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116화 (116/138)

114화 화폐 전쟁 03

<112>

카롤로스 인터헷지 펀드.

이 펀드는 이탈리아 계열의 펀드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본사를 두고 있고.

유럽 전역에서 활약하는 글로벌 대형 펀드.

‘나도 아는 펀드다.’

그 유명한 펀드의 실무이사를 내가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참 세상은 좁단 말이야. 하긴, 여기가 밀라노니까.’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곳의 실무이사가 자살하려는 광경을 보게 된 것도 특이하고.

강민정 경호원이 그의 손에서 총기를 빼앗는 순간은 다소 정적이면서도 무척 극적이었다.

‘그건 그렇고, 저 사람은 내 반대편에 있었던 사람이야.’

증시의 커튼 뒤에 숨어 있던, 풋을 쥐고 있던 세력.

그 세력이 바로 카롤로스 인터헷지 펀드였던 것이다.

이 펀드는 훗날 ‘카롤로스 ITC’라는 이름으로 바뀐 뒤.

한국증시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글로벌 헷지 펀드다.

한국증시에서 그들의 주특기는 다른 외국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미친 듯이 공매도를 때려 주가와 지수를 낮추고.

주가지수 풋 옵션과 선물 매도 포지션 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방식.

그들 역시 한국증시를 후진국 수준으로 얕봤던 글로벌 펀드였다.

그리고 당시 ‘카롤로스 ITC’를 이끌었던 이는 ‘이태리의 작은 거인’ 알베르토 발디니 회장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카롤로스 인터헷지 펀드에서 수석 이사 직책을 맡고 있다고 한다.

#

‘결국, 알베르토가 숨어 있었던 거야.’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알베르토 발디니 급이 아니었다.

시류 전체 흐름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시류가 만들어내는 사생아와 같은 폭락과 폭등에만 시선이 흔들렸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투자 포지션도 너무 쉽게 흔들렸다.

지독한 압박을 버티지 못했고.

그는 회사가 보유한 풋 옵션들을 과감하게 처리해 버린 것이다.

내가 콜 옵션을 팔면서 큰 수익을 취할 때, 그는 풋 옵션들을 청산하며 손해 범위를 확 줄인 것인데.

가장 큰 문제는 그가 뒤늦게 뛰어든 콜 포지션 투자였다.

어제 옵션만기일 날.

주가지수가 폭락할 때.

그는 결국 추풍낙엽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

‘쯧쯧. 욕심 때문에 타이밍을 놓친 거야.’

그 콜 포지션들은 모두 똥값이 되어버렸고.

그는 양쪽 포지션 모두에서 손해를 입었다.

만약 그가 알베르토 발디니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고 그 풋 옵션들을 계속 손에 쥐고 있었다면.

유럽권 전체 투자를 통해 대략 7억 7천만 유로의 안정적인 수익을 봤을 것이다.

그러나 수익은커녕 3억 유로에 달하는 손해를 보고서 끝나고 말았다.

#

‘셈을 해 보니, 더 심하네.’

플러스 7억 7천만 유로.

마이너스 3억 유로.

두 포지션의 격차가 무려 10억 7천만 유로에 달한다.

천문학적인 격차다.

그래서 실질적인 손해는 바로 10억 7천만 유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냥 원화 기준, 조 단위를 훌쩍 넘어서는 손해를 본 것이다.

#

‘하지만 이해도 돼.’

대형투자에선 저렇게 한 번에 큰돈을 날릴 수도 있다.

‘하긴, 나도 과거에 저런 식으로 당했단 말이야.’

헷지?

헷지 전략을 짜고 실행했어도 당할 수가 있다.

급격한 유동성이 있는 장세.

이런 장세는 투자자들에게 무척 달콤해 보인다.

왜냐하면, 몇십 배, 몇백 배의 수익이 눈앞에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투자만 하면 다 먹을 것 같은 그런 달콤한 장세.

그러나 실제 투자에 들어가게 되면, 뿌연 안개 속을 걷다가 귀신에게 홀린 듯 다 털리게 된다.

기다려야 하는 순간에 기다리지 못한 원통함이 남게 되고.

참아야 하는 순간에 참지 못해 뼈아픈 손절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

“···몬델로씨. 전 이런 사람입니다.”

잠시 후, 나는 경찰서 대기실에서 그에게 내 명함을 건넸다.

그를 구한 경호원 강민정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는데.

비토리오 몬델로는 내 명함을 공손하게 받았다.

그리고 잠시 후.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

“KH 룩셈부르크 투자펀드? 혹시 룩셈부르크에서 오셨습니까?”

“네. 룩셈부르크엔 영주권이 있습니다. 거기에 제 투자회사가 있고, 한국에도 따로 투자회사를 갖고 있습니다. 아, 국적은 한국입니다.”

