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유럽 제패 03
<109>
다음 날 아침.
‘아, 뻐근해.’
비토리오는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어젠 정말 좋았는데.’
어제 청혼은 대성공이었다.
반지를 손가락을 낀 모니카는 팔짝팔짝 뛰며 자신의 품에 안겼다.
밤늦게까지 그녀가 일하는 선술집에서 기다렸고.
퇴근하는 그녀와 함께 그녀의 집에 다시 갔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집에서 바로 출근하는 길이다.
‘3시간 정도 잤나.’
모니카는 지금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을 것이다.
‘흠.’
잠시 그녀를 떠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짓던 비토리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렸다.
자신은 출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했고.
서둘러 준비한 뒤 회사에 도착했는데.
오늘의 투자에 대해서도 챙겨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뭐 오늘은 디데이는 아니니까.’
아직 여유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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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리오는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뻐근했다.
어제 얼마나 사랑을 많아 나눴는지.
다리가 은근히 후들거린다.
하하!
그래도 비토리오는 환하게 웃었다.
모니카! 사랑스러운 나의 그녀!
그녀와 나눈 사랑은 너무 달콤했고.
이런 피곤함을 싫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차! 오늘은 소폭 하락이라고 했지?’
매집한 물량들을 청산할 날짜와 이제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역시 오늘은 디데이가 아니다.
조정을 한번 거칠 거라고 했다.
그런 뒤 다시 심하게 추락할 때.
모조리 터트리는 것이다.
‘수익이 엄청날 거야.’
추산컨대, 유럽 전역에 걸쳐 15억 유로에 달하는 엄청난 수익이 예상된다.
자! 자! 정신 차리자!
손바닥으로 힘껏 두 뺨을 두드린 뒤.
비토리오는 컴퓨터 전원을 켰다.
그리고 곧바로 각 모니터에 유럽 각국의 주가지수 차트들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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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증시는 드디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전에 오늘 증시를 참고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는데.
한 시간 일찍 시작되는 영국 증시.
그 영국 증시의 흐름을 보다 보면, 개장 전 이태리 증시 흐름을 대략적이나마 예상할 수 있다.
“세로조! 지금부터 시작해!”
조만간 시작하는 작업.
2억 유로어치의 주식을 분산해서 터트리는 작업이다.
초반 분위기를 확 잡아야 주도권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증시 낙조는 당분간 유지해야 한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빠르게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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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0.89%? 나쁘지 않아.’
한 시간째 보여주는 장중 흐름은 쾌조라고 할 수 있다.
하락 출발이었고, 하락세가 유지되고 있다.
‘하, 몰라. 커피나 한잔 마실까.’
비토리오는 커피가 문득 생각났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그는 더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탕비실로 들어간 비토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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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다 마신 거야?’
항상 있던 뜨거운 커피.
오늘따라 커피 용기가 텅텅 비어있다.
‘귀찮긴 하지만, 나 비토리오는 성실한 남자야.’
투자계에 입문한 지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 비토리오.
그동안 몇 개의 투자사를 거쳐왔고.
투자를 바라보는 눈도 어느 정도 숙련됐다.
현재 재직하고 있는 이곳은 아주 강력한 펀드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은 이사 직책을 갖고 있다.
‘뭐부터 했더라.’
잠시 고민하다가.
비토리오는 커피 메이커를 이용해서 커피를 천천히 내렸다.
‘됐어!’
어느덧 시간이 흘러, 커피 용기에 커피가 충분히 채워지자.
그는 진한 커피 향을 코로 음미한 뒤.
커피를 자신의 컵에 가득 따라 부었다.
콧노래를 하며 흥얼거리는 비토리오.
그는 잠시 후 컵을 들고서 자신의 사무실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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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보스!! 차트 변화가 이상합니다!!”
그로부터 이상 징후가 나타난 것은 대략 한 시간이 지나갈 무렵이다.
비토리오는 갑자기 담당 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뒤 조금씩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뭐가 이상하다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토리오.
“···볼라레··· 깐타레···.”
“이사-님!!”
그 순간, 다시 들려오는 직원의 요란한 외침.
비토리오는 짜증 섞인 대답을 했다.
“도대체 왜 그래? 지수가 조금 상승했네. 그래서?”
“이사님! 그쪽이 아니라 페라리 NV 종목 좀 보세요!”
페라리 NV 종목?
대체 세부 종목에 무슨 변화가 생겼나.
주가지수를 결정하는 것은 세부 종목의 수급 형태다.
