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107화 (107/138)

105화 혼자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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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좀 드리려고요.”

“네? 인사요?”

“아시다시피, 저는 에마 크리스티! 그럼, 당신은···?”

늘씬한 백인 미녀.

긴 금발에 패션 감도 아주 빼어나다.

탄탄한 볼륨 감이 앞뒤로 대단한데···.

몸에 착! 달라붙는 듯한 잘록한 붉은 원피스 패션도 무척 선정적이다.

좀 전에 크리스티 경매를 주도하던 경매사로서의 모습도 아주 대단했다.

“네. 김한수라고 합니다. 여긴, 박현주.”

그러나 에마는 현주한텐 일절 관심이 없다.

현주에겐 살짝 눈인사만 한 뒤, 계속 날 빤히 쳐다봤다.

“혹시 비즈니스 카드는?”

“네. 여깄습니다.”

내가 명함을 건네자, 에마는 알루미늄 재질의 탄력적인 핑크빛 색채의 자신의 명함을 나한테 건넸다.

시선을 아주 자극하는 명함이다.

“어머, KH투자파트너스의 대표셨군요?”

“네.”

“한국인이세요?”

“네. 한국에서 왔습니다. 근데 저한테 어쩐 일로?”

“호호. 고객 관리인 셈이죠. 앞으로 저희 경매소를 자주 이용해주시라고. 근데 한국에 사시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군요. 런던이 아니라 외국에 사실 줄은 몰랐어요. 그럼, 여행을 오신 건가요?”

“네, 맞습니다.”

에마는 갑자기 씩 웃다가.

뭔가 다른 게 생각난 듯 탄성을 질렀다.

“맞아! 저희 경매소가 한국 출장을 내년에 준비하고 있어요! 혹시 제가 한국에 가게 된다면 연락을 드려도 될까요?”

연락?

나한테?

근데 우리는 처음 보는 사이인데.

겨우 지금 인사한 사이.

와아, 이 여자는 사교성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네. 필요하다면 연락 주십시오.”

그러자 에마는 웃었다.

짙은 립스틱 색깔 때문에 무척 붉은 그녀의 입술.

그 입술이 쓱 올라갔고.

그녀의 짙은 파란 눈은 부드럽게 휘어지며 웃고 있었다.

“미스터 킴. 다음에 뵙도록 할게요.”

그러면서 가볍게 날 포옹하는 여자.

짙은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고는 그녀는 따각따각 구두 굽 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가볍게 흔들며, 우아하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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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엄청난 여잔데?’

나는 솔직히 놀랐다.

연단에 있을 땐, 그저 아름다움과 차분함으로 경매를 이끌었던 에마 크리스티.

그런데 좀 전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무척 활력적인 데다가.

도발적인 느낌마저 있었고.

그만큼 강렬한 여자다.

좀 전, 내 앞에서 눈웃음을 짓던 모습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강력한 매력이 아닌가.

그런데 그 순간.

아차!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너무 빠져 있었나.

뒤늦게 놀라며.

현주를 쳐다보던 중.

나는 흠칫했다.

현주가 약간 놀라며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있다.

아마 그녀가 날 쳐다보고 있었던 모양인데.

‘흐음.’

이걸 대체 뭐라고 해야 하나.

하아, 근데 기분이 좀 묘하네.

현주한테 갑자기 미안해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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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여행 중에 나는 현주랑 일들이 많았다.

크루즈선 갑판에서 일들.

야간 수영장에서의 일들.

애매한(?) 스킨쉽도 있었고.

그래서 많이 친해져 이젠 이름을 서로 부르게 되었다.

물론, 이름 끝에 ‘씨’를 붙이게 되었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더 많이 친해진 것은 아니다.

즉, 직접적으로 사귀는 게 아니다.

남친, 여친.

이런 식으로 정형화된 사이도 아니었다.

물론, 현주는 무척 아름다운 여자다.

그러나 어느 순간 관계가 좀 애매해졌다.

바로 갑작스러운 유럽 투자 때문에.

