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물이 되어버린 투자자-106화 (106/138)

104화 그 위쪽, 거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다

<103>

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2010년의 마지막 날.

영국 런던, 크리스티 2층 경매장에는 차분한 듯하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연말 연휴로 썰렁해진 분위기와 다르게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경매장은 인파로 가득 찬 상태였다.

“이게 경매용 패들인가요?”

신기한 듯 묻는 조관형 상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대표님은 이런 경매를 어떻게 아십니까?”

회귀 전의 경험이 떠올랐으나 모른 척하며 대충 대답했다.

“미리 공부 좀 했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나는 고개를 돌렸다.

“현주씨! 외삼촌한테 의뢰받으신 게 있다면서요?”

“네.”

“제가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이런 경매는 상대 의지를 어떻게 꺾냐, 이런 부분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음. 재밌을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함부로 낙찰가를 올릴 수도 없죠.”

“그래도 한번 참여하다 보면 잘 하실 겁니다.”

“네.”

그러고는 내가 뭔가를 더 말하려고 했으나.

박지훈 상무가 계속 쳐다보고 있어 나는 중간에 말을 멈췄다.

그리고 이번에는 박지훈 상무를 응시했다.

“박 상무님! 경매 끝나고 투자 미팅이 있으시다고 하셨죠? 준비는 많이 하셨습니까?”

그러자 어색하게 웃는 박지훈 상무.

“어제 밤 샜습니다.”

그는 한숨도 내쉬었다.

“회장님의 기대감이 크신 만큼 저도 부담감이 큽니다.”

“아마 잘 될 겁니다. 오! 드디어 시작하네요.”

한편, 나는 즉시 자세를 바로 했고, 이제 정면을 쳐다봤다.

잠시 후, 연단 앞으로 어느 중후한 노신사가 걸어 나왔는데.

그의 등장에 장내는 조용해졌다.

이내 환하게 웃던 노신사.

그는 좌중을 한번 쳐다본 뒤, 곧이어 유머 감각을 뽐내며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에게로 끌어모았다.

그러고는 노신사는 조금 옆으로 물러섰고, 곧이어 어느 아리따운 여성이 우측 커튼 뒤에서 걸어 나왔다.

파란 눈에 금발의 미녀.

탑 모델이나 다름없는 늘씬한 모습인데.

그녀는 우아하게 걸어 나왔고.

노신사와 가볍게 포옹한 뒤, 곧이어 연단에 섰다.

그녀는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에마 크리스티입니다.”

에마 크리스티?

그러면서 자신을 크리스티 경매소의 창업자인 제임스 크리스티의 후손이라고 했다.

무척 밝은 미소와 새하얀 얼굴.

그 아름다운 경매사의 등장에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고, 환호성도 터져 나왔다.

감정 표현이 적극적인 서양인들.

그들은 그렇게 환호한 뒤,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조용해졌다.

#

“이제 진짜 시작된 거 같네요.”

슬쩍 현주에게 말을 건넨 뒤, 나는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잠시 후, 경매사 에마 크리스티는 이곳 경매 방식과 경매 수수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낙점 가격이 20만 달러에서부터 3백만 달러 범위에 있을 땐 수수료 20%.

3백만 달러 이상일 경우에는 수수료 12%가 붙는다고 했다.

그러고는 경매용 패들, 혹은 푯말의 사용법을 간단히 고지했다.

그렇듯 침착하게 설명들을 모두 마치자, 잠시 후 다시금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와아, 웬만한 배우 뺨칠 만한 외모네요.”

조관형 상무의 탄성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경매사의 외모는 정말 출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어느 아랍권 왕자가 보유하고 있던 중세 시대 그림 한 점이 가장 먼저 경매 물품으로 올라왔다.

그 그림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는데.

이후, 경매사는 드디어 경매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은 아주 지루한 듯, 그러나 아주 빠르게 흘러갔다.

#

“···다음 경매 작품 번호는 16번, 이 작품은···.”

한편, 이번에도 설명은 간단히 끝이 났고.

잠시 후 경매는 또 재개되었다.

“···200만 파운드부터 시작합니다. 자! 220만 파운드··· 아! 300만 파운드··· 350만 파운드··· 400만 파운드···.”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경매 금액이 빠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이때,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패들이 휙휙 튀어나오는 것을 흥미롭게 쳐다봤고.

그사이 금액은 상당히 높게 치솟았다.

