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추락하는 일본 증시
<121>
오늘 코스피 증시는?
1,936포인트.
지난 몇 주간 코스피는 꾸준히 2,000선을 향해 상승 중이다.
그렇다면 닛케이지수는?
두둥!
11,458포인트.
아직 12,000선까진 까마득하게 멀지만.
엄청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그 바람에 KH투자파트너스의 투자 피해는 어느덧 8천억 원을 가뿐히 넘어선 상태인데.
법인 계좌 잔고에 들어있는 이들 풋 옵션들은 거의 내재가치가 0에 수렴하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상태다.
또한, 여기에 더해서 콜 옵션 매도 포지션까지 가동한 상태라.
그 손해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만약 내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닛케이지수는 대략 10,370선에서 등락을 했을 테지만.
현재 닛케이지수는 압도적인 기세로 11,458선까지 치솟은 상태다.
‘근데 이게 웃긴단 말이야.’
좀 전 장이 시작된 직후.
나는 조용히 일본 현지 기사들을 찾아서 훑어보았는데.
왜 이렇게 악담 기사들이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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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の愚かな投資家、日本証券市場の暴落に投資する(한국의 멍청한 투자자, 일본 증시 폭락에 투자하다···)]
[···韓国投資ヒーロー、日経指数暴騰に泣く(한국 투자 영웅, 닛케이지수 폭등에 울다···)]
[···韓国は相変わらず金融後進国、日本証券市場は頑丈(한국은 여전한 금융 후진국, 일본 증시 튼튼···)]
[···行こう!日本証券市場、12000線の鼻先(가자! 일본증시, 12,000선 코앞으로!)]
[···韓国の投資家、日本証券市場にひざまずく(한국의 투자자, 일본 증시에 무릎을 꿇다···)]
그러나 이런 기사들은 좀 더 양반이었고.
아주 원색적인 비난 기사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 기사들마다 수많은 댓글들이 달려있었다.
- クレイジーカブ!あえて大日本帝国を?(미친 새끼! 감히 대일본제국을?)
- 愚かな朝鮮人、脳が足りない(멍청한 조선인, 뇌가 부족해)
- 韓国は永遠に日本に勝てない(한국은 영원히 일본을 못 이겨)
- ごみ投資家があえて日本を攻撃する?(쓰레기 투자자, 감히 일본을 공격해?)
- 匂いのする子、コロニーのテーマに···(냄새 나는 새끼, 감히 식민지인 주제에···)
그렇다면 국내 여론은 어떨까?
각 포털사이트 기사들을 조금 확인해 봤는데.
이번 투자 사태에 대해 은근히 걱정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고.
꼴 좋다는 식의 비아냥거리는 댓글들도 여기저기서 넘쳐나고 있었다.
-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무슨 헬조선에 워런버핏이 나타나?
- 국제적 망신살..
- 미친 새끼, 무슨 일본 증시가 무너진다고..
- 김한수! x나 사기꾼 새끼 아냐?
- 닛케이 지수 오늘도 날아오른다...
- 죠x징 새끼들은 항상 이게 문제야..x또 모르면서...
- 이건 대국민 사기극임..
- 주식하는 새끼들 x라 사기꾼 새끼들인 거 모름?
- 김한수 처음부터 다 구라아님?
- 일본 증시가 왜 위태로워? 미친놈 x랄하네..
‘그래. 욕해라. 욕.’
하지만, 오늘이 지나면 세상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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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는데.
어느덧 오늘 장이 거의 마감될 무렵.
오후 2시 46분.
드디어 천지개벽할 만한 급보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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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쪽 해역.
거기서 긴급 사태가 터진 것이다.
규모 9.0 수준의 엄청난 지진.
그 지진이 갑자기 기록된 것이다.
사실, 이틀 전, 규모 7.3의 강진이 일본 산리쿠 해역에서 일어났으나.
그 강진은 그저 이번 대지진의 작은 예고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 지진은 최초 속보 이후, 1분 만에 도쿄 일대에 강진 여파를 발생시켰고.
