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빛나는 투자자 01
<122>
다음 날.
장이 열리자, 일본 증시 차트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탄식은 크게 메아리치는 듯했다.
각종 증시 폭락 기사엔 수많은 댓글들이 달렸고.
사람들은 비통해하면서도.
또한, 폭락에 대한 푸념과 걱정들이 가득했다.
- ···ばかやろう! こんなに崩せない!(···바보야! 이렇게 무너질 순 없어!)
- 福島大震災、私たちは台無しだった···(후쿠시마 대지진, 우린 망했다···)
- 原発のせいで崩れるのか?(원전에 무너진 건가?)
- どうやってやろう!一体どこまで離れて?(어떻게 좀 해 봐! 도대체 어디까지 떨어져?)
-···哀れです。しかし、これではありません!!(···애도합니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니잖아!!)
한편, 잠시 관망하던 해외 자금들.
그 자금들도 일제히 일본 증시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현시점의 공포감은 바로 원전에서 시작된 것이고.
그 공포감은 정말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장 개장과 동시에 닛케이지수는 9,235선을 찍었는데.
이 수치는 전 거래일 대비하여 –4% 지점이었다.
그렇듯 장 초반부터 대폭락 상태로 시작된 닛케이지수.
그 지수는 시간이 갈수록 더 추락했는데.
어느덧 8,000선 저지선마저 힘없이 붕괴했다.
-泣きたい···(울고 싶다···)
- 今日の日本証券市場は死んだ···(오늘 일본 증시는 죽었어···)
- 私は耐えられない···(견딜 수가 없어···)
-別の津波、どうですか?絶望···(또 다른 쓰나미, 어떡하지? 절망···)
너무나도 거대한 매도세의 해일.
그 해일 앞에 일본 증시는 연거푸 무너졌고.
이제 어마어마한 혼란 속으로 빠져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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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좀 전에 호출해서 대표실로 나타난 아시아투자팀 박진한 팀장.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현재 아주 흥분한 모습이다.
대충 정장 상의를 입고서 후다닥 뛰어온 듯.
정장 한쪽이 옆으로 치우쳐져 있으나.
자신의 모습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뭐 나는 상관없지만.
“긴급히 말씀드릴 게 있어서 호출했습니다. 팀장님! 지금 많이 바쁘시죠?”
나는 말을 빨리했고.
박 팀장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좀 전에 8,000선마저 무너졌습니다. 아시죠?”
“네! 대표님.”
“그럼, 지금부턴 잔고 물량 정리를 시작하죠. 각 포지션 옵션들에 대해 청산 작업 말입니다. 최대한 빨리 신속히 진행해주시고···.”
“저, 저, 저, 잠깐만요! 대표님!”
순간, 놀란 듯 박진한 팀장은 서둘러 외쳤다.
그리고 그는 무척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 지금 물량들을 청산하기보단 좀 더 보유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닛케이지수가 어디까지 떨어질지 지금은 예측할 수도 없는 상탭니다. 거의 무정부 상태 같은 느낌도 드는데.”
흥분한 박진한 팀장.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일본 저력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네?”
“아직은 경제 수준이 대단한 나랍니다. 수치상 닛케이지수가 이 정도까지 떨어질 수도 없고. 제가 생각한 닛케이지수의 한계점보다 더 떨어졌습니다. 과한 욕심을 부리다간 증시에서 어떻게 되는지 팀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라.
너무 흔한 말이지만.
실제 투자에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말이다.
물론, 회귀자인 나한텐 딱히 적용될 게 아니지만.
“하! 그런가요?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팀장님. 지금 아마 팀원들 역시 무척 흥분한 상태일 겁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팀장님을 호출한 겁니다. 지금 가시면 즉시 시작하세요! 청산입니다. 청산! 최대한 신속히 적절히 청산을 마치세요. 현시점에서 수급은 완벽합니다!”
“네! 대표님!”
박진한 팀장은 고개를 숙인 뒤 서둘러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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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근데 도대체 어디까지 떨어지려고 아직도 떨어지지?’
모니터상에 보이는 닛케이지수의 모습.
좀 전, 8,000선이 붕괴된 뒤.
거대한 해일이 다시 몰아쳤고.
어느덧 7,900선 장벽마저 사정없이 무너뜨렸다.
그리고 이제 7,890선까지 쉴 새 없이 추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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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괜찮겠지?’
한편, 나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글로벌 헷지 펀드 피해도 엄청날 수밖에 없다.
한국증시에서 그들이 벌어들인 돈.
그 돈은 허공으로 증발되거나.
혹은 내 법인 계좌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상황이 절묘했어. 그만큼 내 인지도가 나름 높다는 말이겠지.’
다만, 다음엔 이런 얕은수가 통하지 않을 거라고 봤다.
이번 일은 일종의 자존심 대결 같은 형태인데.
그러나 돈이 오가는 시장에서 어디 자존심이 중요하겠나.
‘여하튼, 기세를 잡았어. 확실하게!’
스르륵 피어오르는 미소.
내 입가엔 그런 미소가 가득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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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2시간 뒤.
닛케이지수는 최저점 7,860포인트를 찍었다.
그러나 지수는 더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콘크리트에 부딪힌 듯.
더는 추락하지 않았고.
그 위치에서 닛케이지수는 잠시 멈춰 있었다.
‘드디어 반등이 시작되나?’
사실, 거대한 공포심 때문에 닛케이지수는 너무 과도할 정도로 추락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증시투자에선 이런 게 중요하다.
내가 느끼는 공포감.
이것은 다른 사람들도 느낀다는 것.
내 종목에 대한 어느 정도 확신이 있다면.