“···1,800만 파운드! 바로 2,000만 파운드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어느새 2,000만 파운드까지 작품 가격이 치솟았는데.

우측 라인 중앙 앞쪽에 앉은 노신사가 그렇게 패들을 들며.

순식간에 금액을 2,000만 파운드까지 끌어올려 버렸다.

일제히 시선들이 그 노신사에게 집중되었는데.

그런데 또 다른 경쟁자인 어느 귀부인이 다시 패들을 들었다.

#

“2,500만 파운드?”

현주는 놀라며 탄성을 질렀다.

원화 기준으로 영국 파운드 스털링화를 환산하면, 대략 437억 원에 해당하는 돈이다.

“현주씨, 근데 저 그림은 제가 꼭 살 생각인데, 저도 시작하겠습니다.”

그 순간, 흠칫하며 날 쳐다보는 현주.

조관형 상무도 박지훈 상무도 날 쳐다봤는데.

그리고 잠시 후.

“···추가 입찰자가 없다면 2,500만 파운드에서 마감하겠습니다.”

그리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려고 할 때.

나는 번개같이 패들을 들었다.

“2,700만 파운드! 와아!”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에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졌고.

모든 시선들이 나한테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기이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

“2,900만 파운드! 3,000만 파운드··· 3,200만 파운드··· 3,600만 파운드··· 3,800만 파운드···.”

절대 지지 않겠다는 듯.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는 중년의 귀부인.

한편, 삼파전의 대상이었던 노신사는 이미 조용해진 상태였고.

나는 한참 귀부인과 줄다리기를 이어 나갔다.

#

“4,000만 파운드!”

마침내 내가 4,000만 파운드에서도 패들을 들자, 귀부인은 고개를 돌려 날 쳐다봤다.

찌푸린 눈빛.

기분 나쁜 눈빛.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4,200만 파운드까지 금액을 올려버렸다.

그러자 다시 모든 관심이 나한테 집중되었다.

그 순간, 나는 피식 웃었다.

잠시 후, 패들을 다시 들었다.

“오! 4,600만 파운드!”

사방에서 놀람이 일어났고.

귀부인은 또 고개를 돌렸다.

더 찌푸린 표정.

불쾌함이 역력한 표정.

한편, 그녀는 자신의 패들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경매번호 16번! 앤디 홀의 200 one dollar bills는 4,600만 파운드에 마감하겠습니다!”

그렇게 낙찰자가 선정되자.

에마 크리스티는 날 한번 쳐다본 뒤.

나무 손 망치를 두 번 회전한 뒤 가볍게 내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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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후.

20번 경매 물품이 나올 때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다.

300만 파운드까지 가격이 치솟자, 나는 패들을 들며 뛰어들었고.

그러자 배 아픈 누군가가 경매가를 일부러 올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단번에 500만 파운드까지 내가 올리자, 단번에 낙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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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잘 하시네요?”

“그것보다 저 그림의 가치가 더 중요한데. 아직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런 겁니다.”

저 그림은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인데.

훗날 5천만 파운드까지 치솟게 되는 그런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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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이번 경매의 하이라이트 경매 물품인 마지막 경매 물품이 드디어 눈앞에 등장했는데.

“···이번 물품은 2010년도의 마지막을 장식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희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그때부터 이 경매 물품에 대해선 조금 더 길게 설명들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장내는 긴장감이 감돌았고.

호기심은 폭발했다.

최소 수천억 원을 호가할 작품.

이 작품은 어느 소녀의 측면 인물화인데.

이 그림의 가치가 천문학적으로 커진 것은 이 그림의 한쪽에 찍혀 있는 놀라운 지문 때문이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지문.

그것으로 추정되는 지문이었다.

그 때문에 2009년도 경매 당시, 이 그림은 무려 1억 파운드라는 경매 신기록을 기록했는데.

이 작품이 다시 경매에 등장한 것이다.

작품의 제목은 ‘아름다운 왕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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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씨, 어떻게 하실 건가요?”

잠시 고민했다.

최소 2천억 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어쩌면 3천억 원?

아니면 4천억 원까지 치솟을지도 모른다.

부르는 게 값이 되는 작품.

그만큼 희귀하기 때문.

‘근데 이 작품이 나온 걸 보면, 오늘 이 자리에 대단한 부호들이 많이 왔을 것 같은데. 대단한 미술 수집가들도 많이 온 것 같고.’