관계 진전이 생길 수 있는 시간을 이때 잃어버린 것 같았고.

조금 관계가 서먹서먹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인 것 같았다.

‘결국, 내가 문제인 것 같은데.’

그러고 보면, 내가 쉽게 여자한테 정을 주지 못하는 체질일까.

회귀 전에도 여사친들만 만든 채 싱글 상태로 세상을 마감했었다.

아무래도 나한텐 특별히 가족들이 없다 보니.

그리고 그 가족의 정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성장한 터라.

무언가 인연을 발전시키는 능력이 다소 부족한 것 같다.

회귀 전에는 박유진 사장한테 그랬고.

지금은 현주한테 그러는 것 같았다.

그러니 에마 크리스티 같은 저돌적인 여자가 나타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쏠리곤 한다.

‘에휴. 아직은 모르겠다. 좀 더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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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씨!”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이때, 뭔가 말을 할 듯 말 듯 망설이다가.

결국, 그녀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한수씨, 혹시 저, 저 여자한테 관심 있으세요?”

에휴, 이놈의 눈깔.

내 눈깔이 방정이다.

“···하하. 현주씨. 좀 신기해서요. 백인 여자랑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이야기한 건 처음이거든요. 좀 전의 경매 보던 사람이어서 더 신기하고. 아! 현주씨, 가시죠! 낙찰품 서류 정리하고 바로 나가서 식사하죠.”

“···네.”

나는 별다른 일이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현주의 표정은 내내 굳어있었다.

<104>

‘카롤로스 인터헷지 펀드’의 비토리오 몬델로 이사.

그는 지금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오, 모니카! 나의 여신! 미안하오. 미안하오···.”

무릎을 꿇고서 한 송이 장미를 공손히 바치고 있는 비토리오.

한편, 토라진 모습의 모니카는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열렬한 비토리오의 모습에 갑자기 표정이 바뀌며.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사르르 피어올랐다.

잠시 후, 모니카가 장미를 받자, 비토리오는 웃으며 일어섰고.

금발의 미녀 모니카의 잘록한 허리를 힘껏 포옹한 뒤.

열렬한 키스를 시작했다.

“···음. 음. 비토리오, 대체 어젠 무슨 일이 있었어요?”

잠시 후, 모니카는 비토리오의 가슴을 살짝 밀치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자 비토리오는 자신을 그윽하게 쳐다보는 모니카의 모습에 다시 키스를 하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아가며 어제 일들을 잠시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다시금 어제의 일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는 다시금 큰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

보스의 명령에 따라 각 증시의 풋 옵션들을 미친 듯이 쓸어 담았는데.

그러나 어젯밤, 헝가리 정부는 공식적인 발표를 했다.

그 발표가 유럽 전역으로 퍼진 뒤, 유럽은 이내 큰 놀라움에 휩싸였다.

헝가리 사태는 그저 해프닝이었던 것.

헝가리 선물 시장의 변동성에 놀라, 오스트리아 선물 시장이 반응했고.

그게 연쇄적으로 반응하면서.

유럽 전체가 들썩였던 것이다.

결국, 오늘 2010년의 마지막 날.

이날 증시가 열리는 일부 유럽 각국의 증시는 일제히 상승 출발했고, 그리고 상승 마감했다.

이때, 각국의 주가지수는 각각 최대 5%에서부터 최소 2%대의 급등을 했는데.

문제는 어제 미친 듯이 쓸어 담았던 1월물, 2월물 주가지수 풋 옵션들은 심각한 지뢰가 된 상태였다.

그리고 어제 콜 옵션들도 쉴 새 없이 매도했는데.

펀드 자산운용 과정에서 큰 문제가 그렇게 만들어졌고.

내년 연초부터 큰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물론, 그 지시를 내린 보스는 오늘의 증시 상승이 오히려 해프닝이라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자신이 봤을 땐, 문제가 상당히 심각했다.

어제 초단기적으로 3억 유로에 이르는 단기 수익 가능성이 나타났으나.

