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114화 (114/138)

112화 화폐 전쟁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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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다음 거래일이 시작되자, 나는 긴장감 속에 빠져들었다.

‘우선, 상승 출발.’

그러나 얼마 못 버텼다.

FTSE MIB지수는 19,700포인트를 일시적으로 찍었으나.

이후, 주르르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때, 봇물 터지듯 우르르 매도 물량들이 쏟아졌고.

반발 기세가 상당했다.

현재, 각 주가 종목마다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이 주요세력들의 움직임과 뒤엉키다 보니.

이런 차트 흐름 속에서 숨겨진 위험 요소들을 구분하기가 무척 힘들어졌다.

할 수 없이 계속 각 종목 차트들을 주시했다.

그리고 잠시 후.

FTSE MIB 지수가 19,400포인트 저지선을 깨고 19,399포인트까지 추락하는 순간.

매도 기세는 조금 뜸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시간은 채 10분 만에 끝나 버렸다.

다시 해일이 밀려오듯.

지수를 쭉 밑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그 전화들을 받은 뒤.

잠시 후 다시 FTSE MIB 지수 변화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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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풋쟁이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어.’

적어도 한 나라의 증시를 움직일 수 있는 세력인 것 같았고.

유럽 각국 증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세력인 것 같았다.

그런 대단한 세력이 지금 차트 뒤에 숨어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는데.

현재 장내에 짙게 드리어져 있는 암운.

그 암운은 무척 거대해 보였고.

그 암운 때문에 증시는 다시금 폭락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느덧 장 막판에 이르자, 한없이 추락했던 주가지수에 갑자기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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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님! 또 이상합니다.”

한편, 오늘 주가지수 하락이라는 즐거운 상황 속에서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던 비토리오.

그는 그 때문에 현재의 차트 변화를 바로 인지하고 있었다.

“이사님! 근데 언제 청산하는 겁니까? 다들 불안 불안합니다.”

그러나 비토리오는 아직 허락할 수가 없다.

자신의 보스 알베르토가 여전히 ‘청산’이 아니라 ‘보유’를 지시하고 있기 때문.

‘지금 차트가 분위기상 딱 좋은데···.’

매끈한 하강 곡선을 그렸고.

좀 전까지 바닥을 훑었다.

그러나 무언가에 막힌 듯 더 밑으로 내려가진 않았으나.

충분히 탈출점이 될 수 있는 그런 지점이었다.

그러나 최고, 최적의 시간은 또 지나버렸다.

차트는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고.

장중 유동성은 다시 커진 듯.

불안한 전조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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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뭔가 문제가 있어.’

비토리오는 갈수록 느낌이 쌔해지는 듯했다.

등이 축축이 젖어 드는 듯한 그런 느낌도 들었다.

특히, 이번 투자에 극도로 집중하고 있는 비토리오.

모니카와의 결혼까지 엮인 상황이다 보니.

그는 초단기적 시세 변화에도 극도로 민감해져 있었고.

주변 상황엔 즉각 즉각 반응하며.

극도로 불안해지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이제 진한 땀마저 맺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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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게 아니지! 이번 투자의 청산 권한은 없지만, 매수 권한은 있단 말이야!’

어느 순간, 비토리오의 두 눈엔 묘한 광기가 새어 나왔다.

‘헷지! 헷지를 하면 돼! 구태여 보고할 필요도 없어.’

리스크 관리.

지금이라도 늦지 않게 콜 옵션과 선물 등을 매수해서 균형을 맞추면 리스크가 낮아진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수익 창출을 할 수 있다.

보스 알베르토는 일방적인 풋 옵션 쪽에 주력하고 있으나.

헷지 펀드 자체가 아주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곳이 아닌가.

그 때문에 비토리오는 좀 더 날카로운 시각으로 차트 변화에 주목했고.

잠시 후, 주가지수가 드디어 반등하기 시작하자.

직원들에게 재빨리 전화를 걸어, 몇 가지 헷지 전략과 매수 포인트들을 즉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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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6포인트

19,065포인트

19,108포인트

19,164포인트

19,198포인트

19,189포인트.

19,216포인트

19,249포인트

19,300포인트

어제 4.62% 상승했던 FTSE MIB 지수.

오늘 장이 열리면서 하락 반전했고.

깊은 골짜기를 만들며 폭락 징후가 나타났으나.

초단기 조정이 어느새 끝난 듯.

주가지수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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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3포인트

19,356포인트

19,403포인트

19,492포인트

19,476포인트

19,459포인트

19,467포인트

19,512포인트

19,555포인트

그렇게 상승하던 지수는 어느덧 19,646포인트를 찍었고.

소폭 등락만 거듭하다가.

오늘 장을 마감했는데.

오늘 장중 낙폭을 거의 회복한 약보합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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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며칠이 지나갔고.

