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화폐 전쟁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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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위험합니다···.”
순간, 경직된 표정의 경호원들.
정면을 응시하는 김성태 팀장은 낮은 목소리로 나한테 말했고.
어느새 여섯 명의 경호원들이 빠르게 내 주변을 에워쌌다.
갑자기 내 주변은 철통같은 경호 벽이 만들어졌는데.
순간, 주변 행인들도 놀라며, 일부는 비명을 지르며 우르르 물러났다.
우산을 들고 있던 나는 이때 우산을 접었다.
그러고는 김성태 팀장의 경호 가이드에 따라 우리는 천천히 뒤로 움직였다.
그사이 겨울비는 그친 것 같았고.
광장 바닥에 고인 축축한 물기 때문에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얕은 수면은 큰 파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자살 시도 같습니다.”
경호원 중의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좀 전에 권총을 꺼낸 그 남자는 그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가져간 상태다.
일단, 남자가 타인에게는 특정 위협 목적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 권총을 자신의 머리 쪽에만 겨냥한 상태라.
무작위적 테러와 같은 위험천만한 상황은 거의 종료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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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좀 더 이동하죠.”
그럼에도 무척 긴장한 김성태 팀장은 그 남자와 거리를 두고자 후방 이동을 지시했다.
한편, 나는 경호 라인에 맞춰 뒤로 움직이면서 그 남자를 계속 쳐다봤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호기심들이 생겨났다.
권총 때문이었다.
머리를 겨누고 있는 그 모습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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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머리는 약간 장발이다.
그러나 멋지게 뒤로 묶여진 모습.
지금 그의 표정은 무척 어둡다.
다만, 잘 생긴 이태리 남자의 표본을 보는 듯, 잘 생긴 용모이고 인상이 나쁘지 않다.
그러나 넋이 나간 듯, 눈동자는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고, 어딘지 모르게 초점이 잘 잡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
이때 나는 그걸 첫눈에 알아봤다.
권총을 들고 자신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으나 권총을 쥔 그의 손은 지금 떨리고 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고.
몸이 비틀비틀, 무척 위태로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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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지금 상황은 좀 우발적인 것 같은데.’
그럼에도 남자는 이미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언제든 자살 시도를 할 의지가 있었다는 것.
그런데 그가 원하던 자살 장소는 이곳이 아닐 수도 있었다.
광장에서 서로 껴안고 열렬한 키스를 했던 연인.
그러나 여자는 뺨을 때리고 후다닥 뛰어갔고.
남자는 큰 감정의 격랑을 맞은 듯 권총을 꺼내 들었으나.
지금 쉽사리 결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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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팀장님! 잠깐 멈추죠.”
“네?”
“잠깐만요!”
“대표님! 가셔야 합니다! 많이 위험합니다.”
“아뇨. 잠깐만요.”
그 순간, 김성태 팀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바로 경호원들에게 눈짓했고.
이때, 새로운 경호대형이 만들어졌다.
마치 인간방패 같은 장벽이 내 앞쪽으로 세워졌는데.
그사이 나는 그 남자를 계속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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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의 이별.
그래서 자살?
금방이라도 탕!! 하는 격렬한 총성이 울릴 것 같은데.
그런데 이후 시간은 조금씩 경과되고 있었다.
아마 누군가 신고는 했을 거고.
현지 경찰들은 곧 우르르 몰려들 것이다.
그런데 남자는 아직도 자신의 머리를 향해 총을 쏘지 못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눈을 감은 채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다가도.
끝내 총을 쏘지 못하고 다시 눈을 뜨길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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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쉽진 않아. 자신을 쏘는 일인데···.’
이미 경험이 있는 나.
나도 모르게 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묘한 기시감처럼 그때의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권총을 들고서 마포대교에 섰던 나.
안 되면,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릴까 하다가.
나는 그냥 권총으로 과감하게 날 쐈다.
탕!! 하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순간 세상은 새카맣게 변했고.
나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나에겐 행운이 찾아왔다.
회귀의 기회.
아마 그런 행운은 모두에게 부여되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때 갑자기 떠오르는 또 다른 감정.
동병상련.
‘에휴, 좀 구해주고 싶기도 한데.’
왜냐하면, 저 남자는 그때의 내 모습과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남자는 마포대교의 내 모습과 확실히 달랐다.