사실, 이번 투자의 주요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비토리오.
관리자 격인 그는 의아해하며 세부 종목으로 넘어갔고.
곧바로 페라리 NV 종목의 호가창을 띄웠다.
그사이, 그는 곁눈질하며 영국, 독일, 프랑스 차트 등의 변화도 확인했다.
‘여긴 별다를 게 없는데.’
그 나라 증시는 아직 별다른 징후가 없다.
여전한 하락세가 아닌가.
그러고는 다시 페라리 NV 종목을 쳐다보던 비토리오.
그런데 그는 갑자기 싹! 잠이 사라지는 표정이 되었다.
조금 전까지 약간 졸린 눈이었던 비토리오.
그러나 그의 두 눈은 지금 확 커지고 있었다.
최초, 박스권으로 쌓아뒀던 ‘페라리 NV’의 주식 물량들.
그 엄청난 물량들이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호가창의 매도 주문 구간들은 아주 날씬하게 변해 있었다.
마치 늘씬한 페라리 스포츠카를 쳐다보는 듯.
호가창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나.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보스! 그 외에도 다른 종목에서도···.”
비토리오는 재빨리 다른 대형 종목들의 차트를 일제히 띄웠다.
그러나 놀람은 더 확산되었다.
각 종목의 주가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중이다.
엄청난 매수세가 지금 밀려들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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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다!
비토리오는 즉시 외쳤다.
“호세!! 세로조!! 마르코!! 디노!! 파비오!! 무조건 막아!! 물량 더 쏟아내!!”
보유 주식 물량들을 일제히 방출해야 할 순간이다.
아직 압박 붕대를 풀 시기가 아니다.
꽉꽉 눌러야 하는 상황.
물론, 자신이 이런 일의 어려움을 모를 수가 있다.
거대한 유럽 증시.
그리고 이태리 증시.
그 망망대해와도 같은 곳을 몇 개의 헷지 펀드들이 장악할 순 없다.
언제든 돌출 변수가 튀어나올 수 있다.
다만, 흐름이라는 게 있다.
대세적 폭락 징후 앞에선 대다수 몸을 사린다.
거대한 태풍 앞에서 인간의 힘으로 저항하는 것은 실로 멍청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쾅!
갑자기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의자가 확! 뒤로 밀리면서 벽면과 부딪혔다.
순간, 비토리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차트를 쳐다봤다.
그리고 즉시 손목시계로 시간도 확인했다.
사실, 오늘 장 상태가 나쁘다면, 소폭 상승 혹은 보합까진 허용할 생각이었는데.
지금 차트의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하락으로 나아가던 차트.
그러나 주가지수가 갑자기 반전하며, 위로 휘익! 치솟고 있다.
너무나도 빠르게 치솟다 보니.
어어! 하며 쳐다보는 사이.
그 주가지수는 마치 콘크리트 저항선과 같았던 전 거래일 주가지수 포인트 선을 그대로 찢고 돌출했고.
더 나아가, 급격하게 치솟고 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때, 요란한 노크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 사무실로 뛰어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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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님! 이사-님!! EU 쪽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EU? 도대체 무슨?”
비토리오는 발끈했다.
아직 파악은 안 되지만, 갑자기 사태가 복잡해진 것 같은데.
뭔가 불길한 느낌이 척추를 타고서 치솟았다.
“보도성명을 냈습니다···.”
순간, 비토리오는 재빨리 키보드를 두드렸다.
바로 검색했고.
바로 정보는 모니터에 떴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쳐다보면서.
그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고.
정신없이 그 기사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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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새로운 전략 발표··· 무분별한 긴축 정책에 대해선 부정적···]
[긴축 정책··· 속도 조절 시사···]
“···긴축 정책은 수출 우세 국가에 대해선 유효한 정책이다. 그러나 수출 부문이 약한 EU 회원국들에 대해선 긴축 정책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EU는 밝혔다···(중략)···강력한 긴축 정책은 심각한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중략)···헝가리, 그리스 등 재정 위험국들에 대해선 향후 강력한 금융 지원을 통해···.”
그런데 문제는 그 기사를 확인하는 와중에 또 다른 최신 기사들이 속속 인터넷 사이트에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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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앙은행 ECB, 경기 부양을 위한 제로 금리 시사···]
[EU, 유로존 물가 상승률 이미 정점을 지난 듯···]
[EU, 포괄적 경기 부양책 예고···]
그렇듯 각국 증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호재성 기사들이 일제히 터져 나왔고.
