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119화 (119/138)

117화 코스피 대폭락 02

<117>

“우선, 감사드립니다.”

도대체 뭘 감사한다는 걸까.

악수를 마친 뒤 그가 건넨 말이다.

이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우선 침묵을 유지했다.

“철광석 투자에서 완전히 손을 떼신 거, 혹시 맞습니까?”

아! 그 일이었구나.

저번 유럽 여행 전, 나는 철광석 풋 옵션들도 모두 처분했다.

충분한 수익을 얻었기 때문에 한발 물러선 것뿐인데.

중국 측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시기적으로 앞으론 철광석에 집중할 수도 없다.

당분간 다른 대형투자들이 넘치기 때문이다.

“···제 조언을 잘 이해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때, 나는 그저 속으로 웃었다.

“그래서 친교의 뜻으로 정보를 하나 드릴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얼굴이 유난히 하얀, 젊은 투자자 마빈 칭.

그는 짙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낸 뒤, 오늘 목적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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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혹시 김 대표님께서는 글로벌금융 재벌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금융재벌이라고 하시면?”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이다.

너무 장황한 질문이라 내가 가만히 있었고.

그러자 마빈 칭 대표는 계속 설명을 이어 나갔다.

“막강한 재력과 정치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세계적 사건에 관여하고 수많은 이익을 챙기는 집단, 가문들 말입니다.”

“근데 제가 아직 이해를 잘 못 하겠는데, 혹시 중국 정부와 금융재벌들 사이에서 문제가 있습니까?”

그러자 마빈 칭 대표는 얼른 손을 저었다.

“아, 오해하시진 마시고요. 제가 오늘 여길 찾아온 것은 저번 이유와 다릅니다. 오늘은 중국 정부를 대변하기 위해 온 게 아닙니다. 그냥 제 개인적으로 대표님을 찾아온 겁니다. 중국 정부를 구태여 언급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번 만남 때, 칭 대표님은 중국 정부의 뜻을 이미 대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마빈 칭에 대한 경계심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 마빈 칭은 답답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쓴 미소도 지었다.

자신의 포지션이 무척 이상하게 됐다는 걸 그는 어쩔 수 없이 깨달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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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렇게 하죠.”

잠시 후, 마빈 칭은 자신의 서류 가방에서 몇몇 서류들을 꺼내 나한테 건넸다.

“이게 뭡니까?”

“제가 얻게 된 주요 정보들입니다. 대표님께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안들입니다.”

이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이 문건들은 중국 정부 측에서 전달된 겁니까?”

마빈은 얼른 손을 저었다.

“아뇨. 아닙니다. 저희 쪽의 순수한 정보입니다. 뭐, 중국 정보기관에서도 이런 일에 관심을 갖고 있으나 현업 종사자인 우리만큼 실력이 못 되죠. 참고로 저는 홍콩 CPC파이낸셜 이사 직책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CPC파이낸셜에서 나온 겁니까?”

마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최초 출처는 CPC파이낸셜이 맞습니다. 그러나 저희 쿵칭페이 홍콩 선물 투자사에서 그 몇 줄 안 되는 정보를 바탕으로 추가 조사와 분석을 진행했고, 좀 더 구체적인 보고서 형태로 만든 겁니다.”

즉, 정보 출처는 CPC파이낸셜이 맞지만.

간단한 정보 내역만 넘겨받은 거고.

이후, 추가 조사와 정보 분석을 자신들이 진행한 터라.

이 정보는 자신들 것이다, 대략 이런 말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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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그 보고서부터 한번 보십시오.”

그래서 나는 그 보고서를 손에 들고서 천천히 넘겨봤다.

첫 내용은 특별할 게 없는 글로벌 금융재벌들과 글로벌 헷지 펀드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깊숙한 내용들도 아니었고 단순 정보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다음 내용부터는 작년 12월부터 급증한 한국증시의 대차잔고 등에 대한 분석과 몇몇 투기 세력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후, 몇 장을 빠르게 넘긴 뒤.

나는 머릿속이 이내 복잡해졌다.

‘확실히 천재라고 하더니 확실히 달라.’

마빈 칭 대표의 특이한 통계 접근 방식도 놀라웠고.

그 결과물도 놀라웠다.

미국에선 수학자들이 연봉 1위라고 하더니.

