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프룬츠베르크 백작
<106>
라노이 백작가.
이 가문은 16세기 초, ‘샤를 드 라노이’에 의해 크게 번성하게 되는 가문이다.
당시, 이탈리아 지배권을 놓고서 벌어진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의 전쟁.
이 전쟁에서 ‘샤를 드 라노이’는 신성로마제국의 사령관으로 활약했고.
마드리드 조약(treaty of Madrid) 체결로 이어지는 ‘파비아 전투’를 승전으로 이끌면서.
그는 이때 백작 작위를 하사받게 된다.
이후, 벨기에의 유력 공작 가문인 리뉴 공작 가문 외에도 여러 귀족 가문들과 혼맥을 이어 가면서.
이 가문은 명실공히 벨기에 유력 귀족 가문으로 성장하게 된다.
현재 이 라노이 백작가는 필리프 드 라노이 백작이 이끌고 있는데.
벨기에 귀족 가문으로서 그 명망은 현재 아주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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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이구나.’
라노이 백작.
그리고 그의 아내 외에도 그의 장남 세바스티앙 드 라노이의 모습도 거기에 보였다.
그러나 훗날 대공 왕세자비가 되는 테레사 드 라노이의 모습은 파티장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 저 사람이 현 대공이겠구나.’
현재, 파티장의 가장 중심부.
대공 일가를 비롯하여 라노이 백작가 사람들은 그 화려한 파티장 중앙에 모여 자기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금융인들, 정치인들, 기업인들은 그 때문에 잠시 옆으로 물러나 있었고.
대공 일가의 일들이 끝날 때까지 그저 도란도란 자신들의 작은 이야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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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좀 어색하네요.”
한편, 나 역시 감히 그쪽으로 다가가지 못했는데.
제삼자 격인 김성태 팀장도 다소 답답한 듯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긴, 너무 어색한 광경이었다.
룩셈부르크 군주 일가와 파티의 주요 손님 격인 벨기에 유력 귀족가의 만남.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외치는 이 현대에서.
특히, 한국인들에겐 무척 낯설고 무척 납득하기 힘든 장면일 수밖에 없다.
“근데 저쪽에···.”
한편, 김성태 팀장은 갑자기 나한테 눈짓했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일단의 사람들과 함께 어느 근엄한 노인이 파티장으로 나타났다.
순간, 나는 바로 알아봤다.
전임 대공이다.
크루즈선에서 봤던 그 대공은 지금 가발을 쓰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고.
한층 나이가 더 많아 보였다.
그런 그가 파티장에 나타나자 모두가 그를 주목했는데.
지금껏 무리의 중심이었던 현 대공마저도 옆으로 물러서고 있었다.
하긴, 오랜 시간 룩셈부르크를 지배했던 그의 권위는 아직도 대단했고.
모두가 우러러보는 그런 위치에 그는 여전히 서 있었다.
확실히 전임 대공의 존재감은 묵직하면서도 압도적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중.
이때,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깔끔한 정장 차림. 볼턴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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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거 한 잔 드시구려.”
칵테일 두 잔을 손에 들고 나타난 볼턴.
그는 칵테일 한 잔을 나한테 건넸고.
그러고는 씩 웃었다.
“두 분 대공들께서 무척 진지하지 않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저 대화가 끝나야 진짜 파티는 시작될 거요. 그렇다면 대체 저곳에서 무슨 대화들이 오가고 있는지 혹시 예측이 되오? 유서 깊은 두 가문의 만남. 핫핫! 무척 의미심장하지 않소?”
백발의 볼턴.
그는 유심히 그쪽을 쳐다보며 나한테 이것저것 이야기했는데.
사실, 나는 그들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대략 예측이 되는 상태다.
결국, 너무 쉬운 일이 아닌가.
대공 왕세자의 혼약과 관련된 사안.
바로 그 사안일 텐데.
그래서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하긴, 혼사는 정말 중요한 일이죠.”
그러고는 칵테일을 조금 마셨다.
달달하면서도 톡 쏘는 듯한 느낌의 알콜.
그런데 이때, 무척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리자.
볼턴의 얼굴이 갑자기 괴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모습에 나는 좀 당황했다가.
불현듯 뭔가를 깨닫고서.
순간, 아차! 싶었다.
‘대공 왕세자의 결혼은 아직 발표된 게 아니잖아!’
다시 생각해 보니, 룩셈부르크 대공 왕세자의 결혼 사안은 아직 공개된 게 아니다.