쉽게 결행하지 못하고 떨고 있는 저 모습을 보면 바로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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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팀장님, 좀 안쓰러워 보이는데. 혹시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위험합니다. 총입니다. 총! 곧 경찰들도 올 겁니다···.”
“아뇨. 그 말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총을 쏠 수도 있고···. 그래서 누군가 나서서 뭔가 방법을 찾아주는 게···.”
“하아! 대표님!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총기 보유자와 맞서는 건···.”
무척 단호하게 말하는 김성태 팀장.
하긴,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단순 무기가 아니라 총기 사건이다.
사실, 이탈리아는 민간인의 총기 소유를 허용하는 나라인데.
인구의 10~15%가 총기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내가 한 말에 뜻밖의 사람이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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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제가 시간을 좀 끌고 올게요.”
바로 내 우측, 최근접 경호를 맡은 강민정 경호원이다.
이때, 김성태 팀장은 즉시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민정씨! 도대체 무슨 소리야?”
그러나 강민정은 김 팀장 쪽을 쳐다보지 않고 내 눈을 쳐다봤다.
“혹시 대표님도 아시죠?”
“제가요? 아, 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 사람은 절대 자신을 못 쏩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우발적인 부분도 있어서.”
그러자 강민정의 두 눈엔 작은 이채가 나타났다.
그녀는 날 가만히 쳐다봤고.
이때 무표정하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찰나, 그녀는 대열에서 이탈했다.
김성태 팀장은 놀란 듯 고함을 지르려다가.
강민정 경호원이 즉시 수신호를 보내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닫았다.
그럼에도 그의 안색은 완전히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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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렇게 접근하는 건 위험하지 않나.’
잠시 후, 그녀는 뚜벅뚜벅 걸어갔다.
몰래 남자의 배후를 노리는 게 아니었고.
남자가 자신을 볼 수 있는 방향에서 그녀는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처음엔 강민정을 의식하지 않던 남자.
그러나 뒤늦게 놀라며 그녀를 빤히 쳐다봤고.
강민정이 그럼에도 계속 다가오자,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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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avvicinarti!”
“non avvicinarti!”
“posso sparare!”
도무지 알 수 없는 이탈리아어.
그 이탈리아어로 외치는 남자.
이때, 강민정은 어느덧 2m 앞까지 다가갔고.
뭔가 위협을 느낀 듯.
남자는 자신의 머리를 겨냥하던 권총을 슬쩍 발아래 쪽으로 내렸다.
그러나 그는 선뜻 강민정을 향해 겨냥하진 못하고 있었다.
“Sto per morire! Per favore, non disturbarmi!”
남자는 다시 외쳤고.
이때, 강민정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무척 천천히 흘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
그리고 강민정의 표정도 순간 바뀌었다.
“perché vuoi morire? Il tuo amante è stato abbandonato da te oggi. Se muori adesso, commetterai un grave peccato contro quell'amante(왜 죽고 싶어요? 당신의 연인은 오늘 당신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지금 죽는다면, 당신은 그 연인에게 중대한 죄를 짓는 겁니다).”
놀랍게도 강민정은 이탈리아어를 하고 있었고.
남자는 그 모습에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어를 하는 강민정의 모습에 남자의 경계심은 한층 감소된 것 같았다.
남자는 다시 말했다.
“Non ho abbandonato Monica(나는 모니카를 버린 게 아니야)···.”
“괜찮아요. 당신이 모니카를 버리지 않았다면, 이젠 당신 스스로를 버려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그건 달라. 나는 지금 방법이 없어. 방법이 전혀 없다고!”
“···모니카를 사랑한다면 당신은 분명히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왜 갈등하는지 전 알 것 같아요. 당신은 그 방법을 충분히 찾을 수가 있어요. 하지만 불안한가요? 이게 옳은 선택인지. 당신은 이제 모험을 해야 합니다. 당신의 연인 모니카를 생각하세요. 그녀의 마음을 생각하세요. 당신과 모니카를 생각해야 합니다. 저곳을 보세요. 모니카, 그녀입니다. 모니카는 지금 당신을 쳐다보고 있어요.”
그 순간, 남자는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돌렸다.
실제, 강민정이 가리키는 곳.
그곳엔 한 여자가 가만히 서 있었다.
두려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서 있는 여자.