수학자의 위력 같은 게 이 보고서만 봐도 두드러진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수학자들이 학원 강사 외에는 할 일이 거의 없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수학의 세계란 게 참 오묘하다.

수학은 대다수 응용 분야의 기초 학문이다.

금융, 투자, 반도체, 전자, 통신, 의료 분야 등등.

위대한 투자자, 르네상스 테크롤러지의 CEO 제임스 시몬스는 본래 저명한 수학자였고.

눈앞의 마빈 칭 대표 역시 MIT 수학과를 나온 천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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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잘 봤습니다.”

“그럼, 대표님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보다시피, 곧 한국증시는 무섭게 침몰할 겁니다.”

“음.”

“한국증시가 침몰하게 되면 그 파장은 결국 경제 전반으로 확대될 겁니다.”

이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진 않죠. 현재 한국 수출입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이번 위기 역시 일시적일 수도 있고, 경기는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네. 네.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이번 사태가 끝난 뒤 한국증시는 아마 더 피폐해질 겁니다. 한국증시는 더욱더 얇아질 것이고, 한국은 영원히 금융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을 겁니다. 금융을 쥐지 못하는 나라, 언제나 취약하고 무척 위태롭죠.”

“아, 근데 제가 좀 이해를 못 하겠군요. 증시 폭락이 발생하면, 반대 포지션으로 접근하는 건, 언제나 투자자의 원칙이 아닌가요? 큰 시류를 따라가는 것도 금융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닙니까?”

이때 마빈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네. 투자자로선 당연히 유연해야 합니다. 그러나 유연함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류 자체를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이들이 세계엔 있습니다. 몇몇 투자자가 독식하는 구조. 그건 절대 금융 선진국이 아닙니다.”

그러고는 마빈은 계속 설명했다.

“···지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세계 금융시장에선 큰 피해를 본 이들이 꽤 많습니다. 그들은 이제 그 손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금융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새로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주공격 대상이 중국을 비롯한 신진 금융 국가들입니다. 물론, 모두가 알듯이 한국 경제 수준은 아주 대단합니다. 하지만 한국 금융 수준은 어떻습니까? 지난 11월 11일 옵션 쇼크 사태만 봐도 얼마나 한국을 가소롭게 여깁니까? 대체 왜 그럴까요?”

“음.”

“물론, 시련이 커질수록 강해질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일본 증시는 지난 1980년대 말에 있었던 버블붕괴 이후 증시가 무척 단단해졌죠. 세계에서 가장 안정세를 보이는 곳이 바로 일본 증시입니다.”

나는 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글로벌 세력의 눈에는 한국증시가 돈 놓고 돈 먹기의 장소가 된다는 말이다.

하긴, 실제 그렇지 않은가.

무시무시한 공매도를 주도하는 것은 대체로 외국인 세력들이고.

한국 정부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쩔쩔맨다.

또한, 대형 폭락 뒤, 지수를 다시 끌어올려.

또 다른 수익을 얻는 것도 외국인 세력들이 아닌가.

그러니 그들의 눈에는 한국증시가 얼마나 좋은 시장인가.

또한, 언론을 이용해 시세 조정을 하기에도 무척 쉬운 시장.

일례로, 코스피 호조를 전망하는 기사가 나오면, 곧 코스피가 무너질 거라는 걸 대다수 전문가들은 감으로 알게 된다.

코스피가 더 아래로 떨어질 거라는 기사가 나오면, 그땐 코스피가 조만간 상승할 거라는 것을 대체로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대다수 사람이 그런 기사들을 믿기 때문에 계속 그런 기사들이 나오고 있는 건데.

그래서 한국증시는 한국 투자자들의 눈에는 무척 어려운 곳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너무나도 쉽게 보이는 곳.

“···근데 대체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내가 표정을 굳히며 묻자, 마빈은 씩 웃었다.

“저도 투자를 해서 먹고 사는 몸이지만, 때로는 지킬 게 있다는 걸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정말 귀찮은 일이지만, 제 나름대로 그런 쪽에도 신경을 많이 씁니다. 사실, 최근에 대다수가 글로벌 금융을 외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국수주의적 금융도 필요합니다. 내부가 성장해야 비로소 진정한 글로벌 금융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한편, 나는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뒤.

마빈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저번 만남 땐 중국 정부 측 대변인과 같았던 마빈.