다시 증시가 열리자.

이날은 장 초반부터 엄청난 자금들이 장내에 밀려들었다.

반발작용으로써 매도 기세들이 툭툭 튀어나오긴 했으나.

매도세는 거대한 매수세 거인의 발자국에 그냥 짓밟혀 버렸다.

주가지수는 이때부터 높이 치솟기 시작했는데.

그리고 그로부터 한 시간 뒤, 놀라운 발표 소식이 들려왔다.

장중에 나온, 미국발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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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B, 6,000억 달러 규모의 국채 매입 정책 연내 달성하기로···]

“···작년 11월 3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차 양적 완화 정책으로써 6,000억 달러 규모의 국채 매입에 대해 발표했다. 현재, 이 작업은 2011년 연내에 조속히 완료될 것이라며 FRB는 그 의지를 밝혔다. 이런 양적 완화 조치는 향후 자금 유동성을 크게 확대시킬 것으로 예상되며, 경기 부양 및 고용 확대 등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작년 3월에 완료된 FRB의 1차 양적 완화 정책인 QE1 정책으로 인해 1조 7,000억 원이 시장에 풀렸으며···.”

한편, 이 기사는 며칠 전에 발표된 EU와 ECB의 경기 부양책들과 어우러지면서 바로 시너지 효과를 냈는데.

글로벌 유동성 확대라는 강력한 호재 요소가 있었다.

잠시 경색되어 있던 유럽권 자금들.

그 자금들마저 증시로 끌어올 수 있는 유인책이 될 수 있었고.

곧이어 독일발 호재기사들도 터지자.

이탈리아 증시를 비롯한 유럽 각국 증시의 주가지수가 더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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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작년 철강산업 수출 쾌조···]

[독일, EU 경제 대국으로 재부상···]

[독일 메르켈 총리, EU 구제금융 지원 의사 밝혀···]

EU의 주요 핵심국가인 독일.

연초, 독일은 국제적 정치적 움직임을 시작했는데.

이것은 독일의 반전이자, 독일의 국격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독일은 작년부터 국가 경제가 크게 부양되며 반등에 성공했는데.

그 변화의 배후엔 독일 철강산업의 성장 등, 중국의 경기 호조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그렇게 강력한 경제력을 갖게 된 독일.

이 독일은 메르켈 총리를 중심으로 하며.

EU에 새로운 리더십을 제시하려고 했고.

이제 금융 지원을 할 수 있는 독일.

그 채권국 독일의 힘은 점점 더 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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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6포인트

19,838포인트

19,876포인트

19,907포인트

19,956포인트

19,999포인트

20,000포인트

19,997포인트

20,008포인트

한편, 마침내 지수는 20,000포인트를 넘어섰는데.

이미 활활 불붙은 지수는 2만 포인트 저항선을 깬 뒤, 더 높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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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이 기사들은 단기적으론 아주 좋은 소식들인데, 좀 씁쓸하긴 하네.’

왜냐하면, 나는 그다음 미래의 일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재정 위기는 헝가리, 그리스에서 끝나지 않는다.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페인.

이들 나라도 심각한 재정 위기가 나타나게 된다.

일명, 피그스(PIGS) 국가들.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각 약자를 따서 만들어진 재정 위기 국가들인데.

이런 유럽발 사태는 2011년 유럽 증시를 지옥의 한 해로 만들게 된다.

사실, 지금 풋을 잡고 있는 자들은 정확한 예측을 한 게 맞다.

다만, 시기상조일 뿐.

거대한 나락은 언제나 반짝 상승을 동반하는 법.

지금은 바로 장기적 관점에서 반짝 상승의 시기다.

고무적이고 희망적인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지옥이 펼쳐지기 전.

그만큼 세상은 달콤하니까.

그리고 나는 이 짧은 시기를 회귀 전보다 더욱더 빛나게 만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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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마감 직전, FTSE MIB 지수는 20,200포인트 저항선을 공격했고.

그리고 얼마 뒤.

FTSE MIB 지수는 대망의 20,200포인트를 넘어섰다.

아주 정확하게는 20,226포인트 찍은 뒤.

오늘 파란만장했던 장을 마감했다.

전 거래일 대비 플러스 2.95% 지수 상승이다.

그리고 그 결과.

최초 매수 당시, 종잇값이나 다름없던 콜 옵션들의 가치는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KH투자파트너스’와 ‘KH 룩셈부르크 투자펀드’가 유럽 전역 증시를 타깃한 만큼, 법인 계좌의 숫자들은 갈수록 천문학적인 숫자들로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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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

다음 거래일이 되었을 때.

FTSE MIB 지수는 1.26% 상승했고.

그다음 거래일은 2.20% 상승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수는 이제 21,000포인트 달성을 향한 공략을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 어느덧 1월물 옵션 만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편, 그다음 날 다시 유럽 증시가 상승 출발할 때.