그로 인해 건물 전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각종 방송 사고가 터지기도 했는데.
그 여파가 얼마나 강력했으면, 진원지로부터 400km 떨어진 곳까지 강력한 충격을 안겨줬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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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르릉! 따르르릉!
내 사무실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리고 곧이어 이용훈 전무와 조관형 상무.
두 사람은 놀란 표정을 하고서 황급히 내 사무실로 뛰어들어왔다.
“대표님! 혹시 보셨습니까?”
“일본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거의 동시에 터진 두 사람의 외침.
나는 모니터를 쳐다보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좀 전, 마무리된 일본 증시.
그러나 장 막판에 일어난 대지진의 여파는 이번 증시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11,450포인트.
소폭 상승한 상태로 일본 증시는 마감한 것인데.
아직은 대지진을 단순 재해 정도로 받아들이는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용훈 전무와 조관형 상무는 그 느낌이 다른 것 같았다.
일본 증시의 폭등에 좌초되고 있는 KH투자파트너스.
그런 우리 회사가 뭔가 기회를 잡지 않을까.
그런 열망들이 두 사람의 눈에는 가득한 것 같았다.
“대표님, 좀 심각한 지진 같은데, 이게 괜찮을까요?”
“도쿄 전역이 흔들린다고 하던데···.”
나는 조금 고개를 끄덕인 뒤, 즉시 지시했다.
“규모 9.0은 아주 무서운 세기죠. 이 전무님! 조 상무님! 일본 상황에 대해서 좀 더 주의해서 살펴보도록 하죠. 언론 보도에 대해선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상황반을 만들어 현지 상황을 좀 더 확인해 보도록 하죠.”
“네! 대표님.”
“그리고 이 전무님은 유럽 현황과 수급 쪽에 좀 더 집중해 주십시오.”
“유럽 말씀입니까?”
“네! 오늘 야간 시간대 유럽 증시 현황에 특히 주목해 주십시오.”
그러고는 내가 재촉하며 어서 나가보라고 하자.
이용훈 전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얼른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사실, 이번 사태로 인해 거대한 일본 자금들이 유럽에서 빠져나갈 텐데.
유럽 증시에서 대단한 유동성 경색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용훈 전무는 아직 그 사안까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나는 그렇게 지시를 마친 뒤, 계속 상황을 모니터링했다.
그리고 얼마 뒤.
후쿠시마 제1 원전 발전소의 원전 6개가 자동정지되었다는 급보가 떴다.
규모 7.9수준까지 견딜 수 있다고 하던 원전 보호 시스템.
그러나 9.0수준의 역대급 강진이 때리자,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전세계로 일제히 보도되면서.
이 대지진은 전세계적 우려를 낳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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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 이거 진짜 미쳤어. 미쳤어.”
불타는 금요일 저녁.
퇴근한 후, 거실에 앉아 TV를 켠 박진한 팀장.
그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각 채널에선 일본 대지진 급보가 쉴 새 없이 전해지고 있는데.
쓰나미 충격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해변 마을의 모습들이 방송에 나오고 있었고.
수많은 이재민과 사망자를 낳게 된 이번 대지진 사태에서 더 끔찍한 게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새카만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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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너무 놀라 계속 쳐다보고 있던 중.
이때, 6살짜리 아들이 쪼르르 다가왔다.
“아빠, 왜 그래?”
“제훈아, 저거 좀 봐. 해일이 덮쳐서···.”
“아빠, 아빠. 아빠아···.”
그러나 관심이 없는 아들.
어느새 칭얼거리며 팔을 잡아끈다.
같이 놀아달라는 손짓이다.
“여보! 여보! 미정아! 최미정! 야, 최미정!”
박진한 팀장은 요란하게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잠시 후, 와이프가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서 안방에서 나왔다.
박진한 팀장은 즉시 외쳤다.
“여보, 미안한데. 제훈이 좀···.”
그 순간, 바로 날아오는 바가지 긁는 소리.