그렇다면 낙찰과 상관없이 내 이미지를 조금 강하게 남겨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현주씨. 그냥 저는 적정 수준까지 참여만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긴장된 가운데 드디어 경매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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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역시 가뿐히 1억 파운드를 넘겨버리네.’

불과 5분이 지나지 않아, 이 그림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리고 잠시 뒤.

본격적인 경매 싸움은 누군가가 1억 5천만 파운드에 패들을 드는 순간, 바로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강력한 등장을 알린 것은 바로 그 노신사였다.

그는 1억 5천만 파운드에서 과감하게 패들을 들었고.

곧이어 앞서 나랑 붙었던 그 귀부인도 1억 6천만 파운드에서 패들을 들었다.

‘와아, 저 사람들 괴물들이었구나.’

뭐, 내가 낙찰받은 16번 물품은 나중에 5배 정도 더 비싸게 된다.

절대 손해가 아니다.

그런데 대략 저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경매 물품에 대한 가격 상한선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았고.

그 상한선을 넘어서게 되면, 가감하게 낙찰을 포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 진짜 경매의 세계는 절대 단순하지 않겠지.

#

“2억 파운드?”

그리고 잠시 후.

적시에 나는 과감하게 패들을 들었다.

순간, 삽시간에 몰려든 강력한 시선들.

노신사는 이때 날 힐끔 쳐다봤고.

귀부인도 날 쳐다본 뒤, 이번에도 심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다시 다른 곳에서 ‘패들’이 위로 올라왔다.

노신사였다.

“2억 2천만 파운드! 그럼, 2억 4천만 파운드··· 2억 8천만 파운드···.”

그때부터 다시 가격은 급상승했다.

그 팽팽한 긴장감.

이번에도 경매전은 3파전이었는데.

다시 한번 리매치를 붙는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는 거액을 투자할 생각이 없다.

세관 통관도 문제였고.

한국 세금 역시 엄청날 것이다.

결국, 가격이 마침내 3억 파운드까지 치솟는 순간.

나는 패들을 손에서 놓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대략 1분 뒤.

의외로 빨리 낙찰자는 결정되었다.

3억 2천만 파운드!

그 위치에서 낙찰자가 결정된 것인데.

낙찰자는 그 노신사였고.

귀부인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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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씨, 설마 살 생각은 아니었죠?”

나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가 대답했다.

“사실, 3억 파운드 아래쪽이면 고려해 볼 만했는데···. 현주씨, 그만 가죠. 우리가 낙찰받은 것은 지금 처리해야 하니까. 그리고 현주씨 외삼촌 의뢰품도···.”

“네.”

그렇게 정리가 됐고.

한편, 박지훈 상무는 중요한 미팅이 있어 여기서 헤어지기로 했다.

조관형 상무도 박지훈 상무와 함께 움직이기로 한 터라.

우리는 그곳에서 헤어졌고.

잠시 후, 나는 현주와 함께 행정 처리를 위해 고객센터로 이동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바로 그때였다.

#

“잠시만···.”

갑작스러운 인기척.

나는 고개를 돌렸고.

약간 놀라며 쳐다봤다.

마지막 경매 물품을 획득했던 그 노신사.

그는 내 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러고는 그는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레이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명함도 건넸는데.

나는 별생각이 없이 명함을 받다가.

이때,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이름을 거기서 접하게 되었다.

[그레이엄 드 로스차일드]

???

어??

[파리 RC Bank 재무이사]

???

놀라며 내가 고개를 들자, 노신사는 씩 웃었다.

“앞으로 자주 뵐 것 같군요. 혹시 경매를 즐기십니까?”

“아뇨. 꼭 그렇진 않습니다.”

“음. 명함을 보니, 한국 투자사 대표로군요?”

“네.”

“앞으로 어쩌면 또 만날 수 있겠군요. 하하.”

낮은 목소리로 웃는 노신사.

그 순간, 나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서 물어봤다.

“혹시 에블린 드 로스차일드 회장님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그러자 그는 날 한번 쳐다보더니 짧게 대답했다.

“사촌 정도.”

영국 찰스 황태자의 가슴을 검지로 콕콕 찍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에블린 드 로스차일드 회장.

그런 회장의 사촌뻘이라고 하면, 그레이엄 드 로스차일드는 프랑스 파리에 자리잡은 로스차일드 일가임이 틀림없다.

그렇게 말을 마친 노신사.

이내 그는 비서진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앞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멀어지는 사이, 또 다른 사람이 우리한테 다가왔다.

바로 경매사 에마 크리스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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