나는 ‘KH투자파트너스’에 전화해서 즉각 콜 옵션 청산을 지시했다.

내가 직접 운용하는 ‘KH 룩셈부르크 투자펀드’ 역시 서둘러 콜 옵션 청산을 시작했는데.

그다음 날 거래일까지 청산 작업들을 신속히 진행된 끝에 모든 물량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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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이건 진짜 상상하기 힘든 돈인데···.’

‘KH투자파트너스’의 자산 규모가 기존 2천억 원대에서 단숨에 2조 6천억 원 수준으로 바뀌었고.

‘KH 룩셈부르크 투자펀드’는 기존 3천억 원에서 단숨에 6조 7천억 원 수준으로 바뀌어 버렸다.

거의 유럽을 제패한 것이나 다름없는 쾌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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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룩셈부르크 진영도 이번 유럽 증시에 투입됐던 자금들을 하나둘 빼기 시작했는데.

그사이 리비아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마침내 일어났다.

“무아마르(카다피)는 알라의 적!”

“우리는 부패가 끝나길 원한다!”

“바그다니 알마흐무디 총리! 퇴진하라! 물러가라!”

“우리는 깨끗한 정부를 원한다!”

대규모 민주화 시위대들.

그들은 본격적인 아랍의 봄 사태를 촉발시켰는데.

그때부터 중동의 위기는 한층 고조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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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근데 이제 드디어 시작될 것 같은데.’

조만간 유럽 각국의 주가는 장밋빛이 끝날 것 같았고.

유럽 각국의 주가지수는 끝을 모르는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1월물 만기일인 1월 21일 이전에 지수는 크게 폭락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런 시세 변화에도 상관없다.

콜 옵션들을 모두 처분했으니까.

사실, 이번 투자에서 룩셈부르크 진영의 도움이 컸지만.

거대한 시류의 흐름에 몸을 맡긴 나는 증시의 거대한 거인이 된 거나 다름없었다.

즉, 내 뒤에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이 존재하고 있었고.

특히 2011년이 되면서.

나는 투자자로서의 그 격이 크게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하튼, 그런 묘한 감흥 속에서.

나는 곧이어 열일곱 번째 투자를 시작했다.

2011년 3월물, 6월물, 9월물, 12월물 유럽 증시 각 주가지수 옵션들을 노렸고.

유럽 각국 증시에 대한 풋 옵션 매집을 즉각 단행했다.

한편으론 열여덟 번째 투자도 서둘러 진행했는데.

세계 3대 원유인 WTI유, 브렌트유, 두바이유에 대한 선물·옵션 투자들.

유가 급등에 대한 선제적인 콜 옵션 투자들도 서둘러 마쳤다.

한편, 그 투자 일들을 밀라노 현지에서 계속 진행하다 보니, 밀라노 체류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111>

“···일단, 가시죠! 곧 도착하실 텐데, 깜짝 놀라실 겁니다.”

2011년 1월 22일 토요일 저녁.

겨울임에도 무척 선선한 날씨인 밀라노의 토요일.

아침부터 차가운 비가 내리더니.

하늘엔 여전히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는 모습인데.

비 때문에 도시가 무척 차분해지고 또한 조용해진 것 같다.

어느덧 이틀 뒤, 한국행 비행기 탑승을 앞둔 나.

그런데 김성태 팀장의 갑작스러운 추천 때문에 나는 출국 전, 밀라노 야간 도시 관광을 잠깐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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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깁니다. 아주 화려하죠?”

잠시 후, 우산을 든 나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화려한 금빛 색채에 뒤덮인 거대한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을 쳐다봤다.

비가 내리고 있는 이 광장.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 외에도 이 광장의 주변 건물들은 야간 조명들 때문에 마치 금빛으로 채색된 듯한 모습이었다.

'너무 멋지다.'

그 황홀함에 나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잠시 후, 한쪽을 가만히 쳐다봤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우측 저 너머.

그곳엔 잘 차려 입은 이태리 남자가 우산을 한 손에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로 여자의 가는 허리를 부드럽게 감싼 채 열렬한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편, 여자는 남자의 두 뺨을 양손으로 잡고서, 남자 못지 않게 열정적인 키스를 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태리 연인들은 너무 격정적입니다."

김성태 팀장의 말에 나는 작은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 순간, 갑자기 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외마디 비명 소리를 듣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좀 전까지 열렬한 키스를 하던 두 연인.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긴 치마 차림의 여자는 후다닥 뛰어가고 있었고.

남자는 우산을 놓친 채 자신의 뺨을 만지며 멍하니 서 있었다.

이제 한 방울 한 방울, 좀 성글게 내리고 있는 비.

그리고 그 차가운 겨울의 작은 빗줄기 속에서.

잠시 후, 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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