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열여섯 번째 투자 - 이탈리아를 털다
<107>
“아델, 저 사람은 누구야?”
“한국인 투자자.”
“볼턴 경이 추천했어?”
“그래. 추천받았어.”
“너무 젊은데?”
“나랑 나이가 같다고 했어.”
“나보다 두 살 많네.”
“두 살은 아무것도 아니잖아.”
“근데 우리를 가만히 쳐다보는데.”
“흠흠. 엘리자베스. 우리 인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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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서 서로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하던 두 귀족.
사람의 면전에서 저러는 두 사람이 좀 신기해서 나는 가만히 쳐다봤는데.
볼턴 경은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볼턴 경!”
잠시 후, 젊은 귀족이 외치며 눈짓하자, 볼턴 경은 웃으며 날 다시 가리켰다.
“그럼, 소개해 드리지요. 이분은 한국에서 오신 김한수 대표님입니다. 무척 뛰어난 분이죠.”
그렇듯 간단히 나에 대한 소개를 마쳤고.
볼턴 경은 곧이어 그 젊은 귀족을 가리켰다.
“이분은 프룬츠베르크 백작가의 아델 드 프룬츠베르크 백작이십니다. 옆에 계신 레이디께서는 브르타뉴 백작가의 영애이신 엘리자베스 드 브르타뉴님이십니다.”
나는 사실 두 사람을 남매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한 사람은 프룬츠베르크 백작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브르타뉴 백작가의 젊은 귀족 아가씨.
한편, 나는 익숙하지 않은 그들의 예법보다는 가볍게 한국식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런데 그런 내 인사법을 유심히 쳐다보던 귀족 아가씨는 갑자기 외쳤다.
“아델!! 난 한국인은 처음 봐!!”
그러자.
“엘리자베스! 너무 시끄럽잖아! 네 대학 주변에도 한국인들이 있었을 텐데, 넌 그냥 관심이 없었던 거잖아!”
그러나 그 아가씨는 프룬츠베르크 백작의 지적에도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안수 킴? 하안수? 어떤 게 당신 이름이죠?”
“한수는 제 이름이고, ‘김’은 제 성입니다. 혹시 발음이 힘들면 ‘김’이라고 해도 됩니다.”
“킴? 킴? 혹시 작위가 있나요?”
“아뇨. 한국에는 귀족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자 눈이 약간 커지는 엘리자베스.
그러고는 이내 밝게 웃었다.
“아, 맞아! 제가 착각했어요!”
한편, 나는 그 와중에 좀 놀랐다.
그녀가 너무 밝은 느낌인 것도 놀랍지만.
격식을 차리지 않은 그 행동과 말투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프룬츠베르크 백작과의 대화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는데.
호기심이 강한 엘리자베스.
그녀가 계속 우리 대화에 끼어들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프룬츠베르크 백작과의 대화는 잠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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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운용 자산규모가 어느 정도 됩니까?”
무척 진지한 표정인 젊은 백작.
그는 나한테서 받은 명함을 보면서 그렇게 물어봤다.
그런데 사실, KH투자파트너스의 운용자금은 아직 그렇게 크지가 않다.
세계적인 글로벌 펀드들과 비교한다면, 다소 왜소할 정도.
그런데 현재 내가 세운 법인은 총 두 개다.
KH투자파트너스 외에도 KH 룩셈부르크 투자펀드가 있다.
그리고 이 법인들의 자산규모를 모두 합친다면, 그땐 크게 나쁘지 않다.
KH투자파트너스의 자본금은 2천억 원을 돌파했고.
KH투자파트너스의 외부 투자 운용자금은 3천억 원(외부 자금)을 넘어선 상태다.
그리고 ‘KH 룩셈부르크 투자펀드’는 그 자산이 며칠 전 유럽 증시투자로 인해 무려 3천억 원에 이르게 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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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두 법인의 지분구조는 어떻게 됩니까?”
그 질문을 즉시 던지는 젊은 백작.
그의 눈에선 더 큰 호기심이 감지되었는데.
밝게 빛나는 그의 눈동자에선 다행히 어떤 적의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볼턴 경을 한 번 쳐다본 뒤, 솔직하게 대답했다.
“두 법인 모두 100% 제 소유입니다.”
그러자 눈이 확 커지며 많이 놀란 표정을 보이는 백작.
두 회사의 순수 자본금 규모는 어느덧 5천억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내 재력의 전부가 아니다.
내 개인 자산은 따로 있다.
무려 조 단위의 자산 말이다.