물론, 그는 저번 연말 코스피 상승을 견인했던 사람이다.

그땐 마치 선물과 같았던 코스피 상승을 말이다.

‘근데 놀랍게도 이 사람은 나랑 비슷한 관점을 갖고 있어.’

회귀 전, 나 역시 투자를 하되.

내 일터나 다름없는 한국증시를 최대한 지키려고 했다.

1조 원대 자산을 지닌 황제 개미.

그래서 도의적 책임감마저 갖고서 나는 움직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글로벌 헷지 펀드들에게 수많은 농락을 당했고.

비록 1조 원대 자산가였으나 도무지 그들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전멸!

결국, 내 포지션은 모두 전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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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칭 대표님.”

“하하! 제가 더 감사합니다. 철광왕께서 제 진심을 이해해주시니···.”

“하! 아닙니다. 제가 무슨 철광왕이라고···.”

“하하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빈은 한참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다시 말했다.

“근데 칭 대표님. 아쉽지만, 저는 칭 대표님과 포지션이 역시 다른 것 같습니다.”

“네? 아직도요?”

당황하며 눈이 커지는 마빈.

마빈은 미련이 남은 듯 서둘러 말했다.

“김 대표님께서 꼭 아셔야 하는 게 있습니다. 저는 사나운 정복자가 아닙니다! 단지 남들보다 빨리 시류를 정확히 읽을 수 있고 그 시류에 크게 거슬리지 않게 수익을 얻는 그런 온순한 투자자에 불과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나는 절대 마빈과 같은 포지션이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사실, 마빈과 같은 모습은 딱 회귀 전의 내 모습이다.

나 역시 그때는 눈앞의 마빈처럼 이상론에 불탔었는데.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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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감사드립니다. 좋은 정보를 직접 가져와 주셔서···. 저도 조만간 적절한 정보로써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마빈은 바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다른 정보로써 보답하겠다는 것은 친교적 목적이 아니라 마음의 빚을 지우겠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똑똑한 마빈.

그는 즉각 내 의도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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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빈이 다녀간 뒤.

이후, 나는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 흐름과 각 종목의 수급 현황을 각종 데이터 집계 및 처리 방식으로 살펴나갔다.

역시 심상치가 않았다.

‘곧 터지겠는데.’

거기다가 2월 중순이 되면 리비아 내전이 발발한다.

무시무시한 공매도 충격 외에도.

국제유가 급등까지 겹치게 된다면.

아마 한국증시는 더 심한 충격과 대폭락의 전철을 밟으며.

한동안 수습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회귀 전보다 더 심한 참극을 겪게 될 것이다.

시기상 너무 좋지 못하다.

‘나단, 이 인간. 확실히 무서운 인간이야.’

마치 국가 경제를 전복할 것만 같은 기세로 그는 대규모 공습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머리를 쥐어 짜내며 이번 사태에 대한 대처 방법을 차근차근 모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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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의 우리나라 주력 증시 종목은 자동차, 화학, 정유 종목인데···.’

작년 2010년도에 주가 상승이 불붙은 종목들.

바로 이런 종목들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종목들의 주가 추이가 심상치 않다.

일례로, 주가지수의 또 다른 파생상품인 ELS(equity linked securities) 상품의 녹인(Knock-in, 원금 손실 발생) 사태가 2011년도 하반기에 발생하면서.

2011년 하반기에는 또 다른 주가 폭락 사태도 생기게 된다.

‘결국, 2011년도 대한민국 증시는 폭락의 현장이야. 이게 바로 거대한 시류의 흐름이고···.’

그리고 이런 거대한 시류는 그 흐름을 바꾸려고 노력해 봤자, 절대 바꿀 수 없다는 걸 나는 잘 안다.

다시 말해, 나단 그 인간은 정말 운이 좋은 인간이다.

항거하기 힘든 대추락의 시류에 그는 편승한 것이고.

그 추락을 돕는 입장에 서겠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한참 고민하다가···.

한참 뒤, 나는 턱을 만지며 씩 웃었다.

‘그럼 이건 어떨까?’

세상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누군가는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그들이 벌어간 돈까지 싹 다 빨아 먹을 수 있다.

한국에서 벌어봤자, 바로 내 손아귀에 들어오는 그런 상황.

나는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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