두 손으로 얼굴 절반을 가린 채.
그녀는 울고 있었고.
남자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서로의 시선이 순간 부딪혔다.
그 순간, 남자는 크게 비틀거리다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바로 그 찰나.
강민정은 단숨에 2m 간격을 좁혔고.
남자가 뭔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았다.
요란한 격투술로 제압한 게 아니다.
거대한 슬픔에 휩싸인 남자. 그런 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의 손목을 순식간에 틀어쥐었고.
찰나의 순간, 그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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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정말 대단하다. 역시 강민정! 저게 강민정의 본 실력이구나.’
우람한 체격의 김성태 팀장도 무척 놀란 듯 강민정을 쳐다봤다.
이탈리아어로 무언가 대화를 하더니.
남자를 더 큰 혼란에 빠뜨렸고.
남자는 결국 망연자실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근데 뺨을 때리고 뛰어간 여자가 저기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강민정 경호원의 주변 관찰력, 순발력, 반응력 등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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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눈앞에선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긴 치마 차림의 아름다운 여자가 뛰어왔고.
그 여자는 남자를 힘껏 껴안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때부터 펑펑 울기 시작했다.
특히, 남자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통곡했는데.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경찰관들에게 둘러싸였다.
강민정은 현지 경찰관에게 그 총기를 넘겼고.
한참 동안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렇게 사건이 수습되면서 주변 정리가 되었고.
두 연인은 이제 경찰관들과 함께 경찰 차량 쪽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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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씨, 정말 수고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근데 대체 누군가요? 저 사람들?”
내가 묻자, 강민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뜻밖에도 이름까지 이야기해줬다.
“남자는 비토리오 몬델로. 여자는 모니카 셀리니. 옆에 있다가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상세한 대답이다.
나는 피식 웃다가 다시 물었다.
“혹시 자살 시도 이유도 들었습니까?”
“네. 모니카한테 투자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네? 투자 실패요?”
나는 갑자기 호기심이 더 커졌다.
나 역시 투자 실패로 인해 마포대교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저 남자도 그런 상황이었단 말인가.
“얼마나 잃었는데요?”
“울면서 했던 이야기라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3억 유로인 것 같습니다.”
“3억 유로?”
그 말에 나도 놀랐지만, 경호원들도 같이 놀랐다.
3억 유로라면 대략 4,500억 원에 달하는 숫자다.
나는 즉시 고개를 돌렸다.
현재, 저만치 사라지고 있는 경찰차들.
그 연인들은 지금 저 경찰차에 호송되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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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거 참 묘하네.
최근에 무려 3억 유로를 날렸다고?
설마 내가 투자했던 그 일 때문인가.
그러고 보면, 최근의 이태리 증시는 정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극악한 장세가 아니었던가.
거듭된 폭락에 이은 거듭된 폭등.
잠시 보합세로 흐르다가 또 폭등이 생겼고.
룩셈부르크 사람들과 내가 포지션청산을 마치고 물러났을 때.
그로부터 며칠 뒤.
바로 어제의 일이다.
옵션만기일에 드디어 다다랐고.
그 혼란의 날에 장중 대규모 폭락은 다시금 발생했다.
만약 옵션만기일까지 풋 옵션을 꼭 쥐고 있던 사람이라면, 엄청난 수익을 맛볼 수 있는 그런 차트 변화였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폭락과 폭등이 오가는 상황에선 적절한 대처가 무척 힘들어진다.
특히, 천문학적인 금액을 갖고서 투자를 하는 사람들한텐 더욱 힘든 일이 아닌가.
결국, 이번 이태리 증시는 보통 투자자들이 접근하기 힘든 아주 위험천만한 레이스였다.
‘근데 3억 유로를 날렸다면 대체 투자금이 얼마였을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더 큰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설마 내가 저 사람한테 영향을 미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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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씨, 어느 경찰서로 갔는지 혹시 아세요?”
“네. 얼핏 듣긴 했습니다.”
“김 팀장님! 지금 바로 그쪽으로 이동하죠.”
“경찰서 말입니까?”
“네!”
이때, 내 지시에 의아해하는 김성태 팀장.
강민정도 잠시 날 쳐다봤으나.
그녀는 이내 뭔가 알 듯 모를 듯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그 연인들이 호송된 경찰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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