미래를 알기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바로 회귀 시점과 현시점의 괴리였다.
잠시 후, 볼턴은 내 팔을 잡더니 한쪽 구석으로 날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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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디서 그 이야기를 들었소?”
무척 심각해진 표정.
순간,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고.
억지로 웃으며 대꾸했다.
“그냥 간단히 예측한 겁니다. 대공 세자 저하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곧 혼사를 치르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라노이 백작가에는 아름답고 빼어난 품격을 가진 영애도 계시고···.”
이때, 볼턴은 날 한참 뚫어지라 쳐다봤다.
무언가 확인하려는 듯.
무언가 의심을 불태우려는 듯.
그러던 중, 그는 갑자기 고개를 끄덕끄덕했고.
이내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도 지었다.
그러다가 그는 내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고.
갑자기 그 이야기들을 중단하더니.
다른 화제를 꺼냈다.
“좀 있다가 프룬츠베르크 백작가에서 사람들이 오기로 했소. 그때, 프룬츠베르크 백작과 잠깐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시오.”
“프룬츠베르크 백작?”
나는 바로 되물었다.
“혹시 그분을 저한테 소개해주겠다는 말씀입니까?”
볼턴은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볼턴은 잠깐 설명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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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 드 프룬츠베르크 백작!
그가 이야기하는 이 프룬츠베르크 백작은 덴마크 유력 귀족이라고 한다.
덴마크 왕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현재 이 가문의 백작인 아델 드 프룬츠베르크 백작은 백작 작위를 물려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이라고 한다.
그는 금융 및 투자 쪽에 아주 큰 관심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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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룬츠베르크 백작은 이미 억만장자요. 엄청난 부동산과 대지를 물려받았고, 영국 은행 쪽에도 큰 지분을 가지고 있소. 그런 대단한 부자이면서도, 그는 아주 활발하고 아주 진취적인 사람이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왜 나한테 소개하려고 할까.
마치 상류사회의 끝판왕과 같은 유력한 귀족을 말이다.
그래서 내가 그걸 묻자, 볼턴은 잠시 주저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개인적으로 부탁을 받았소.”
그러면서 볼턴은 하얀 눈썹을 치켜떴고.
검지로 날 정확히 가리켰다.
“다만, 김 대표가 한국인이라는 게 많이 아쉽소. 허나, 프룬츠베르크 백작이 원하는 사람으로선 절대 결격이 없을 거요. 좀 전의 일을 기막히게 예측한 것도 그렇고, 며칠 전 유럽 사태를 일으킨 영리한 모습도 그렇고. 내가 크게 놀랐던 것처럼, 프룬츠베르크 백작 역시 그대에게 큰 흥미를 보일 것이라 보오.”
그러고는 볼턴은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아까 그 혼사 건은 절대 밖에서 말해선 안 되오! 군주와 관련된 소문은 늘 큰 혼란을 일으키는 법이오.”
“알겠습니다. 근데 그렇다면 제 예측이 정말 맞았나 보군요?”
그렇게 내가 슬쩍 공격(?)하자 볼턴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대단한 눈을 가진 것에 경의를 표하오.”
그러고는 볼턴은 이번에는 대공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조금 있다가 대공 전하께서 그대를 따로 뵙기를 원하시오.”
그렇게 볼턴은 나한테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마친 뒤.
곧이어 그는 빈 칵테일 잔을 한쪽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그러고는 그는 주변을 한번 살펴본 뒤, 곧이어 대공들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그는 어느덧 대공들 앞에 서서 격식있게 인사를 했고.
잠시 후, 라노이 백작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더니.
어느 순간부터 라노이 백작과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때, 나는 순간 의문이 생겼다.
저곳은 분명히 귀족들만 합류할 수 있는 그런 불문률이 생긴 곳이다.
메인 손님들을 지금 접대하고 있는 그런 곳.
그렇다면 볼턴은 룩셈부르크 행정가로서 저 대화에 끼어든 것일까.
그런데 좀 뭔가가 이상했다.
라노이 백작가 사람들을 대하는 볼턴의 태도가 어딘지 모르게 당당해 보였고.
전혀 위축된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잠시 뒤.
파티장엔 또 다른 변화들이 생겨났다.
바로 내 주변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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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어떤 분이신지 궁금했는데, 한국에서 오셨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볼턴 경과 아주 각별한 관계이신가 보군요. 저희가 나중에 대표님을 한번 모시고 싶습니다···.”