한편, 젊은 백작의 표정은 그 대답 때문에 확 밝아졌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유산을 상속받았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꽤 유명하겠군요?”
그러자 볼턴 경이 슬쩍 나섰다.
“백작 각하! 이분은 한국 언론에서 크게 보도가 된 유명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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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당신 얼마나 유명해요?”
잠시 후, 엘리자베스는 나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듯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금발의 새하얀 얼굴, 파란 눈동자.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볼만한 미녀.
그런 미녀가 바짝 다가와 그렇게 묻자, 나는 좀 당황했다.
그녀의 따뜻하고 감미로운 입김이 느껴질 정도로 거리상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다.
“설마 당신은 아델보다 유명한가요?”
두 눈을 반짝이며 묻는 엘리자베스.
이번에도 볼턴 경이 나섰다.
“백작 각하에 대해선 한국인들은 잘 모릅니다. 비교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자 엘리자베스는 더 난리가 났다.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한참 동안 시간이 소모되었다.
그 때문에 기다리고 있던 젊은 백작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내내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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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너무 궁금해서 그럽니다만, 두 분은 어떤 관계입니까?”
그러자 내 질문에 이번에도 엘리자베스는 먼저 대답했다.
“아델은 제 사촌 오빠예요. 외가 쪽인데.”
역시나 그런 관계다.
격의가 없는 두 사람의 모습.
친척 관계 혹은 연인 관계로 짐작했는데.
그들이 친척 관계인 것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좀 의심도 생겼다.
유럽 귀족들은 친척 가문들끼리도 혼사가 많다고 한다.
유럽 대부분 나라는 사촌 간의 결혼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두 사람은 전혀 연인 같다는 느낌이 없다
그냥 친한 사촌지간인가.
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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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죄송합니다 킴! 라노이 백작님께서 곧 가신다며 저희를 호출하셨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뒤.
라노이 백작 때문에 간신히 주변이 정리되었는데.
두 젊은 귀족에 대한 의문이 커진 상태에서, 이제 볼턴 경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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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궁금한 게, 그럼 브르타뉴 백작가는 어떤 곳입니까?”
소개를 받았으나 상대방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그래서 적어도 확인을 할 필요는 있다.
“백작 영애에 대한 오해를 할 건 없소. 백작 영애는 수다스럽고 호기심이 많으나 지금 영국 옥스퍼드대에 다니고 있소.”
“아.”
“그 가문 자체가 아주 영리한 가문이오. 그 가문은 오래 전 프랑스 왕가인 발루아 가문을 모셨던 귀족가인데. 이후 발루아 가문의 왕계가 끊기자, 덴마크로 넘어갔고. 그곳에서 터전을 잡은 뒤 오늘날까지 이어진 가문이오. 브르타뉴 백작가의 자산은 가문 전체가 대략 100억 유로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소.”
와아, 100억 유로라고?
현시대 원화 기준으로 보면, 무려 15조 원에 달하는 자산을 가문이 갖고 있다는 말이다.
유럽 부자는 개인 기준이 아니라 가문 중심으로 그 재화가 엄청나다고 하더니.
엘리자베스의 가문은 아주 대단한 가문이었다.
“그럼, 프룬츠베르크 백작가는 어떻습니까?”
“뭐, 브르타뉴 백작가에 못지않소. 프룬츠베르크 백작가의 자산규모는 대략 80억 유로 정도가 될 거요.”
자산 규모 대략 12조 원.
대단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
특히, 현대까지 이어진 유럽 귀족들 대다수가 엄청난 부자들인데.
그들은 모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다.
에휴, 나랑 달라.
그리고 다른 점에서 프룬츠베르크 백작은 또 달랐다.
엘리자베스는 그저 브르타뉴 백작가의 일원일 뿐.
프룬츠베르크 백작은 자신의 가문을 직접 이끌어가는 주역이 아닌가.
“···그리고 프룬츠베르크 백작가의 기원은 라노이 백작가와 비슷하오. 그래서 오늘 파티에 초대된 것이오.”
그러면서 볼턴 경은 좀 더 프룬츠베르크 백작가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프룬츠베르크 백작가는 라노이 백작가와 비슷하게 16세기 파비아 전투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당시 지휘관이었던 게르크 프룬츠베르크 장군.
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로부터 백작위를 하사받았고.
이후 그의 후손들은 덴마크로 넘어가, 덴마크의 유력 귀족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프룬츠베르크 백작가의 권위는 전대 백작에 의해 더욱 다져졌고.