그 설명에 비토리오의 호기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몬델로씨! 질문이 더 있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카롤로스 펀드. 음, 거기서 오랫동안 일을 하셨다면, 이쪽 투자계의 업무 방식도 잘 아시겠군요?”

“잘 압니다. 대학 졸업하고 스물두 살에 입문했고 벌써 이십 년째입니다. 물론, 이번 실수는 제가 해선 안 되는 실수인데, 제 욕심이 너무 과했습니다.”

비토리오가 다시 우울해지려고 하자, 모니카는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 모습에 나는 슬쩍 모니카를 쳐다봤는데.

그녀는 선술집 바텐더라고 하는데 상당한 미녀였다.

그녀의 두 눈은 무척 신비하면서도 무척 매혹적이다.

그래서 비토리오는 첫눈에 그녀에게서 사랑을 느꼈다고 한다.

“···사실 이번 투자는 연말 증시 급락 때, 보스 알베르토의 풋 매수 지시에 따라 시작된 겁니다.”

그러면서 비토리오는 조금 더 설명을 보탰다.

“제 보스는 끝까지 냉정함을 유지했는데, 저는 흐름을 잘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은 모두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그러나 제삼자인 나한텐 그런 실수 인정 자체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알베르토 발디니 수석이사에 대해선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상당히 거칠면서도 또한 다혈질적인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몬델로씨가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잠시 생각하다가, 비토리오 몬델로는 말을 이어 나갔다.

“투자를 보는 눈에 대해선 저도 인정합니다. 투자 방식이 좀 투박해도 결과적으로 상당히 예리한 편입니다.”

알베르토 발디니.

이태리의 작은 거인.

그러고 보면, 이번 투자에서도 알베르토 발디니의 투자 방식이 틀린 게 아니었다.

그저 눈앞의 남자 때문에 알베르토 발디니는 큰 피해를 입게 됐을 뿐이다.

#

“···그럼 앞으로 소송에 대한 법적 대응은 어떻게 진행하실 겁니까?”

크게 분노한 알베르토 발디니.

그는 비토리오 몬델로 이사를 즉각 해고했고.

천문학적인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하겠다고 엄포한 상태다.

“뭐, 괜찮습니다. 변호사 고용해서 대응하면 정상 참작은 될 거라고 봅니다. 당시 상황은 너무 급박했으니까요. 저로선 피해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고, 콜 포지션으로 수익을 크게 올려 손해를 덮으려고 했을 뿐입니다. 제가 잘못한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정당한 투자 행위였습니다.”

이때, 나는 그를 주시하며 다른 질문을 슬쩍 던졌다.

“이건 제가 궁금해서 그런데, 혹시 다음에도 이런 똑같은 상황이 생긴다면, 그때도 스스로 판단해서 투자를 진행하실 겁니까?”

그러자 비토리오는 더는 망가지고 싶지 않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제 실력은 이번에 확인했습니다. 전 거물이 아닙니다! 다음엔 절대 그렇게 못 할 겁니다.”

그러고는 비토리오는 입을 닫았다.

#

‘근데 좀 아쉽단 말이야.’

비토리오 몬델로.

대형 헷지 펀드에서 실무이사 직책까지 오른 남자다.

투자에 대한 큰 눈은 없다.

그러나 경험이란 게 있으니 실무 능력만큼은 뛰어날 텐데.

더군다나 그는 이태리 거물 알베르토 발디니를 아주 잘 아는 사람이다.

알베르토 발디니를 상대하되, 그의 혼란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카드가 될 수 있다.

특히, 훗날 알베르토 발디니를 잡게 된다면, 유럽권 대형 펀드 세 곳을 한 번에 흔들어버릴 수도 있다.

“몬델로씨.”

“네?”

“혹시 다른 일들을 하시다가 투자 일에 다시 뛰어들고 싶다면, 저한테 한번 연락 주십시오. 제가 운영하는 펀드는 카롤로스 펀드보다 작습니다. 그래도 운용자금이 수십억 유로 정도는 됩니다. 물론, 제 회사에 혹시라도 합류하게 된다면, 그땐 투자 실무를 맡길 순 없고, 투자 정보와 전략 등 이런 일엔 참여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한편, 비토리오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내 주변 경호원들을 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내가 복도 벤치에서 일어서자, 그는 모니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킴.”

비토리오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곧이어 그는 강민정 경호원한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모니카는 강민정 경호원과 깊은 포옹을 했다.

그런 인사들을 마친 뒤, 우리는 이제 경찰서에서 나왔다.

<113>

2011년 1월 24일 월요일 아침.

쾅!

마치 문이 부서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키 작은 중년 남자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중절모를 쓰고 있는 남자.

화려한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다.