“···저는 스위스 로젠베르그 은행에 있는 부사장 데이먼 험버스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핫핫핫. 반갑습니다! 그리고 이쪽은 독일 테네시 트라건 캐피털의 한스 킨스키 수석이삽니다!”
“···안녕하세요? 노르웨이 록먼드 투자 IB은행의 찰스 더턴 부사장이라고 합니다. 하하하! 젊은 사업가를 뵙게 되어 제가 오히려 아주 젊어지는 느낌입니다. 하하하···.”
그렇듯 사람들이 갑자기 나한테 몰려들었는데.
흩어져 조용히 대화를 나누던 금융인들, 기업인들이 하나둘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들 모두가 親 룩셈부르크 대공 세력이었고.
대공 휘하에 있는 강력한 투자 진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부터 나는 정신없이 바빠지며 계속 명함들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은 중심부 귀족들의 시선을 끌게 된 듯.
대공들이 이쪽을 쳐다봤고.
라노이 백작과 백작비도 내 쪽을 쳐다봤다.
무척 희한한 일이다.
한국에서 날아온 젊은 투자자.
그런 내가 이곳에서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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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근데 좀 전에 다들 볼턴 경이라고 했단 말이야.’
볼턴씨한테 작위가 있었나.
그러나 대단한 작위는 아닐 것 같다.
기사 작위?
아니면, 준남작 정도의 작위?
하긴,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대공을 모셨다면, 그만한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흠. 그렇다면 나도 이곳 예법에 맞춰 경칭을 써야 하나? 근데 왜 나한테 그런 말을 안 했지?’
의아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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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잠시 후.
파티장은 이제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라노이 백작가와 대공 일가의 대화는 어느덧 끝이 난 것 같았고.
귀족들은 이제 여기저기 흩어지더니.
금융인들, 기업인들, 정치인들과 웃으며 한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하하하! 백작님의 농담은 여전하십니다! 하하하!”
“···공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새로운 협력은 아주 중요합니다···.”
“···하하, 저희 은행에서는 곧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려고 합니다. 혹시 백작가에서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한편, 나한테 쏠렸던 사람들의 관심도 그 와중에 순식간에 사라졌는데.
그러나 이미 수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터라, 나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무척 쉬워졌다.
그 때문에 진짜 파티를 이제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고.
그 와중에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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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어느덧 밤 9시가 거의 다 되어갈 무렵.
이때 갑자기 파티장 입구 쪽에서.
시종들의 요란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그쪽을 쳐다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사람들, 바로 새로운 귀빈들이 나타났다.
나는 이때 스위스 로젠베르그 은행의 데이먼 험버스톤 부사장과 대화하다가 그쪽을 쳐다봤고.
데이먼 험버스톤 부사장 역시 뚫어지라 그쪽을 쳐다보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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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또 귀족이 온 것 같은데?’
귀족들이 득실거리는 이곳.
도대체 또 어느 가문의 귀족이 나타난 걸까.
잠시 후, 무리를 이끌고 나타난 두 사람.
빛나는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어느 아리따운 귀족 아가씨와 화려한 턱시도를 입은 젊은 귀족이었다.
두 사람은 입구 쪽 화려한 샹들리에의 빛을 받아 더욱 외모가 빛이 나는 듯했는데.
이때, 그 젊은 귀족의 등장은 단숨에 사람들의 시선을 휘어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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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 건강은 어떻습니까?”
잠시 후, 그 젊은 귀족은 유쾌하게 웃으며.
대공들의 앞에서 무척 예의 바르게 인사했고.
곧이어 다른 귀족들과도 잠시 대화를 나눴다.
이후, 그는 볼턴 경과 뭔가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사이 아리따운 귀족 아가씨는 밝게 웃으며 대공비와 백작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나도 모르게 새로운 두 사람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그래서 그들을 슬쩍 곁눈질하던 중, 이때 나는 갑자기 흠칫 놀라고 말았다.
젊은 귀족과 이야기하던 볼턴 경.
그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날 가리켰기 때문.
그러자 젊은 귀족은 바로 고개를 돌려 날 쳐다봤고.
곧이어 조금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엘리자베스! 이쪽이야!”
그러자 귀족 아가씨는 바로 움직였다.
이때, 볼턴 경은 묘한 미소를 머금고 날 쳐다봤는데.
잠시 후, 귀족 아가씨와 젊은 귀족은 내가 있는 곳으로 나란히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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