
이젠 우리나라 대형 재벌들과도 어깨를 견줄 정도도 내 자산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룩셈부르크 법인 자산까지 포함한다면 대략 20조 원을 넘어선 상태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고 부자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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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혹시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하하. 뭘 말해? 성수야. 괜찮으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기분 좀 다운하자. 다운!”
“아닙니다. 형님. 갑자기 제가 말을 붙여서 죄송합니다.”
근데 이 녀석은 진짜 예의가 엄청나다.
그리고 이어지는 녀석의 설명.
“···형님 아우라가 너무 대단하셔서 다들 입을 꾹 닫고 있었습니다. 서연이가 형님한테 말씀드리는 거 보고, 다들 좀 충격적이었는데. 그래서 저도···.”
그 순간, 나는 이 녀석이 왜 나한테 다가왔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 보니 내가 민폐(?) 덩어리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내가 듣는 수업 때마다 그렇게 강의실이 조용했던 걸까.
그러고 보니 교수님들도 아주 열심히 강의하는 것 같았고.
특히, 젊은 교수님들은 쉴 새 없이 날 주시하면서 강의를 하는 모습들이었다.
‘이게 회귀 전과 또 다르구나.’
그땐 이 정도 급의 부자는 아니었는데.
또한, 내 인지도가 너무 높아진 상태다.
특히, 방점을 찍은 것은 아무래도 1,000억 기부 건인 것 같았다.
‘내가 민폐다. 민폐.’
더 조용히 다녀야겠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시간 뒤, 그 강의가 끝나자.
이제 나는 전공기초 과목을 듣기 위해.
경영관 건물로 서둘러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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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사이 시간은 또 빠르게 흘러갔는데···.
어느덧 점심 무렵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점심 무렵이 되면 이때도 좀 곤혹스럽다.
우선, 나는 마스크를 얼굴에 착용했고.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뒤.
긴 외투 양쪽 깃을 앞쪽으로 당겨 모은 뒤.
백팩을 등에 메고는 즉시 교내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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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음식은 조금씩.
그렇게 식판에 담은 뒤.
한쪽 구석진 테이블 쪽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나는 머리를 푹 숙인 채 열심히 점심을 먹었다.
수업들이 오후에도 있다 보니.
이렇게 점심을 먹을 수밖에 없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꿀맛이지?
뚝배기에 담긴 김치찌개도 일품이었고.
평범한 백반인데도.
왜 이렇게 맛있지?
‘아차! 오늘 아침을 걸렀네.’
혼자 살다 보니.
새벽에 늦게 잤더니 아침을 챙겨 먹을 시간도 없다.
‘그래. 조만간 큰일들이 끝나면, 요리사나 고용해야겠어.’
문득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나는 씩 웃으며 숟가락질, 젓가락질을 반복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먹던 중.
한편, 어느 순간 뭔가 묘한 느낌도 들었다.
뭔가 인기척이 느껴지는 듯했고.
그래서 슬쩍 야구모자를 들며.
고개도 들었다.
그런데 역시나 누군가 내 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때, 그 사람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3월 초, 호출을 받고서 교수실로 찾아가 인사를 나눴던 경영대 학장.
그 학장이 젊은 교수 두 명과 함께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흠흠.”
“아, 학장님.”
“김 대표님! 오늘도 학교에 오셨나 보군요. 오늘도 교수식당에 오셨네요? 하하하. 근데 동기들은 다 어디 가고···? 쯧! 쯧! 그놈의 자식들! 감히 김 대표님을 혼자···.”
“아, 아닙니다. 학장님. 제가 여기가 더 편해서···.”
“아, 그래요? 그럼 혹시 저희가 조인해도 되겠습니까?”
“네! 저는 좋습니다.”
“자! 최 교수, 장 교수, 인사들 해! 이분이 바로 김한수 대표님이셔. 김 대표님에 대해선 잘 알지? 최근에 천억 원을 기부하셨고···.”
“네! 반갑습니다. 최성문 교수입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장현석 교수입니다.”
두 교수가 나한테 먼저 인사를 했다.
나도 황급히 인사를 했다.
“자, 자. 앉지. 대표님도 어서 앉으세요!”
그러고는 유쾌하게 웃는 경영대 학장.
그렇게 교수들과 식사를 하게 된 나는 할 수 없이 모자를 벗었다.
나는 사실 조용히 대학 생활을 하고 싶다.
그러나 계속 뭔가 핀트가 어긋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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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식사를 마친 뒤.
나는 다음 수업에 들어갔고.
어느덧 오후 3시가 되자, 서둘러 학교에서 나왔다.
그리고 경호팀 김성태 팀장 등과 만난 뒤.
그 시각, 곧바로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126>
서울구치소 앞.
[희망의 시작, 서울구치소입니다]
거대한 그런 간판이 정문에 있는 곳.
잠시 후,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최병우 변호사를 곧장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일정은 조상구 전 부장에 대한 면회 건이다.
그는 어느덧 1심 판결을 코앞에 둔 상태인데.
그 때문에 더는 미룰 수가 없어.
드디어 오늘 그를 면회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 면회 방식은 일반인 면회 방식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반인 면회 방식은 면회 과정이 모두 녹음되고, 그 녹음 정보는 수사기관에 공유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병우 변호사가 나서서 뭔가 손을 쓴 것 같은데.
우리는 변호인 접견 방식을 통해, 조상구 전 부장을 잠시 후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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