남들과 항상 다르게 반응해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남들과 다른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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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팀장님, 어느 정도까지 처리가 됐습니까?”
“······.”
“···박 팀장님! 박 팀장님!”
“···하아! 죄송합니다. 대표님··· 조금 뒤에···.”
“······.”
“···아! 말씀드릴게요. 현재, 물량 22% 정도 청산 처리 완료했고···.”
“아뇨! 너무 늦습니다. 좀 더 속도를 올리세요! 그리고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계약 물량들이 나오면 무조건 누군가 살 겁니다! 조금 호가를 낮추더라도 무조건 청산하세요! 지금보다 더 빠르게요! 그리고 콜 옵션 매도 포지션 청산 역시 즉시 진행하세요!”
“지금보다 더 빨리요? 네! 알겠습니다! (종훈씨! 주희씨! 경원씨! 좀 더 속도를 냅시다! 대표님 특별 지시! 호가 라인, 내가 다시 정할 테니까 바로 받아서 들어가요! 그리고···)”
너무 바쁜 나머지, 채 끊어지지 않은 전화기.
그 전화기 너머로 박진한 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나는 그 목소리를 잠시 듣다가 곧이어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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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건 얼추 됐고, 이제 내가 움직일 시간인 것 같은데.’
손가락 관절을 풀며 요란한 소리를 낸 뒤.
나는 그때부터 마우스를 빠르게 움직였다.
특히, 지난 2월 중순부터 일본 증시에 유입되었던 외국인 유동성.
한국증시로부터 탈출했던 그 유동성은 일본 증시에 이식된 상태였고.
그런 유동성은 이번 사태에서 더 큰 재앙을 키운 것 같았다.
왜냐하면, 큼직큼직한 단기성 자금이 우르르 빠져나가면서 그 자리가 펑펑 뚫린 듯한 모습이 되었고.
그런 자금이 줄줄 새어나가면서.
도미노 현상에 의한 주가 폭락은 더 거세어졌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피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그래서 지금 이 시점은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는 바로 그런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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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나는 닛케이지수에 대한 콜 옵션 매집을 시작했다.
현재, 풋 옵션 호가는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콜 옵션 호가는 위치가 역전하며, 최대 수천 배가량 호가가 가라앉은 상태다.
그래서 그때부터 콜 옵션들을 쓸어 담았다.
‘이미 8,000선은 무너졌어. 목표치도 충분히 달성했고.’
이제 솟구치는 일만 남았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지만.
너무 과도한 충격에 대해선 다시 회복의 기세가 스르륵 피어오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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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쪽은 정말 엄청나네.’
풋 옵션 호가창.
현재 그 호가창은 빛처럼 거래가 빗발치고 있는 중이다.
풋 매도 포지션 청산을 위해 현재 사활을 걸고 있는 세력들.
그 세력들은 물량이 나오자마자 전력을 다해 그 물량들을 받아주고 있다.
그만큼 공포심이 팽배했고.
마치 지금은 일본이 이번 사태 후유증에 휩싸여.
정부 기능 외에도 경제 기능까지 상실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들이 만연한 상태다.
그 때문에 풋 옵션 시장은 폭발적.
한편, 일본 증시 상승에 베팅하며 입성했던 글로벌 헷지 펀드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이 거대한 블랙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고.
내가 직접 그 모습들을 볼 수는 없으나.
그들의 자금이 내 법인 계좌 속으로 미친 듯이 빨려 들어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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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탁. 탁. 탁. 타타탁. 탁. 탁···.
잠시 후, 나는 다시 집중했고.
그때부터 다시 콜 옵션 매집을 이어 나갔다.
그렇듯 바쁜 와중에.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는데.
그사이 마침내 모든 장이 마감되자.
투자 행위는 잠시 중단되었고.
가장 중요한 오늘의 수익이 일제히 집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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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이용훈 전무, 조관형 상무, 박진한 팀장 등.
무척 상기된 표정으로 그들은 내 사무실에 나타났다.
믿을 수 없는 결과였고.
믿을 수 없는 수익이었다.
“···대표님.”
이때, 이용훈 전무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는데.
바로 옆의 박진한 팀장은 흥분감을 다스리는 듯 쉴 새 없이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조관형 상무는 간간이 얼굴과 목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그 흥분을 달래고 있었는데.
그런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현재, 내 모니터 한쪽에 떠 있는 이번 풋 포지션 투자의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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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수고하셨습니다. 이 전무님.”
“하하. 제가 뭘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수고하셨습니다. 박 팀장님.”
“아, 저. 아···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수고하셨습니다. 조 상무님.”
“대표님! 정말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실, 그런 축하 세례를 받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역대급 수익이 터졌는데.
일본 증시가 순식간에 추락하다 보니.
그리고 단순 추락이 아니라 엄청난 공포감까지 만들어냈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보게 된 시장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래서 이번 투자로 우리가 얻게 된 수익들.
풋 옵션 투자만으로 5조 8천억 원의 수익이 터졌고.
선물 매도 포지션으로 2조 9천억 원.
콜 옵션 매도 포지션으로 7,300억 원.
총합 9조 4,300억 원의 수익이 기록되었다.
일본 파생 시장의 규모가 다소 아쉽지만.
마치 한 나라의 파생 시장을 쑥 빨아먹은 듯한 그런 수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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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이틀 뒤.
이용훈 전무는 즉각 언론 발표를 했다.
일본 대지진과 관련하여 이재민 구호에 천억 원을 기부한다는 그런 발표다.
우리는 9조 4,300억 원을 벌었으니.
대략 천억 원을 기부하는 거.
사실,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날 이번 기부와 관련된 기사에서 요란한 댓글들이 달렸는데.
그 와중에 나는 다시금 실검순위 1순위를 장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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