오늘 장이 끝났을 때, 피해 규모는 무려 5억 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단 하루 사이에 폭락과 폭등이 오가다 보니.

누군가는 초단기적 수익을 얻은 것 같고.

누군가는 지독한 골머리를 앓게 된 그런 최악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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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리오. 저녁 먹고, 내 집으로 초대할게요.”

한편, 가슴이 무척 무겁던 비토리오.

그는 모니카의 그 갑작스러운 제안에 갑자기 표정이 확 밝아졌다.

모니카의 초대?

아주 늦은 시간, 그녀의 초대?

그게 대체 뭘 말하는지 비토리오는 절대 모를 수가 없다.

갑자기 가슴이 뛴다.

“오오, 나의 여신!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거요.”

“오! 비토리오···!”

산토리아 밀라노 레스토랑 앞.

어둠이 내리고 있는 초저녁.

가게의 불빛이 환하게 두 사람을 밝히고 있는 그곳에서.

두 사람은 다시 포옹을 하며 짙은 키스를 나눴다.

그러고는 두 사람은 서로 밀착한 채 이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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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현주씨! 그럼 내일 비행기를 타시려고요?”

“네. 일정을 길게 할 수 없어요. 월요일부터 출근해야 해서.”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요.”

“···네.”

“그럼 저는 룩셈부르크에 들렀다가 영주권 확인받고. 프랑스, 이탈리아에 잠시 들렀다가 그러고 나서 귀국할 생각입니다.”

“음, 아쉽네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이어가다가.

잠깐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도 서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러고는 이것저것 투자 이야기들, 크루즈 여행 이야기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다가.

어느덧 시간이 되자,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편, 거기서 박지훈 상무와 조관형 상무를 만났는데.

이번 영국 IB은행과의 미팅은 아주 잘 되었다고 했다.

두 사람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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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상무님! 그럼, 조 상무님도 원래 일정대로 내일 비행기를 타고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래증권과 협력해야 할 부분들도 많고,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많습니다. 근데, 대표님은 앞으로 괜찮겠습니까? 혼자서 여행하시려면?”

“아뇨. 혼자는 아니죠. 여기 경호원 여섯 분이 계시는데.”

나는 웃으며, 김성태 팀장을 비롯하여 강민정 경호원 등을 눈짓했고.

조관형 상무는 이내 걱정할 게 전혀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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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

런던 히스로 공항으로 함께 움직인 나는 그들에 대한 배웅을 마친 뒤.

곧장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고서, 이제 프랑스 파리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105>

“···대표님! 근데, 파리 스케쥴은 다 망가졌는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경호상 미리 아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한편, 프랑스 파리행 비행기에 탑승한 뒤, 김성태 팀장은 내 옆자리에 앉자마자 그렇게 물어봤는데.

나는 쓴 미소를 잠시 지었다.

사실, 중간에 유럽 투자를 진행하면서.

조관형 상무가 계획한 모든 스케쥴은 중간에 망가졌다.

그러나 그 스케쥴이라는 것은 다시 채워 넣으면 되는 일이 아닌가.

그리고 새롭게 스케쥴들을 만들 방법이 나한텐 있었다.

“파리에 도착하면, 바로 룩셈부르크로 가죠. 파리에서 기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비행기 편은 없습니까?”

뤽상부르(LUX)로 가는 비행기 편이 있긴 하다.

“그냥 조금 여유 있게 기차여행이나 하면서 호텔 예약이나 하도록 하죠.”

우리는 잠시 후 파리에 도착했고.

시간에 맞춰 파리 동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룩셈부르크행 TGV 열차에 탑승했다.

시간은 대략 2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여정인데.

그로부터 잠시 뒤.

우리는 TGV 2층 좌석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며 기차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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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프랑스 평원도 엄청나게 넓구나.

아주 넓은 평원의 모습과 끝없는 지평선의 모습.

특히, 지금은 겨울 시즌이라서.

평원이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 있는데.

마치 거대한 설원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한편, 그렇게 빠르게 달린 뒤, 마침내 우리는 룩셈부르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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