“당신 진짜 왜 그래? 무슨 티비를 보고 그래? 우리 제훈이랑 좀 놀아줘! 내가 지금 어떤 모습인지 안 보여?”
하아!
박진한 팀장은 머리를 뻑뻑 긁다가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계속 두 눈은 TV 쪽으로 가 있었다.
생각보다 이번 대지진 사태는 커지고 있다.
‘흠. 대체 이게 어떻게 되는 거지?’
저런 대형 사건이 터지면, 대체로 주가는 폭락하는데.
견고하던 닛케이지수도 그렇게 무너질까.
현시점에선 모든 게 불확실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은 점점 더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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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전 위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안전한가?]
[위험천만한 원전 사태]
[일본 치명적인 재해에 주저앉다···]
[日원전, 해수 주입을 통한 사태 해결에 나서···]
일본 대지진 사태로 무척 혼란스러웠던 주말.
그 주말은 수많은 보도 속에서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고.
이제 어느덧 대망의 월요일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안갯속이다.
과연 닛케이지수가 오늘 장중에 크게 하락할까.
아니면, 원전 사태가 중간에 해결되며, 대지진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까.
현재 언론 보도에선 ‘해수 주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며.
연료봉 훼손 등을 막기 위한 긴급 절차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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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거 좀 봐.”
아침 일찍 샤워를 마치고 나오던 박진한 팀장.
그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갓난아이가 깨지 않게 무척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와이프.
와이프가 그 스마트폰을 내밀었고.
그는 그걸 받아서 힐끔 쳐다봤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박진한 팀장의 두 눈은 찢어질 듯 커지고 말았다.
후쿠시마 원전 2호기가 폭발했단다.
“와아! 여보! 지금 당장 회사 가야겠어. 미안. 미안.”
박진한 팀장은 서둘러 옷을 챙겨 입은 뒤 재빨리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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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4일.
오전 9시 38분.
그 시각, 후쿠시마 원전 4호기마저 폭발했다.
닛케이지수는 이날 장 개장과 동시에 마이너스 7.4%대의 대폭락을 하며.
10,602포인트에서 출발했고.
원전 4호기 폭발과 동시에.
더 무섭게 폭락했다.
단숨에 10,098선까지 추락했는데.
장 초반임에도 전 거래일 대비 –11.81% 찍고 있었다.
그리고 KH투자파트너스는 단숨에 기사회생했다.
조 단위에 이를 것으로 평가되던 손해에서부터 완전히 탈출했고.
손해는 수익으로 바뀌며.
일본 증시를 완벽하게 지배하기 시작했다.
특히, 풋 옵션 호가는 단숨에 수백 배, 수천 배 치솟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닛케이지수는 더 빠르게 추락하고 있었다.
한편, 쉴 새 없이 풋 옵션들을 그간 팔아치웠던 매도 포지션의 세력들.
그들은 지금 눈뜬장님처럼 자신들의 천문학적인 피해를 속절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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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박진한 팀장은 데스크에 구멍이 날 듯 힘껏 주먹을 내려쳤다.
“9,620포인트!”
좀 전, 일본 증시가 끝났는데.
닛케이지수는 처참할 정도로 무너졌다.
9,620포인트.
마이너스 15.98%.
장밋빛 12,000선을 외치던 일본 증시.
그러나 믿을 수 없는 대폭락이 오늘 증시에 발생한 것이다.
본래, 일본 증시는 이날 10%대의 대폭락이 실제 발생하게 되는데.
지금은 그 낙폭이 더 심해진 상태다.
그렇다면 수익은?
순간, 사방에서 요란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당황하던 박진한 팀장.
그는 얼른 환하게 웃으며 힘차게 박수를 쳤다.
조 단위의 피해가 예상되던 일본 투자.
그러나 단숨에 일본 투자는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돌아섰고.
현재 기준, 예상 수익은 무려 3조 6천억 원에 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절대 끝이 아니었다.
내일도 닛케이지수는 추락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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