그러나 키가 무척 작았고.

허리둘레가 어마어마한 중년 남자다.

그런 그가 나타나자, 사무실 직원들은 다들 놀란 표정이 되었고.

일들을 멈추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호세, 세로조, 마르코, 디노, 파비오, 로렌츠, 마탈라 등.

사무실 직원들은 이때 경직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

“퍽큐! 퍽큐!! 퍽큐!!!”

직원들을 보자마자 고함을 지르며 욕설을 퍼붓는 남자.

그러나 직원들은 굳은 표정과 다르게 무척 공손한 모습들이었다.

한편, 한 직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오자 그는 그제야 욕설을 멈췄다.

대신에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로 데스크를 쾅쾅 치며 고함을 질렀다.

“세로조! 지금 당장 그 새끼 사무실을 빨리 정리해! 서류들은 몽땅 가져와! 몽땅!!”

불호령에 놀란 직원들.

그들은 일제히 비토리오 몬델로 전 이사의 사무실로 뛰어들어갔고.

정신없이 그곳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그는 사무실 소파에 앉아 퉁명스러운 모습으로 기다렸는데.

그는 계속 좌우를 살폈고.

잠시 후, 인쇄물들을 잔뜩 들고나오는 한 직원에게 사납게 손짓했다.

빨리 가져오라는 손짓.

겁먹은 직원은 서둘러 움직였고.

그때부터 그는 인쇄물들과 각종 서류들을 옆에 두고서 거칠게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두툼한 그것들을 사방에 던지며, 사방에 뿌려버렸다.

“퍽큐!! 퍽큐!! 퍽큐···!!!”

이후, 온갖 이태리 욕설들이 그의 입에서 쏟아졌으나.

직원들 중에서 누구도 뭐라고 항변하지 못했다.

이번 투자가 실패한 책임은 비토리오 몬델로 전 이사가 짊어지게 됐으나.

투자 실행을 직접적으로 한 것은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

자신들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30분 뒤.

비토리오 몬델로 전 이사의 오피스는 완전히 정리가 되었다.

그러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잠시 후, 무척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해고 처리가 됐어야 했는데, 당분간 참기로 했다.”

“······.”

“감사팀의 감사 작업과 개별 면담은 각자 알아서 받도록 하고. 내가 여기서 일하는 동안, 앞으로 지시 위반자는 무조건 해고 통보다!!”

사실, 충분히 예상했던 경고여서 다들 조용히 수긍했으나.

이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다른 실무이사님이 오시는 게 아닙니까?”

그 순간, 그의 얼굴에선 흉악함이 나타났는데.

질문했던 마르코는 흠칫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때문에 사무실엔 잠깐의 정적이 흐르다가.

그는 다시 고함을 질렀다.

“퍽큐!! 내가 오늘부터 이곳 담당이다!”

그러고는 그는 요란한 발자국 소리를 내며 실무이사 오피스로 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놀라는 직원들.

그들은 바로 알아차렸다.

알베르토 발디니 수석이사.

그 직책이 강등된 것이다.

비토리오 몬델로 전 이사와 동일한 실무이사 급으로 말이다.

#

“···Ladies and gentlemen, please fasten your seatbelt···.”

꽤 긴 비행기 여행이 이제 끝나가고 있다.

기내 방송이 그렇게 퍼스트 클래스에 들려왔는데.

그 기내 방송에 반응하며.

나는 비로소 눈을 떴다.

잠시 후, 랜딩기어가 내려가는 것 같았고.

나는 자세를 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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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드디어 한국이네.’

사실, 이번 유럽 여행은 생각보다 꽤 긴 여행이 되었다.

무려 한 달에 이르는 긴 여행.

그리고 그 긴 여행 동안 나는 많은 것들을 얻게 되었다.

유럽 전역에 대한 투자를 학습했고.

많은 유럽 인맥들을 확보했다.

룩셈부르크 법인 외에도 여러 조세회피처마다 페이퍼 컴퍼니들을 설립했고.

언제든 운영이 가능한 상태로 탈바꿈시켰다.

또한, 이익 공유적 목적도 있다 보니.

지난 유럽 투자에서 룩셈부르크 진영의 귀족들, 금융인들, 투자자들에게 투자 참여의 결과물들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얻은 수익은 거의 천문학적인 수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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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다시 기내 방송이 들려왔다.

“Ladies and gentlemen, Welcome to Seoul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Please remain seated until the seatbelt sign is off···.”

드디어 나는 한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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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 수속을 빠르게 마친 뒤 나는 짐들을 찾았고.

곧이어 경호원들과 함께 입국장에서 걸어 나왔다.

한편, 저 앞으로 익숙한 사람들이 보였는데.

바로 이용훈 전무와 조관형 상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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