거대한 태풍의 기세가 꺾였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듯.
늑대 같은 초대형 자금들이 더는 기다리지 않고 일제히 유럽 증시로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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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이라도 당장 풋 옵션들을 청산해야 한다.
최고 수익은 아니겠지만.
지금 당장 청산하면 무조건 큰 수익을 남길 수 있다.
아직도 천문학적인 수익이다.
비토리오는 재빨리 전화기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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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접니다. 지금 긴급! 긴급 상황입니다!”
“긴급? 그래서?”
“당장 청산 처리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때 뜻밖의 목소리가 곧 들려왔다.
이번엔 좀 차분한 목소리였으나.
여전히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듯한 목소리였다.
“비토리오. 움직일 때가 아니다. 기다려!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
“보스! 지금 상황은···.”
“멍청하긴! 비토리오! 지금 포지션을 정리하면, 우리만 멍청해지는 거야. 증시는 본래 오랫동안 손에 쥘 수 없는 생물체야. 오늘은 지켜봐. 오늘 장만 잘 버티면, 다시 기회가 찾아올 거야.”
“보스.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지수 상승기에 풋을 판다? 비토리오오오!! 절대 멍청한 짓 하지 마!! 우리 물량들을 다 풀면, 호가는 미친 듯이 폭락할 수 있어!! 지금은 물러서!! 알겠나?”
“저도 그 점은 잘 압니다. 보스.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솔직히 비토리오는 물량들을 다 정리하고 싶다.
지금 정리해도 엄청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물량들을 다 정리하고 나면, 자신은 엄청난 인센티브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돈으로 우아한 저택을 살 생각이다.
모니카와 함께 살게 될 저택.
저택 말이다!
그러나 잠시 후, 비토리오는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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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 위험해. 분위기가 안 좋아. 갑자기 기사들이 이렇게 터질 수 없는데. 드디어 반작용이 터진 거야.’
삼일천하.
낙폭은 이제 완전히 끝난 걸까.
그러나 물량 정리를 하지 말라는 알베르토의 지시를 좀 전에 받았다.
‘이게 아닌데. 이건 너무 위험해.’
그러나 자신의 보스인 알베르토를 절대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저번 증시 폭등 때도 마찬가지다.
알베르토의 지시에 따라 풋 옵션들을 손절하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의 수익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알베르토의 판단은 충분히 존중할 만한 것이다.
거친 역경을 딛고서 여기까지 온 것 역시 오로지 알베르트의 판단 때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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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조! 오늘 청산하지 않기로 했어. 다들 조용히 대기하도록.”
“이사님!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만! 그렇게 결정됐어! 그렇게 알고 대기해!”
직접 직원들한테 가서 그런 지시를 내린 비토리오.
그런 뒤, 그는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고.
다시 의자에 앉았지만.
솔직히 너무 불안했다.
그리고 이 불안감이 그저 기우이길.
그는 속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아름다운 모니카의 얼굴이 문득문득 떠올랐고.
초조한 가운데.
그는 쉴 새 없이 기도했다.
<110>
두둥! 플러스 4.62%!!!
와아, 증시가 미쳤다.
오늘 이태리 증시는 엄청나게 급등한 것이다.
억눌렀던 증시.
그 증시가 기세를 펴며 완전히 살아난 것 같다.
‘근데 좀 심하게 급등했네.’
단순 주가가 아니라 주가지수가 4.62% 솟구쳤다.
이건 엄청난 수치다.
그런데 이런 대형 급등세가 터지고 나면, 대체로 다음 날 혼란한 장세가 열릴 수 있다.
시세 조정에 들어가면서 다시 급락할 수 있는 상황.
비교적 위험한 위치가 된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럼에도 지수 반전에는 성공했다.
지수는 위쪽 방향으로 곡선을 틀었고.
꾸준하게 상승하여 4.62%를 찍었다.
‘하지만 아직 선물 변화는 그리 크지 않단 말이야.’
주식을 하는 사람은 그 주식이 파생상품과 관련이 있다면 반드시 그것도 확인해야 한다.
선물옵션의 현황은 그 실물 주식의 미래를 반영하는데.
물론, 선물옵션의 변동 폭이 너무 커서 그 미래가 정확하진 않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몇 가지 미래 흐름들을 알 수가 있다.
‘수급을 보면, 풋을 잡은 세력이 아직 물량들을 잡고 있는 것 같은데···.’
다시 말해서, 지금은 샴페인을 마실 때가 아니다.
무척 긴장해야 할 그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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