현재 그 가문의 힘은 아주 대단해진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그 힘의 근원은 바로 재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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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볼턴 경! 제가 잘 몰랐던 부분이 있던 것 같은데, 혹시 어떤 작위를 받으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잠시 후, 나는 볼턴 경의 작위에 대해서도 직접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간단히 대답했는데.
기사 작위를 과거에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세습 작위가 아니다 보니 작은 명예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작위가 중요한 게 아니오. 내가 워낙 조용히 일하다 보니, 날 아는 분들만 ‘경’이라는 경칭을 쓰고 있소. 그래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한테까지 강요할 생각은 없소. 김 대표도 편안하게 생각하시오.”
“아닙니다. 저는 앞으로 경칭을 쓰겠습니다.”
“아아, 꼭 그럴 필요는 없는데.”
하지만 그렇게 내가 말하자, 은근히 기분은 좋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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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뒤.
어느 시종으로부터 호출을 받은 뒤 잠시 어디론가 다녀온 볼턴 경.
그는 다시 나한테 다가왔다.
“대공께서 뵙자고 하시오.”
대공의 의지를 전달하는 입장이라 신중하게 말을 마친 볼턴 경.
그때부터 그는 한쪽 복도 쪽으로 날 안내했고.
잠시 후, 어느 화려한 응접실로 날 데려갔다.
그리고 그곳엔 크루즈선에서 봤던 전임 대공이 화려한 복색을 하고서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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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뜻하지 않게 그게 큰 인연이 된 것 같네. 우리 룩셈부르크를 귀하게 여겨주어 감사드리네.”
“아닙니다. 저도 좋은 기회를 얻어 기쁩니다.”
“좋은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은 우리 룩셈부르크의 번영을 의미하네. 앞으로 이곳에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 인재들이 많이 필요할 터. 우리 룩셈부르크 인재들을 많이 쓰도록 하게. 그리고 재무부와 행정부 쪽에 이야기를 해 둘 테니, 그쪽 도움도 받도록 하게. 내가 살아있는 동안,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큰 펀드를 만들 생각이 있다면, 나중에 제안을 해 주게. 합당하다고 생각되면 거대한 펀드를 조성하는 일에도 내가 돕겠네. 부디 우리 룩셈부르크를 새로운 터전으로 생각해 주게.”
그러고 보면, 대공은 확실히 보통 인물이 아니다.
그러니 소국 룩셈부르크가 그렇게 발전할 수 있었나 보다.
소국 룩셈부르크의 번영은 자원이 만들어낸 게 아니라.
바로 사람이 만들어낸 빛나는 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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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피곤하다. 피곤해.’
어느덧 밤 11시가 가까워지는 시각.
파티는 끝났고.
어느덧 녹초가 된 기분으로 그곳에서 나왔다.
차량 뒷좌석에 앉자마자 손발이 축 쳐지는 듯한 느낌인데.
강민정 경호원도 무척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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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한편, 김성태 팀장이 갑자기 날 불렀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근데, 저기 귀족 아가씨와 그 백작이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나는 의아해하며 창밖을 쳐다봤는데.
진짜네.
귀족 레이디, 엘리자베스!
그녀가 우아한 드레스 차림으로 내 차량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그녀의 옆에는 아델 드 프룬츠베르크 백작의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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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정말 오늘 반가웠습니다. 제가 다시 꼭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땐 좀 더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킴! 다음에 또 만나요. 볼턴 경이 추천하신 분이라면 저도 당신한테 관심이 있어요!”
한편, 엘리자베스는 이번에도 그윽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래도 인사를 마치자마자 그들은 의외로 빨리 돌아갔는데.
그제야 나는 귀족들의 틈바구니에서 무사히 귀환한 느낌이 들었다.
“김 팀장님! 이제 바로 나가죠!”
곧이어 차량은 출발했고.
우리는 드디어 베르크 성(Berg Castle)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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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
룩셈부르크 투자법인과 관련하여 나는 몇 가지 일들을 즉시 진행했고.
그 일을 마친 뒤 곧바로 파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서 이제 이태리 밀라노로 날아갔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뒤.
내가 연말에 초래했던 유럽 증시 폭락의 후폭풍은 자연스럽게 유럽 증시를 찾아왔는데.
그 여파가 이상할 정도로 이태리 증시에서 두드러졌었다.
그리고 한국 겨울과 달리, 늦가을과 같은 밀라노의 겨울 날씨 속에서.
나는 열여섯 번째 투자를 밀라노 현지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투자는 폭락이 아니었다.
바로 폭등이 타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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